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즐기는 여성들을 (좋게 말해) 부담스러워 하거나노골적으로 혐오하는 말들을 간혹 만난다. 이는 단지 여행으로 발생하는 소비에 대한 혐오만은 아니다. 세계 속의 한 인간으로, ‘독립적인 미물‘로 살아가고자 하는 단독자에 대한 경계심이 있다. 꾸준히 억압당한 여성의 신체는 발과 입이다. 말하고 돌아다니는 여자. - P243
여성=몸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와도 연결된다. 구찌 가방을 주면샤워하러 가는 여성의 모습(영화 〈극한직업)이 유머로 소비되는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교환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성의 몸으로 향하는 길을 돈과 ‘물뽕‘으로 다져놓은 세상에서 몸의 흥분은 없다. 몸의 지배만이 있을 뿐이다. 예술이 반드시 무엇이어야 한다고 정의하긴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예술이 억압의 도구이며 폭력의 구실이 되어선안 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저질러온 폭력이 얼마나 많은가. - P266
게다가 지금까지 완벽한 사람을 본 적 없다. 식민지에 저항하면서 여성을 차별하고, 여성의 권리를 말하며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 높이며 인종차별을 하고, 인종차별을 비판하면서 계층에 무지한 사람들을 얼마나 쉽게 만나는가. 나는? 나는 어떨까. 나는 과연 이모든 구도에서 자유로울까. - P269
도룡뇽 살리겠다고. 도룡뇽은 상징이다. 도룡뇽에서 시작해인간이 물, 흙, 동물 등과 연결된 존재라고 여기기보다 ‘고작도룡뇽 안에 갇혔다. 법적으로 패소했지만 지율 스님이 사회에 남긴 화두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 아닌 것에 대해, 인간과 인간 아닌 것에 대한 분리는 인간의 종류도 끝없이 분리한다. 정상적인 인간과 정상이 아닌 인간. - P280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국 바깥에서 여러 이민자들에게 감정이입하며 그들의 활동에 눈길을 두는 만큼, 한국 내에서도 다양한 이민자와 난민들의 활동에 관심을 두었을까. 어쩌면 나는 한국에서의 나의 위치, 곧 ‘한국에서 태이나 부모 모두 한국인인 한국인‘이기에 상대적으로 ‘몰라도 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 P330
아시아태평양난민권리 네트워크 APR RN에서는 "우리를빼고 우리를 논하지 말라" 라는 구호를 사용한다. 이 구호는난민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소수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 여성을 빼고 여성에 대해 말하는 자리, 성소수자를 빼고 성소수자에 대해 말하는 자리, 장애인을 빼고 장애인에 대해 말하는자리 등, 그들을 빼고 ‘우리끼리 모여 있는 자리가 많다. 우리‘가 모여 ‘그들‘을 정의한다. 존재를 압살하는 폭력이다. 저항예술은 이처럼 ‘정의당하는 존재가 그 정의의 틀을 부수고나와 스스로 말하는 행위다. - P331
응우옌은 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서 글을 쓰는 방식에대해 고민하며 토니 모리슨의 문학을 많이 연구했다. 주류 사회가 원하는 글을 쓰지 않기, 주류 사회에게 자신의 존재를설명하지 않기. 이것이 모리슨과 응우옌의 공통점이다. 응우옌은 미국에 화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으로 베트남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서구남성의 시각을 비꼬며 식민지가 ‘여성‘으로 재현되는 방식을비판한다. - P340
보편, 평범, 정상은 그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이 개념들은 다른 세계를 적당히 배척하며 그 지위를 얻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어 보편적인 삶, 평범한 인간, 정상적인가정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이지 않은 삶, 평범하지 않은 인간, 비정상적인 가정이라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보편성과 정상성은 때로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 보편이 무엇인지 생각하기에 앞서 누가이 개념을 지배하는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 P347
백인 낙서‘으로 시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할 필요 없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제 목소리가 가진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체성 문제가 계급 문제가 된다는 걸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은 채 정체성‘과 ‘계급‘을 산뜻하게 분리한다. 여성의 비정규직화, 흑인의교육, 성소수자의 의료문제 등이 계급과 무관한 정체성 정치‘ 일 수는 없다. 경제 문제와 정체성 문제를 별개의 문제로 바라보는 이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 P355
다시 지오바니의 <자아여행>을 본다.
내 허락에 의하지 않고선 난 이해될 수 없다
아무리 봐도 굉장히 멋진 오만이다. 보편에서 밀려난 존재들은 이러한 오만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 허락 없이 함부로나를 정의하지 말라고, - P359
‘의도‘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차별에 대해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의도를 과하게 변명하는 행동은 언제나 자신이 이해받는 위치에 있길 원할 뿐 스스로 이해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 지독한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나온다. 의도, 의도,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라는 말, 진짜 지겹다. 결과에 대한 무책임일 뿐이다. 사람은 자기 의도를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폭력적이 되기 쉽다. 나의 의도만을 변명하는 게 아니라. 나로 인해 타인에게 벌어진 길과를 반성하고 책임질 때 아주조금이라도 성숙해진다. - P362
군복무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을 위해 국방부에 한 줄의 청원도 넣지 못하면서 여성에게 억울함을 해결할 방법이뭐냐고 묻고, 묻고, 묻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지않는다. 오히려 그 억울함을 빌미로 지속적인 권력 행위를 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억울함은 폭력의 얼굴이 된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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