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nrim > 요리스 이벤스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

2004.6.18 - 6.24 일주아트하우스 아트큐브
상영일정은 http://iljuarthouse.org/screen/s_view.html?e_uid=100 이곳을 참고...

오늘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을 다녀왔다.
요리스 이벤스의 작품세계에 대한 강연과 <바람의 이야기> <위도 17도> 두 작품을 보았다.

강연은 이번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김정아님(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이 해주셨고...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도 보았다. 사실 파병문제로 딴지를 걸고 싶었으나 그냥 참았다.

요리스 이벤스는...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얼렁뚱땅 정리모드..강연내용과 자료집을 토대로 요약 정리한 것으로 무언가 잘못 쓰여진 부분이 있다면 몽땅 내 책임;;;)

189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89년까지 20세기를 열정적으로 살다간 영화감독이다. 다양한 실험영화에서부터 정치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다큐멘터리까지 잡종 영화인이라 불릴 만큼 활동 영역이 넓었다고 한다. 거대자본을 위한 홍보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던 반면 세계노동운동을 위한 선정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그의 신념은 사회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여러 조건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이용했던 전략가이기도 했다. 거대 자본이나 정부의 돈을 받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 <필립스 라디오> <인도네시아가 부른다>-, 로버트 카파, 쇼스타코비치, 브레히트, 폴 로베슨, 에른스트 부쉬, 피카소, 헤밍웨이 등 당대의 유명한 예술인들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아옌데, 주은래, 호치민 등 수많은 정치지도자와도 교류를 가졌다.

그는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이라 불릴만큼 20세기 사회변혁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녔다. 소련, 쿠바, 칠레, 스페인,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 한번 갔던 곳은 다시 가지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세계 곳곳의 격동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중 그가 가장 애착을 느꼈던 곳은 중국이었다. 1939년에 중국을 배경으로 <4억의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찍은 후, 1976년에는 중국 문화 대혁명을 다룬 12시간의 12부작 다큐멘터리 <우공은 산을 어떻게 옮겼나>를 찍었고, 세상을 떠나기 한해 전인 1988년에는 그의 영화 전반을 정리하는 <바람의 이야기>를 중국에서 찍었다.

사진사였던 할아버지, 사진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때부터 카메라와 친해졌던 이벤스는 카메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적 추구를 하게 된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이벤스는 단편, 과학, 카툰, 홈무비등 영화 미학적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영화 청년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그때 기회를 얻어 소련을 가게 된다. 소련 방문 이후 그는 작품 세계는 보다 직접적으로 현실과 관련을 맺게 된다. 그는 또한 영화에 대한 대중매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변혁 운동의 현장에서 직접 촬영을 하고 그 투쟁을 대중과 공유하는 요즘으로 치면 비디오 액티비즘과 유사한 활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의 특징중 하나는 시적 영상.  바람과 구름은 그의 시적 영상에 가장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이다. 초기작 <비>에서 시작하여 그의 시적 표현은 <세느가 파리를 만나다> <미스트랄> 그리고 그의 유작 <바람의 이야기>로 집대성 된다. 고흐, 샤갈, 보티첼리, 중국 서예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자기 작품에 인용하는 것도 그가 즐겨사용한 방법.

그의 한 쪽 눈은 삶에 깃들여져 있는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또다른 한 쪽은 불의와 가난 그리고 착취가 가득한 모순적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요작품

1928. 다리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와 경이. 산업화의 주역인 기차를 타고 또다른 주인공인 (움직이는)다리를 이 구석 저 구석 살펴보는 것. 오늘날까지 아방가르드의 대표적 작품으로 실험영화에 영감을 주고 있는 작품.

1929. 비
비의 다양한 이미지를 형상화 한 작품으로 그의 시적 영상을 잘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

1931. 필립스 라디오
필립스사로부터 회사홍보영화 제안을 받고 작업한 작품이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제대로 드러내는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거대 공장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인 노동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노동자들의 모습, 생산라인의 움직임과 함께 구성해 마치 교향악처럼 만들어 냈다.

1933. 신세계
네덜란드 간척사업을 다룬 영화

1934. 보리나제
벨기에 탄광 노동자 파업을 다룬 영화.

1937. 스페인의 대지
프랑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스페인 민병대의 투쟁을 생생하게 포착한 작품. 당시 '너무 끔찍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현실을 잘 드러낸 작품. 헤밍웨이와 함께 작업.

1939. 4억의 사람들
일본과 장개석 정부 사이의 전쟁을 필름 르포르타쥬 형식으로 만든 작품. 로버트 카파와 함께 작업. 국민당 정부의 엄격한 검열하에 촬영된 영화로 공산당과 마오쩌둥에 관한 이야기는 드러내질 못했다.

1946. 인도네시아가 부르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가, 일본의 식민치하에 있던 인도네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해 연합국이 인도네시아로 향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이벤스에게 의뢰한 작품. 그러나 연합국이 인도네시아로 가기전 인도네시아는 자체적으로 해방 선언을 하게 되고 연합국에는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자 이벤스는 자신의 조국인 네덜란드와 연합국의 부당함을 알리는 목적으로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되고 그후 얼마동안 네덜란드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1954. 강의 노래
세계노동조합연맹이 제작비를 댄 작품으로 세계 6대 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노동자들의 현장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쇼스타코비치, 브레히트, 폴 로베슨, 피카소등 유명 예술인들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1957. 세느가 파리를 만나다
프랑스 세느강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이벤스의 시적 리얼리즘이 잘 드러나는 작품.

1963. 발파라이소
아옌데의 후원으로 1962년 산티아고를 방문한 이벤스는 산티아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화 이론과 제작을 가르쳤다. 이를 계기로 칠레의 독특한 항고 도시에 관한 영화 <발파라이소>가 탄생.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시적인 영화의 하나로 꼽힌다.

1968. 위도 17도
그의 세번째 부인인 마셀린 로리단과 함께 베트남전을 기록한 영화. 16mm 경량 카메로 폭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장을 기록.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혁명전을 치르는 베트남 민중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1976. 우공은 산을 어떻게 옮겼나
중국 문화혁명의 현장에서 5년간 12부작으로 완성된 장대한 서사시이다. 이 영화는 때로는 기나긴 인터뷰가 이어지고, 때로는 아무런 설명없이 중국 변방의 시골 공회당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편집 없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담는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의 우공들이 어떻게 봉건주의라는 산을 저리로 옮기고, 사회주의라는 산을 옮겨 오는지를 "마음으로" 보여준다.

1988. 바람의 이야기
이벤스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성찰한 내용이자 세계 속에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고찰한 영화. 마르셀린 로리단과 공동으로 작업. 중국을 배경으로 바람을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서, 그리고 문화 사회 혁명의 변화들을 나타내는 은유로서 포착하고자 했다. 1988년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상영되어,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작품.

현장 구매, 예약만 가능.. 오늘 본 바람의 이야기는 매진에 입석까지 있었다.

바람의 이야기, 위도 17도는 오늘 보았고..
예매한 영화는

20일 8시 필립스 라디오, 스페인의 대지
21일 8시 센느가 파리를 만나다, 미스트랄
24일 8시 강의 노래.

좀 무리했다. 그래도 이번 기회아니면 또 언제보나 싶어서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