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지방화하기 - 포스트식민 사상과 역사적 차이 프리즘 총서 15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음, 김택현.안준범 옮김 / 그린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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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의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트의 [유럽을 지방화하기]가 "프리즘 총서"  15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마이페이퍼"에서 소개할까 했는데, 마침 한국일보에서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요청해서

 

한국일보 서평 원고로 이 책의 소개를 대신하겠습니다.

 

중요한 문제의식과 독창적인 개념화, 빼어난 문체 등이 어우러진 차크라바르티의 걸작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히고 논의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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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초판이 출간된 인도 출신 역사가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아직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단언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이미 고전이 되어가고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이미 10여개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고, 수많은 서평과 논평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 책이 해체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유럽 대륙 내부에서 유럽을 탈식민주의의 시각에서 파악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간된지 불과 15년만에 이 책이 이처럼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1980년대 초 일군의 인도 역사가들이 시작한 서발턴 연구의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이다. 서발턴(subaltern)이라는 말은 원래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사회의 하층 계급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던 말이다. 그런데 라나지트 구하를 비롯한 서발턴 역사학자들은 이 용어를 일반화하여 엘리트 집단 이외의 모든 인도인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서발턴 역사학이란 역사에 등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나타낼 만한 변변한 기록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민초들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더욱이 그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려는 새롭고도 급진적인 역사학 기획이었다. 구하의 [서발턴과 봉기], 스피박의 [서발턴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등이 바로 이러한 기획을 대표하는 저작이며, 차크라바르티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유럽을 지방화하기] 역시 서발턴 역사학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책의 제목이 “유럽을 지방화하기”일까? 유럽을 지방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여기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 ‘역사주의’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차크라바르티는 역사주의를 “모든 연구 대상은 그것이 실존하는 내내 통일적인 것으로 이해되며 세속적, 역사적 시간의 발전 과정을 통해 충분히 표현된다고 생각하는 역사에 관한 사유 양식”으로 정의한다. 쉽게 말하면, 이것은 세계 전체는 동일한 역사적 패턴에 따라 발전해왔고 또 계속 발전해간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런 관점을 특징짓는 것이 “먼저 유럽에서, 나중에 다른 곳에서”라는 구조다. 곧 산업화와 민주주의, 시민권, 인권 등이 먼저 유럽에서 생겨났으며, 유럽을 제외한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서는 유럽이 이룩한 선진 문명을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주의적 관점에 의하면 서구 내지 유럽은 세계의 모든 문명이 뒤따라야 할 표준적인 모델을 제공해주는 셈이다. 차크라바르티에 따르면 유럽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해준 것이 바로 역사주의였으며, 식민지 체계가 종식된 이후에도 여전히 이런 사유 방식은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역사에는 단일한 발전과정이 존재하며, 각 나라 및 문명은 이 과정에서 얼마나 앞서 있고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에 따라 그 수준의 정도가 평가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을 해체하려는 것이 바로 유럽을 지방화하기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다.


 

  그러나 이것을 새로운 보편을 세우자거나 보편을 다수화하자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말하자면 유럽식 보편주의는 한물 갔으니 이제 아시아적 보편을 세울 때가 되었다, 이제 세계의 패권은 아시아로 넘어왔다는 식의 주장이 아니다. 이런 사고 방식은 유럽식 역사주의를 모방하는 것에 불과할뿐더러, 헌팅턴 식의 문명충돌론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유럽의 사상 및 문명 전체를 거부하자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차크라바르티가 유럽을 지방화하기 위해 주로 의지하는 사상적 원천은 마르크스와 하이데거 및 푸코 같은 유럽의 사상가들이다. 중요한 것은 단일한 역사 발전 과정을 가정하는 관점을 해체하고, 각각의 문화, 각각의 나라, 각각의 지역에 고유한 역사적 삶의 독특성을 존중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역사주의는 우리의 삶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정희 시절에는 조국 근대화라는 구호로 나타났고, 지금은 선진국 따라잡기라는 형태로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획일화된 도식이 얼마나 사람들의 삶을, 특히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듯 몫 없는 이들의 삶을 유린하고 있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유럽을 지방화하기]의 궁극적인 전언은, 서발턴들의 독특한 삶의 역사들에 기반을 둔 보편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를 테면 탈중심적 보편성, 해체적 보편성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화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을 지방화하기]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차크라바르티는 역사가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고전 저작들은 물론이거니와 헤겔, 후설, 하이데거 같은 독일철학자들과 알튀세르, 푸코, 데리다 같은 프랑스철학자들의 저작들까지 두루 꿰고 있는 데다가, 인도의 역사와 사회, 문학 등에 관한 폭넓은 사료들을 원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서와의 대조 없이 술술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 것은 두 번역자의 빼어난 능력과 힘겨운 노력 덕분이다.


