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교수논단-파병철회와 경제파탄론

2004년 07월 19일   백일 울산과학대 

얼마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한미관계 악화는 우리경제에 중대한 불안요인이라는 것이다. 동북아정세는 경제파탄논리는 종종 검토되던 것이었으나 대통령 전용 보고서를 청와대가 직접 공개하고 대 국민 홍보용으로까지 확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건은 김선일씨 사건으로 악화된 이라크 파병 여론 선회를 직접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이 이렇게 까지 다급해진 것은 정부의 피랍사건 초등대응 실책과 미국계 언론 AP통신의 정보은폐 의혹, 그리고 국회 파병동의안 통과 시점 등, 일관된 파병안 강행일정 속에서 일이 발생해 정부책임이라는 사회적 지탄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잘못됐다면 고쳐야지 경제파탄을 내세워 오히려 이를 합리화하려는 것은 떳떳치 못한 일이다. 그런데 더 걱정스러운 것은 진상 은폐보다도, 한미관계까지 들먹이는 노무현 정부의 상황인식이다.
보고서는 한미관계 악화, 미국 경제제재,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한국신용등급 인하, 해외자본이탈, 증시가 파탄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그럴듯한 시나리오인데, 유족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꼭 그래야 진짜로 국가 이익이 보장된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게 정말 불가피한 고뇌의 한 수인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파병을 합리화하려는 낮 뜨거운 대응논리의 발굴인가. 말 나온 김에 이 시나리오의 현실성을 강행 가능성과, 실제 경제파탄 발생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점검해보자. 왜냐하면 그간 한미관계악화와 실익 논리는 냉전논리와 함께 정권 합리화의 양대 단골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보고서와는 달리 파병 철회시 부시정부가 경제 제재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라크침공도 감행하는 판에 네오콘(신보수주의)이 무슨 일을 못할까마는, 대선이 코앞이고, 날로 확대되는 이라크 침공정보 조작 의혹은 부시를 옥죄는 그물이다. 둘째 이라크전쟁의 도덕성 추락은 9.11테러 당시의 기세등등한 국수주의와는 다른 환경이다. 부시의 무기력은 스페인 필리핀 등의 파병철회, 멕시코 등의 파병거부에도 별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못한 사례에서 입증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제재 강행을 예상한다면, 이것은 경제원리의 기초를 모르는 턱이다. 경제이익은 상호적인 것이다. IMF사태이후 우리 증시에 들어온 외국자본 약 2백억불 중 상당수는 불과 5~10% 정도의 헐값으로 주식을 인수해 수 십배 이익을 본 바 있다. 아직도 건질 이해가 있는데 그것을 포기할 자본이 있을까. 혹시 무디스가 어떤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언제 바뀔 정권 때문이 아니라 자본의 이해관철에 먼저 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파병과 한미관계, 경제문제를 같은 선상에서 연관시키는 것은 국제정세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명백한 무리수다. 오히려 우려되는 바는 군사적 변화, 즉 파병 철회시 한반도 긴장고조 가능성인데, 이 확률도 사실은 크지 않다. 이번 3차 6자회담에서 나온 대북 협상조건의 놀랄만한 변화(중유 공급, 다자 안전보장, 경제 제재 해제 등)는 최근 동북아정세의 긴장완화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이다. 이른바 악의 축 메뉴에서 북이 제외됐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성질이 아니다. 이것은 남한 당국이 미국에 잘 동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전략의 중대한 변화요인(미패권주의에 대한 국제적 반발 확산 등)과 그 심각성을 의미한다.
이번 청와대 보고서 파문은 파병 경제이익 논쟁에 가까운 것이다. 영원한 동지가 없는 냉엄한 국제사회 논리에서 자국의 이해관철은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냉철한 국제정세 분석력과 자기 주체성의 바탕위에서 나온다는 것은 오랜 국제관계사가 웅변하는 것이다. 더러운 국제 석유커넥션이라는 오명으로 가득한 이라크 침공을 세계사의 진전 운운하며, 파병 반대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최소한 더 이상 파탄 운운하면서 국민을 현혹하지는 말라. 경제가 정 어렵다면, 남의 피로 내 삶을 강구하는 부도덕을 강요하기 보다는 더 뼈를 깍는 노력을 차라리 호소하라. 이른바 국가 유력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청와대가 힘을 합쳐 나라경제 회생에 매진은커녕, 엉뚱하게 파병 합리화 보고서에 힘을 빼는 것은 마치 베트남전 1인당 최저 살상비용을 계산한 미국 경제기관들의 부도덕성을 재현한 것 같아 참으로 씁쓰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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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한국영화, '아이들 쌈짓돈'에 눈독 들여 몰락 자초

 

'오동진의 영화 갤러리' <14> 할리우드 급상승, 한국영화 급락

 

