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서울광장, 부끄러운 곳

오성훈
공간연구집단 연구원


밀려드는 차량의 매연과 소음은 지나가는 보행자를 답답하게 하고, 커다란 교통광장을 둘러싼 가구(블록)들은 칙칙한 지하도로만 연결되어 있던 곳이 분수와 잔디가 어우러지고, 지상의 횡단보도로 연결된 곳으로 바뀌었다면 누구나 환영할 것이다. 더구나 고궁과 산을 제외하고는 버젓한 녹지하나 없는 서울의 도심이라면 그 기꺼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도심의 차량교통속도와 같은 ‘수량’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난, 우리도 이런 것좀 해보자는, 환경의 ‘질’에 대한 고려가 그 바탕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창한 여름날 시원한 녹지와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바라보면서도 시원하기는커녕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왜일까. 우리네 마음가짐이 아직은 저런 고운 것을 즐거워하기엔 촌스럽기 때문일까?

서울시가 마련한 시청 앞 광장 홈페이지를 가보면, 광장에 대한 역사적인 기원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하면서 옛 그리스 시대의 ‘아고라’부터 시작하여 신성과 이성 등의 흐름이 광장이라는 공간에 면면히 담겨져 왔음을 간략하게 기술한다. 맞다. 광장은 저 들판 한복판에 자리잡은 휑뎅그레한 공간과는 다르다. 동일한 크기와 질감의 공간이라도 도시 한복판에 들어섬으로써 다른 효과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효과와 의미는 도시의 고유한 맥락 속에 존재한다. 시청 앞 광장의 홈페이지의 설명이 단순한 구색맞추기가 아니라면, 광장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시청 앞 광장에 담았을 게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광장과 공원

광장은 공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광장은 정치적인 논쟁을 벌이는 곳으로서,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으로서, 아니면 전제권력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로서 기능하였고, 광장이 위치한 도시의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 수준, 문화적 위상을 나타내는 재현적 공간이다. 광장의 속성은 사적이기보다는 공적인 것이고, 사색과 휴식보다는 논쟁과 협상에 걸맞는 곳인 것이다. 이에 반해 공원은 사적인 향유를 그 전제로 하는 공간이며, 사적 향유에 장애가 되는 것은 최대한 배제하게 된다. 그렇다. 그 이름이 광장이면 어떻고, 공원이면 또 어떤가. 광장이라고 이름 붙인 공원도 있을 법한데, 시청 앞의 공간은 광장으로 꾸밀지 공원으로 꾸밀지조차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다. 즉 애초의 명칭은 광장이었으나, 서울시 일꾼들의 머리에는 어느 새 공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과 경비를 들여 설계공모전까지 개최한 후 선정한 시청 앞 광장 설계안 ‘빛의 광장’안에 따르면 시청 앞 광장은 조명시설이 갖춰진 높이 15m의 기둥, 음악에 따라 물을 내뿜는 분수, 2300개의 액정장치(LCD)모니터가 설치된 바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설계는 기본적으로 많은 인구가 이용할 수 있고, 정보전달체계가 갖추어짐으로써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공적인 의사소통체계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광장’설계안은 곧 ‘공원’화된다. 10개월에 걸쳐 추진하던 원 설계안이 잔디광장으로 급작스레 바뀐 것이다. 이를 결정한 ‘시청 앞 광장 조성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서울시 측에서 5월에 열리는 ‘하이서울’ 축제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빈땅에 잔디라도 깔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빛의 광장’ 공사비가 103억에 달하고 잔디광장은 40억이면 조성할 수 있어 시기상조인 안을 선택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시기상조인 안을 당선작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것을 승인한 사람, 또 손바닥 뒤집듯 바꾼 사람은 누구인가? 시말서라도 써서 시민들 앞에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청 앞 광장 홈페이지에 가보면 서울시에서는 ‘2004년 5월 개최예정인 Hi Seoul Festival 행사 대비하여 4월까지 Open Space 형태의 광장을 조성하고, 당선작 작품의 시행은 일단 유보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103억이 드는 광장을 결국 조성할 계획이라면 무슨 잔치마당 하나 때문에 40억짜리 공사를 임시로 가설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거기에 10억원 정도로 추산되는 설계, 공사업체에 대한 위약금도 물어줄 판이라고 한다. 하이서울페스티발이라는 괴이한 이름의 잔치마당의 개최시기는 몇 십억을 들여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으로, 하늘에서 절대절명으로 점지라도 해준 것인가?

‘들어가지 마시오’

잔디광장 안은 결국 서울의 시청 앞 광장을 광장아닌 공원으로 만드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과연 그곳에 광장이 필요한지, 공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슬그머니 공원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잔디‘광장’은 지나치게 밟아서는 안되고 아름다운 상태로 보존해야 하므로, 거기에 따른 통제가 필요하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딱딱한 말, 또는 굳은 표정의 용역경비원들이 따라나온다. 잔디보호라는 합리적인 명분으로 통제가 개입되자, 그 통제는 ‘광장’이용의 허가를 서울시에서 가져가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이제 시청 앞 광장은 서울시장의 심기를 불편케 하는 모임은 가지기 어려워진 것이다. 의견수렴없는 비민주적 절차를 통해 실현된 광장설계안은 부적절한 통제의 증가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그 통제의 기준은 모호하다.

