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 형이 좋은 답변을 해줘서 논의가 좀더 내실 있게 진행될 수 있을 듯합니다. 서관모 선생의 경우는 아마도 이런 논의에 나서기가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 세대 아래의 후배들과 공개적으로 이런 문제에 관해 논의하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겠죠. 물론 답변을 해주신다면 좋겠지만, 그거야 뭐 서관모 선생이 알아서 하실 일이고, 어쨌든 최원 형이 적극적으로 답변을 해줘서 논의가 좀더 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notion에 관해서 본다면, 최원 형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될 수 있을 듯합니다.
(1) notion을 “통념”으로 번역하기 어려운 이유
(2) notion에 대하여 “의념”이라는 번역어를 제시한 이유
(1)에 대해서도 두 가지 내용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1) 공통 통념이라는 번역어는 중복적이지 않느냐 하는 점
(1-2) notion을 “통념”으로 이해한다면, common notion이 가진 “합리성”의 측면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
(2)의 경우는, notion이 갖는 의미를 지정하기 위해 새로운 기표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이런 뜻에서 “의념”이라는 신조어를 제안한다는 주장으로 집약되는 것 같군요.
최원 형의 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발리바르 인용문 번역에 대하여
우선 최원 형이 제시한 발리바르 인용문을 한번 검토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스피노자 반오웰]에 나오는 한 구절인데, 흥미 있는 것은 제 번역과 최원 형의 번역의 내용이 꽤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최원 형이 처음에 큰 따옴표로 제시한 것은 이번 번역본에 수록된 최원 형 자신의 번역인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의 원문과 함께 두 가지 번역을 한 번 비교해보겠습니다.
원문
“On comprend pourquoi l'Ethique ne postulait pas que "je pense", mais que "l'homme pense", avant de montrer qu'il pense d'atant plus que ses notions sont davantage des notions communes.”(E. Balibar, La crainte des masses, Galilée, 1997, p. 93)
최원 형의 번역
"우리는 왜 {윤리학}이 “나는 사고한다”[cogito―데카르트]가 아니라 “인간은 사고한다”라고 공리화하고 나서, 인간은 자신의 의념들이 공통의념들로 되는 만큼만 사고한다는 점을 보여주는지 이해한다."
제 번역
“우리는 왜 스피노자가 {윤리학}에서, 인간의 통념들이 공통 통념들일수록 인간은 더 많이 사고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앞서, “나는 사고한다”고 말하지 않고 “인간은 사고한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세부적인 차이점들은 무시한다면 최원 형의 번역과 제 번역의 주요 차이점은 밑줄 친 부분으로 집약되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러한 차이점은 notion 및 common notion의 의미에 대한 이해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번역의 차이점은 일단 불어에서 “d'autant plus A que ... avantage(plus) B”라는 숙어와 관련이 있는데, 제가 알기로 이 숙어는 “B일수록 더 A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불어 사전에 나오는 예문을 하나 든다면 이런 게 있습니다. “잘못이 크면 클수록 더 크게 후회하기 마련이다Le regret est d'autant plus vif que la faute est plus grave.” 다시 말해 이 숙어는 B가 커질수록 A도 커진다는, 양적인 증가(또는 moins이라는 부사가 쓰일 경우에는 양적인 감소)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죠. 이렇게 본다면 밑줄 친 부분은 “인간의 notions이 common notions일수록 인간은 더 많이 사고한다”고 번역할 수 있겠죠. 제 번역은 이런 관점에서 나온 번역입니다.
반면 최원 형은 이 숙어를 “B가 A의 (배타적인) 원인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하시는 듯합니다. “인간”은 “notions이 common notions이 되는 만큼만”(B) “사고한다”(A)는 번역문이 이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숙어를 “B하는 만큼만 A한다”는 뜻으로 이해한 셈인데, 제가 보기에 이건 이 숙어의 의미를 좀 잘못 이해하신 듯합니다.