우리가 할리우드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
  국내 여름시장 중간 점검: 할리우드 급상승, 한국영화 급속 추락
  
  올 여름 시장만을 놓고 보면 한국영화는 현재 분명히 자멸의 길로 가고 있다. 올 들어 한국영화계는 소수 몇편의 영화만을 제외하고 수준이하의 졸작들을 양산해내고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박스오피스에서도 신통찮은 성적을 내는데 그치고 있다. 중견배급사 아이엠픽쳐스가 최근 발표한 시장분석 보고서에서도 한국영화의 추락은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월별 시장점유율 분석에서 한국영화는 6월 한달동안 36%대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기는 22개월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참고로 6월 직전까지 올 상반기 한국영화계의 시장점유율은 63%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계자들은 지금의 추락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으며 앞으로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점점 더 깊은 곳을 향해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비해 할리우드는 수개월 전 우리 영화가 들었던 얘기를 듣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한국영화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지난 5월부터 연속 홈런 내지는 장타를 치며 여름시장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5월말에 개봉된 브래드 피트 주연의 <트로이>는 전국 3백90만 정도의 관객을 모아 현재까지 올 한해 개봉된 외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뒤이어 나온 <투모로우>도 마찬가지. 전국적으로 3백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두 작품 말고도 할리우드 여름영화들은 연속해서 빅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 영화는 현재까지 극장에 걸려있는 작품이 대부분으로 <슈렉2> <스파이더맨2> <해리포터-아즈카반의 죄수> <아이, 로봇> <반 헬싱> <본 슈프리머시> 등이 그것이다.
  
  할리우드 여름영화, 곧 블록버스터들이 큰 인기를 모으는데는 막대한 물량공세가 주효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지적이긴 하다. 지난 주말(7월31일~8월1일) 전국 관객 60만명 이상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반 헬싱>의 경우 수입가 50억원에 마케팅비만 18억원 이상을 들인 작품이다. 손익분기점만 하더라도 전국 관객 2백만명선. 하지만 수입사인 튜브엔터테인먼트(대표 김승범)는 개봉 첫주말의 흥행추이를 놓고 볼 때 전국 관객 3백만명 이상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크게 쓰고 크게 먹는 전략이 주효했다는 얘기일 수 있다.
  


 
<반 헬싱>의 한 장면. ⓒ프레시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헬싱>을 포함해 올해 개봉된 할리우드산 블록버스터의 경우 단순히 자본과 조직을 동원한 물량공세만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올해의 할리우드 여름영화들은 유난히 작품성면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로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이, 로봇>의 경우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을 리들리 스콧이 1982년에 만든 걸작 <블레이드 러너>의 흑인판으로 만든, 묵시록적인 영화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으며, 곧 개봉될 UIP 배급의 <본 슈프리머시> 역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타의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와는 차별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얼마 전 예술영화전용관 백두대간에서 상영돼 한국관객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은 저주받은 걸작 <블러디 선데이>를 만든 인물이다.
  
  결론은 다양성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올 여름 유난히 한국시장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먹혀들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을 할리우드 특유의 물량공세, 탁월한 CG기술력으로 포장해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한다면 올 한해,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한국영화들은 그야말로 초라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제의식이라곤 거의 비쳐지지 않는 안이한 기획의 상업영화들만을 양산해 낸 결과다. 한마디로 한국영화는 현재, 기획의 철저한 실패를 시장에서 맛보고 있는 셈인데, 이들 작품은 대체로 10대 청춘스타들을 기용한 할리 퀸 소설류의 청춘멜로나 트렌디한 공포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청춘멜로의 대표격 영화로는 <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 <돌려차기> 등. 공포영화의 경우 <페이스>를 시작으로 <령> <분신사바> <인형사> 등이 꼽힌다.
  
  올 한해, 특히 여름시장에 있어서 한국영화들이 흥행면에서나 비평면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게 된 결과는 국내 영화제작자들이 관객의식의 빠른 변화를 추동해내지 못하고 있는, 결국 시장에 대한 과학적 분석 능력이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영화기획과 실물 시장 간에 나타나는 이 같은 괴리감은 국내 극장문화가, 긍정적인 원인에서든 부정적인 원인에서든,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서도 나타났듯이 연령별 스펙트럼이 대폭 확장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영화의 기획은 여전히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관객층만을 겨냥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제작자들은 아직도 '어린 아이들의 쌈짓돈'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주5일 근무제의 정착으로 주말 여가시간이 늘어났고, 그렇다면 영화의 주소비층의 연령대가 좀더 넓어지고 있는데 그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대후반의 어린 관객들을 겨냥한 작품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 보면 백번 양보가 가능한 얘기일 수 있다. 지금은 바캉스 시즌, 무엇보다 여름방학 시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작품수준을 지나치게 하향평준화시키고 있는 것은 한국영화가 이대로 가다가는 자멸의 길로 나아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기대를 모았던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같은 경우 일본 공포영화 시리즈 <링>과 홍콩 팡브라더스 감독의 <디 아이>를 합친 듯한 작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는 작금의 우리영화가 독창성이 크게 뒤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영화는 올 한해를 경유하면서 자칫 급전직하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는 갈등 국면을 말끔하게 정리해 내지 못하고 있으며(프레시안 7월19일자 기사 '한국영화 패권 둘러싼 CJ와 강우석의 전쟁' 참조) 스크린쿼터제도의 개선 논의에 있어서도 지지부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한국영화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최근의 한국 영화계를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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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8-02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몇년 동안 '문화생활'과는 거의 무관한 생활을 해온지라, 사정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럴 듯한 말이군요.
 