지금의 모습처럼 잔디가 깔리고, 물이 흩날리는 공간도 공간을 이용하는 이들의 역량에 따라 공적인 공간으로 전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공간의 물리적 배치 또한 일정한 의도, 또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니, 밟으면 죽게되는 잔디를 유동인구가 상당한 고밀도의 도심의 보행자 공간에 배치하는 것은 사실 목가적인 환상에 가깝다. 서울시는 집회 등으로 잔디가 손상될 경우, 그를 돈으로 물어내라고 조례를 제정하였다. 허가를 받을 경우에도 면적당 사용료를 내야 한다. 도시에서 누군가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선 많은 무리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돈만 내면 누구나 집회를 열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서울시는 정치적 집회는 원천적으로 금지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열린 음악회나 축구경기 응원에는 허용한 잔디밭을 6월항쟁 기념행사에는 제한했고,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의 문화제는 ‘문화제를 가장한 정치적 집회’라며 미신고집회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거기에 새마을운동 서울시회, 자유총연맹 서울시지부, 바르게살기운동 서울시협의회 등이 5, 6월 두달 내내 사용신청을 내 다른 시민단체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실제로 광장을 사용하는 일수는 적으면서도 공간을 미리미리 ‘확보’해놓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이러한 공간통제는 악법으로 거론되는 ‘집시법’보다도 더 강도가 높다고 한다.

역사 앞에 부끄러운

광장이란 이름의 공원은 싫다. 공원이면 공원이라고 해야 한다. 보수비 1억원씩 퍼붓는 잔디 걷어치우고, 차라리 적벽돌이라도 깔아달라. 서울시청 앞에서 여러 가지 집회도 하고, 시장님 듣기 불편한 소리도 하고, 시끌벅적 사람들이 이것저것 논쟁도 하고, 그런 와중에 서울시에서는 그런 말, 글을 귀담아 듣고, 더 좋은 정책도 내고 하는 것이 정말 건강한 모습 아닌가? 그런 소란스런 광장 하나 없는 서울시, 부끄럽지 않은가? 차량흐름 힘들여 걷어내어, 고작 시청 앞 잔디가꾸기에 정치집회 퇴출이라니. 아무리 푸르른 서울광장이라도, 역사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공간이다. ●
[월간 문화연대]

- 통권 52호(2004년 8월호) 기획연재 기사들 중에서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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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따우님,


[감시와 처벌] 번역본이 잘 이해가 안되던가요? 번역을 평가해달라고 하시는 걸 보니 ...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나남)도 제가 강의에서 두 차례 사용한 적이 있는데, 전반적으로는 무난한 번역입니다. 그런데 3부와 특히 4부에서는 상당히 오역이 있더군요.

아시다시피 [감시와 처벌]은 17세기에서 18세기 말-19세기 초(푸코가 제일 좋아하는, 또는 제일 자주 다루는 역사적 시기죠)에 이르는 형벌체계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책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내용이 당대의 역사적 문헌들(푸코 역사 서술, 특히 [감시와 처벌]의 역사서술의 특징 중 하나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대가들이나 유명한 저자들의 문헌들보다는 익명의 저자가 기술한 관공서의 문헌들이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문헌들을 참고문헌들로 활용한다는 점이죠. 이는 푸코의 고고학, 또는 오히려 계보학이 드러내려는 인식의 층위가 공식화된 담론이나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그 아래에 위치해 있는 영역, 다시 말해 과학적인 담론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소하고 비과학적이고 매우 이질적인 이야기들, 문헌들이기 때문이죠. 푸코는 이러한 영역의 담론이야말로 과학의 담론을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 조건들이지만, 동식적이거나 과학적인 담론에서는 배제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만큼 지식의 형성에서 권력이 작용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데 훨씬 적합하다고 보는 거죠)에 기초한, 역사적 변동과정을 기술하고 재구성하는 것들이죠. 이런 내용들이야 번거롭긴 해도―왜냐하면 백과사전이나 기타 참고자료들을 자주 참고해야 하니까―번역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감시와 처벌]의 1,2부, 또 3,4부에서도 역사적 상황에 대한 서술 부분들은 번역이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3, 4부의 경우에는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역사적 상황이나 변동과정을 한참 서술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 매우 일반적인 철학적 결론을 도출하는 부분들 말이죠. 이런 내용들이 3,4부에 많이 나오는 이유는, 3,4부가 다루는 시기가 18세기 말, 19세기 초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구요?

이 시기는 아시다시피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가 유럽 전역을 휩쓸던 시기이고, 대대적인 법적, 정치적, 행정적 개혁들이 일어났던 시기지요. 당연히 형벌제도나 형행제도에도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구요. 푸코 이전에 이러한 변화를 가리키던 일반적인 명칭이 있는데, 그건 인간화라는 것이죠. 형벌의 인간화, 행형제도의 인간화(또는 [광기의 역사]의 경우는 광인들의 인간화) 등등. 그리고 보통 이러한 인간화의 기초에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토대였던 [인권선언]이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까지 대부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던 평민, 예속자들이 [인권선언]을 통해 비로소 인간의 존엄성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은 것처럼, 죄수나 광인 같은 사회의 배제된 주변인들 역시 [인권선언]을 통해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권리, 곧 인권을 보장받게 되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감시와 처벌]이 정면으로 도전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화의 가설이죠. 형벌제도나 형행제도가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 급격한 단절을 보인 것도 아닐뿐더러, 그러한 변화의 양상이 구체제의 야만성에서 인권에 기초한 인간화로의 이행의 양상도 아니라는 것이죠. 푸코가 보기에 이러한 인간화의 가설은 사실은 부르주아의 법적 이데올로기(푸코가 이 말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내 기억으로는^^)에 기초하고 있고 또 거기에 사로잡혀 있는 데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이러한 법적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첫째,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회가 성립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는, 자유로운 의지와 이성적 능력을 갖춘 존재이고, 둘째, 그들은 자유롭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국가를 구성하며, 다양한 대의 제도들을 통해 국가의 운영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셋째, 모든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는, 국민들의 의사를 얼마간 대표하는 의회에서 공식적인 법률이 제정되고 이 법률에 기초하여 행정부서에서 각종의 제도적 절차들을 마련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푸코는 이러한 인간화의 가설, 그리고 법적 이데올로기는 첫째,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왜곡할뿐더러, 둘째, 예속자들, 특히 수인들이나 광인들, 불량배들 같은 주변적인 존재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속의 실제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듦으로써,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보고 있지요. 푸코가 보기에 법제도는 사회적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진정한 원인은 미시적인 지식/권력관계들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권력관계의 미시적인 상호작용이 어떻게 형벌체계와 형행제도를 변화시켜왔는지를 구체적인 역사적 분석을 통해 보여주려는 게 바로 [감시와 처벌]의 작업의 의미이지요.

