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요일 오후 도서관에 갔다가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던 하인리히 뵐의 소설을 읽었다. 하인리히 뵐은 굉장히 유명하다는데, 나는 그의 책을 처음 읽는 것이었고, 다른 도서관에서 <9시 반의 당구>를 슬쩍 본 이래로, 그의 소설을 모두 읽고 말겠다고 다짐한 터였다. 그래서 그 토요일의 오후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 갔다가 하인리히 뵐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시간 후 나는 본의 아니게 이 얇은 책을 다 읽고 말았다. 정말로 하루만에 먹어치우듯이 다 읽어버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단지 눈을 뗄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잠깐 눈을 뗄 틈도 주는 그런 소설이었지만-그런데 이거 말하자면 소설 같다는 느낌보다 여기 저기서 오려내서 사건을 이어 붙인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람을 지치게 하지 않았다.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조심하세요. 소설 내용이 약간 들어가 있습니다.)간단히 이야기하면 카타리나 블룸은 평범하고 성실한 여성인데 살인자가 된다. 왜냐면 황색언론이 그렇게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흔히 알고 있듯이 언론은 거의 독재적이고 자기 나름대로 객관적이라서 굉장히 주관적일 수도 있다. 진실은 편집되고 사람의 인격은 추락하거나, 어쩌면 완성되기도 한다. 읽으면서 ..진짜 사람이 사람한테 질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게 카타리나의 아픈 어머니를 찾아가 카타리나가 범죄자와 연관이 있으므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겠다고 추궁하는 기자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참 나쁘네, 했다. 의사가 면회를 거절했는데도, 페인트공으로 위장해서, 거의 죽을 것 같은 사람한테 가서 그 딸의 심각한 상황 혹은 오해되고 있는 상황을 전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진실을 왜곡하거나 탈락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들이댄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죽고 만다. 카타리나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카타리나는 총을 손에 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 역시 그녀가 총은 단지 분노의 표현이었을 뿐, 누군가를 살해할 생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총을 숨기고 있는 그녀를 향해 기자가 노골적으로 그녀를 무시했기 때문에, 게다가 그녀를 인격이 아닌 잡년으로 취급한 것에 대해 순간적으로 화가 났기 때문에, 총은 쏘아지고 말았던 것이다.   

 <카타리나 불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기 일주일 전에는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는데, 내 안에서 두 소설이 비슷하게 섞여버린 감이 있다. 둘 다 총이 나왔고, 어떤 이유로 의도치 않게 살인자가 되었고, 무고하다면 무고하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더욱 설명하기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방인>이 뫼르소 자신에 대한 기록이고, 자신에 대한 정당방위적인 고백이라면, <카타리나>는 외부에서 비춰지는 대로 진행되는 것이고, 가해자가 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되고야 마는 상황인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 그러나 결국 둘은 같은 길 앞에 당도한 듯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optrash 2011-06-0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안읽어봤어요. 그런데 9시 반의 당구라는 제목은, 전에도 한번 들은 것 같은데, 언제들어도 참 서늘하게 감각을 찌르네요. 단지 9시 반의 당구, 일 뿐인데.

김토끼 2011-06-08 16:53   좋아요 0 | URL
전 당구가 뭔지 잘 몰라서, 그 '감'이 잘 안오지만 ㅋ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