 

“투기자본엔 영주권, 숙련노동자는 강제추방?”
이주노동자 투쟁, '영주권 논의'로 옮아가나

 

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7월 29일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에는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저지를 위한 목요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약 20여명의 평등노조 소속 해고노동자와 학생들이 모여 정부의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에 항의하고, 그들에게 영주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6월 말 현재, 불법체류자 수는 16만 7천명으로 지난해 12월에 비해 5만 명 가까이 늘어난 상황. 정부는 8월 17일 실시되는 고용허가제를 앞두고 장기체류자 수를 줄이기 위해 고심 중이다.

   
▲ 출입국관리사무소 앞 집회

그러나 몇몇 시민단체나 노동단체 등은 "5년 이상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해 온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만큼, 이들 장기체류자에게 노동비자를 발급하거나, 시민권(영주권)을 부여하는 등 노동자로서 대우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채 불안한 도피생활을 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한국사회 내부로 편입시키는 것이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들을 위해서도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평등노조 임미령 위원장은 "17만에 이르는 장기체류 노동자들을 무조건 추방한다고 해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오늘처럼 자신들의 집회에조차 참여할 수가 없다. 밖에 나서기만 해도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잡혀가기 때문"이라 말했다.

이주노동자, '인간사냥' 당할까봐 집회에 참석 못해

그는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행태를 '인간사냥'이라 묘사했다. 현행 제도 하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입국 3년이 지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일단 본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오면 해결되는 문제 아닐까. 하지만 임 위원장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한국 돈으로 수천만 원을 들여 겨우겨우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또다시 빚을 내서 재입국하라는 것은 사실상 영구추방이나 마찬가지다. 장기체류자들을 보면 7∼8년 넘게 한국에서 생활한 사람들도 많다. 사실상 한국 노동자나 마찬가지다. 한국경제발전에 공헌한 숙련노동자로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 평등노조 임미령 위원장

집회에 참석한 여우성 씨는 해고노동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법원에서 해고무효 확정판결을 받고도 복직이 안돼" 평등노조에서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그는 "사실상 민주노총에 속한 대형사업장 노동자가 아니면 억울하게 해고당하고도 제대로 복직하는 경우가 드물다. 막다른 길에 그대로 내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여 씨는 이주노동자 집회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같은 노동자이니까요.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들 해고노동자들 이상으로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아닙니까. 미조직 노동자들은 가장 소외받는 노동자들입니다. 보호해줄 노직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라도 이주노동자들을 적극 엄호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집회차량의 마이크를 잡은 한 활동가는 '이주노동자에게도 영주권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 투기자본가들이 3년간 50만달러 이상을 한국에 투자하면 영주권이 주어집니다. 사회적 기여도에 따라 영주권을 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10년 일한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가 없을까요? 투기자본이라도 영주권을 주는데, 왜 산업현장에서 일한 노동자한테는 영주권을 주지 않는 걸까요? 우리는 3년간 50만 달러를 투자하는 투기꾼 보다 이주노동자들이 더 큰 사회적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투기꾼들은 자신이 이익을 남기고 돈을 빼내서 이 땅에 나가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투기자본가들에게만 영주권 주는 건 부조리"

사실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을 보장하는 문제는 관련 단체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고용허가제에 반대하고, 5년의 시한을 보장하는 노동허가제, 사업장 이동의 자유 등을 주장해 왔지만 영주권이라는 단어를 꺼내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만 안산 외국인 노동자센터 소장 박천응 목사가 최근 이주 노동자의 '시민권'을 제기한 바 있었다.

   
▲ 출입국관리사무소 앞 집회.
외국인 노동자 대책협의회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영주권을 거론하지 않지만, 최근 검토를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정정훈 변호사는 '이주노동자의 시민권-법률적 문제에 대한 시론적 검토'라는 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국적취득(귀화)보다 영주권 취득이 더 쉬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영주권 취득이 귀화보다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고용허가제는 장기체류 이주노동자를 사회적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차별적 시각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며, 미숙련 노동자를 양산하여 질적인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을 원하는 기업계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미숙련 노동으로 인한 산재발생율의 증가 및 불법체류를 유인하는 요소로 작용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 변호사는 "장기체류 이주노동자를 숙련노동자로서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결론맺는다.