이 작업을 통해 푸코가 밝혀낸 핵심적인 결과는 형벌제도와 형행제도의 변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그러한 변화를 일으킨 힘은 근대적인 규율권력이라는 것입니다. 규율권력의 특징은 억압하고 부정하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목표에 잘 따르고 권력의 명령을 잘 이행할 수 있는 개체들, 곧 주체들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요. 다시 말하면 규율권력은 이 권력이 작용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개체의 역량puissance―이 개념은 들뢰즈가 니체와 스피노자에 대한 연구에서 매우 강조하는 개념이지요. 따라서 [감시와 처벌] 푸코의 분석은 그가 들뢰즈의 작업을 어떻게 활용하고 변용하는지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을 개체 자신(의 권한)으로부터 분리시켜(마치 마르크스가 노동력의 상품화에 관해 말하듯이), 권력의 목적에 봉사하도록 만들지요. 이처럼 사람들을 각자의 역량으로부터 분리시켜 권력의 목적에 순응하게 만드는 권력의 기술이 바로 규율입니다.

푸코는 이를 또한 예속화assujetissement의 메커니즘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따라서 푸코가 보여주고 싶은 점은 이거죠.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인권선언]을 통해 사람들이 구체제의 야만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유화, 또는 인간화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사실은 새로운 종류의 지배-종속관계가 실현되고 구체화되는 과정, 곧 예속화의 전개과정이다. 부르주아의 법적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러한 예속화의 메커니즘을 인간화, 자유화라고 부름으로써 자신들의 지배의 실제적인 메커니즘을 은폐하고 있다.'

이런 일반적인 철학적 테제들이 바로 3부 뒷부분과 4부 이곳저곳에서 제시되고 있는데, 번역본에는 이런 내용들이 제시되는 부분들에서 오역이 자주 보입니다. 특히 4부가 좀더 오역이 많지요. 제가 지금 책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예시를 해볼 텐데, 막연한 기억에 의존해서 쓰다 보니까 정확히 어떤 오역이 있는지 말하기는 어렵네요. ^^;;;

그런데 이 책은 올해 초에 개역본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저도 개역본은 보질 못해서 이런 오역들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따우님은 아마 이전에 나온 판본을 보신 게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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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04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 ;;;

바람구두 2004-10-0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는 보기 좋습니다만, 제가 질문 드려도 잘 답해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가을산 2004-10-05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맘 좋으시니까 추천이 많이 들어오네요. ^^

비로그인 2004-10-05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르주아의 법적 이데올로기에 저도 추천!!

balmas 2004-10-0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추천들을 많이 해주셨군요. 따우님의 인기의 영향인가요?^^
바람구두님, ㅎㅎ 무슨 질문을 하실지 겁이 나는데요 ...

비로그인 2004-10-0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듣자하니 강원대 출판부에서 나온 책이 (박홍규)번역이 더 낫다고 해서 둘 다 가지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첫번째를 나남으로 읽어놔서... 이걸 별 불편없이 보았어요. 그리고 읽기엔 나남이, 나중에 읽어선지는 모르겠지만 이해는 박홍규씨 것이 더 편했던 기억이..나남 개역판이 나왔군요.
저두 추천했는데, 여기엔 이런 정보를 더 자주 달라는, 시간없으셔도 좀 적어주시라는 주문의 추천이었음을... 헤헤헤... _(__)_

biosculp 2004-10-0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남 번역본은 불문학자가 강원대 본은 법학자가 번역해서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나겠죠.
근데 강원대 본은 절판이 되서

balmas 2004-10-06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원대 출판부 판본은 책은 갖고 있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
그 판본 번역이 더 낫다고요? 그럼 언제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숨은아이 2004-10-0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언제 읽게 될진 모르지만 자료 삼아 퍼가서 간직하렵니다. ^^

balmas 2004-10-0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얼렁 읽을 기회를 얻게 되시기를 ...

모모 2004-10-1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홍규의 번역이 더 낫다고 들어서 그걸로 읽었었어요. 오생근의 번역은 읽지 못해서 무어라 비교하기가 힘들지만, 그렇게 아주 좋은 번역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되네요. 의미는 정확하게 옮겼는지 모르겠지만, 문장들이 거칠고 비문이 많았던 듯. 대신 역주가 꽤 많이 달려 있어서 도움은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을 듯.

balmas 2004-10-11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모모님은 박홍규 교수의 번역본을 읽으셨군요.
저도 기회가 되면 한번 비교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오생근 교수 번역본은 개역본으로 한번 읽어봐야지 ...).
 