 

  ‘유럽을 지방화하기’라는 기획을 어떻게 우리의 역사와 현실 속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질문해보고 또 각자 답변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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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이 2014-10-09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갈 길이 머네요~~~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16회 원고 올립니다.

 

원래는 이번 주 월요일에 나갔어야 할 글인데, 신문사 사정으로 한 주가 연기되어

 

다음주 월요일치 신문에 실릴 예정입니다.

 

 

신문사에서는 "예속적 주체를 생산하는 ‘규율 권력’의 작동"이라고 제목을 잡았네요.

 

아래 주소로 가시면 신문에 실린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571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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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모리스 블랑쇼(1907~2003)는 <내가 상상하는 대로의 미셸 푸코>(1986)라는 짧은 책에서 자신은 푸코와 생전에 아무런 개인적 교류가 없었지만 단 한 번 그를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그와 결코 만난 적이 없다. 단 한 번, 68년 5월 당시, 아마도 6월인가 7월 경에(하지만 누군가 그때가 아니었다고 내게 말한다) 소르본 대학 교정에서의 만남을 제외하면. 나는 그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는데, 그는 자신에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5월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 이때는 좋은 시절이었다. 이때는 각자가 다른 사람에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익명적으로 누구인지 상관없이 말을 할 수 있었고, 그저 또 하나의 사람이라는 이유 이외에 다른 정당화 없이 환대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바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지만 이 비범한 사건의 와중에 내가 다음과 같이 자문하곤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가 여기에 없을까?”


  68년 5월에 푸코는 어디에 있었을까? 사실 당시 푸코는 튀니지에 있었다. 그는 1966년 출간된 <말과 사물>이 마치 “빵처럼 팔려나가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학계와 문화계의 스타가 되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파리 대학의 자리를 얻지 못하자 튀니지 대학의 자리를 얻어 프랑스를 떠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식의 고고학>을 집필한다. 그동안 그는 단 한 번 파리에 다녀갔을 뿐이다. 따라서 블랑쇼가 말했듯이 그는 프랑스를 뒤흔든 68년 5월의 와중에 프랑스에, 파리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블랑쇼가 “그런데 왜 그가 여기에 없을까?”라고 자문했던 것은 우연한 일일까? 블랑쇼의 말은 푸코가 파리에 있었어야 마땅하다는 뉘앙스를 띠고 있다. 마치 푸코가 없는 68년 5월은 생각할 수 없다는 듯이.


  사실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상당히 과장된 생각이다. 68년 5월 당시 시위대들이 열광했던 사상가는 푸코가 아니라 마르크스와 마르쿠제, 그리고 마오쩌둥이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사르트르라고 할 수 있다. 푸코는 이들에게는 아직 낯선 사상가였다. 더욱이 푸코 자신이 68년 5월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깐 파리에 다녀가는 동안 소르본 대학에 들렀지만, 시위대의 행렬을 보고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블랑쇼의 물음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68년 5월과 가장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 철학자 중 한 명이 바로 푸코이기 때문이다.


