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ㅎㅎ 따우님,
[감시와 처벌] 번역본이 잘 이해가 안되던가요? 번역을 평가해달라고 하시는 걸 보니 ...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나남)도 제가 강의에서 두 차례 사용한 적이 있는데, 전반적으로는 무난한 번역입니다. 그런데 3부와 특히 4부에서는 상당히 오역이 있더군요.
아시다시피 [감시와 처벌]은 17세기에서 18세기 말-19세기 초(푸코가 제일 좋아하는, 또는 제일 자주 다루는 역사적 시기죠)에 이르는 형벌체계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책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내용이 당대의 역사적 문헌들(푸코 역사 서술, 특히 [감시와 처벌]의 역사서술의 특징 중 하나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대가들이나 유명한 저자들의 문헌들보다는 익명의 저자가 기술한 관공서의 문헌들이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문헌들을 참고문헌들로 활용한다는 점이죠. 이는 푸코의 고고학, 또는 오히려 계보학이 드러내려는 인식의 층위가 공식화된 담론이나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그 아래에 위치해 있는 영역, 다시 말해 과학적인 담론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소하고 비과학적이고 매우 이질적인 이야기들, 문헌들이기 때문이죠. 푸코는 이러한 영역의 담론이야말로 과학의 담론을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 조건들이지만, 동식적이거나 과학적인 담론에서는 배제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만큼 지식의 형성에서 권력이 작용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데 훨씬 적합하다고 보는 거죠)에 기초한, 역사적 변동과정을 기술하고 재구성하는 것들이죠. 이런 내용들이야 번거롭긴 해도―왜냐하면 백과사전이나 기타 참고자료들을 자주 참고해야 하니까―번역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감시와 처벌]의 1,2부, 또 3,4부에서도 역사적 상황에 대한 서술 부분들은 번역이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3, 4부의 경우에는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역사적 상황이나 변동과정을 한참 서술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 매우 일반적인 철학적 결론을 도출하는 부분들 말이죠. 이런 내용들이 3,4부에 많이 나오는 이유는, 3,4부가 다루는 시기가 18세기 말, 19세기 초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구요?
이 시기는 아시다시피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가 유럽 전역을 휩쓸던 시기이고, 대대적인 법적, 정치적, 행정적 개혁들이 일어났던 시기지요. 당연히 형벌제도나 형행제도에도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구요. 푸코 이전에 이러한 변화를 가리키던 일반적인 명칭이 있는데, 그건 인간화라는 것이죠. 형벌의 인간화, 행형제도의 인간화(또는 [광기의 역사]의 경우는 광인들의 인간화) 등등. 그리고 보통 이러한 인간화의 기초에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토대였던 [인권선언]이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까지 대부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던 평민, 예속자들이 [인권선언]을 통해 비로소 인간의 존엄성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은 것처럼, 죄수나 광인 같은 사회의 배제된 주변인들 역시 [인권선언]을 통해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권리, 곧 인권을 보장받게 되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감시와 처벌]이 정면으로 도전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화의 가설이죠. 형벌제도나 형행제도가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 급격한 단절을 보인 것도 아닐뿐더러, 그러한 변화의 양상이 구체제의 야만성에서 인권에 기초한 인간화로의 이행의 양상도 아니라는 것이죠. 푸코가 보기에 이러한 인간화의 가설은 사실은 부르주아의 법적 이데올로기(푸코가 이 말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내 기억으로는^^)에 기초하고 있고 또 거기에 사로잡혀 있는 데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이러한 법적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첫째,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회가 성립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는, 자유로운 의지와 이성적 능력을 갖춘 존재이고, 둘째, 그들은 자유롭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국가를 구성하며, 다양한 대의 제도들을 통해 국가의 운영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셋째, 모든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는, 국민들의 의사를 얼마간 대표하는 의회에서 공식적인 법률이 제정되고 이 법률에 기초하여 행정부서에서 각종의 제도적 절차들을 마련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푸코는 이러한 인간화의 가설, 그리고 법적 이데올로기는 첫째,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왜곡할뿐더러, 둘째, 예속자들, 특히 수인들이나 광인들, 불량배들 같은 주변적인 존재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속의 실제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듦으로써,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보고 있지요. 푸코가 보기에 법제도는 사회적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진정한 원인은 미시적인 지식/권력관계들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권력관계의 미시적인 상호작용이 어떻게 형벌체계와 형행제도를 변화시켜왔는지를 구체적인 역사적 분석을 통해 보여주려는 게 바로 [감시와 처벌]의 작업의 의미이지요.
이 작업을 통해 푸코가 밝혀낸 핵심적인 결과는 형벌제도와 형행제도의 변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그러한 변화를 일으킨 힘은 근대적인 규율권력이라는 것입니다. 규율권력의 특징은 억압하고 부정하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목표에 잘 따르고 권력의 명령을 잘 이행할 수 있는 개체들, 곧 주체들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요. 다시 말하면 규율권력은 이 권력이 작용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개체의 역량puissance―이 개념은 들뢰즈가 니체와 스피노자에 대한 연구에서 매우 강조하는 개념이지요. 따라서 [감시와 처벌] 푸코의 분석은 그가 들뢰즈의 작업을 어떻게 활용하고 변용하는지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을 개체 자신(의 권한)으로부터 분리시켜(마치 마르크스가 노동력의 상품화에 관해 말하듯이), 권력의 목적에 봉사하도록 만들지요. 이처럼 사람들을 각자의 역량으로부터 분리시켜 권력의 목적에 순응하게 만드는 권력의 기술이 바로 규율입니다.
푸코는 이를 또한 예속화assujetissement의 메커니즘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따라서 푸코가 보여주고 싶은 점은 이거죠.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인권선언]을 통해 사람들이 구체제의 야만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유화, 또는 인간화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사실은 새로운 종류의 지배-종속관계가 실현되고 구체화되는 과정, 곧 예속화의 전개과정이다. 부르주아의 법적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러한 예속화의 메커니즘을 인간화, 자유화라고 부름으로써 자신들의 지배의 실제적인 메커니즘을 은폐하고 있다.'
이런 일반적인 철학적 테제들이 바로 3부 뒷부분과 4부 이곳저곳에서 제시되고 있는데, 번역본에는 이런 내용들이 제시되는 부분들에서 오역이 자주 보입니다. 특히 4부가 좀더 오역이 많지요. 제가 지금 책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예시를 해볼 텐데, 막연한 기억에 의존해서 쓰다 보니까 정확히 어떤 오역이 있는지 말하기는 어렵네요. ^^;;;
그런데 이 책은 올해 초에 개역본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저도 개역본은 보질 못해서 이런 오역들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따우님은 아마 이전에 나온 판본을 보신 게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