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체험도 공적도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여로에 오직 하나 데리고 가는 화두다.
저 국경을 허투루 밟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먼 길 떠나며 가슴 깊이 담아가는 바람이다.
- P40

탐응옵은 흔히 잃어버린 군대‘니 ‘잊어버린 군대‘ 따위로 감상을 섞어 불러온 장제스의 국민당 잔당 가운데 제3군이 본부를 차렸던 곳이다. 여기서 미리 짚고 갈 게 하나 있다. 이 국민당 잔당은 몰래 부려먹었던 정부들이 숨기고 감춰왔을 뿐, 한 순간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적 없는 아시아 현대사의 첫 반공용병이자 국제마약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운 주인공이었다.
- P46

 탐응옵은 겉보기에 여느 타이 마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한꺼풀만 들쳐보면 이 마을은 중국이다. 사람들은 타이 말을 쓰고 타이 이름을 지녔지만 저마다 가슴속에 중국을 품고 살아간다. "내 주민증에 담긴 이름은 타이지만 내 심장은 중국제다." 자랑스레 중국이름을 앞세우는 기념품가게 주인 쯔우승윈처럼.
- P53

마약군을 잡아 가두기는커녕 오히려 미국 정부가 대놓고 아편을구입한 꼴인 그 희한한 쇼는 결국 던진 놈의 목을 치는 부메랑이 되었다. 그 결과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났을 때 참전 미군 10~15%가 마약에 중독돼 미국 사회를 뒤흔들이 놓았다. 국제마약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진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그 마약이 모두 미국 정부가 부려먹은 반공용병 손에서 나왔다. 그 하나가 국민당 잔당이었고, 다른 하나는 라오스 비밀전쟁에투입한 Among 이었다. 그 두 반공용병의 마약사업을 지원한 게CIA 였다. 그렇게 CIA가 뒤를 받친 마약이 베트남전쟁으로 흘러갔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국제 마약 카르텔의 뿌리가 되었다. - P59

나는 소수민족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늘 이런 게 안타까웠다. 적어도 이름만큼은 본디 내 몸에 붙은, 내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는 게예의다. 빨라응을 따앙이라 부르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따앙을 빨라응이라 불러 어떤 이문이 있을까? 남이 내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는 걸 원치 않듯이 민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작아도 민족은 민족이고, 저마다 역사와 정체성을 지녔다. 그 상징이 바로 이름이다.
이 함부로 부르는 이름에 소수민족 문제의 본질이 남겼다. 다수민족이나 주류사회가 소수를 아무렇게나 버릇없이 대했다는 증거고, 그 결과가 충돌로 드러났다. 소수민족 문제를 풀어가는 길도 본디 이름을 되돌려주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옳다는 뜻이다.
- P69

이게 하나의 이상‘, ‘하나의 정체성‘, ‘하나의 공동체‘를 내걸고입만 떼면 통합을 외쳐온 아세안(ASEAN), 그 축인 타이와 버마의진짜 모습이다. 노래 국경은 말치레뿐 시민 없는 아세안의 정체를폭로한 현장이다. 노래 국경은 인본주의를 외쳐온 21세기의 꿈도국경 없는 세상을 외쳐온 세계시민사회의 바람도 모조리 절망 속에파묻어버린 현장이다.
나는 국경선에 막혀 자유를 빼앗긴 채 경계인境界人으로 살아온따앙 사람들, 그 아린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다.
국경선은 인류 최악 발명품이다!
- P75

‘아편과 ‘민족해방‘, 이 화합할 수 없는 두 조건을 달고 다닌 쿤사의 일생은 1990년대 말부터 와주연합군(UWSA)으로 다 물림했다. 세계 최대 마약군벌로 떠오른 와주연합군은 와주 독립을 외치며버마 정부군과 싸워왔다.
버마 타이 국경에는 이렇듯 ‘민족해방‘을 상표 삼은 마약이 굴러다닌다. 앞서 국민당 잔당이 ‘반공‘을 상표 삼았듯이. 이게 바로마약의 정치경제학이다. 외진 두메산골 반힌맥은 그 민족해방전선으로 포장한 국제마약전선의 심장이었다.
- P93

타이에선 아직 카지노가 불법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가 카지노 합법화를 만지작거렸으니 시간문제일 듯. 타이 정부가 카지노를 허가한다면 이 골든트라이앵글이 영순위일 게 뻔하고, 머잖아 이동네는 ‘리버베가스River Vegas‘란 이름이 붙지 않을까 싶다.
아마존강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꼽는 생물다양성의 보고가 바로 이 메콩강이다. 여기에 카지노와 온갖 유흥 시설이 들어서야 속이 후련할까? 국경을 넘나드는 온갖 검은 자본과 권력 앞에 이귀한 자연을 통째로 갖다 바치는 게 옳은 일일까?
그저 강한테 미안할 따름이다.
- P121

댐이라는 거대한 도시 정치 산물을 국경 강기슭 사람들이 막아낸다는 건 콘크리트에 달걀 던지기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이 억지스런 군인정부 아래서 끄루 띠처럼 소리친다는 건 그야말로 사생결단이다. 으름장 따윈 신경 안 쓴다. 강만 생각한다. 하는 데까지 하는 거고, 가는 데까지 가는 거지." 흰 수염, 굵은 눈주름 사이로 한 경계 넘은 전사 모습이 삐져나온다.
- P136

미군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그 라오스 비밀전쟁에서 각종 폭탄 700만 개, 총폭량 200만 톤을 인구 기껏 400만 라오스 시민 머리 위에 퍼부었다.
‘폭탄 700만 개라고?‘ ‘폭탄 200만 톤이라고?‘
이런 건 군사전문가가 아니라면 실감하기 힘든 말이다. 쉽게 말해 라오스 국민 1인당 폭탄 1.75개씩을 뒤집어썼고, 그게 500kg 짜리였다는 뜻이다. 견줘보자. 세계전사에서 최대 융단폭격으로 꼽는한국전쟁 때 미군이 사용한 총폭량이 495,000톤이었고, 1945년 미국이 히로시마에 터트린 핵폭탄이 다이너마이트로 12,500톤쯤 된다. 폭탄 200만 톤, 이제 어렴풋이나마 감이 오시리라.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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