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있던 메트로 폴리스를 딱 한 챕터 남겨두고 이 두꺼운 책을 읽느라 머리가 딱딱해져 가고 있던 나에게 잠시 휴식을 주고자 집어든 책.
딱 30페이지 정도만 읽고 메트로폴리스로 돌아가야지 했지만, 폭풍같은 강렬한 감정들에 휘둘려서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감정을 극단까지 같이 휘몰아버리는 슈바이크의 필력.
어떻게 이렇게 쓰지?






우리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경험하지만, 우리의 완전한 세계가 고양되는 순간, (스탕달 Stendhal이 기술한 바와 같이) 모든 진액을 빨아들인 꽃들이 순식간에 한데 모여 결정(結晶)을이루는 바로 그 순간은, 언제나 단 한순간, 오직 한 번 뿐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처럼 마술적이며, 체험된 비밀로 삶의 따뜻한 내면에 꼭꼭 숨어있기에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어떤 정신의 대수학도 그 한 순간을 계산할 수 없고, 어떤 예감의 연금술을 가지고도 추측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독자적인 감정을 통해서도 그 순간을 붙잡기란매우 어려운 것이겠지요..
- P17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베를린의 기세등등한 탐욕은 나의 남성성의 흥분과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그 도시와 나, 이 둘은 프로테스탄트적인 실서에 순응적인 문화와 제약에 갇힌 소시민성을 순식간에 박차고 나와 힘과 가능성의새로운 황홀함 속으로 급속히 빠져들었습니다.
- P23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심장이 찔린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내 자신이 스스로의 열정을 동원해 감각을 고양시킬 수는 있었지만, 내가 한 인간에게, 선생님에게 사로잡힌것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나의 의무인 동시에 기쁨이었습니다.
- P46

고귀한 남성의 우울은 늘 젊은이의 정신을 강하게 붙드는 법입니다. 자신의 심연 아래를 응시하는 미켈란젤로의 사상과 처절하게 내면을 향해 꾹 다문 베토벤의 입, 이렇듯 세계 고뇌를 가린 비극적인 가면들은 모차르트의 은빛 멜로디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물 주위에 밝게 퍼지는 빛보다 더 강력하게 청년을 감동시킵니다. - P86

사실,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아름다움을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청춘의 힘은 활력이 지나치게 넘쳐흘러서 비극적인 것으로 치닫기도 하고,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피를 달콤하게 흠뻑 빨아들이기까지 합니다. 또, 그런 이유로 정신적 고뇌 속에서도 청춘은 위험을받아들이고 형제 같은 마음으로 내민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 P87

 즉 나 자신이 아니라, 선생님이 내 입을 빌려 말하듯 그대로 따라 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그의 존재의 울림, 그의 언어의 반향(反響)이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벌써 40년 전 있었던 일입니다만, 지금도 강의에 몰입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입술을 빌린 다른 이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나는 나의 입술에 유일하게 숨결을 불어준 그의 음성, 존경하는 고인의 음성을 아직까지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열정의 날개를 타고 날아오를 때면 항상 나는 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결정지어 버렸던 것입니다.
- P103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소년이었어요. 이제 어른이 된 거예요.
식탁으로 와서 식사해요.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오해일 뿐이고 진실은 곧 밝혀질 거예요."
- P144

여기, 한 인간이 그의 삶을 자신의 가슴에서 한 조각 한 조각떼어냈습니다. 그 순간 소년이었던 나는 이 세상의 감정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다는 것을 처음으로 똑똑히 응시할 수있었습니다.
- P182

그리하여 한 인간이 인생에 단 한차례, 한 인간만을 위해 말하고는 영원히 침묵한 것입니다. 마치 죽어가면서 딱 한 번 쉰목소리로 소리쳐 노래 부른다고 알려진 백조의 전설처럼...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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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03 06: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의 감정에 공감이 되니까 정말 몰입이 되더라구요 ㅎㅎ 책에 거의 밑줄^^

바람돌이 2021-04-03 10:45   좋아요 3 | URL
몰입이 될수 밖에 없게 썼더라구요. 심지어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하더군요. ㅎㅎ

blanca 2021-04-03 07: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읽어봐야겠네요.

바람돌이 2021-04-03 10:46   좋아요 3 | URL
순식간에 읽을 수 있습니다. ㅎㅎ

미미 2021-04-03 11: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렇게 쓰지?공감 ×100! 마치 ˝소설은 이렇게 쓰는 거야˝ 라고 말하듯 심장을 후벼파는 재능♡ 바람돌이님도 이야기 끝날때까지 드잡이 당하신거 맞죠?ㅋㅋ

바람돌이 2021-04-03 21:10   좋아요 2 | URL
드잡이!!
이 소설을 읽는 동안의 자세에 대한 완벽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