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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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통쾌해지는 글이 있다.
어줍잖은 객관성이라는 함정으로 치장하지 않고 자신의 논점을 정확하게 피력하는 책.
주장할 것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책.
한홍구선생의 글이 그러하다.

현대사를 가르치다 보면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우리나라는 왜 그래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가며 싸웠는데도 왜 변하지 않는거죠?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 이후로 내 수업이 뭐가 잘못되었는가를 많이 고민했었다.
그것은 고난과 저항을 가르치되 희망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
그 고난과 저항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가르치지 않았던 것에 대부분의 책임이 있음을 통감했다.
한홍구 선생 역시 그런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역사가 절망의 역사이지만 또한 그 절망이 바로 희망을 피워낸 역사임을 얘기하고 싶어한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의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갖가지 문제들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그의 글들 곳곳에 그 희망은 들어있다.

책의 내용은 전부 5부로 이루어진다.
1부에서 다루는 주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나라와 맺고 있는 관계를 재점검한다.
독재정권에 의해 은인의 나라 꿈의 나라로만 치장되어온 미국의 실체가 광주를 통해서 폭로되고,
노근리 학살사건의 폭로를 통해 역사속에서도 결코 은인의 나라가 아니었음을
그리고 오늘에 있어서는 한미 FTA라는 괴물을 통해 우리의 숨통을 조여오는 나라.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한국내의 검은 머리 미국인들이다.
미국인들보다 더 미국의 국익을 생각하는 바로 그들.
역사적 연원을 따지자면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사대주의로 짓밟은 조선의 사대부들과 맥이 닿을 검은머리 미국인들.
대한민국의 작전통수권이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자주권을 완전히 쟁취했다고 주장하느 것도 말도 안되는 무식한 발상이지만 미국조차도 돌려주려는 그 작전권을 읍소하며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는 그들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부에서는 국가보안법을 다루고 있다.
1949년 이놈의 법이 만들어지자 마자 한해동안 잡아들인 사람이 12만이다.
그 중의 80%는 좌익사범이었고....
고문에 의한 자백을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 원천적인 길을 열어놓은 법.  국가에 대한 저항을 마음속으로만 생각한 것 만으로도 잡아들일 수 있는 무소불위의 법.
이 시대착오적이고 야만적인 법은 아직도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노력하는 모든 이들은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3부는 한홍구선생이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단체 활동을 하면서 밝혀진 것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과거의 진상규명은 객관적인 자료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대부분 국가권력의 폭력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 객관적인 자료라는게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때 결국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존하게 되는데
여기서 피해자의 증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가해자의 증언이다.
하지만 우리의 "고백"문화는 아직도 원시적인 수준이다.
패거리 문화에 의해 다같이 입다무는것이 의리요. 의무라는 생각.
또한 심리적 물리적인 압박에 의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가해자의 증언을 듣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나 역시 그들의 고백을 기다린다.
광주에서 진압군으로 참여했던 계엄군의 고백을
무수한 간첩사건을 조작함으로써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던 기관원의 고백을.....
국가폭력을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는 길 바로 '고백'에 있다.

4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신영복씨나 유시민씨는 워낙에 알려진 사람이지만 이 책을 통해 만난 원폭피해자 2세인 김형률씨의 삶과 죽음은 가슴속의 양심을 두드린다.
우리 역사 갈피갈피 어찌나 상처가 많은지,
그런데도 그 상처들이 또 얼마나 무관심과 망각속에서 방치되어져버리는지....
그 죽음앞에 누구도 죄인이 되지 않을 수 없음에 망연해진다.

5부는 한국정당의 역사를 통해 열린우리당에 대한 충고와 사학문제 그리고 한홍구선생이 줄기차게 제안하는 한국군대의 문제를 점검하고 있다.
이전의 대한민국사를 통해 꾸준히 제기되어왔던 문제들이다.

잘못된일. 나쁜 일. 죽일놈의 자식들 투성이인 대한민국사지만 그래도 우리는 잊지 않는다.
그 속에는 늘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 온 사람이 있었음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는 순간에 희망은 싹튼다.
그곳에 현대사 연구의 절대절명의 목표가 있다.
그 모범적 전형을 이룬 대한민국사 시리즈는 그래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일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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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28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명료한 리뷰, 언제나 잘 보고 갑니다. ^^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들의 자세까지 생각하게 합니다.
아이들과 역사를 공부하며 진지하게 고민하시는 님 모습도 보이네요..

바람돌이 2006-12-2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좋은 책이예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해요. 굳이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고민하고 놓치지 말아야할까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책이니까요.

클리오 2006-12-28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간, 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좀 서운했어요.. 그나저나 바람돌이 님이 먼저 리뷰를 쓰셔버리면 쓸말이 없는데 어쩌죠... ^^ 제가 방금 다 읽고 리뷰쓸려고 했었는데.. ㅋㅋ 잘 읽었어요... ~

마노아 2006-12-2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을 주는 명리뷰였어요~! 추천(>_<)

짱꿀라 2006-12-2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아주 좋은 리뷰네요.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도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바람돌이 2006-12-29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한겨레 21연재를 끝냈더라구요. 아직도 얘기할 게 많을 듯한데 아쉽죠. 하지만 뭐 한홍구씨야 늘 현실에 가장 가까이 있는 분이시니 어떤 식으로든 늘 뵙게 되겠죠. 그리고 클리오님의 리뷰야 언제나 제가 기다리는 글이란거 아시잖아요. ^^
마노아님/과찬이십니다. 그래도 고마워요. ^^
산타님/역사전공자들이 제 글을 읽을때는 겁부터 나요. 저도 역사전공인데 이것밖에 못쓰냐고 할 것 같아서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