이주노동자의 영주권 부여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이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국제사회를 보더라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태도는 그 사회 전체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 사무소

 

2004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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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철회” 놀이와 저항 거리서 만나다


△ 이라평화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5~6월 광화문 네거리에서 집중적으로 벌인 ‘박스맨 피스몹’ ‘평화공 피스몹’ ‘국화 피스몹’의 한 장면.이라크평화네트워크 제공

문화현장-지금 이곳엔
새 시위문화 ‘피스몹’

그들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이 세상에 많지 않다. 광화문과 여의도에 신출귀몰한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급진적이면서도 영적인 구석이 있고, 집단적인데 조직적이진 않다는 알쏭달쏭한 평가도 따라붙는다.

지난 2월 만들어진 ‘이라크 평화네트워크’ 회원들은 정치와 문화의 경계, 재미와 저항이 만나는 지점에서 지금 한창 ‘놀고 있다’. 80년대 ‘저항문화’가 90년대 대중문화에 휩쓸려 사라진 지금, 이들은 새로운 저항문화의 등장을 예고한다.

이들의 정서구조를 이해하려면 우선 문제 하나 풀어야 한다. ‘박티스트’와 ‘박스맨’의 차이는 ‘이라크…’ 회원 최경송(37)씨가 직접 설명드리겠다. “아~, 그거요. 별거 아닌데. 박티스트는 ‘박(빡)세게’ 일하면서 괜히 부지런떠는 사람을 말하는 거고, 박스맨은 말 그대로 피스몹할 때 박스 뒤집어쓰고 나오는 사람이죠. 우린 박티스트 별로 안 좋아해요. 박스맨이야 많을수록 좋죠.”

꼬리를 무는 또다른 질문. 그런데 피스몹은 뭐지 피스몹은 플래시몹에 평화(Peace)의 개념을 덧씌운 것이다. 그럼 플래시몹은 순식간에 모여들어 ‘뭔가’를 하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군중을 일컫는 말이다. 세상이 따분하고 고까운 네티즌들의 심심풀이 놀이다.

‘이라크…’ 회원들은 플래시몹을 차용해 피스몹이란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4월부터 지금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이 신기한 ‘저항 놀이’를 세상에 선보였다. 필수 준비물은 몸과 마음, 구호·연설·노래제창 절대 사절,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준비한다.

이라크 평화네트워크 회원들
‘플래시몹+평화’ 하나로 묶어

광화문 네거리에 갑자기 몰려들어 ‘평화의 공’을 튕기며 놀거나, 국화꽃 하나 얼굴에 올려 바닥에 드러눕기도 한다.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는 박스맨 피스몹에 대한 첫 제안은 이랬다. “박스는 우리의 무기, 방위나 윤봉길의 도시락. 박스는 우리의 오브제, 미적 성취. 박스는 너희의 총칼보다 강하다. 하여 박스는 우리의 소리없는 단단한 저항. 박스는 자유다!” 이들은 결국 “부끄러워 하늘을 볼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아 박스를 뒤집어쓰고 세상을 향해 ‘각’을 세웠다.

그러나 피스몹의 결정적 재미는 다른 데 있다. 대충 이런 걸 하자고 모였지만, 반드시 ‘딴 짓’ 하는 회원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로 신경쓰지 않고, ‘알아서 놀면서 저항하도록’ 내버려두는 것까지가 피스몹의 핵심이다. “하나의 주장을 구호를 통해 집단적으로 외치는 게 아니라, 각자 스스로 표현하는 거죠. 우린 각자의 의지에 따른 저항을 꿈꾸는 겁니다.”(염창근 사무국장)

피스몹에 처음 참여했던 한 회원은 그 감상을 이렇게 전했다. “개인들의 작은 목소리의 만남.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지만, 같은 지향점 하나. 파병철회와 평화를 위해 합쳐지는 목소리들의 하모니. 그 작지만 깊은 울림. 게다가 평화적이고 유희적인 형태로. 아주 오랜만에 ‘만남’의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이라크 평화네트워크 인터넷 게시판에서)

구호·연설·조직적 외침 대신 국화꽃 한송이 얼굴에
올린 채놓고 상자 뒤집어쓰고 침묵 항의


△ 이라크 평화네트워크 회원들이 7월22일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밤새도록 ‘널린노래방’을 열었다.