그런데 이 번역은 단지 문법상의 문제이기에 앞서 내용상으로도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최원 형의 번역대로 한다면 사람들은 notions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전혀 사고하지 않는 셈이 됩니다. 최원 형이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notions을 “개별적인 것”, “어떤 개인이 혼자서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2. 스피노자에서 notio와 notio communis의 의미
따라서 내용의 측면에서 이 점을 좀더 해명하려면 스피노자가 쓰는 notion과 common notion의 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원 형은 답변을 쓰면서 제가 번역한 {스피노자와 정치} 말미에 수록된 “용어 해설”의 “notion” 항목을 참조하신 듯한데, 용어 해설의 그 항목보다는 제가 지난 번 글에 링크해놓은 “스피노자에서 공통통념 개념 I”이라는 제 논문을 참조해주셨으면 좋겠군요(http://blog.aladin.co.kr/balmas/1059302)). 별로 보잘 것 없긴 합니다만, 어쨌든 그 논문이 이 문제에 관한 제 생각을 제일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것인 만큼, 좀 더 정확한 논의를 위해서는 이 논문에 준거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우선 스피노자에서 notio의 용례를 보면, {윤리학}에서 이 단어는 총 24번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래의 목록이 {윤리학}에서 이 단어가 등장하는 곳들입니다. (괄호 안의 숫자는 빈도수를 가리킵니다)
1부 정리 8의 주석 2 (1)
부록 (5) notio만 단독으로 사용
2부 정리 38의 따름정리 (1)
2부 정리 40의 주석 1 (6)
2부 정리 40의 주석 2 (2)
2부 정리 44의 따름정리 2의 증명 (1)
2부 정리 47의 주석 (1)
2부 정리 48의 주석 (1)
3부 정리 56의 주석 (1) notio만 단독으로 사용
4부 서문 (3) notio만 단독으로 사용
4부 정리 37의 주석 2 (1) notio만 단독으로 사용
4부 정리 64의 따름정리 (1) notio만 단독으로 사용
이 중에서도 notio communis나 notio universalis 같이 특정한 규정과 더불어 사용되지 않고, notio이라는 용어만 따로 사용되는 곳은 표시해놓은 것처럼 11군데입니다. 우선 이렇게 notio만 따로 쓰이고 있는 곳에서 이 단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기로 하죠.
먼저 1부 [부록]에 나온 용법과 4부 [서문]에 나온 용법을 한 번 보지요. 4부 [서문]의 용법은 사실 1부 [부록]에 준거하고 있기 때문에 한데 묶어서 보는 게 좋습니다.
1부 [부록]에 나온 notio에 대한 용례는 이렇습니다. 라틴어 원문과 더불어, 다른 분들의 참조의 편의를 위해 영어 번역을 첨부하겠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나온 Elwes의 이 번역은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에, 군데군데 조금 수정을 했습니다(특히 원문의 notio를 어떤 경우는 “abstract notion”으로 어떤 경우에는 “explanation”으로, 어떤 경우에는 “abstraction”으로, 또는 “category”로 번역하고 있어서 수정이 불가피했습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는 더 나은 최신 번역본을 구하기는 어렵더군요.
(I)
“Postquam homines sibi persuaserunt omnia quæ fiunt propter ipsos fieri, id in unaquaque re præcipuum judicare debuerunt quod ipsis utilissimum et illa omnia præstantissima æstimare a quibus optime afficiebantur. Unde has formare debuerunt notiones quibus rerum naturas explicarent scilicet bonum, malum, ordinem, confusionem, calidum, frigidum, pulchritudinem et deformitatem et quia se liberos existimant, inde hæ notiones ortæ sunt scilicet laus et vituperium, peccatum et meritum sed has infra postquam de natura humana egero, illas autem hic breviter explicabo.”
“After men persuaded themselves, that everything which is created is created for their sake, they were bound to consider as the chief quality in everything that which is most useful to themselves, and to account those things the best of all which have the most beneficial effect on mankind. Further, they were bound to form notions for the explanation of the nature of things, such as goodness, badness, order, confusion, warmth, cold, beauty, deformity, and so on; and from the belief that they are free agents arose the further notions praise and blame, sin and merit. I will speak of these latter hereafter[이게 나중에 4부 서문에 나올 내용입니다], when I treat of human nature; the former I will briefly explain here.”
