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는 이렇게 온갖 문화적 실험과 시도들이 시작되었다. 이는 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절대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된 뒤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과정이었으며, 집단에 매몰되어 있던 개인성을 '문화'를 통해 구조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향유는 어느 정도 투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167쪽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지식으로 부르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들을 신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이 운동은 농업, 어업, 임업, 중소기업, 특허, 근로, 교육, 문화 예술, 금융, 가정 (농어민, 경영인, 공무원, 자영업자, 기타 분야는 현재 폐지) 등의 분야에 걸쳐 총 3580명을 신지식인으로 선정하였다. '신지식인 선정'과 '문화 산업 육성'은 지식과 문화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고자 했다는 면에서 같은 맥락이었다. 한국 사회의 지식과 문화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상품화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상품화될 수 있는 것들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뒤로 한다고 하더라도-지식과 문화를 기반으로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는 물론이고 '성과가 당장 눈에 띄지 않는' 영역들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의 정책들은 당장의 '부가 가치'만을 고려했을 뿐, 문화의 기본적인 토대에 대한 성찰은 전무한 것들이었다. -172쪽
제2의 빌게이츠나 이찬진을 꿈꾸었던 많은 사람들이 좌절했지만 그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이 시대의 명제를 따라 '한 우물만' 팠던 그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는 그제야 '이제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의 시대'라며 인식을 전환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애써 팠던 우물에서 기어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이 사회는 그들에게 '젊으니까 괜찮아'라는 공허한 위로만 던졌다. -181쪽
당신은 지금 마시멜로를 모으고 있는 중이라는 달콤한 위로,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면 언젠가 얻을 수 있다는 조언, 그것들의 진짜 의미는 사실 '그러니까 혼자 알아서 하세요'라는 냉정한 외면이다.-185쪽
열정 노동의 확산은, IMF사태라는 국내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창궐이라는 전 세계의 상황을 근간으로 한다. 국가와 자본은 사람들의 열정을 필요로 했다. 동시에 신자본주의는 '불안정함'이라는 운명을 새 시대에 부여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거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요구되었다. 면접장에서도, 구직자가 열정을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인사 담당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널 대체할 사람은 많아'라고 이야기했다.-187쪽
'일도 많이 시키고, 돈도 안 주어도 되는'-착취에 최적화 된-상황이 펼쳐졌다-190쪽
영국의 문화 이론가 테리 이글턴은 "신기하게도 이 세계는, 구성원 대부분을 쫓아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선택 가능한 항목은 단지 두 가지이다. 착취당하거나, 그조차도 당하지 못하고 쫓겨나거나. 세계는 넓어졌으나 갈 곳은 없어진 역설적인 상황,-19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