이들은 최근 또다른 놀이를 개발했다. 이른바 ‘파병반대 널린노래방’이다. 고독하고 지겨운 1인 시위문화의 새 버전이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운 노래방 개업 알림은 다음과 같았다. “노래는 무쇠를 녹인다. 24시간 풀가동. 폐장은 없다. 파병이 철회되거나 더 노래부를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이 노래방은 82시간 동안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계속됐다. 연인원 60여명이 참가했다. 마이크도 없이 ‘생목소리’로 한사람당 1시간 이상씩 불러댔다. 트로트도 부르고 자장가도 부르고, 어떤 사람은 라틴어 경전을 들고 와서 줄기차게 읊었다. 부르고 싶은 노래 맘껏 부르고 나니 “이게 중독이 되더라”(최경송)며 앞으로 매주 이틀씩 정례화하기로 했단다.

이들은 지난 30일 ‘바그다드 카페-평화파티’도 열었다. “일일호프라뇨 절대 아니에요. 그냥 노는 거예요. 기왕이면 평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면서.”(회원 채리미영) 노는 것과 대드는 것에 두루 능통하다는 시중의 ‘꾼’들, 그 소문을 듣고 300여명이나 모였다. ‘블루마블’을 변형한 ‘평화 보드 게임’을 하고, ‘땡기면’ 무대에 가서 노래도 하고, 밤새 그냥 놀았다.

이들은 회원 규정도 따로 없다. 게시판에 자주 글 남기고, 피스몹에 얼굴 내밀면 그게 회원이다. 그렇게 따져서 한 70여명 정도가 핵심이라면 핵심이다. 고등학생부터 일반시민, 시민단체 활동가까지 망라돼 있다. 정치성향으로 보면,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사회당 당원에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녹색당 지지자까지 있고, 아나키스트 클럽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1인시위 넘어 ‘널린 노래방’ 고등학생부터 활동가까지 방라
“평화의 그날까지 쭉~놀자”

이들을 묶는 유일한 끈은 ‘새로운 저항문화’에 대한 갈증이다. 김어준 문화평론가는 이를 “심각하고 경건한 저항조차도 ‘유희화’하려는 문화흐름”이라고 평가했다. 그 흐름이 처음으로 현실화된 것이 인터넷 패러디였는데, 이제 ‘오프라인’까지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이는 힘없는 사람이 힘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유력한 방법이고, 풍자는 그들의 ‘보복적 탄압’을 무산시키는 지혜로운 길입니다.”

모든 권위를 해체하려는 젊은 세대는 이제 ‘운동권 문화’까지 해체하고 새로운 ‘저항 문화’를 찾아 나서고 있다. 이들의 ‘문화실험’은 끝이 없다. 파병이 철회되거나 더 놀 사람이 없을 때까지.

‘난 다르다’는 그들의 말·말·말



△ (좌로부터)최경송·염창근·김박태식·채리미영

최경송(37)
화염병 던져봤지, 이젠 소통을 생각해

공부방 운영하는 ‘일반시민’. 널린노래방에 푹 빠져있다. “80년대 학교 다니면서 나도 화염병 던지며 싸웠다고. 발언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지. 이제 그 ‘공간’은 있으니까, ‘소통’에 대해 고민해야 되지 않겠어”

염창근(29)
지속 가능한 감수성이 필요할걸

원래 회원 규정도 직책도 없는 모임이지만, 바깥 사람들 편하라고 그냥 ‘명목상’ 사무국장 맡고 있는 평화운동가. “저항의 새로운 감수성이 필요하단 건 나도 알지만 말야, 정서적·즉자적 대응보다는 지속적으로 성과가 쌓이는 저항이 필요한 게 아닐까”

김박태식(32)
말 안하고 있으니 귀기울이잖아

대학 총학생회장 시절 ‘군중동원 문화’에는 이골이 났다. “가두시위와 군중집회 방식의 저항문화가 원래 목표했던 게 뭔지 다시 살펴볼 때가 왔어. 말이 넘치는 세상, 말 안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귀 기울이잖아.”

채리미영(29)
슬픈 우리, 차라리 재미있게 놀자!

부모성 함께 쓰면서 이름이 더욱 예뻐진 여성운동가. 반전평화를 위해 최근 ‘파티 플래너’로 거듭 났다. “8월3일날 추가 파병부대가 이라크로 떠난대. 무기력하고 슬픈 우리, 차라리 재밌게 놀자. 평화에 대해 수다 한번 떨자구. 파티도 결국 소통이잖아.”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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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출판 갈수록 ‘수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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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근 밥먹듯 해도 월급 배곯듯
  • ‘책생태계’ 인문·문학 위기
  • ‘혈혈단신 출판’ 불황늪 자맥질