그렇지 않아도 두번째 글에서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처음과 끝님이 그 내용을 댓글로 달아주셨군요.^^

처음과 끝님이 말한 것처럼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번역이 엉망이라고 하는데, 막상 어떤 독자들은 그 책을 재미있게 읽고 또 나름대로 감명을 얻는 경우가 있죠. 저의 예를 하나 들자면, 88년인가 89년인가 김현 선생이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푸코가 60년대에 문학에 관해 쓴 이런저런 글들을 묶고, 김현 선생이 긴 해설을 붙인 책이었죠. 그 책을 읽어본 분들은 대개 공감하실 텐데, 푸코의 문학에 관한 글들은, 그가 나중에 쓴 글이나 책들, 특히 [감시와 처벌] 같은 책과는 문체부터 확연히 다르고, 내용들도 상당히 사변적, 철학적이죠. (푸코의 첫번째 주저, 그의 국가박사학위 논문인 [광기의 역사](1961)에는 그의 문학론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사변적인 문체와 고고학 저술들에서 볼 수 있는 건조하고 담백한 문체가 모두 공존하고 있죠. 저는 그 점이 특히 매력적이더군요 ) 그래서 저는 당시에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 이 책에 아주 매료됐었죠.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푸코의 저작들을 이것저것 찾아 읽었고, 그래서 알튀세르와 푸코는 제가 제일 집중적이고 체계적으로 읽은 첫번째 프랑스 철학자들입니다(그 이전에 저의 철학적 영웅은 물론 루카치와 헤겔이었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가 그토록 매료되었던 푸코의 글들, 특히 바타이유에 관해 쓴 [위반에 대한 서언]이나 블랑쇼에 관한 글인 [한없는 언어] 그리고 몇몇 사변적인 글들은 어이없는 오역본들이더군요(^^;;;). 그 글들을 번역한 사람들은 김현 선생의 제자, 그러니까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소장 불문학도들이었는데, 푸코에 관해서는 그 책이 국내에 거의 처음으로 번역되는 책인데다가 매우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논의들로 가득 찬 글들을 소장 불문학도들이 제대로 소화하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본다면 무리이겠죠. 그래서 좀 허탈하고 어이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재작년에 강의를 하면서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을 수업교재 중 한 권으로 쓴 적이 있었는데, 기말보고서를 발표할 때 보니까, 학생들 중에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 번역본을 참조해서 보고서를 쓴 학생들이 몇 있더군요. 앞의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의 국역본들은 상당히 문제가 있는 번역본들이어서, 들뢰즈의 논의를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발표하는 학생들의 글을 보니까 상당히 잘쓴 글들이고, 들뢰즈의 논의도 어느 정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학점도 잘 줬습니다.(^^) 처음과 끝님의 경우와 유사한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번역본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감명을 받고 또 내용을 어느 정도 잘 파악하는 경우들이 분명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우선 번역본의 번역 상태를 평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잘된 것보다는 잘못된 것들에 좀더 치중하게 되고, 특히 철학책의 번역을 검토할 때는 이 책이 원본에 나와 있는 저자의 논의, 그의 논리적 추론과정을 제대로 전달해주고 있는지, 저자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제대로 번역해서 제시해주고 있는지 등을 따지게 됩니다. 그런데 원본을 전혀 참고하지 않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번역된 한글 문장이 전달해주는 의미들을 쫒게 되죠. 이 경우 내용이 잘 이해되다가 어느 순간 잘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그러면 독자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가서, 다음 내용을 읽게 됩니다. 다행히 그 다음 문장이나 문단들은 내용이 잘  이해되면 독자는 앞의 내용과 연결해서 계속 책을 읽게 되죠. 이처럼 독자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나 문단, 내용들은 모르는 대로 그냥 넘어가고 이해가 되는 것들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재구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주 형편없는 번역본이 아닌 다음에야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번역본이라 하더라도, 그 책을 읽은 독자는 나름대로 책의 내용을 소화하고 거기에 감명을 받거나 실망하거나 자극을 받거나 혐오를 하게 되죠.

더욱이 형편없는 번역본이라 하더라도 모든 문장이 오역인 번역본은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어본 최악의 번역본 중에는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고려원)이라는 책과 라비노우/드레퓌스의 [미셸 푸코](나남), 또는 존 레웰린의 [데리다의 해체주의](문학과 지성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절판이 되었지만 이 책들은 모든 문장이 오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말 지독한 오역 문장들로 가득차 있어서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그렇게 고역일 수가 없었습니다(물론 모르고 읽었을 때는 책이 난해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 -_-;;;). 이런 정도의 오역본이 아닌 다음에야, 번역에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번역된 문장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러면 독자들은 이처럼 이해되는 문장들을 중심으로 어떻게든 책의 내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게 되지요.

