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은, 적어도 유대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바빌론은, 우리가큰 도시들을 바라볼 때 쓰는 렌즈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현세의 도시, 지배를 목표로 삼지만 바로 그 지배욕에 의해 지배되는 도시"에 대해 썼다. 달리 말해, 도시는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무시무시한 힘이 되어 그 산물을 집어삼킨다. 바빌론을 극심한 압제의장소이자 죄악의 도시로 바라보는 관념은, 지금까지 내내 설교단에서 강력히 주장된 것이다.  - P112

유럽인과 미국인 들은 도시 생활에 대한 반감을 물려받았다. 반면, 유럽과미국을 제외한 여러 문화권에는 그런 반감이 없고 오히려 도시 생활이 비교적 흔쾌히 수용된다. 메소포타미아, 중앙아메리카,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도시가 신성한 곳으로,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로여겨졌다. 유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도시는 하느님에게 적대적인필요악이다. 이 같은 차이는 역사 면면히 이어진 현상이다.
- P113

도시 내에서 불도저들이 주로 활약한 곳은 ‘빈민가 정리‘와 ‘도시 재개발‘의 대상인, 상대적 빈곤 구역이었다. 고층건물과 간선도로 위주의 생활에 관한 르 코르뷔지에 식의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안정적이고 자기조직적인 노동자 계급의 공동체들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런 공동체들은 난잡하고 흉해 보였다. 도시를거칠고 위험한 장소로 여기는 관념은 종교와 정치와 문화 같은 여러분야를 관통하고 있다. 드 퀸시는 도시를 사악한 곳으로 묘사했고, 디킨스는 도시의 퇴폐성을 표현했고, 할리우드의 누아르 영화에서는 도시가 부패로 충만한 장소로 나오고, 존 B. 갈훈은 쥐의 도시를 실험했다. 바빌론을 완전히 무너트리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열망은 강한 전염성을 갖고 있었다.
- P116

그러나 위생처리된 도시는 전기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 도시다. 한 도시의모순과 대립적 요소와 상스러움은 그 도시에 강렬한 자극과 맥동하는에너지를 선사한다. 도시에는 위생서리가 필요한 만큼 오물도 필요하다. 도덕적 기준이 낮은 곳, 저열한 퇴폐업소가 있는 곳, 매력과 재력을 갖춘 곳, 이것은 대도시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대도시의 상반되고불온한 성격이다. 도시는 유토피아인 동시에 디스토피아이다.
- P118

도시의 역동성은 주로 관념과 상품, 사람의 지속적 유입에 따른결과다. 역사를 통들어 볼 때, 도시가 번영을 누리려면 언제나 그곳의관문을 두드리는 대규모의 이주자들이 있어야 했다.  - P121

기원전 5세기 전반기 아테네의 역동성은, 대체로 외국 출신 이주자들이 대거 유입됨에 따라 아테네의 시민 인구가 기원전 480년의 3만명에서 기원전 450년의 5만 명으로 증가한 결과이자, 새로운 사상이급속도로 유입된 결과였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이곳저곳을 돌아다.
니며 목격한 국제적 분위기는 아테네에서 공공 공간과 개방적 제도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시민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조성된 것이었다.
- P142

아테네라는 도시의 풍경의 불규칙적인 외곽선과 개방적인 문화는 길거리에서 토론과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라는 것이 동료 시민들과 아테네의 공공장소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뤄지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어떤 내용도 글로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거리가 합리적이고 직선적으로 설계된 알렉산드리아는 엄격하게 관리된 곳으로, 관념이나 사상이 도시 생활과 유리된 채 제도 속에 갇혀있던 곳으로 묘사된다. 아테네가 자발적이고 실험적이었다고 한다면알렉산드리아는 백과사전적이고 순응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테네는 철학과 정치학, 연극 분야에서 개가를올렸고, 알렉산드리아는 과학, 수학, 기하학, 역학, 의학 등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다.
- P153

화려하게 장식된 목욕탕은 무엇보다 권력의 표현 즉, 황제의 권력, 세계에 대한 로마의 패권, 자연에 대한 도시의 지배권에 대한 표현이었다. 지위가 높건 낮건 간에 로마인들은 모두 목욕탕이라는 동일한 장소에서 로마의장엄함과 관대함을 맛볼 수 있었다. - P163

호화로운 목욕탕은 일상생활의 현실과 대비되었다. 100만 명이 북적대며 사는 대도시에서는, 비교적 단순하고 규모가 작은 도시를 결속시키는 참여와 연대가 불가능했다. 목욕탕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의일원이면서도 군중 속에 매몰되지 않는 로마 시민 고유의 특성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의 미천함은 공공의 웅대함으로 상쇄되었다.
- P183

모름지기 대도시란 부를 쌓고 기회를 잡을 수있는 곳이다. 아울러 개인이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원이 될 수있는 가능성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개인은 화려함 속의 두추함을 감수하거나 몹시 협소한 주거공간을 위해 터무니없는 임대료를 지불하며 살 수 있다. 이 같은 기회와 가능성을 품고 있는 도시를에는 언제나 유능한 인재들과 씀씀이가 큰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마련이었다.
- P184

목욕은 도시의 생명력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목욕탕과 수로교의 유적은 도시성의 붕괴를 가리켰다. 이슬람권대도시들과 아시아 전역의 도시들에서 살아남은 목욕탕은 만개한 도시 생활을 상징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부분이 예전처럼 다시보잘것없는 곳으로 전락하는 동안, 세계의 나머지 지역들 대부분은맹렬한 에너지와 도시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 P197

길거리 음식의 역사는 도시 자체의 역사다. 그것은 도시 성장의동력인 이주자들의 역사다. 메이휴 시절의 런던 시민들은 로마 시대의 조상들처럼 길거리 행상인들이 파는 굴을 매년 수억 개씩 사 먹었다. - P218

13세기에 몇몇 세계적 도시를, 팔렘방, 메르브, 키예프, 바그다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파괴되자 유구한 세계 무역의 양상이 뒤흔들렸다. 그러나 그 거대한 붕괴 현상은 새로운 도시들과 도시 문화가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13세기는 도시화 역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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