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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평점 :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과 문장들은 있다.
하염없이 울고, 시도 때도 없이울고, 멍하니 넋이 나가고, 오랜 시간 멍했던 것들이 다 지나간 뒤에 찾아온 굳은살 같은 얼굴이었다. - P58
힘든 시대를 살아온 고모의 얼굴을 묘사하는 저 대목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지금은 노인이 되신 부모님의 얼굴에서 저런 표정을 보게 된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얼굴들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알겠다.
그것을 두고 간 자도 차지한 자도똑같이 욕하는 목소리였다. 적산, 적이 남겨두고 간 자산이라는 표현에는 불을 지르고 싶은 적의와 한입에 삼키고 싶은 상반된 욕망이 뒤섞여 듣기만 해도 잠잠하던 피마저 들끓게 했다. - P67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 이른바 적산에 대해서는 항상 이론적인 면에서만 접근했었다.
적산의 분배를 둘러싸고 어떻게 친일파들이 다시 부자가 되어가는지,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뭐 이런거 말이다. 때때로 여행길에 보게 되는 일제 시대 건축물이나 주택에 대해서도 기능적이거나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보는게 중점이었는데,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 적산이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분노에 찬 적의와 소유욕의 이중적인 시선!
지나간 시대에 대한 분노와 자본이 힘이 되는 새로운 시대적 욕망의 뒤섞임!
소설가임으로 해서 가질 수 있는 감성이라 생각이 든다.
악명높은 친일파 윤덕영이 지었던 벽수산장이라는 거대한 서양식 건물 - 적산을 둘러싸고 이후의 사람들이 벌이는 암투와 감정, 일종의 제3자로 등장하는 서양인 애커넌
친일파의 후손인 윤원섭의 뻔뻔함.
그 뻔뻔함을 격렬하게 경멸하고 미워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그래서 무력감과 양심과 일자리사이에서 갈등하는 해동.
아 뭔가 이야기가 만들어질 무대는 다 마련이 된 것 같은데....
뭔가 더 이야기할 것이 많지 않을까 싶은데....
갈등도 이야기도 저택의 운명도 뭐하나 제대로 이거다라고 잡히는게 없다.
초록비님의 표현을 잠시 빌리고 싶다.
작가님이 많이 바쁘셨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