  • 대형출판사로 매출 집중
    중소형은 급감 고사위기

    경기침체 여파로 출판 시장도 불황의 먹구름이 짙어지면서 출판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출판사들이 매출 규모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려가는 반면, 중소형 출판사들은 매출액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특히, 소규모·다품종 생산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들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출판사를 차린 지 8년째 된 한 인문학 전문 출판사 사장은 1일 “지난해에 비해 매출액이 30~40%는 줄었다”며 “출판시장 도매상들이 부도를 내던 아이엠에프 때도 이렇게 어렵진 않았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그의 이런 한탄은 다른 대다수 소형 출판사 사장들에게서 어김없이 들을 수 있다. 철학·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이제이북스의 전응주 사장은 “출판사를 차린 지 3년 만에 5억원을 까먹고 1억5000만원의 빚을 졌다”며 “그래도 우리 출판사는 직원 3명의 월급은 주고 있는데, 주위를 보면 월급을 몇달째 주지 못한 출판사들이 여럿 있다”고 인문학 출판사의 열악한 사정을 전했다. 실제로 150여 중소 출판사와 거래하고 있는 한 도매회사는 지난해에 비해 평균 18% 정도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돼 이런 사정을 방증하고 있다. 특히 5명 이하의 소규모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까지 매출액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단행본 출판사로 매출액 순위 1, 2위를 다투는 랜덤하우스 중앙은 올해 상반기에 전년 대비 25%의 신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100억원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한 ‘북21’의 경우는 지난해에 견줘 성장률을 무려 70% 정도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단행본 출판사 가운데 지난해 가장 많은 매출액을 기록한 실용서 전문 출판사 넥서스도 20%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출판계의 양극화 현상은 통계에서도 그대로 잡히고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소장 한기호)가 국내 출판도매업체들의 판매추이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단행본 출판사 가운데 상위 20개사의 매출액은 2000년 전체 매출규모의 61%였던 것이 2002년에는 71%로 꾸준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올해에는 75% 이상을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상위 5개사의 경우 2000년에는 42%였던 것이 2002년에는 49%로 늘었으며, 올해는 50%를 훌쩍 넘어설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기호 소장은 “출판시장의 양극화 현상 배후에는 유통질서의 문란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도서 정가제가 사실상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각종 할인점과 인터넷 서점, 대형 서점들이 자본력이 있는 출판사들과 손잡고 큰 폭으로 책을 깎아 팔거나 경품을 끼워서 파는 할인·경품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런 요구를 맞출 수 있는 대형 출판사는 유통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독자 수가 많지 않은 책을 펴내는 소형 인문 출판사들은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백원근 선임연구원은 “출판을 이대로 왜곡된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신문시장의 독과점화가 가속화되듯, 소형 출판사들의 소외와 위축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며 “그렇게 될 경우 문화의 정신적 기반인 출판의 다양성이 크게 훼손되고, 돈 되는 책을 좇는 대형 출판사에 독점된 시장에서 작지만 꼭 필요한 책을 내온 출판사들은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야근 밥먹듯 해도 월급 배곯듯


    △ 한 인문 출판사의 사장이 창고 안에 쌓인 책들을 바라보고 있다. 대다수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출판 불황 한파 속에 많게는 50%까지 매출액이 떨어져 극심한 내핍을 강요당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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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물주고 보살펴야
  • ‘혈혈단신 출판’ 불황늪 자맥질

  •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
    벼랑끝 생존투쟁

    출판 불황의 땡볕에 내몰린 소규모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물이 말라가는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처럼 힘겹게 숨쉬기를 하는 이 출판사들의 고군분투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진보적 사회과학 서적을 펴내는 책갈피 출판사는 지난해 6월 비슷한 유형의 책을 펴내던 북막스, 책벌레 출판사와 통합했다. 모두 1인 출판이었던 세 출판사는 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더구나 사회과학 이념서에 대한 외면은 찬바람 불듯 냉랭한 상황에서 출판사를 합쳐서라도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벌레 대표 최수연씨가 통합된 책갈피의 대표가 되고 북막스 대표 김희준씨는 영업부장이 됐다.

    2인 출판사로 다시 출발한 책갈피는 먼저 경비 절감책부터 실행에 옮겼다. 외부에 맡기던 표지 디자인이나 본문 조판을 가능한 한 안에서 처리하는 식으로 제작비를 최소 수준으로까지 절감했다. 100만~200만원이라도 아껴보자는 심산이었다. 두 사람이 된 만큼 발행 종수도 최대한 늘렸다. 새 출발 이후 지금까지 9종을 펴냈는데, 많이 팔리지는 않아도 여러 종을 내면 그만큼 수금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정이 특별히 나아진 것은 아니다.