  68년 5월의 반역은 정치 권력을 탈취하지 못했고 가시적인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도 못했지만, 프랑스철학사에서는 하나의 단절을 산출했다. 그것은 지배의 핵심은 사회경제적 지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질서에 순응하는 예속적 주체의 생산에 있다는 통찰이 낳은 단절이었다. 실제로 알튀세르는 68년 반역 직후 저 유명한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이라는 미완의 논문을 발표하여,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예속적 주체를 생산하는지 탐구했다. 또한 들뢰즈와 가타리는 1972년 <반오이디푸스>를 써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를 욕망하는 대중들의 욕망의 도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분석하려고 했다. 그리고 푸코는 <감시와 처벌>(1975)이라는 책을 써서 권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나의 첫 번째 책”이라고 부를 만큼 이 책에 대해 깊은 애정을 표현한 바 있다. 그만큼 이 책은 푸코의 사상적 여정에서 큰 의미를 지닌 책이며, 현대 프랑스철학사에서, 더 나아가 넓은 의미의 해방사상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선출되었을 때 푸코에게 마련된 자리는 “사유체계의 역사” 담당 교수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푸코는 <말과 사물>(1966) 및 <지식의 고고학>(1969)의 연장선상에서 사유체계의 역사를 탐구하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 이후 진행된 그의 강의는 애초의 계획과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형벌이론과 제도>(1971~72), <처벌 사회>(1972~73), <정신의학 권력>(1973~74), <비정상인들>(1974~75) 같은 강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권력의 문제로 탐구의 초점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러한 탐구의 결과가 집대성된 책이 <감시와 처벌>이었다.


  “감옥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감시와 처벌>은 일차적으로 근대적인 감옥 제도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탐구하는 역사책이다. 하지만 이것은 독특한 역사학을 보여주는 책이다. 푸코가 “계보학”이라고 부른 방법론에 입각해 있는 이 역사학은 “현재의 역사”를 탐구하는 역사학이다. 현재 우리 사회(곧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구조와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사회와 문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지적인 틀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분석하는 것이 “현재의 역사”인 것이다.


  단절의 사상가인 푸코에게 현대 유럽의 사회와 인간은 초역사적인 본질을 지닌 것이 아니며, 고대 그리스라는 먼 과거의 기원에서 연속적으로 계승되어 내려온 것도 아니다. 역사학의 통상적인 관점에 의하면 근대성(modernity), 근대 사회, 근대인이라 불리는 것이 탄생한 시점은 18세기 말, 곧 프랑스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을 통해 중세 질서가 무너지고 보편적인 인권과 시민권이 성립하게 된 시기다. 이 시기는 신분적 질서와 인격적인 예속의 체제가 무너지고, 자유와 평등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새로운 질서가 탄생한 시기다. 푸코의 “현재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가정을 문제 삼는다.


  푸코가 보기에 인간의 자유를 발명했다고 하는 계몽주의 시대는 사실 규율권력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예속 메커니즘을 수반한 시기였다. “부르주아지가 18세기를 통해 정치적 지배 계급이 된 과정은 명시적이고 명문화되고 형식적으로 평등한 법적 틀의 설정과 의회제 및 대의제의 형식을 띤 체제의 조직화에 의지한 것이다. 하지만 규율 장치의 발전과 일반화는 이러한 과정의 어두운 이면을 만들어 놓았다. 원칙적으로 평등주의적인 권리 체계를 보증했던 일반적인 법률 형태는 이러한 사소하고 일상적이며 물리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규율로 형성된 본질적으로 불평등하고 불균형적인 권력의 모든 체계에 의해 그 바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 현실적이고 신체적인 규율은 형식적이고 법률적인 자유의 기반을 마련했다. 인간의 자유를 발견한 “계몽주의 시대”는 또한 규율을 발명한 시대였다.”(푸코, <감시와 처벌>)


