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가 없을 때 보게 되는 종류의 책들이 있다. 자기계발서. 혹은 셀프-코칭. 이렇게 처세를 강조하는 책들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저항하는 그룹도 있지만, 반대로 지지하고 숭배하는 세력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잘 써진 자기계발서는 아주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편. 말하자면 지지 세력이다. 시기적절한 순간에 등장해주는 자기계발서는 고맙기까지 하다. 솔직히 말하면 '여자의 운명은 20대에 결정된다'는 나만의 명저다. 속물 20대의 철저한 자기 관리 같은 게 뭔지 알게 되었을 때 어쩐지 쾌감이 들었다. 원래부터 말초신경을 자극하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잘 팔릴 목적으로 세상에 나오는 책들은 말초적으로 가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안 팔리는 책들이 있고, 잘 팔릴 목적 없이 세상에 나와서 잘 팔리는 경우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목적이 어떻든 책은 읽히려고 태어난다는 점이다. 여하튼 '읽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신문의 단평이나 블로그 한 꼭지, 심지어 화장실 낙서에도 적용된다. 분명 그 세계에서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쓰는 사람이 있고 대충 읽혀도 그만 안 읽혀도 그만인 태도로 쓰는 사람이 있을 테다. 그런데 결과는 묘하게도 열정을 다해 쓴 글이 안 읽히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대충 썼는데 막 읽히는 때가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이기는 습관>을 보고 쓰는 글이니만큼, 이기는 습관에 초점을 두고 얘기해보겠다. 그러니까 '열정적!' 그것은 이기는 습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그 '열정적'이 '지는 습관'을 감싼 금박의 포장지 같은 건 아닌가 싶다. '잘 하고 싶다. 완전 잘 하고 싶다. 미친 듯이 잘 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열정'이라는 껍데기를 썼을 뿐. 그런 마음은 기본적으로 못하는 자신을 인식하는 데서 온다. 못하니까 잘하고 싶어지는 거다. 잘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 안 한다. 잘 하는 사람들은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한다. 예를 들면 '잘 쓰고 싶다. 엄청 잘 쓰고 싶다'랑 '조사의 쓰임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 '좋은 문장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스스로도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싶지만 더 얘기하면 '대충'이라는 말 속에 오히려 '이기는 습관'이 있다고 본다. 100ml컵에 물을 부어 넘치려면 얼마의 물이 필요하나? 뭐, 100ml이상의 물이겠지. 인풋이 넘쳐야 아웃풋이 나온다고, 지금 메모지를 펼쳐 한 문장만 써보면 된다. 그것이 바로 컵에서 쏟아진 물이다. '대충'하는데 결과가 좋은 사람들은 평소 컵에 물이 차고 넘치는 사람일테다. 막 휘갈기는데 작품이다. 그간의 과정이 struggle인지 enjoy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의 컵은 이미 넘쳐 흐르고 있다. 그런고로 때때로 열정은 대충을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그 대충이라는 경지 속에 오랜 열정의 시간이 축척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뭐든 대충할 위인은 안되니, 감히 추측만 할 뿐이다.
★ 이 구절이 좋았습니다.
(140) 프로는 아마추어처럼 '노력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이나 '전보다 조금 더 성장했다'는 낭만적인 생각으로는 생존할 수가 없다. 결국 프로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은 경기에 나가 이기는 것, 탁월한 실적으로 우승컵을 거머쥐는 것뿐이다.
(끝)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모든 일에서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일에서나, 길에서나
마음의 혼란에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