따라서 번역본, 특히 철학책의 번역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논증과 의미전달의 충실성을 염두에 두고 평가를 하는데, 독자들은 이를테면 번역본을 아포리즘과 같은 식으로 읽게 됩니다. 이 문장은 멋있군, 이 문장은 이게 무슨 소리야, 전혀 모르겠는데(문제는 나에게 있겠지만 ... ;;;) 이건 말도 안되는 문장인데, 반어법인가? 어 그래도 이 문장은 좋군, 말하자면 이런 식이죠. (가끔 알라딘 마이 리뷰에 보면 형편없는 번역본인데도 크게 감명을 받았다는 식의 서평이 올라오곤 합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고 쓴 서평일 수도 있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 독자는 형편없는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읽고 실제로 무언가 의미있는, 감동적인 것을 찾아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퍼즐맞추기에 비유하자면, 몇 개의 그림들이 빠진 상태에서 또는 잘못 맞춰진 상태에서 자신이 맞춰놓은 것만 가지고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리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의미 있는 내용들을 정리하고 이끌어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번역본을 평가하는 사람으로서는 최선의 상태를 염두에 두고 그 기준에 맞춰서 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보게 되지만, 독자들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어떤 의미있는 내용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하지요. 그리고 사실 일반 독자들로서야 그 책을 완벽하게, 최선의 상태로 이해해야 할 의무도, 이유도 없는 거지요. 자기가 원하는 내용을 찾고, 또 즐길 수 있으면, 기쁘게 읽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죠. 하지만 연구자나 서평자로서는 독자들과 달리 그 책을 최대한 정확히, 최대한 완벽하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죠. 또 사실 그것이 바로 연구자나 서평자의 존재 이유 자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번역본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는 그 평가대로 참조하시되, 자신이 그 책을 읽고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찾아냈다, 재미있게 읽었다 생각하신다면 그걸로 만족하시면 될 듯합니다. 불만족이시라구요??? 그럼 이제 연구자의 길로, 고생문으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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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10-0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포리즘'으로 읽는다..... 제가 이렇게 읽는 것 같아 불만이었는데....
저만 그런 것이 아닌가보네요. (다행이다! ^^ )

balmas 2004-10-0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따우님,
얼렁 읽고 수업들어가셔야죠 ...
ㅎㅎ 가을산님,
그건 거의 전적으로 번역자들 책임이죠. 거의 모든 프랑스 철학자들을 아포리즘 작가로 만드는 것 ...

릴케 현상 2004-10-0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가 되는 것들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재구성' 하는 독서 패턴을 정확히 지적하시니^^

balmas 2004-10-04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많이 경험해봤거든요.

딸기 2004-10-0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엉엉...
민음사 '앙띠 오이디푸스' 샀는데... ㅠ.ㅠ

balmas 2004-10-0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딸기님,
아직도 그 책을 팔던가요 ...
그 책을 무리해서 읽으시면 철학에 대한 혐오와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공포감이
한층 더 강화되니까, 심신의 건강을 위해 아깝더라도 그냥 장식용으로 놓아두심이 ...
 

가을산님,

지난 번에 [시선의 권리] 마이리뷰에 댓글 달아놓으신 걸 봤는데, 이렇게 늦게 답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사실은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세하게 답변을 드리려고 했는데, 여건이 허락치 않아서 그냥 간단하게 몇 마디로 답변을 드릴까 합니다.

그동안 번역의 문제를 지적하는 몇 개의 서평을 썼지만, 이런 류의 서평을 쓸 때마다 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이런 류의 서평이 혹시 진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독자들의 의욕을 꺾는 게 아닐까 하는 점이지요. 사실 원서를 직접 접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독자들로서는 데리다 번역이 형편없다더라, 들뢰즈의 어떤 책도 번역이 엉망이라더라, 지젝도 그렇더라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책만이 아니라 다른 책들까지도, 이 책의 번역이 엉망인데 내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읽은 게, 또는 읽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점점 이런 류의 책들을 읽을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겠죠.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든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졸속 기획과 번역·출판을 일삼는 출판사와 역자들에게 돌아가야 하겠지만, 아직 우리 지식계에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을 적절하게 가려서 평가하는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더 나아가 대중적인 수요에 비해 이를 감당해낼 만한 지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쉽지만, 당분간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불가피하게 반복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서두가 좀 길어졌는데, 가을산님의 질문에 대해서는 우선 두 가지 일반적인 조언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가을산님이 질문하신 저자들 중에서 번역이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사람은 데리다와 들뢰즈 정도라는 점입니다. 가령 들뢰즈 같은 경우는 {안티 오이디푸스} 최명관 옮김(민음사) 같은 책은 번역에 상당히 문제가 많습니다. 역자는 들뢰즈 철학을 거의 모르는, 원래 데카르트 철학을 공부한 분인데, 당시에는 연구자가 드물다 보니까 어떻게 이 책의 번역을 맡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은 품절되었고, 제가 아는 후배({천 개의 고원}의 역자이기도 하지요)가 지금 번역 중에 있는데, 역자의 능력으로 볼 때 훨씬 믿을 만한 번역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니체-철학의 주사위} 신순범 옮김(인간사랑)이나 {니체와 철학} 이경신 옮김(민음사) 같은 책들(이 두 권은 모두 Nietzsche et la philosophie(1962)라는 들뢰즈 책의 번역본인데, 앞의 경우는 영역본을 중역한 것이고 후자는 불어본을 번역한 것입니다)은 {안티 오이디푸스}보다는 좀 낫지만 그래도 번역에 문제가 있는 책들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니체와 철학}은 니체 철학에 관한 매우 탁월한 연구서일 뿐만 아니라 들뢰즈 철학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서이기도 합니다. 문체가 매우 탁월할 뿐만 아니라 아주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고 치밀한 논의가 일품이지요. 하지만 두 권의 번역본은 모두 들뢰즈의 문체나 논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서 읽다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 아쉬운 일이지요. 