(II)
“Cæteræ deinde notiones etiam præter imaginandi modos quibus imaginatio diversimode afficitur, nihil sunt et tamen ab ignaris tanquam præcipua rerum attributa considerantur quia ut jam diximus, res omnes propter ipsos factas esse credunt.”
“The other notions are nothing but modes of imagining, in which the imagination is differently affected, though they are considered by the ignorant as the chief attributes of things, inasmuch as they believe that everything was created for the sake of themselves.”
(III)
“Videmus itaque omnes notiones quibus vulgus solet naturam explicare, modos esse tantummodo imaginandi nec ullius rei naturam sed tantum imaginationis constitutionem indicare et quia nomina habent, quasi essent entium extra imaginationem existentium, eadem entia non rationis sed imaginationis voco atque adeo omnia argumenta quæ contra nos ex similibus notionibus petuntur, facile propulsari possunt.”
“We have now perceived, that all the notions commonly given of nature are mere modes of imagining, and do not indicate the true nature of anything, but only the constitution of the imagination; and, although they have names, as though they were entities, existing externally to the imagination, I call them entities imaginary rather than real; and, therefore, all arguments against us drawn from such notions are easily rebutted.”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스피노자는 notio는 "목적론에 빠진 사람들"(I) 내지 "무지한 이들ignari"(II)이 “사물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로 드는 것들은 “선, 악, 질서, 혼란, 따뜻함, 차가움, 미, 추, 칭찬과 벌, 죄와 공적”(I) 등이 있죠. 그리고 또 그는 이러한 notiones는 “상상의 양태들”에 불과하며(II, III), 전혀 “사물의 참된 본성”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III)
다음으로 4부 서문에 나오는 용례를 좀더 보기로 하죠.
(I)
“Perfectio igitur et imperfectio revera modi solummodo cogitandi sunt nempe notiones quas fingere solemus ex eo quod ejusdem speciei aut generis individua ad invicem comparamus.”
“Perfection and imperfection, then, are in reality merely modes of thinking, or notions which we form from a comparison among one another of individuals of the same species.”
(II)
“solemus enim omnia Naturæ individua ad unum genus quod generalissimum appellatur, revocare nempe ad notionem entis quæ ad omnia absolute Naturæ individua pertinet.”
“For we are wont to refer all the individual things in nature to one genus, which is called the highest genus, namely, to the notion of Being, whereto absolutely all individuals in nature belong.”
(III)
“Bonum et malum quod attinet, nihil etiam positivum in rebus in se scilicet consideratis indicant nec aliud sunt præter cogitandi modos seu notiones quas formamus ex eo quod res ad invicem comparamus.”
“As for the terms good and bad, they indicate no positive quality in things regarded in themselves, but are merely modes of thinking, or notions which we form from the comparison of things one with another.”
보다시피 4부 [서문]에 나오는 notio의 용법은 1부 [부록]과 유사합니다. 두 경우 모두 notio는 “단지 상상의 양태”이거나 “단지 사고의 양태”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4부 [서문]에서는 이러한 notio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관한 흥미로운 언급들이 있다는 점인데, 스피노자는 이러한 notiones는 사물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형성된다고 말하고 있죠. 이러한 차이는 2부에서 notiones에 대해 발생적인 원인에 의한 설명이 제시되었다는 데서 생겨나는 차이점입니다.
따라서 notio 및 notio communis에 관한 스피노자의 좀 더 핵심적인 주장을 보기 위해서는 2부의 논의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우선 스피노자가 notio communis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보고서, 그 다음 2부 정리 40의 주석 1과 주석 2를 살펴보기로 하죠. 그런데 주석 1은 상당히 길기 때문에, 인용하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만 간추려서 보겠습니다. 전부 다 살펴보고 싶은 분들은 각자 해당 주석을 찾아보시면 되겠죠.
우선 2부 정리 38의 따름정리 1에서 notio communis가 다음과 같이 규정됩니다.
“Hinc sequitur dari quasdam ideas sive notiones omnibus hominibus communes. Nam (per lemma 2) omnia corpora in quibusdam conveniunt, quæ (per propositionem præcedentem) ab omnibus debent adæquate sive clare et distincte percipi.”