  더 나아가 규율권력 개념은 권력에 대한 통상적인 관점을 해체한다. 우리는 권력을 공적인 영역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곧 청와대나 의회, 행정부, 대법원 같은 곳이야말로 권력이 존재하는 곳이고, 권력 투쟁이 이루어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반면 푸코는 권력이 작동하는 실제 영역은 감옥과 병원, 학교, 군대, 공장과 같은 장소라고 주장한다. 이 영역이야말로 개인들을 개인들로서 제작하는 규율권력이 작동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규율은 복종되고 훈련된 신체, ‘순종하는’ 신체를 만들어낸다. 규율은 (효용이라는 경제적 관계에서 보았을 때는) 신체의 힘을 증대시키고 (복종이라는 정치적 관계에서 보았을 때는) 동일한 그 힘을 감소시킨다. 간단히 말하면 규율은 신체와 능력을 분리시킨다.”(<감시와 처벌>) 그렇다면 감옥의 역사에 대한 탐구는 사실은 근대적 개인을 생산한 규율권력의 전개과정에 대한 탐구인 셈이다.


  따라서 사회의 기원에 개인들 간의 계약을 위치시키는 사회계약론이 기각된다. 왜냐하면 개인은 자연상태에서부터 존재하는, 그리고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권력을 창출해내는 존재가 아니라, 규율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적인 역사유물론의 한계가 드러난다. 마르크스주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맞서 역사의 전개과정을 규정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토대라고 주장한다. 푸코가 보여준 것은 사회경제적 토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규율권력의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속적 주체 생산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개조하고 변혁할 것인가? 68년 5월의 반역에서 푸코가 발견해낸 것이 바로 이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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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이 2014-09-25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전 무슨 일이 있으신가 했습니다.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balmas 2014-09-25 14:51   좋아요 1 | URL
본문에 잘못된 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두번째 문단에 나오는 ˝모로코˝는 사실은 ˝튀니지˝가 맞습니다.

르네상스 창녀 2014-09-29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에는 혁명이다가 지금은 반역이군요. 다음에는 뭔가요? 역모!

그냥 68년 5월 사건이라고 하면 충분합니다.

르네상스 창녀 2014-09-29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68년 5월은 알제리 독립전쟁이나 쿠바 혁명 및 베트남 전쟁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도 놀랍게도 국내의 학자들은
최대한 그것을 배제하거나 희석화해서 말하더군요.

한국 역시 놀라워요.

르네상스 창녀 2014-09-29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민혁명이라는 말은 여성들은 배제하고 비유럽인들을 배제한 부르주아 혁명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을 희석화시키는 말이다.

아이티 혁명도 알고 당시의 남성적인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여성들이 모조리 처형된 걸 알면서도 이런 얘기를
무비판적으로 하는 걸 보면 이런 게 바로 유럽중심주의의 식민적 지배효과일 것이다.
 

14회차 하버마스에 관한 글을 싣는 김에, 다음 주에 실릴 15회차 글도 함께 올립니다.

 

15회는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에 관한 글입니다.

 

신문에 실릴 때는 다소 수정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신문사에서 잡은 제목은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비밀 ‘오이디푸스 구조’에 맞서라"입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신문에 실린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535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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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0년 (허구적인) 독일 출판사에서 익명으로 책이 한 권 출판되었다. 17~18세기 내내 유럽에서 불경한 무신론자의 책으로 악명을 떨치게 될 이 책 서문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제정치의 근본적인 신비, 그 지주와 버팀목은, 사람들을 기만의 상태 속에 묶어두고, 종교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공포를 은폐하여, 사람들이 마치 구원인 양 자기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 싸우게 만들고, 한 사람의 영예를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수치가 아니라 최고의 명예인 것처럼 간주하게 만드는 것이다.”(바루흐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그로부터 약 250년 뒤, 독일의 한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가는 당시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떠오른 파시즘의 비밀이 무엇인가 질문했다. 그가 보기에 파시즘 문제의 핵심은, 객관적으로는 노동자 계급에 속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파시즘을 지지하는 노동자 집단의 대중심리였다. 왜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면서 파시즘을 지지할까?


