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조금도 읽지 않고 쓰지도 않고 살 수 있는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 번 그렇게 해봤는데, 그런 결심을 했을 때, 내 상황은 대학원까지 끝난 상태에서 학교로 갈 수도 없었고, 글 쓸거예요, 하면서 부모님한테 빌붙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외부적인 상황이 내가 지난 몇 년동안 유지해온 삶의 체계를 바꾸도록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취직이라는 것을 해야한다면 영어를 해야 하니까 영어를 하겠다고 말하고, 다시 학원비를 타다 쓰고 밥값을 타다 쓰고 가끔 놀아야 된다고-그러나 거의 놀지 않았다 돈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이만원을 추가로 타서 썼다. 물론 내 통장에도 빈약하나마 돈이 약간 있었고, 내 돈을 탕진하면 믿는 구석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아끼고 아끼면서 썼다. 그러다가 겨우, 통장잔고가 바닥을 찍기 전에 일자리-임시적인-를 얻었다. 그 사이 나는 책을 아주 안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짜 많이 읽지 않았고, 스스로도 책 따위가 지금 뭐가 중요해, 하면서 읽지 않았고, 글은 진짜 쓰지 않았다. 가끔 쓰고 싶어서 몇 자 끄적였지만, 그것은 완성되지 않았고, 완성된 것을 쓰는 것은 왠지..죄를 짓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다소 혼란스러웠던 일 년동안 예전과 달리 나에게도 세상에 나갈 때 내밀 수 있는 토익 점수라는 것이 생겼고-그러나 부족하다고 느낀다 왜냐면 토익 고득점자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느끼게 만드니까- 당분간은 돈을 벌 수도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안정권. 그리고 주말이 되자, 친구도 별로 없고, 애인도 없고, 할 것도 많지 않은 나는, 집요하게 도서관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주말에 그러다가 이제는 사무가 끝나면 도서관에 갔다. 왜 가냐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거기 가면 내 눈에 활자를 찍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되도록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도서관-어차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에 가서 아무거나 읽고 있다. 그런데, 이 기분이 학교 다닐 때 책을 읽던, 그 숙제하는 기분이 아니었다. 정말 좋았다. 책을 읽고, 글도 좀 썼다. 하지만 이제 나란 인간은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읽고 싶었던 것이라고 느낀다. 점점 알게 된 것은, 세상에 책의 형태로 나온 것 중에 쓰레기란 없는 것이 아닐까. 그냥 책이라는 판형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것의 가치를 느끼는 구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 정말 좋아서 미치게 만드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만 읽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누군가 가치 있다고 선정해 놓은 것만 읽는 일이, 어쩌면 지난 몇 년간의 내 독서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이제는 거의 읽는 일, 쓰는 일로 업을 삼겠다는 마음을 포기했고 그래서 읽고 싶은 것에만 마음을 기울이게 됐고, 그러자 정말 즐거워졌다. 하루 종일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눈이 아프고 엉덩이도 아픈데, 사무실에서 나오면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다시 아픈 눈, 아픈 엉덩이로 책을 보고 메모한다. 그리고 아무런 욕심도 갖지 않는다. 이 상태가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난 이런 삶을 내가 계속 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하지만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poptrash 2011-06-08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도 읽지 않고 쓰지도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럴 때 읽게 되고 쓰게 되는 무언가가, 굉장히 좋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예감이 있어요. 통장잔고는 떨어지고, 날은 덥고, 저도 오늘은 도서관에나 가야겠어요.

김토끼 2011-06-08 16:51   좋아요 0 | URL
저도 30분 후면 도서관에 앉아 있을 것 같아요. 5시가 퇴근!! 여름에는 시원해서 가는 일이 많아요. 작년 여름에는 거의 도서관에서 살았던 거 같아요. 공부도 공부지만, 무엇보다 도서관은 무료고 집에 있으면 더워서요 ㅎ 조금도 읽지 않고 쓰지도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조금이라도 읽고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깨달았어요. '쓰고 읽는 것' 이외의 삶의 다른 부분을 고민하게 되면서,,,이상하게도 '쓰고 읽는 것'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잠시후에는 서로 각자의 도서관에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