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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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의 지인들 중 지난 2016년 촛불 시위 때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해본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그들이 요즘 술만 먹으면 울분을 토한다.

울분의 주된 이유는 당연히 실망감이다.

그들은 말한다.  촛불시위가 성공하고 박근혜의 탄핵이 결정되었을 때 자신은 정말로 새로운 세상이 올줄 알았다고....

사실 나로서는 이렇게 말하고 울분을 토하는 지인이 더 신기했다.

차마 입으로 내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아니 정말? 진짜로? 세상이 완전히 뒤집힐 줄 알았다고요? 설마요?'이런 말을 중얼거렸던듯하다.

 

조국 사태를 처음 보도로 접했을 때 나의 반응은 약간 시큰둥했었다.

저 양아치들이 또 트집을 잡고 있구나라는 감정 약간과 그래 뭐 조국같은 사람조차도 자식 문제에서는 남들과 똑같구나 정도의 감정이었다. 거기다가 '아니 대한민국이 이런거 몰랐어? 조국도 있는 집 출신이고, 대한민국의 있는 집이면 저 정도는 다 예상할 수 있는거잖아'라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분노라기 보다는 약간의 허탈감 정도가 내가 느낀 감정의 다였다.

그런 내가 이 문제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역시 주변의 20대, 30대 초반의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그들은 정말 분노했다.

조국의 딸이 가지는 그 기회를 갖기 위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기회 자체의 박탈을 겪어온 세대가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20대 30대였다.

그 때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기성세대구나. 지금은 20대 30대와 나는 축적해온 경험이 다르고, 불평등을 민감하게 느끼는 지점이 다르고 그런 점에서 내가 너무 안이했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했던 저 단편적인 생각들을 다시 되돌아봤다.

문제는 내게 있는게 맞다.

80년대의 암흑을 지나온 나는 어느 순간 '그래 이만하면 됐지. 지금까지 그래왔듯 조금씩이지만 그래도 천천히 나아질거야'라는 근거없는 낙관으로 내 삶을 편안함의 자리로 옮겨놓았었구나.

그래서 점점 더 심해지는 불평등과 불합리를 내 속에 그냥 묵혀두었었구나.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Franco Bifo Berardi)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가지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극단적 개인주의일상의 사막화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그것입니다

 

이 문장을 읽는 시작부터 내 마음의 죽비소리가 울려퍼졌다.

아 맞아 우리 이러다가 정말 다 죽을지도 몰라.

세상은 전혀 좋아진게 아니야.

살기는 더 팍팍해졌고, 절망하는 이들은 더 많아졌고,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있는데도 나는 세상이 다 그런거지라는 말 속에 그것들을 다 묻어버리고 있었구나

 

다시 말하면  나라에서는 광장 민주주의 일상 민주주의 괴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아직 충분히 민주주의자가 되지 못한 거지요.......
우리 사회가 광장 민주주의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상 민주주의에서 여전히 낙후되어 있는 것은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도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군사독재 시대가 남긴 집단주의군사주의병영문화 등도 깊은 관련이있겠지요바로 이런 것들이 뒤얽혀서 일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것은 군사문화의 전면적인 지배입니다우리는 군사문화가 너무도 뿌리 깊고너무도 널리 퍼진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 P33

 

문제는 역시 민주주의다.

오랫동안의 독재와의 싸움을 해왔던 우리는 정치적 민주주의, 광장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합의된 지점이 있다.

결코 길지 않은 시기동안 우리가 겪었던 민주주의 투쟁을 생각해보자.

1960년의 4.19혁명은 사실 엄청난 일이었다.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겨우 15년, 공화국 체제가 시작되고 투표라는걸 처음 해본게 1948년이고, 심지어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내전까지 겪은 나라에서 벌써 정치혁명을 일으키다니 이건 세계사적으로도 엄청난 일임에 틀림없다.

이후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의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2016년의 촛불투쟁까지 우리는 정말 숨가쁘게 정치적 민주화를 위한 길을 달려왔다.

 

이 책의 논지와는 상관없이 논외로 가끔은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숱한 반동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올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정말 다르지 않은가말이다. 그냥 나 혼자 생각인데 우리 역사 속 중앙집권화의 역사가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싶다. 근대 이전의 역사에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는 사실상 예외적인 현상이다. 이런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고도의 관료제와 상비군체제를 갖추어야 하는데 이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조선왕조 500년의 중앙집권화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강고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다른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에 익숙한 민중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강력한 중앙권력은 그리 낯선 존재도 지나치게 무서운 존재도 아닌게 아니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져 온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말이다. 그 중앙권력을 바꾸는 힘도 우리 역사속에서 같이 키워져 온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문제는 일상의 민주화다.

중앙집권적 체제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통제에 익숙하고, 통제속에서 질서를 지키며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데도 익숙하다. 그것의 억압이 극한에 달했을 때는 그 권력을 깨기도 하지만, 일상속에서는 권력의 연쇄고리안에서 적당히 보존하고 사는데 익숙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일상의 권력적 위계질서에 아주 익숙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 속에는 권력의 위계질서가 내면화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인 대다수는  안의 파시즘 인식하지 못합니다이러한 억압의 문화부조리의 상황을 하나의 문제로서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그것이 사물의 질서세상의 이치자연 상태라고 생각한 것이지요에리히 프롬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것은 정상성의 병리성이었던 것입니다. - P95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P100

 

갑질문화의 창궐, 미투 운동에 대한 비아냥, 여전히 억압적인 성담론과 문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부재, 자본주의적 경쟁에 대한 회의 없는 긍정, 불평등한 교육의 기회에 대한 문제 제기 없는 교육계의 현실, 기업과 싸울 때 오히려 가면을 쓰고 싸워야 하는 현실, 생 양아치들을 보수우파라고 칭해주는 우편향의 정치문화, 민주당이 어떻게 좌파가 될 수 있냐싶은데 그들이 좌파라고 칭해지는 현실,

그 어디에도 한국사회가 진보적이라는 증거가 없는 이 현실을 어찌 할까?

 

이런 문제에 대해 저자는 서구에서 기존의 모든 가치와 담론에 문제제기를 했던 68혁명 정신이 한국의 군사독재에 의해 저지당했던 것을 결정적인 문제점으로 얘기한다.

기존의 가치가 한번 어떤 식으로든 전복되지 않으면 새로운 생각이 발을 붙일 수 없다는 것.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이 혼란과 아비규환 같은 상황들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들....

항상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다.

문제를 알게 되면 이제 해결점을 찾아가면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부끄러워졌던 나를 잊지 않는 것.

내 일상을 다시 바로잡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세상에 대해 다르게 얘기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들에 대해서 귀 기울이는 것.

오늘 내게 온 죽비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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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0-10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선생님의 ˝함께 맞는 비˝라는 글귀를 좋아하는데, 저 죽비를 저도 맞아야겠네요!ㅠ 좋은 세상을 기원하면서요!ㅎ

바람돌이 2020-10-10 18:59   좋아요 2 | URL
일상의 민주화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워요. 오늘도 이 휴일에 딸래미 학원 데려다주면서 이놈의 경쟁교육에 내가 또 일조하고 있구나.... ㅠㅠ 일상의 민주화란 일단은 내 안의 욕망을 한번 걷어내는 작업이 먼저일듯요. 우리 죽비는 같이 맞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