“Hence it follows that there are certain ideas or notions common to all men; for (by Lemma ii.) all bodies agree in certain respects, which (by the foregoing Prop.) must be adequately or clearly and distinctly perceived by all.”
이러한 규정은 2부 정리 37과 38에서 증명된 것, 곧 “모든 것에 공통적인 것과 부분 및 전체 안에서 균등하게 존재하는 것은 어떤 독특한 사물의 본질도 구성하지 않는다”(정리 37)와 “모든 것에 공통적이고 부분 및 전체 안에서 균등하게 존재하는 것들은 적합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데서 따라 나오는 규정입니다.
따라서 notio communis에서 “공통적”이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 모든 물체들 또는 몇몇 물체들이 공통으로 지니는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요컨대 실재적인 기초(사물들 또는 물체들에 공통적인 것)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초를 적합하게 인식하는, 표현하는 notio가 notio communis인 셈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notio communis와 일반적인 notio, 곧 실재적인 기초를 갖지 않는 상상의 양태나 사고의 양태로서 notio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notio는 “개별적인” 것이고, notio communis는 “공통적” 또는 “보편적인” 것일까요? 2부 정리 40의 주석 2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부 정리 40의 주석 2
“Ex omnibus supra dictis clare apparet nos multa percipere et notiones universales formare I° ex singularibus nobis per sensus mutilate, confuse et sine ordine ad intellectum repræsentatis (vide corollarium propositionis 29 hujus) et ideo tales perceptiones cognitionem ab experientia vaga vocare consuevi. II° ex signis exempli gratia ex eo quod auditis aut lectis quibusdam verbis rerum recordemur et earum quasdam ideas formemus similes iis per quas res imaginamur (vide scholium propositionis 18 hujus). Utrumque hunc res contemplandi modum cognitionem primi generis, opinionem vel imaginationem in posterum vocabo. III° denique ex eo quod notiones communes rerumque proprietatum ideas adæquatas habemus (vide corollarium propositionis 38 et propositionem 39 cum ejus corollario et propositionem 40 hujus) atque hunc rationem et secundi generis cognitionem vocabo.”
“From all that has been said above it is clear, that we, in many cases, perceive and form our universal notions:--(1.) From particular things represented to our intellect fragmentarily, confusedly, and without order through our senses (II. xxix. Coroll.); I have settled to call such perceptions by the name of knowledge from the mere suggestions of experience. (2.) From symbols, e.g., from the fact of having read or heard certain words we remember things and form certain ideas concerning them, similar to those through which we imagine things (II. xviii. note). I shall call both these ways of regarding things knowledge of the first kind, opinion, or imagination. (3.) From the fact that we have notions common to all men, and adequate ideas of the properties of things (II. xxxviii. Coroll., xxxix. and Coroll. and xl.); this I call reason and knowledge of the second kind. ”