    김희준 부장은 “사회과학서적이 워낙 독자군이 적고 게다가 그 독자들마저 경기 침체로 떨어져나가는 상황이어서 출판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다”고 말했다. 책갈피는 초판 1500~2000부를 찍고 그 중 1000~1500부 정도가 팔린다. 김 부장은 “그 정도면 경상비와 재투자비가 빠지고 두 사람에게 최소 생활비가 떨어진다”며 “아직 둘 다 미혼이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좌파 출판의 명맥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는데, 우리마저 손놓아버리면 어쩌겠느냐”며 “벼랑끝에 선 심정으로 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경영난에 회사통합·경비절가마 허리띠
    수금못해 인쇄중단까지‥‘빚방석’오르기도
    대출·할인 막힐까 힘들단 말도 ‘조심’

    소형 출판사들치고 사정이 어렵지 않은 곳이 없지만, 내놓고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어느 출판사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은행 대출을 받기도 어렵고 어음할인을 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출판사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출판사는 이 난국을 몸으로 때우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역사·문화가 전문인 이 출판사는 사장·편집장·편집자 세 사람이 꾸려가고 있는데, 교정·교열은 말할 것도 없고 본문 조판, 표지 디자인까지 모두 자체에서 해결한다. 그렇게 해서 만든 책이 지금까지 30권을 채웠다. 아는 사람은 모두들 이 출판사가 만드는 책의 충실도·완성도를 높이 산다.

    그러나 사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40%나 매출액이 떨어졌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제작비와 경상비, 인건비를 다 건지려면 평균 3000부는 팔려야 하는데, 올해 나온 책 가운데 1000부를 넘긴 책은 한 권밖에 없다. 방법은 책갈피처럼 책의 종수를 늘이는 것뿐이다. 이들은 밤 10시까지 책상에 앉아 교정·편집 일을 보고 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책 한 권을 최대한 공들여 만들기로 소문난 이 출판사의 올해 출간 목표는 지난해의 두 배인 8권이다.

    노동시간을 늘이는 것말고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편집자들의 모임이 무산되는 일도 나타난다. 저녁 시간에 퇴근을 못하고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니 밖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2002년 출범한 출판사 뿌리와이파리의 정종주 사장은 지금까지 한 푼도 집에 가지고 들어간 돈이 없다. 정 사장은 “담뱃값·커피값·교통비 같은 최소한의 활동비를 받은 것말고 사장 월급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다”며 “친구들을 만나도 아예 돈 없는 사람으로 보고 술값 내란 말도 안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 출판사가 지난 6월에 펴낸 <해삼의 눈>은 7~8개 일간지 출판면에서 머리기사로 크게 소개를 했는데도, 지금까지 딱 1000부가 팔렸다. “이럴 땐 정말 울어버리고 싶다.” “한국 사회의 뿌리없음을 반성하고 어떤 공공적 룰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은데, 이렇게 사정이 험악해서야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그는 말했다. 다만 그는 지금까지 직원 3명의 월급을 한번도 미루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이제이북스 전응주 사장의 경우는 심란하기로 치면 뿌리와이파리보다 더하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전 사장은 철학이 좋아 철학 출판을 시작했는데, 출판사 설립 3년 만에 이익을 내기는커녕 빚만 늘었다. 기획에서 번역까지 2년이 넘게 걸리고 그렇게 나온 원고를 원서를 대조해가며 일일이 교정·교열을 보고 가능한 한 튼튼하게 장정을 해 버젓이 내놓지만, 펴낸 책들의 평균 판매량은 600부를 넘지 못하고 그마저 지난해보다 25% 가량 줄었다. 최고로 공을 들여 지난 봄 낸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초판 1300부를 찍었지만 출고된 건 800부,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생태·환경서 전문 출판사를 지향하는 그물코는 사무실 전화가 끊겨 애를 먹기도 했다. 서점에서 수금을 해야 사물실 운영비를 댈 수 있는데, 은행 잔고가 바닥나 버린 것이다. 돈이 없다보니 용지 회사에서 종이를 공급받지 못해 책을 찍지 못한 적도 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책생태계’ 인문·문학 위기

    정부가 물주고 보살펴야

    정부라는 기관은 사회적 부가 한데 모이는 저수지의 수문지기다. 이 수문지기에게 맡겨진 임무 가운데 하나는 어느 곳으로 물을 보낼지 결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수문지기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분야가 있다. 출판이라는 논이 바로 그곳이다. 아무리 가뭄이 심하게 들더라도, 그래서 이곳에서 지식과 교양이라는 벼를 정성껏 키우는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더라도, 수문지기는 모르쇠했다. 우리 출판이 다양성과 깊이를 확보하지 못한 데에는 수문지기의 직무유기에도 그 원인이 있다. 공공영역의 지원을 기대하지 않고 시장원리에만 의존해온 결과라는 뜻이다.

