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과 공통점을 더 많이 갖는다. 오늘날의 여러 현대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분열은, 세대나 인종, 계급, 도농 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와 나머지 지역 즉 세계화된 지식경제에서 뒤처진 촌락, 교외, 소도시들간에 일어난다. - P11

을 한다. 흔히 우리는 세계적 도시들의 중심지에서 성공을 누리는 지식경제 혁신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밑바닥에서 일하는다른 혁신가들도 있다. 그들 덕분에 도시는 근면함과 독창성을 꾸준히 발휘할 수 있다. - P15

수메르인들 그리고 수메르인들과 종교적 통합을 이룬 여러 민족들은 최초의 도시가 원시적 늪지대에서 탄생했다고 믿었다. 그들의 전설에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물의 세계가 등장했다. 그들이남긴 점토판에는 개구리, 물새, 물고기, 갈대 따위가 묘사되어 있었다.
오늘날 그들의 도시들은 바다와 주요 강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하고열악한 사막의 모래 언덕 밑에 파묻혀 있다. 초기의 고고학자들은 사막에 있는 그 도시들이 늪지대에서 탄생했다는 신화를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러나 물과 땅이라는 이중적 성격의 도시 기원설은 메소포타미아남부의 생태적 변화에 관한 최근의 발견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 P42

물론 최초의 도시들이 전적으로 습지대에서만 출현한 것은 아니다. 그 도시들이 다른 곳의 다른 사회들과 상당한 규모의 교류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습지대의 매력적인 위치를 차지한 도시들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석 같았다. 다른 문화권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건축기술, 신념, 도구, 농법, 각종 기능과 직업,
관념 따위를 지니고 왔다. 기후변화로 인해 메소포타미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 되었다.
- P48

수메르의 신들은 샘이나 숲속의 빈터나 구름 속이 아니라 우루크처럼 실재하고 물리적인 도시들의 심장부에 살고 있었다. 수메르인들은 고도로 발전한 그들의 도시에서 신들과 함께 살도록 선택된 사람들인 반면 나머지 인간들은 짐승의 털가죽을 입은 유목민이나 자급자족하는 농민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 P55

그 막강한 피조물들보다 훨씬 오래 버텼다. 도시 문명은 건물의 복원력보다 이념의 확고함에 더 의존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고역이고, 무척 부자연스럽다. 길가메시의 전설은 도시 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도시의 위력과 세력을 되새기고자 나눈 이야기 중 하나였다. 도시에서의 삶, 대부분의 인간은 누릴 수 없는 생활방식은 저주가 아니라신성한 특권이었다.
- P57

우루크가 이 세상에 선사한 선물은 바로 도시화와 문어 였다.
첫 번째 선물이 두 번째 선물로 이어졌다. 우루크는 기존의 확고한 사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나 타격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표기와 수학은 도시라는 가마솥에서 탄생했다. 표기와 수학은 복잡성을 관리하는 행정 기법이었다.  - P63

그러나 청동기시대의 다른 주요 문명들과 대조적으로 하라과 문명의 도시들에는 궁전이나 신전도, 경외감을 일으키는 지구라트나 피라미드도 없었다. 사제나 왕의 흔적도 전혀 없다. 대형 공공건물들도위풍당당하기보다 수수한 정도였다. 곡물 창고, 일반 창고, 강당, 목욕탕, 시장, 정원, 선거로 같은 건물들은 기능과 취지의 측면에서 자유민적 성격을 띠었다. - P82

하라파인들은 노예를 소유하지 않은 듯하고,
철저히 구별되는 사회적 서열에 따라 생활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또한 도시의 가옥들은 크기가 다양하지 않았고, 각 가옥이 보유한가공품의 양도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 P83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특히 공적 · 종교적 맥락에서 성적 흥분이 초기 도시 생활의 핵심 요소였다는 사실이다. 도시와 관능성은 불가분의관계에 있었다. 도시는 육체적 친밀성의 장소였을 뿐 아니라 감정을고양하고 욕구를 자극하는 구경거리와 흥청거림과 다채로움의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욕구를 정획히 어떻게 채웠는지는 알아내기 어렵다. 고대 우루크와 바빌론 사람들의 성생활을 재구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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