이 부분을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에서 말한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가 많은 것을 지각하여 notiones universales[보편 통념들]을 형성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보편 통념들은] (I) 감각들을 통해 우리에게 단편적이고 혼동된 방식으로, 그리고 지성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질서 없이 표상되는 독특한 실재들로부터 [형성된다](2부 정리 29의 따름정리를 보라). 이 때문에 나는 보통 이러한 지각들을 막연한 경험에 의한 인식이라 부른다. (II) [보편 통념들은] 기호들로부터 [형성된다]. 예컨대 어떤 단어들을 듣거나 읽음으로써 우리는 실재들을 다시 떠올리고, 이 실재들에 관해, 우리가 실재들을 상상하는 수단들과 유사한 어떤 관념들을 형성함으로써 [보편 통념들이 형성된다](2부 정리 18의 주석을 보라). 전자와 후자처럼 실재들을 고찰하는 방식을 나는 다음부터 첫 번째 종류의 인식, 억견 또는 상상이라 부를 것이다. (III) 마지막으로 우리가 실재의 특성들에 대해 notiones communes[공통 통념들] 및 적합한 관념들을 갖고 있다는 점으로부터 [보편 통념들이 형성된다](2부 정리 38의 따름정리, 정리 39와 그 따름정리, 정리 40을 보라). 그리고 이러한 방식을 나는 이성 및 두 번째 종류의 인식이라고 부를 것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notiones는 “universales”하며, 이것들이 형성되는 데는 3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두 가지는 1종의 인식을 이루며, 마지막 3번째는 2종의 인식을 이루죠. 따라서 스피노자에 따르면 보편적인 인식이냐 아니면 독특한 인식이냐는 1종의 인식과 2종의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1-2종의 인식과 3종의 인식 사이의 차이입니다(3종의 인식에 관한 내용은 인용문 뒤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최원 형이 인용한 발리바르의 문장도 약간의 모호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문장 전후의 맥락을 보면 발리바르는 notion은 개별적인 것이고 notion commune은 공통적인 것, 교통을 함축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그렇지 않죠. 모든 notio가 “보편적인 것”이고, 이러한 보편적인 notio를 형성하는 두 가지 방식, 하나는 부적합하고 상상적인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적합하고 합리적인 방식인 두 방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보편자를 구성하는 또는 인식하는 두 가지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본다면 1부 [부록]이나 4부 [서문]에 나오는 notio에 관한 용법은 아주 일관된 셈입니다.
제가 볼 때 notio나 notio communis에 대한 스피노자의 설명이 진정으로 혁신적인 점은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 역시 notio communis에 대한 논의에서 이전까지의 논의와 단절된 면모를 보여주지만, 결코 notio에 대한 발생적인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했으며, 더 나아가 notio를 보편자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두 가지 상이한 인간학적, 심지어 정치적인 방식의 문제로 보지는 못했죠.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텐데, notio를 구성하는 두 가지 방식의 문제는 윤리적, 정치적 개체화의 상이한 양식에 관한 쟁점이기도 합니다.
스피노자가 notio, 특히 1종의 인식에 속하는 notio를 어떻게 발생적으로 설명하는가 하는 것은 2부 정리 40의 주석 1(그리고 그 이전에 2부 정리 29의 따름정리 및 주석)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나온 스피노자의 설명에 따르면 notio에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통적이라 불리며, 우리의 추론의 기초를 이루는quae communes vocantur, quaeque ratiocini nostri fundamenta sunt” notio, 곧 notio communis가 있고, 그 이외에 “또 다른 notiones”도 존재하죠. 그는 그 예로 “이차적이라 불리는 것들[곧 notiones]quas secundas vocant”이나 사람, 말, 고양이 등과 같이 “보편적이라 불리는 notiones”를 제시하죠. 그 다음 스피노자는 “초월적 용어들termini transcendentales”이라고 불리는 것, 곧 존재자ens, 실재res, 어떤 것aliquid 같은 것들과, 사람, 말, 개 등과 같은 “notiones universales”에 대한 발생적 설명을 제시합니다.
그에 따르면 초월적 용어들은 “인간 신체가 동시에 일정한 숫자의 이미지들만을 판명하게/구분되게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곧 만약 이미지들이 이 숫자 이상으로 나타나게 되면, “이미지들은 혼동되기 시작할 것이며, 만약 신체가 동시에 그 자체로 판명하게/구분되게 형성할 수 있는 이미지의 숫자가 훨씬 더longe excedatur 초과되면 이것들은 서로 완전히inter se plane 혼동되어 버릴 것이다.”(G II 120-21) 다시 말해 만약 신체에서 이미지들이 동시에 판명하게/구분되게 형성된다면 정신도 이 이미지들을 판명하게 상상할 수 있지만, 신체에서 이 이미지들이 완전히 혼동되어 버리면 정신은 아무런 구분 없이 모든 물체들을 혼동되게 상상해서, 이 물체들이 “마치 하나의 속성 아래quasi sub uno attributo, 예컨대 존재자, 실재 등과 같은 속성 아래 포괄되는 것처럼 상상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이 용어들은 “최고로 혼동된 관념들summo gradu confusas”을 의미한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설명입니다.
