1장. 기원들


세 가지 질문 

1. 여성종속은 보편적인 것인가? 가부장적 지배체제가 역사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면 , 달라진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끝낼 수 도 있는것 아닐까?

2. 여성종속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면 대안적 모형의 사회는 과연 존재했는가?

3.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여성 종속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가?


가부장제의 성립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한 앞선 연구들

엥겔스는 성별 노동분업의 변화와 사유재산제의 성립과 그것의 보호, 상속을 위해 부계 혈통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제의 성립을 논의했다. 또한 남성에 의한 경제적, 정치적 지배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의 통제와도 관련이 있음을 역사적으로 파악했다. 

레비-스트로스는 근친상간 금기에 의해 여성의 교환이 등장하고 이것이 여성의 상품화, 사물화와 관련된다는 논의로 나아간다.

이는 가부장제의 성립에 대해 경제적 요인 뿐만 아니라 상징과 의미체계의 요인으로까지 연구범위를 확대할 수 있게 하였다.

또 하나 모성주의(maternalist) 이론이 있는데, 이는 19세기 여성 페미니스트들에 의해서 모성본능과 모성실천 때문에 남성보다 여성이 더 이타적이고, 이러한 특성으로 남성들의 파괴, 경쟁, 폭력으로부터 사회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모성주의에 의하면 가부장제가 있기 전에 대안적 모형이 존재했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고대종교에서의 어머니-여신상의 보편적 존재를 들 수 있고, 이것을 여성 권력의 실존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모권제라는 말을 쓰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과 함께가 아니라 남성 위에서 권력을 보유하고, 그 권력이 공적 영역과 외교관례를 포함할 때, 또한 여성이 친척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필수적인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가부장제의 정확히 반대편에서 모권제를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런 식의 모권제는 아직까지는 역사속에서 존재한 적이 없다.


터키에서 발굴된 카탈 휴유크 유적의 경우 가부장제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모형의 사회가 존재했음을 말해주지만 이것이 모권적 사회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 초기의 이 유적을 통해 여성의 종속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터키의 카탈 휴유크 유적에서 남성과 여성이 껴안고 있는 놀라운 조상이 발견되었다고(59쪽) 나와서 너무 궁금해서 찾아본 사진. 상체는 안고 있지만 하체는 거의 한몸인 것처럼 보이는 이 독특한 조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후기 신석기시대의 이 유적은 진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있는듯.... 





제2장 작업가설


과거에 대한 어떤 이론화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여성과 남성이 문명을 함께 건설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서구문명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여성과 남성이 현재의 상황으로 이르게 되었는가를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

단순화시킨다면 평등했던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왜 불평등으로 이행했는지 가부장제의 역사적 연원과 전개과정을 추적하게 해주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현재까지는 실재하지 않았던 모권제 사회를 계속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류의 초기 단계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생물학적 성차에 의한 분업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강건함 따위가 아니라 전적으로 재생산능력(임신, 출산)의 차이, 특히 여성이 아기를 젖먹여 키우는 능력에 의한 차이 때문이었다. 이는 당시의 짧은 수명을 전제로 할 때 부족의 생존과 관련된 분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분업이 이후 시간이 가면서 문화적으로 생성, 강화되면서 남성지배가 역사적 현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농업혁명기 중 어느 시점에 성별노동분업형태의 비교적 평등했던 사회들은 근친상간 금기와 족외혼에 근거한 여성교환 관행과 사유재산제가 특징인 사회로 대체된다. 이 새로운 사회는 부계혈통과 부처거주제가 지배적이었으며, 생물학적 구분만이 아니라, 일부 남성들이 모든 여성들과 다른 남성들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과 위계에도 근거한 노동분업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해석을 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접근법 개념적 틀은 결과를 결정짓는다. 그것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우리는 현재 속에서 대답되기를 원하는 과거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 P33

모든 수렵채집사회에서 여성들의 경제·사회적 지위가 무엇이었든간에 어떤 면에서 여성은 항상 남성에게 종속적이었음을알아야 한다. 여성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남성 위에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거나 혹은 여성이 성적 계약의 규칙을 규정하고 결혼교환을 통제하는사회는 단 한 곳도 없다. - P55

여성지배에 관련된 연구결과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수 있다. 첫째, 사회에서 여성평등에 관한 증거의 대부분은 모계혈통적이고 모처거주 사회에서 나온 것으로 이들은 역사적으로 과도기 상태이며현재 사라지고 있다. 둘째, 모계제와 모처거주는 특정한 권리와 특혜를여성들에게 부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집단 내의 의사결정권은연장자 남성들에게 있다. 셋째 부계혈통적 계승이 곧 여성의 예속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모계혈통적 계승도 곧 모권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넷째, 오랜 시간을 두고 볼 때, 모계혈통적 사회는 경쟁적 착취적 기술경제체계에 적응할 수 없으며, 부계혈통적 사회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 P55