  그가 보기에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맹점을 잘 보여주는 문제였다. “파시즘의 형태로 나타난 정치적 반동이 대중들을 ‘몽롱하게’ 만들고 ‘타락’시키고 ‘최면’에 빠지게 했다는 설명 역시 비생산적이다. (...) 우리는 그러한 폭로가 수천 번 반복된다 할지라도 대중들에게 확신을 줄 수 없다는 것과 사회경제적 문제제기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교훈을 경험으로부터 얻는다. 대중들 속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대중들은 파시즘의 기능을 인식할 수도, 인식하려고도 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목표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노동자들은 깨달아야만 한다’ 는 식의 전형적인 교시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왜 노동자들은 깨닫지 못했는가? 왜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는가?”(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그리고 다시 이로부터 약 40년 뒤인 1972년, 프랑스의 한 철학자와 한 정신분석가가 공동으로 저술한 책이 출판되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두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사람들은 여러 세기 동안 착취와 굴종, 예속을 감내해 왔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해 착취와 굴종, 예속을 원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라이히가 파시즘을 설명하기 위해 대중들의 몰인식이나 미망에 의지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의 욕망을 해명할 수 있는 설명, 욕망의 관점에서 정식화된 설명을 요구했을 때, 그는 사상가로서 가장 심원한 경지에 도달한다. 대중은 전혀 순진한 얼뜨기들이 아니다. 어떤 지점, 어떤 일련의 조건들 아래에서 그들은 파시즘을 원했으며, 해명될 필요가 있는 것은 대중의 욕망의 이러한 도착이다.” (질 들뢰즈ㆍ펠릭스 가타리, <반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분열 분석>)


  수 세기에 걸쳐 여러 사상가들이 각자 제기한 이 동일한 질문은 1968년 파리를 뒤흔들었던 반역과 해방의 운동 이후 여러 프랑스 철학자들(가령 알튀세르, 들뢰즈ㆍ가타리, 푸코, 리오타르 등)에게도 중요한 철학적 화두, 어쩌면 화두 그 자체가 되었다. 이는 이 질문이 근대 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인 주체성의 원리를 문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근대성의 근본 원칙은 주체가 인식과 행동의 궁극적 근거라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합리적 인식에 기초하여 스스로의 활동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주체, 더 나아가 계몽과 해방의 원칙에 기초하여 불합리한 사회적 조건을 변혁시키는 주체라는 이상은 독일 관념론에서 루카치에 이르는 고전적인 주체철학에서 근대성의 근본 원칙으로 숭앙받았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의 열광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독일과 이탈리아를 휩쓴 파시즘과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노동자ㆍ농민 대중의 이름으로 자행된 스탈린주의적 독재는 유럽 좌파 지식인들에게 혁명적 주체의 가능성에 대해 깊이 회의하게 만들었다.


  해방적 주체의 자기지배라는 이 역설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후예들은 고전적 주체의 이상을 개조하고 변형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지만, 동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이론적 반(反)인간주의’라는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냈다. 이들이 보기에 주체는 자신에 선행하는 어떤 구조적 조건 속에서 구성되는 존재다. 그리고 이 구조적 메커니즘은 자신이 산출한 주체가 자기 자신을 자율적 존재로 상상하게 만들고, 현존하는 사회적 관계, 다시 말해 지배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간주하고, 그리하여 이 관계를 재생산하도록 만드는 것을 자신의 기능으로 삼는다.