그리고 저는 번역본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로쟈님의 마이페이퍼를 보니까 {비평과 진단} 김현수 옮김(인간사랑)이라는 책(들뢰즈 생전에 나온 마지막 저서인데, 여러 개의 논문들을 모은 논문모음집입니다)도 번역에 좀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의미의 논리} 이정우 옮김(민음사)의 경우도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하구요. 그리고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권순모·이진경 옮김(인간사랑) 역시 번역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국내에 번역된 들뢰즈의 저서들 중 태반이 번역에 문제가 있는 셈입니다. 반면 {차이와 반복} 같이 번역이 잘 된 책은 너무 어려워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사실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고, {천 개의 고원} 같은 경우는 번역은 괜찮은 편인데 다루는 주제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나 {프루스트와 기호들}, {카프카} 같은 책들은 좀 특수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또 선뜻 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들뢰즈의 {푸코}는 푸코에 관한 제일 좋은 연구서 중 하나이고 후기 들뢰즈의 문제의식의 일단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책이기는 한데, 제가 읽어본 번역본은 이전에 새길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뿐이고 얼마 전에 동문선(!!)에서 새로 나온 판본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새길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들뢰즈의 푸코})은 앞부분과 뒷부분을 둘이 나누어서 번역했는데, 번역의 질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권영숙 씨가 한 부분의 번역이 훨씬 좋습니다. 동문선에서 나온 판본은 출판사는 미덥지 않지만 역자는 신뢰할 만한 사람인데, 제가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콕 집어서 이걸 보시는 게 좋다고 할 만한 책이 없군요, 이런 ... -_-;;;

하여튼 번역의 질을 놓고 본다면, 이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들뢰즈에 입문하기에 괜찮은 책은 마이클 하트의 {들뢰즈 사상의 진화}라는 책(이전에 갈무리에서 나온 {들뢰즈의 철학사상}이란 책의 수정·증보판입니다)입니다. 이전에 번역된 {들뢰즈의 철학사상}은 들뢰즈의 베르그송, 니체,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를 중심으로 들뢰즈의 사상을 해설한 책인데, 새로 책을 내면서 들뢰즈의 사회정치사상을 추가해놓았더군요. 하트는 아시다시피 네그리와 더불어 {제국}을 공저한 사람으로, 출중한 이론적 능력을 지닌 젊은 이론가인데, 이 책도 들뢰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또 얼마 전에 동문선(!!!)에서 알베르트 괄란디라는 프랑스의 소장 철학자가 쓴 {들뢰즈}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분량은 적지만, 매우 체계적이고 요령 있게 들뢰즈의 철학사상을 설명해놓은 좋은 책입니다. 번역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들뢰즈의 철학을 소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데, 글쎄요, 저도 아직 번역본을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번역본을 사기가 좀 겁납니다. ;;;

2편은 다음에 ... (죄송. 제 노트북이 고장나서 당분간 인터넷을 오래 쓰기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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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0-0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욕이 꺾이는 건 사실인데,
어렵지만 잘 읽었다고 생각이 되는 책이 '번역이 엉망이었다'는 말을 들으면 매우 난감해지죠.
아니, 분명히 제대로 읽었는데, 엉망이란 말야? 그럼 이럴 때는 어쩌면 좋죠?
이미 번역된 엉터리 글에 중독된 건가요?
그리고 그런 책으로 리포트를 쓰고 또 좋은 평가까지 받았다면, 그 평가내리는 분도 번역이 잘못된 책을 읽고 잘못 평가...?
뭐, 그렇다면 이놈의 번역된 책들을 읽고는 공부하는 게 불가능?
어, 그러면 외국어를 제대로 하는 게 없으면 공부는 하지 말라는 말씀?
...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죠.
어떻게 된 건가요? 이런 사태는.
갸우뚱.

가을산 2004-10-0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balmas님 고맙습니다!
적어도 조심해야 할 번역본, 조심해서 골라야 할 저자는 알게 되었네요.
영어책인 경우는 갑갑하면 원서를 사서 어찌어찌 읽어볼텐데,
불어는 완전 까막눈이라 번역서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그냥 포기하게 되더라구요.
정말 고맙구요, 언젠가 있을 2편도 기대하겠습니다. (한참 후라도 괜찮습니다.)

starrysky 2004-10-04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balmas님. ^^
괜찮으시다면 이 1편과 위의 2편을 제 hidden category로 퍼가고 싶은데, 허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almas 2004-10-0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starry님 뭘 새삼스럽게 그런 말씀을 ...
hidden category라고 하시니까 왠지 영광스러운 기분.^^;;

starrysky 2004-10-0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락 감사합니다. 고이고이 접어서 잘 들고가, 제 비밀 목록 안에 잘 펼쳐놓겠습니다. ^^
 

리뷰 하나 없는 허접한 서재에서 왠 이벤트냐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뷰? 신경 별로 안 쓴다. 그게 무슨 밀린 숙제도 아니고, 부러 스트레스 만들 필요 없다.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려 리뷰를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리뷰가 없다.

현재까지 총 방문자 411명, 서재지수 495점. 왠 이벤트?

그게 뭐 대수냐. 텅 비고 담담한 이 느낌이 그저 좋을 뿐이다.

즐찾하는 서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곳.

서재지기들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어서 매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상을 받아둔 기분이다.

하야 나날이 심심함을 조금씩 덜고 있는 중.

볼품 없고, 무능력한 이 몸을 위해(?) 매일 매일 밥상을 차려준 아낙들을 위해 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 아니 어제 아침부터 들었다.

상품은 음반을 주고 싶었으니, 별 문제 없을테고...어떤 문제를 낼까 고심하던 중....

담임선생님 몰래 무슨 음모를 꾸미는 초등학교 개구쟁이 녀석들의 씨익 하는 웃음 같은 것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자, 문제 나갑니다.