    지금 본격문학과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이 고사 위기에 있다. 책의 가치는 생각하고 비판하고 상상하는 힘을 키우는 데 있다. 영상의 시대에도 여전히 책을 옹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의 다양성을 지켜야 생태계의 파괴를 막을 수 있듯, 문화적 종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나는 책이라는 생태계에서는 문학과 인문학이라는 종이 보호되어야 하며, 문화 일반에서는 책이라는 종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저수지에 모인 물을 무조건 퍼주라는 말은 아니다. 도서관이 제 구실을 한다면 꼬인 실타래는 풀려나갈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보호하고 옹호할 만한 정신이 담긴 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여기서 결정된 책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이즈음 정권 담당자들은 박정희라는 망령과 씨름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들에게 개발과 독재만이 박정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정치와 경제의 논리로 문화를 철저히 소외시킨 것도 반드시 극복해야 할 박정희의 유산이다. 위기에 놓인 책동네에 손길을 내미는 것은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첫걸음이 될 터이다.

    이권우/도서평론가·한국도서관협회 독서진흥위원

     

    ‘혈혈단신 출판’ 불황늪 자맥질


    △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 ‘산처럼’ 데펴 윤양미씨
    몸집 가볍지만 모든일 감당 벅차

    윤양미씨는 소금쟁이처럼 가벼운 몸으로 출판 불황의 늪을 헤쳐나가고 있는 1인출판사 ‘산처럼’ 대표다. 1988년 출판계에 입문해 몇몇 유력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기량을 닦은 윤 대표는 2002년 산처럼을 세워 지금까지 2년 반 동안 12권의 단행본을 펴냈다.

    10평짜리 조그만 공간에 컴퓨터 한 대, 전화 한 대, 팩스 한 대를 놓고 그 12권의 책을 혼자서 만들어왔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기획에서부터 교정·편집·영업까지를 모두 감당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만큼 성취감도 크고 회사를 운영하는 데 대한 부담감도 크지 않다.

    “인문 교양서는 실용서처럼 판매 규모가 크지 않고 영업도 큰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출판사 규모가 커지면 거기에 맞게 매출액에 대한 압박감도 커지게 됩니다. 1인 출판은 그런 걱정을 덜해도 돼죠. 내가 내고 싶은, 내 사이즈에 맞는 책을 펴내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 ‘1인 출판사’는 빚에 쪼들리고 허덕이는 다른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에 비하면 제법 큰 수익을 내는 등 사정이 한결 나은 편이다. 그가 낸 책 중에서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는 9000부가 넘게 나갔고, 이오덕 에세이집 <나무처럼 산처럼>도 8000부 남짓 팔렸다. 책이 나가는 데는 ‘행운’도 따랐다.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는 텔레비전의 책소개 프로그램 <티브이, 책을 말하다>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혔고, <근대의 횡단, 매혹의 질주>도 같은 프로에서 소개됐다. 또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와 <나무처럼 산처럼>은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뽑히기도 했다.

    1인 출판이 몸집이 가볍다는 장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도 있다. 윤 대표는 어떤 책을 펴낼 것인지와 같은 ‘큰’ 결정을 해야 할 때 상의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게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했다. 도매상에서 대금 결제를 미룰 때, 제작사와 마찰이 생길 때 혼자 풀어야 한다는 것도 고생거리다.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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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lmas 2004-08-0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흑 ...
    어렵게 제 책을 내준 출판사의 안좋은 소식을 들으니, 더 가슴이 무겁군요.
    (아직 이 출판사에서 내야 할 책이 두 권 더 남았는데 ... )

    갈대 2004-08-01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이북스가 그정도인 줄은 정말 까맣게 몰랐습니다. 중소 출판사의 실정이 너무 어렵네요.
    근본적인 문제는 독자들에게 있지 않나 싶습니다. 책 사는 데 인색하고, 책을 읽지 않고, 읽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나 실용서만을 찾으니 말이죠. 에효~

    balmas 2004-08-0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저도 그정도인 줄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ㅜ.ㅜ
    어디 이제이북스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문,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들이라면 하나같이 겪는 문제겠죠. 당장은 마음이 무거워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내일 위로전화라도 한 통화해야 할 듯 ...

    로쟈 2004-08-0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t's the real horror!...

    balmas 2004-08-02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업자, 실직자들이 넘치고, 몇달째 월급을 못받아도 혹시 그나마 짤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해가면서 회사다니는 사람들이 숱한 마당에, 인문학 출판사들이 어렵다는 게 뭐 그리 놀라운 일이냐라고 시큰둥하게 말씀할 분들도 있겠지만 ... 정말 참 큰일입니다.

    메시지 2004-08-02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장되었다고 좋아하던 친구녀석이 생각나네요. 얼마전에는 제2의 귀여니라도 건져야 살아남겠다고 푸념을 했었는데...

    balmas 2004-08-02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쯧쯧 ... 또 그렇게 힘든 날들을 보내고 계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