  따라서 이들이 보기에 지배의 문제는 예속적 주체의 (재)생산 메커니즘의 문제이며, 고전적 주체철학의 맹목은 지배의 근원적 장소를 간과한 가운데 결과로서의 주체를 원인으로서의 주체로 착각했다는 점이다. 이는 흔히 말하듯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인 지배 또는 파시즘적인 지배의 중추를 이루는 예속적 주체화와 구별되는 새로운 주체화 양식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들뢰즈ㆍ가타리의 <반오이디푸스>의 의의는 지배구조의 근본 형식을 “미시 파시즘”으로 규정하고, 자본주의 내에서 이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으로서 오이디푸스 구조를 해명했다는 점이다. 들뢰즈ㆍ가타리에게 파시즘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미시 파시즘의 문제라면, 이는 히틀러의 나치즘은 역사적 과거로 지나갔지만, 이를 가능하게 했던 파시즘의 미시적 그물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이를 토대로 파시즘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믿는 것과는 달리 계급관계는 전(前)의식적 차원의 현상일 뿐, 무의식적 차원에서 사회적 관계의 양상들을 규정하는 것은 욕망의 투여방식이다. 따라서 무의식적 차원에서 지배의 문제를 해명하지 않고서는 욕망의 도착이나 해방적 주체의 자기배반의 이유를 밝힐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핵가족 제도에 기반을 둔 오이디푸스 구조에서 자본주의적 재생산 메커니즘의 비밀을 발견한다. 프로이트는 근친상간 금기를 인류에게 보편적인 금기로 보고, 이에 기초하여 인간의 무의식과 성욕의 근본구조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제시했다. 곧 어린아이는 엄마에 대한 성적 충동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법을 내면화함으로써 인간적 자아 또는 주체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ㆍ가타리는 보편적 현상으로서의 근친상간 금기와 자본주의적인 현상으로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전혀 상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후자는 핵가족이 사회의 유일한 재생산제도로 분리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구조이며, 이것의 기능은 초월적 권위의 상징인 아버지의 법 아래 욕망의 생산적 역량을 억압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유순한 주체를 형성하는 데 있다.


  따라서 <반오이디푸스>에서 이들의 노력은 초월적 권위의 이름에 따라 무의식을 조직하려는 자본주의의 편집증적 경향에 맞서 정신분열적인, 곧 다면적이고 해방적인 무의식의 분자적인 흐름을 강화하려는 데 맞추어져 있다. 이는 특히 오이디푸스 구조에 의해 복속된 주체들과는 상이한, 횡단적-분자적 집단들의 구성가능성에 대한 시사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반오이디푸스>는 한편으로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얻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욕망에 대한 낭만적 찬양’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욕망의 해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마르쿠제의 프랑스 식 버전이되, 훨씬 더 비합리주의적이고 괴팍한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오이디푸스>의 화두는 두 저자가 8년 뒤에 출간한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파시즘을 위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분자적이거나 미시정치적인 역량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중의 운동이기 때문이다.”(<천 개의 고원>) 어떻게 대중을 그 파시스트적 생성으로부터, 파시스트 되기로부터 분리시킬 것인가?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소수-되기”에서 찾았다. 이들이 말하는 소수란 기존의 거시적 사회관계 속에 존재하는 타자, 곧 피지배 계급이나 저항 집단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러한 타자의 타자, 곧 이 피지배 계급 내에서도 주변화되고 배제된 집단(여성, 이주 노동자, 소수 민족 등)이다. 따라서 문제는 실제로 존재하는 소수 집단을 지원하거나 옹호하는 것을 넘어, 이들을 타자의 타자로 만든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그것의 변혁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것이야말로 파시즘에서 해방될 수 있는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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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마음 2014-09-0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항상 받기만 해서 죄송한 마음으로 추석인사드립니다.
좋은 글들, 그리고 그 글들과 함께 주시는 깨우침 많이 감사드립니다.
해피 한가위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추석 연휴엔 좀 쉬시나요?~~~

balmas 2014-09-09 15:47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추석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지금 연구실에 나와 있답니다.^^;

궁금이 2014-09-2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많이 바쁘신가요?
정치적인 것의 시상사 업데이트가 안돼 무척 궁금하답니당~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면 정말로 좋은 소식?

balmas 2014-09-25 10:50   좋아요 0 | URL
예, 업데이트가 좀 늦었죠?