반면 notiones universales는 전자와 비슷한 원인을 갖고 있지만, 전자와는 달리 “완전히” 혼동될 만큼 많은 이미지들이 신체에서 형성될 경우에 생기는 게 아니라 “정신이 (각각의 사람의 피부색이나 키 등과 같이) 개개의 [사람들의] 적은 차이들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들의 숫자도 상상하지 못하며, 단지 이 차이들이 신체를 변용하는 한에서 모두 합치하는 것만을 판명하게 상상하게 될 정도만큼 상상의 힘을 능가”할 때 생깁니다. 따라서 notiones universales는 초월적 용어들만큼 혼동된 것은 아니지만, 개개의 이미지들 사이의 차이와 실질적인 일치점 또는 대립점들을 지각하지 못하는 신체와 정신의 무능력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는 초월적 용어들과 공통적이죠.
한 가지 지적하자면 스피노자는 여기서 termini transcendentales(존재자ens, 실재res, 어떤 것aliquid)와 notiones universales(사람, 말, 개)를 구별하고 있지만, 위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4부 [서문]에서는 "존재자ens"를 “notio”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자 사이에는 엄밀한 질적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더 나아가 스피노자는 이러한 notiones universales는 모든 사람에 의해 “동일한 방식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상이하게 형성된다고 지적합니다. 곧 “각자는 자신의 신체의 성향에 따라pro dispositione sui corporis” notiones universales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의 직립 자세를 경탄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직립 동물로 이해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사람을 웃을 수 있는 동물로, 털 없는 두발 달린 동물로, 이성적 동물로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이는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인간을 정의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스피노자의 비판이 얼마나 급진적인 것인지 알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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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스피노자에서 notio는 상상의 양태이거나 사고의 양태입니다. 더욱이 이는 목적론에 빠져 있거나 1종의 삶을 영위하는 무지한 이들이 사물의 본성을 가리킨다고 착각하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스피노자에서 notio는 항상 보편적입니다. 개별적인 notio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편적인 notio를 형성하는 상이한 방식, 각자의 기질과 습관에 따라 달라지는 상이한 방식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러한 보편 notio의 한 종류로 스피노자는 notio communis를 제시합니다. notio communis는 다른 notio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이지만, 다른 notio와 달리 모든 물체들 또는 몇몇 물체들이 서로 공유하는 특성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실재적인 기초를 갖고 있으며, 적합한 인식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저는 notion에 대한 번역어로는 “통념”이 적합하다고 봅니다. 우리말에서 “통념”이라는 말은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지닐뿐더러, 엄밀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관념이라는 뜻까지 포함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스피노자와 관련해서 본다면 “통념”이라는 말이 notio에 대한 번역어로는 상당히 적합하지 않은가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공통 통념"이라는 말이 중복적이라는 것이 최원 형의 지적이었는데,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그건 최원 형이 (1) 스피노자에서는 notio 자체가 보편적이라는 것 (2) 스피노자가 말하는 “common”은 단지 “공통적”인 게 아니라 “실재적인 기초를 가짐” 따라서 “적합함”, “참됨”이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라는 점을 얼마간 간과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컨대 common notion이 참된 인식, 적합한 인식이라면, 그것은 이러한 “common”이 “모든 물체들이 공유하는” 또는 몇몇 물체들이 공유하는 특성을 지시하기 때문입니다.
발리바르 번역문과 관련해서 제 결론을 내리자면, 최원 형의 번역은 문법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내용상의 측면에서도 좀 문제가 있지 않나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도 notio communis를 가질 때에만 사람들이 사고한다고 볼 수는 없겠죠. 만약 그렇다면 1종의 인식, 2종의 인식, 3종의 인식이라고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게 되겠죠.
3. 의념이라는 번역어에 대하여
제가 보기에는 “의념”이라는 번역어 선택에 대한 최원 형이나 서관모 선생의 해명은 얼마간 차이가 있고, 어떤 점에서는 상반되는 듯합니다. 우선 “용어 해설” 12쪽에서 볼 수 있듯이 서관모 선생은 이 용어가 신조어가 아니라 “기공 수련과 관련된 용어”로 쓰이고 있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는데, 최원 형은 이 단어가 신조어인 것처럼 말하고 있군요.