 

문제 1.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보면 등록번호라는 게 있다. 바코드 아래 있는 그 번호 말이다. 아는 사람은 물론 알겠지만, 분실을 막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모든 도서의 특정한 페이지에 그 등록번호를 따로 찍어둔다. 물론 그것은 거의 분실을 막는 방편이 되지 못 한다. 한데, 그 등록번호를 찍는 페이지는 각 도서관마다 다르다. 여기서 문제. nowave가 자주 애용하는 남산도서관의 등록번호 찍는 페이지는 과연 몇 페이지일까?

ㄱ. 47페이지  ㄴ. 57페이지  ㄷ. 67페이지 ㄹ. 37페이지

 

문제 2.

nowave의 주민등록상 현재 나이는 몇 살일까?(몽상자님은 이 문제에서 제외됩니다. ^^)

ㄱ. 24살 ㄴ. 25살 ㄷ. 29살 ㄹ. 30살

 

문제 3.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 중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문제 2.에서 제외된 몽상자님 만을 위한 문제입니다.)

ㄱ. 박상륭  ㄴ. 정영문  ㄷ. 괴테 ㄹ. 아도르노 ㅁ. 루카치

 

문제 4.

다음 중 가장 자신 있는 문제를 하나 골라 기술하시오.(참고로 이 문제는 김유동 교수의 [독일문화의 이해] 라는 2학년 대상의 2000년 1학기 기말고사 문제입니다. ㅋㅋ)

ㄱ. 도시와 농촌의 본질적인 차이를 설명한 다음 고대, 중세, 현대 도시의 특징을 비교하시오.
ㄴ. 스핑크스의 상징을 중심으로 고대 오리엔트 문화와 고대 그리스 문화의 차이를 설명하시오,
ㄷ. 모더니티의 형성 과정에서 종교개혁이 갖는 의의를 음미하시오.
ㄹ. 베르너 헤어초크의 [아기레, 신의 분노]와 빔 벤더스의 [도시의 엘리스]를 토대로 한 모더니티의 관념을 음미하시오.
ㅁ. 모더니티의 문제점,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유럽 내에서 차지했던 독일의 위치, 독일 통일과정을 고려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추적해보시오.
ㅂ. 세계화는 왜 재앙이 될 수 있는지 음미하시오.
ㅅ. 제임슨의 아도르노 수용이 갖는 의의와 문제점을 음미하시오.

 

시간이 좀 걸릴 거라 생각되므로 기한은 일요일 자정까지로 하고, 많은 참여 바랍니다.

 

두 분께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채점 기준은 객관식은 1점, 주관식은 5점 만점 입니다. 주관식 채점 기준은 전문성, 독창성 상관 없이 채점 당시 제 기분에 따른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참, 상품은 기본적으로 ARCO 라이센스 음반입니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경우 제가 가진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시다면 다른 상품을 언급해주세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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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02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가 상당히 난해합니다. 자신있는 분들은 응모하세요 ...

비로그인 2004-10-03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지금 막 [명동백작]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이제 이중섭의 삶이 조명된다니, 내일은 정말 재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문제가 좀 어렵죠? ㅋㅋ 하루 종일 반응이 궁금했는데...역시 문제 4. 때문이겠죠? 실은 저도 좀 놀랬습니다. 물론 강의를 수강하고 시험을 보면 그래도 좀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난감하죠. 다만 제가 이 문제를 낸 것은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그냥 궁금한 게 아니라 너무도 너무도 궁금해서...히힛.
해서 발마스님의 강력한 반성촉구에 못이기는 척 하고 대체 문제를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비로그인 2004-10-03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들의 웹서핑 실력을 테스트 해보겠습니다.

수정된 문제 4.
우리나라 인디 록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중성적 보컬을 자랑하는 남상아를 아시는지. 뭐 모르셔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간단히 설명드리면 시인, 문화평론가, 기타리스트 등등 다양한 직함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성기완과 전 삐삐밴드의 베이시스트 박현준, 그리고 허클베리핀에서 탈퇴한 카리쓰마 만땅인 남상아와 출판등록 하지 않은 스플릿 시집을 최근 세 번째로 발표한 드러머 김상우가 만든 밴드죠. 자 진짜 문제 나갑니다. 추측컨대 아마도 이들 네 명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밴드가 소닉 유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상아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뮤지션과 추천하는 음반은 무엇일까요?(참고 사이트는 3bf.co.kr입니다. 반응을 보고 이 역시 어려운 것 같으면, 초강력 힌트도 준비되어 있으니 너무 염려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문제의 배점은 3점입니다. 혹시 수정되기 전의 문제 4.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 있을지 모르니, 그 문제에 대한 답을 보내주신 분들에겐 가산점이 부여됨을 밝혀 드립니다. ^^ 그럼, 여러분 홧팅!!

비로그인 2004-10-03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상아. 암울한 카리스마가 배어있는 목소리가 좋아서 허클의 팬이 되었는데, 그뒤로 결별하고 3호선으로 옮기더군요. 목소리가 '명랑'해진 이후 안듣게 되었어요. 하기야 속에서 켜켜이 쌓여 폭발할 것 같이 내지르는 소리는 특정한 감정상태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들지요. 그런데 남상아는 그런 거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같더군요. 어쩌다가 그들(은 기억도 나지 않지않겠지만-허클과 삐삐밴드의 멤버들과 성기완)과 술자리를 했을 때, 아마도 해체와 결성의 기로에 있었는지 분위기가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던 것 같았죠. 허클은 이기용과 남상아가 맞서있어 보였고, 박현준은 시종일관 입을 삐뚜름하게 웃어보이기만 했으며, 이들은 성기완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죠.
흠... 저야, 허클의 이기용에게는 미안하지만 남상아의 목소리에 빠져 있었고-아직도 허클의 그 판은 저의 애장음반입니다- H2O부터 삐삐밴드, 삐삐롱스타킹, 원더버드, 3호선에 이르기까지 박현준의 이상한 매력에 계속 끌렸는데, 성기완의 난잡한 실험음취향이 뭣이 매력적일까? 이들이 이해가 안됐죠.
나는 안녕하세요, 딸기가 좋아, 옛날사람을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불렀던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론 반가운 문제인데, 노웨이브님. 취향과 개인사 위주로 문제가 너무 불친절해요. ^^
불친절이 목적이시라면 충분히 달성하셨습니다~