사실은 추석 연휴 한번 쉬고, 신문사 사정으로 또 한 주가 연기되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미셸 푸코 편이 나갈 예정입니다.^^

관심 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요즘 바쁘다 보니까 서재에 거의 들르지 못하고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연재도 제때제때 글을 올리지 못하는군요.

 

지난 번 회차에 실린 하버마스에 관한 글입니다.

 

아래 주소로 가시면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515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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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창녀 2014-09-2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버마스는 ˝나이브˝한 근대주의자일 뿐입니다.
 

지난 주말에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출간됐습니다.

 

예정보다 1주 정도 늦긴 했어도 무사히 출간되어 기쁩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널리 읽히길 기대해봅니다.

 

새로운 표지는 [햄릿]에서 모티프를 얻어서 도안한 것인데,

 

제 생각에는 아주 멋진 것 같습니다. :)

 

[마르크스의 유령들] 2판 [역자 후기]는 아래 페이퍼를 보시면 됩니다.

 

http://blog.aladin.co.kr/balmas/7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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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14-08-25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쭉 기다려온만큼 표지가 매우 멋집니다. 축하드립니다, 발마스님^^

balmas 2014-08-25 18:32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여우님. :)

너무 오랜만에 뵙네요. 제가 그동안 너무 소홀히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__)


2014-09-03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14-08-2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진짜 반갑습니다. 지난해 부터 출간 소식이 있어서 저 역시 오래 기다렸는데..수고하셨습니다.

balmas 2014-08-27 10: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드팀전님.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청루 2020-07-2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번역과 해설, 그리고 관련하여 집필하신 글들 덕분에 책을 읽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일독 후 찬찬히 다시 살펴보다가 한 가지 궁금증이 들어 여기에 물음을 남깁니다.

(저는 2017년 6월에 인쇄된 2판 2쇄를 보았는데요,) 21쪽 5번째 줄 ˝그것은 어느 날 유럽에 도착하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와 그로부터 세 줄 아래의 ˝신들림이 어느 날 도착하지도, 갑자기 나타나지도 않는 이유는˝이 의미상 상반되는 것 같습니다. 전후 맥락상 신들림이라는 것이 유럽의 실존 자체와 얽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어느 날 도착하지도 갑자기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후자의 내용이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신들림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도착하는 것‘이라는 전자, 즉 5번째 줄의 문장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나 하여 불어와 영어 원문을 찾아보니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Intempestive, elle n‘arrive pas, elle ne survient pas, un jour, à l‘Europe, comme si celle-ci, à tel moment de son histoire, en était venue à souffrir d‘un certain mal, à se laisser habiter en son dedans, c‘est-à-dire hanter par un hôte étranger.
Untimely, it does not come to, it does not happen to, it does not befall, one day, Europe, as if the latter, at a certain moment of its history, had begun to suffer from a certain evil, to let itself be inhabited in its inside, that is, haunted by a foreign guest.
저는 불어를 못합니다만 번역기를 통해 더듬더듬 살펴보면 번역서 21쪽 5번째 줄의 문장이 ˝그것은 어느 날 유럽에 도착하지도, 갑자기 나타나지도 않는다.˝ 정도의 의미가 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단순히 탈자로 인한 문제인 것인지, 혹시라도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인지 한 번 확인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balmas 2020-07-28 17:3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청루님. 댓글 감사합니다.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적하신 문단의 경우, 저는 청루님이 지적하신 바대로 번역하려고 했는데, 아마도 제 의도대로 읽히지가 않은 듯합니다. ˝그것은 어느날 유럽에 도착하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청루님은 아마도 ˝그것은 어느날 유럽에 도착하는 것이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는 의미로 읽으신 듯합니다. 그런데 제 의도는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은 어느날 유럽에 도착하는 것도,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라는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던 겁니다. 지적하신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니 그 문장이 그렇게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회가 된다면 그 문장을 좀 더 정확히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청루 2020-07-2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는 말씀하신 방식으로 다르게 이해했습니다. 빠르게 확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