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 아파도 힘껏 살아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주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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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병은 생리학적 질병이며 그 중 조증과 울증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제1형 양극성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약 1%의 유병률을 보인다고.... 우울증은 나라와 문화, 남녀 비율에 따라 큰 차이가 나지만 조울병은 남녀차이없이 평균적으로 1%란다.

깜짝 놀랐다.

1%라니.... 그렇다면 100명중 1명이란 말이다.

 

삐삐언니라고 자칭하는 작가의 글을 보면 고학력에 선망하는 직업에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자랐다.

우울증과 조울병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먼저 한국사회에서 조울병이라는 자신의 병을 이렇게 솔직하게 책으로까지 써내는게 정말 쉽지 않았을테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신의 병증을 내놓은건 아마도 조울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올바로 대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일거다.

작가의 용기에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쉽지 않았으리라.....

 

조울병을 앓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조증의 주요 특이점 중에 타인과의 거리를 제대로 재지 못한다는 게 있다.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경계를 마구 무너뜨리고 함부로 침범해버린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현재의 황홀경에 홀딱 빠져 있는조증 환자에게 ‘지금‘ ‘여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을 매우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다.- P45

우울은 실체 없는 어떤 것이 주변을 채우고 목을 조르는 느낌이다. 의지, 목표, 흥미가 마비된다. 모든 것이 메말라간다. 슬픔이 감정의 습지라면, 우울은 감정의 사막이다. 그것도 사하라 같은 열사의 사막이 아니라 남극 같은 동토의 사막. 우울은 귀를 막는다.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우울은 셀프 감금이다.  - P123

 

 

최근에 동생이 아는 지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소식이다.

직업상 우울증이나 이상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담임이 되었을 때 학급 아이들 중 가장 긴장하게 하는 아이가 자살충동이나 자해현상을 보이는 아이들, 친구관계에서 피해의식을 보이며 피해망상으로까지 치닫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많은 부분에서 과대망상, 집착, 지나친 자기 합리화현상을 보여준다.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말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어떤 경우에는 어릴 적 딱 한 번 엄마에게 맞았던 경험을 일상적인 물리적 폭력이 진행되고 있는듯이 얘기하기도 한다.(물론 이 때는 학교에서도 가정폭력을 의심해서 사후 대책을 진행시켰었다. 몇달간 지켜보고 전문적인 병원치료를 병행한 결과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다)

부모에게 자신의 이상 행동의 원인을 돌리지 못하는 경우는 교사나 친구들에게로 돌리기도 한다.

제3자가 보기에는 그저 타이밍이 안맞을 뿐이었던 문제나, 친구들의 일상적인 행동이 모두 자신을 왕따시키고 뒤에서 욕을 하는 것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아이의 집착과 과대망상이 너무 심해서 학부모상담을 진행하는데 엄마가 아이보다 더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하면 학생과 학부모를 병원으로 이끌 수 있는가이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내가 함부로 건들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사랑과 관심만으로는 절대 조울병이나 우울증은 치료되지 않는다.

이 책의 작가가 가르쳐 주는 증상들을 하나 하나 따라가면서 그 때 그 아이들의 마음과 뇌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또한 전문적인 치료의 중요성을 절감하였다.

 

문제는 우울증이나 조울병의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우울증은 그래도 주변의 보살핌, 관심, 상담치료 등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조울병은 무조건 병원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100명 중에 1명이라면 국가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정말 갑갑한 경우가 아이가 조울병같은 증상을 보이는데,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안되고 생업으로 너무 바빠서 병원에 데려갈 생각도 못하는 경우다.

지금의 학교는 상담치료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학교 내에도 있고, 학교 밖과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품을 팔면 연결할 수 있다.

하지만 병원치료는 전혀 아니다.

학교와 지역사회와 연계된 정신과 의사가 있어 조울병을 보이는 아이들은 실질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정말 절실하다.

병원에 가야 하는 아이를 학교가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디 작가의 이런 노력이 우리 사회의 조울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원한다.

니 맘만 잘 먹으면 이런 병이 안생길텐데, 네가 마음이 약해서 그런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지기를....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정신건강도 지원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을 수 있기를 역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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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2-01 0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친구들이 만나면 꼭 우울이나 조울 앓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내가 학생일 때는 감수성이 없어 그랬나, 주변에 그런 아이들의 존재를 못 느꼈는데 싶으면서 이게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복잡한 기분이 되곤 했는데요.
이 책 한 번 읽어봐야겠다....

바람돌이 2021-02-01 02:35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학급당 학생수가 너무 많았구요. 조울증을 앓는 아이들이 있어도 묻히고 몰라서 어른이 되면서 더 심각해졌으리라 싶어요. 그리고 정말 심각하면 집에서 쉬쉬하면서 아예 학교를 안보내거나요. 다만 우울증은 좀 다른게 확실히 증가한데 맞다싶어요. 이건 사회적인 영향이 커서 옛날에는 우울증이 있어도 아무데서도 안받아줬잖아요. 그래서 어른이 되어 우울증을 앓더라구요

2021-02-01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1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02-01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ㅠㅠ 예전엔 더 했던거 같아요. 같은 반 친구가 시험시간에 울던 기억이 나요. 시험지가 백지로 보인다고 ㅠㅠ 그 때 선생님이 뻥치지 말라며 공부를 안해서 백지로 보이겠지 했던 그 말투와 웃음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요. 옆애 있던 나도 그런데 그 친구는 어땠을지 ㅠㅠ 그 친구는 1년 휴학을 했는데. 그저 무탈하게 잘 살고 있길 바란답니다. 바람돌이님 글처럼 아이들 정신건강도 지원이 되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1-02-01 22:27   좋아요 1 | URL
아 가끔 그런 일이 있었죠. 요즘도 있어요. 하지만 요즘은 교사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서 저런 경우 최소한 저렇게 웃지는 않아요. 바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보건선생님 부르고 아이를 진정시키고 후속조치를 취하긴 해요. 근데 이후의 후속조치가 모두 부모의 관심과 경제력에 모두 맡겨져버리는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mini74 2021-02-01 22:3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이들 이야기 들어보면 요즘은 좋은 선생님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다행이죠 *^^* 저 어릴 땐 골목길 돌면 혹은 옆 옆집만 가도 동네 친구들도 있었는데. 지금 아이들 참 외로워 보일때가 있어요.

바람돌이 2021-02-01 22:36   좋아요 1 | URL
교사들의 인식수준도 사회 전체의 인식수준을 따라가는 거죠 뭐.... 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학교 내 메뉴얼 같은 것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고요. mini74님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많은건 님의 아이들이 좋은 아이여서일 가능성이 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