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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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이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났다.

저 작은 여인 강주룡이 앉은 지붕 바로 옆은 10여미터 높이의 축대가 쌓여있다.

그 아찔한 곳에서 강주룡은 9시간 동안 농성을 벌였다.

 

우리는 마흔아홉 우리 파업단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네다. 이거이 결국에는 피양 이천삼백 고무 직공 전체의 임금 감하를 불러올 원인이되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네다.
이천삼백 우리 동지의 살이 깎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 한 몸뚱이 죽는거이 아깝겠습네까? 내래 배워 아는 것 중 으뜸 되는 지식은, 대중을 위하여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명예로운 일이 없다는 거입네다. 하야서 내래 죽음을각오하고 이 지붕 우에 올라왔습네다. 평원 고무 공장주가 이 앞에 와 임금감하 선언을 취소하기 전에 내 발로 내려가는 일은 없습네다. 끝내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는다면 내 고저 자본가 압제에 신음하는 노동 대중을 대표해 죽기를 명예로 여길 뿐입네다.
기러니 여러분, 구태여 날 예서 강제로 끌어 내릴 생각은 마시라요. 뉘기든 이 지붕 우에 사닥다리를 갖다 대기만 하면 내래 즉시 몸 던져 죽을 게입네다.    - P241

 

 

저 지붕위에 오도마니 앉은 그녀의 모습 어디에서도 이런 결기와 용기를 찾아볼 수 없어서 더 슬펐다.

그 시절 많은 여성들이 그러했듯이 힘들고 어렵게 가정에서 사회에서 온갖 차별과 무시와 억압을 그저 감내하면서 살았을 것 같은, 식민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라면 지나가는 사람 1, 2정도로 나올법한 그녀의 모습.

어쩌면 사진이 좀 더 선명해서 그녀의 눈빛과 꽉 다문 입술이 좀 더 정확하게 보이고 투사처럼 보였다면 나의 애잔함이 덜했을려나?

 

역사 기록이란 참으로 냉정해서 항상 중요인물과 부차적인 인물을 가른다.

심지어 한국사회처럼 이데올로기의 우편향이 심한 경우는 자기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 심각하게 역사속 인물들을 잘라낸다.

불과 며칠 전에도 군산에서는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벌였다.

강주룡의 후예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체공남으로 체공녀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어렸던 딸과 비행기를 타면서 "얘 너 나중에 스튜어디스가 되는 건 어때?"라고 그냥 질문했더니 딸 대답이 "엄마, 나는 하늘도 바다도 다 싫어. 무서워. 나는 땅에서 일할거야"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어본 것이었는데, 어린 딸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인간은 높은 곳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구나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본능적인 공포를 견디며 어딘가를 오르는 이의 마음은 절망의 끝에 아 여기밖에 없구나 바로 그것일게다.

그 마음이 일제시대의 강주룡이나 오늘의 노동자나 무엇이 다를까.

 

저 사진을 볼 때마다 그녀의 그 절박한 마음과 삶이 조금이라도 알려졌으면 했었다.

그 바램을 이 책이 이루어준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서 이 책은 고맙고 또 고맙다.

 

오도마니 앉은 강주룡이란 여성이 씩씩하게 사랑하고, 싸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있어서 참 다행이다.

당차게 "내처 한마디 덧붙이자면 여러분은 그네들의 사상이 어떤지궁금해본 적두 없을 거입네다. 내심 아녀자의 무학무식이 당연하구, 여러분이 공산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하는 거이니 부인도 도매금으루 공산 부인인 거이 당연하다 여기시디요. 이 말이 옳지 않다면시비 가려주시라요."((202페이지) 일갈 할 수 있는 여성 강주룡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발소리가 온다. 발소리를 들으면 주룡은 곧장 몸을 일으키곤 했다. 등을 곧추세운 채로 발소리를 맞는 것이야말로 굶주린 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가장 나중 된 저항의 몸짓이라고 여겼다."(8페이지)

끝끝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꺾지 않는 그녀를 되살릴 수 있어 참으로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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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12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사두고 아직 안읽은 책들중 한 권인데 곧 읽어야겠어요!! 불끈!!

바람돌이 2020-10-12 10:27   좋아요 0 | URL
분량이 그리 많지 않고 가독성도 좋아 읽는데 시간은 얼마 안걸려요. 항상 불끈하지만 우리가 읽는 속도보다 보고싶은 책이 더 빨리 늘어난다는게 문제예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