나는 여성이 남성과 함께가 아니라 남성 위에서 권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만이, 그 권력이 공적 영역과 외교관례를 포함할 때, 그리고 여성이 친척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필수적인 결정을 할 때 진정으로 모권제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의 나의 논의에서와 같은 맥락에서, 그런 권력은 사회의 가치와 설명체계를 정의하는 권력과 남성의 성적 행위를 통제하고 규정하는 권력을 포함해야만 할 것이다. 독자는 내가 모권제를 가부장제의 거울이미지로 정의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 정의를 사용하여 나는 모권제가 존재한 적이 없다고 결론짓고자 했다. - P56

 그러나 카탈 후유크는 우리에게 가부장제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모형의 사회가 존재하였음을 말해 주는 견고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모권적 사회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앞에서 인용한 다른 증거에 이것을 더하면, 여성의 종속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다.  - P62

과거에 대한 어떤 이론화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여성과 남성이 문명을함께 건설했다는 가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최종결과로부터 시작해서거꾸로 추론하기 때문에 우리는 단일원인 ‘기원‘에 대해 물을 때와는 다른 질문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서구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의 구축과 사회 건설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은 어떻게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는가?"
라고 질문한다.  - P69

나는 권력화 작업으로서의 과거찾기모권제 찾기를 포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제안한다. 오래된 과거 속의 여성에 대한 보상적 신화의 창조가 현재와 미래의 여성을 해방시켜 주지는 않는다.  - P69

그래서 우리의 탐색은 가부장적 체계의 역사에 대한 탐색이 된다. 남성지배체계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것과, 그 기능과 양상이 시간이 감에따라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과 뚜렷하게 결별하는 것이다. 이 전통은 가부장제를 비역사적이고 영원하며 눈에 보이지않고 불변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을 신비화하였다. - P71

 만일 우리가 양성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여성의 예속을 종식시키려면,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모성‘ (motherhood), 모성의 구조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발생되는 관계들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 P81

 그 모든 복합성속에서 이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의 이론적 모형이 반드시여성 교환 관습을 고려해야만 한다. - P84

생존을 위해 여성들과 남성들은 인구학적으로 같은 수를 이루어야 했다.
메이야수는 분만할 때 여성들이 생물학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부족들은 다른 집단들로부터 더 많은 여성들을 조달해야 했고, 또 여성들을 약탈하려는 경향은 부족간의 끊임없는 전쟁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전사문화(文化)가 출현하였다. 여성약탈의 또 다른 결과는 잡혀온 여성들이 그들을 잡아온 남성들에 의해 보호받거나, 약탈부족 전체에 의해 보호되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성들이 정복하고보호했기 때문에 그들은 여성을 사물화하는 사람이 된 반면, 여성은 물건과 같이 소유물로 생각되었다―여성은 사물화되었다. 여성의 재생산능력이 처음에는 부족의 자원으로 인식되다가, 이후 지배엘리트가 생겨나면서 특정 친족집단의 재산으로 소유되었던 것이다. - P88

고고학적 증거에 기초하여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몇 개의 사실들이있다. 농업혁명기 중 어느 시점에, 생물학적 필요에 근거한 성별노동분업 형태를 가졌던 비교적 평등한 사회들이 근친상간 금기와 족외혼에 근거한 여성교환 관행과 사유재산제가 공통적인 특징인 더욱 고도로 구조화된 사회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살아남은 후자의 사회들은 부계혈통과부처거주제가 지배적이었던 반면, 이보다 이른 시기의 사회들은 종종 모계혈통과 모처거주적이었다. 부계제에서 모계제로 가는 반대의 과정을보여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욱 복잡한 사회들에서는 더 이상 생물학적 구분만이 아니라, 일부 남성들이 모든 여성들과 다른 남성들에대해 행사하는 권력과 위계에도 근거한 노동분업이 특징적이었다. 많은학자들은 여기에 묘사된 전환이 고대국가의 형성과 동시에 일어난다고결론내렸다. 30)이 시기와 함께 이론적 추정은 끝을 맺어야 하고, 역사적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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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6-06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앗 시작하셨고 벌써 이만큼이나 읽으셨군요.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바람돌이 님!!

바람돌이 2022-06-06 16:14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으려고 일단 빨리 시작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