비로그인 2004-10-0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친절, 제 한계이자 특기이자 음음...속 좁은 인간이라...
근데, 제가 낸 문제들 중 3번 까지는 찍기로 장난 삼아 별 생각 없이 낸 거였고, 수정된 문제 4.는 님 말씀처럼 제 취향이랄 수 있죠. 변명을 하자면, 급하게 떠오르는 게 없어서...
역시 nowave, 너의 지저분함은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군!

비로그인 2004-10-0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참, 님의 음악 지식도 장난 아닙니다, 그려! 저는 한참이나 아래에서 밍기적 대고 있는 것 같군요, 헤헤.
그렇군요. 처음과끝님은 삐삐밴드를 좋아했군요. 저는 그때 당시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는데,
너바나의 음악을 우리나라에서도 하는구나 해서 오히려 허크와 코코어를 좋아했죠.
남상아가 허크에서 나가자 허크는 뭐랄까 김이 확 빠진 느낌이어서 그 이후엔 별로라고 생각해요. 코코어도 2집까진 그래도 좋아했는데, 서서히 바닥을 드러낸 것 같아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님이 하시 말씀 중(태클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로드무비님 정말 삐친 거 아니죠? 그렇죠? ㅜ.ㅜ) 남상아가 3호선을 만들면서 '명랑'해지셨다고 하셨는데..글쎄요, 제 생각에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님이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건 순전히 성기완의 명랑함(올해 봄 3집 발매 공연을 dgbd에서 봤는데, 성기완의 무대 매너는 초절정 죽음이더군요)이 남상아의 보컬을 통해 혹은 밴드 형태로 표현된 것 뿐이 아닐까요. 이들의 앨범을 모두 사 모으며 제가 주시하고 있었던 건 과연 각각의 곡을 누가 작곡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cd 속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3집까지의 기본적인 앨범 구성 형태는 각 앨범 초반에는 약간의 밝은(?) 분위기에서 후반으로 갈 수록 어둡고 무겁고 축 가라앉은 분위기죠. 그런 곡들 거의가 남상아 작곡입니다. 그 절정에 있는 곡이 이번 3집의 <끝>이 아닐까요? 길어졌네요. ^^

비로그인 2004-10-0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지식이랄 것이 없구요, 그냥 취향따라 듣는 정돕니다. 남상아가 명랑해졌다는 건... 음, 별 게 아니라 허클에서 나온 후 아주 목소리가 바뀌는데, 저는 이 여자가 연애를 하는건가, 왜 이러나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김상우와 사귀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어요. 지금까지 사귀는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남상아 목소리를 딱 두 번 들었지요. 저는 영혼 저 밑바닥에서 속을 긁어올리는 듯한 소리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남상아는 이제 안그렇죠. 지금은 어떨런지 모르지만, 하여튼 남상아의 허클시절 그 노래부르던 분위기, 그 목소리의 독특함. 그런 것은 매우 인상적이죠. 이기용도 만만치 않지만 남상아의 카리스마를 휘어잡지는 못했죠. 그때는 사진을 독학할 때라 밴드하는 사람들-주로 인디, 영화하는 사람들-주로 아마추어 스텝들, 그림그리는 사람들-실험작하는 젊은 화가들, 댄스하는 사람들-고전무용보다는 주로 제3세계음악이나 춤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라 술을 마셔도 아주 기가막힌 자리가 많았죠. 그런 거 있잖아요. 한없이 타고오르는 열정의 분위기. 한쪽에서 노래를 부르면 춤꾼이 분위기를 못이겨 춤을 추고, 악기를 다루는 자, 흥겨워 열에 오른 연주를 하고...한편에서 다큐나 인디영화틀어놓고 밤새도록 보고... 말그대로 아마츄어들의 축제였죠. 제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는거죠. 이제 지나가버린.
님이 올려다놓은 몇 곡의 곡은 그런 과거를 추억하게 한담말시...


비로그인 2004-10-0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드무비님과의 삐침은 그만 신경쓰시길.
둘만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에요. ㅋㄷㅋㄷ

로드무비 2004-10-0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죄송해요.
두 분이 왜 이러실까요?
(저는 너무 재밌게 두 분 얘길 들었습니다만 ㅎㅎ)
처음과끝님의 한 자락을 엉뚱한 곳에서 보게 되는군요.흐뭇^^

balmas 2004-10-04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남의 서재에서 이게 뭡니까???
두 분이 눈이(아니, 귀가^^) 맞으셔가지고 ... ㅋㅋㅋ

비로그인 2004-10-0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죄송해요. 이런... 노웨이브서재님 글에다 쓴다는 걸 클릭을 잘못했나봐요... 헤... 죄송.

비로그인 2004-10-04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읔... 저도 죄송..저와 취미가 비슷한 것 같은 분을 만나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그냥 남의 집(너무 정 떨어지는 표현?)에서 수다를 떨었네요. 처음과끝님 우리 눈이, 아니 귀가 맞은 거 맞죠?
아니라구요? 네...홀홀...총총..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