더 나아가 서관모 선생은 이 역어를 채택한 이유가 notion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국한된 관념을 가리키기 때문에 “통념”이나 “총념”은 적합하지 않고 대신 “의념”이 낫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용어의 난점 중 하나는 이 용어가 “인지의 의미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역어일 수는 없다”(11쪽)고 덧붙이고 있지요. 그런데 최원 형은 오히려 common notion이 지닌 실천적인 “합리성”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 역어를 채택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 가지 설명은 어떤 점에서는 전혀 상반된 것이어서, 좀 혼란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특히 스피노자와 관련하여 notion이라는 개념에 대해 새로운 기표를 만들고 싶다면, 이런 점이 우선 정리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쨌든 저로서는 notion이라는 번역어에 대해 “의념”이라는 새로운 기표가 “통념”이라는 역어보다 어떤 점에서 장점을 지니고 있는지 잘 이해하기 어려운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4. puissance에 대하여
이미 길어졌기 때문에, puissance에 대해서는 간단히 한두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최원 형은 “맑스는 자본의 역능이(한계 없어 보이는 그것의 파괴성뿐 아니라 항상 증가하는 그것의 생산성이) 그것 자체가 야기하는 저항의 규모를 먹고 자랄 뿐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었다”는 발리바르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논평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puissance를 역량으로 번역하면, 너무 중립적이거나 너무 긍정적인 뉘앙스로 읽힙니다. 즉 '권력'이라는 뜻을 포착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스피노자적 맥락과 다른 맥락을 상대적으로 구별해야하는 것은, 스피노자적 맥락에서는 potentia와 potestas가 명확히 구분될 수 있지만, 다른 맥락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선 puissance를 “역능”이라고 하면 과연 “권력”이라는 의미가 포함될까 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마 들뢰즈나 네그리를 공부하는 분들은 깜짝 놀라지 않겠습니까? 네그리는 권력과 대비되는 “창발적인 힘” 내지 ”활력”을 표현하기 위해 puissance라는 용어를 발전시키고 있고, 또 그 때문에 국내의 연구자들은 “역능”이라는 용어를 써온 걸로 아는데, puissance에 권력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를 “역능”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말하면, 이건 사실은 “역능”이라는 말에 대한 거의 상반된 두 가지 이해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그냥 다음과 같이 말해 두겠습니다.
불어에서 puissance라는 단어는 사실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인용했던 불어 사전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http://atilf.atilf.fr/dendien/scripts/tlfiv4/showps.exe?p=combi.htm;java=no;
1. “어떤 결과를 생산하는 능력. 이러한 능력에서 생겨나는 힘이나 특성Faculté de produire un effet, capacité; la force ou le caractère qui en résulte.”
2. 철학에서 쓰이는 몇 가지 용법
“형이상학(특히 아리스토텔레스적이거나 스콜라철학적인). (현실태와 대립하는) 잠재태 MÉTAPHYS. (notamment aristotélicienne ou scolastique). [P. oppos. à acte2] Virtualité.”
“능동적인 능력. 어떤 존재의 형태로 진입할 수 있는 현행적인 능력Puissance active. Capacité ou faculté actuelles d'accéder à une certaine forme d'être`` (FOULQ.-ST-JEAN 1962).
수동적인 능력. 자기 자신이 아니라 어떤 외부의 작인(作因)에 의해 자신이 아닌 것이 되는 단순한 가능성Puissance passive. ,,Simple possibilité de devenir ce qu'on n'est pas (...), non par soi-même, mais grâce à l'intervention d'un agent extérieur`` (FOULQ.-ST-JEAN 1962). Synon. possibilité (ibid.).”
“잠재적으로Virtuellement”
3. “수학. 곱. À la puissance n. Un nombre à la puissance n est le produit de n nombres égaux à lui-même”
4. “(물리학 용어로) 힘이나 작용력. 특히 단위 시간에 생산되고 소비되는 또는 전달되는 일이나 에너지의 양으로, 이는 보통 와트로 표현된다Force, pouvoir d'action (d'un appareil, d'un mécanisme); en partic., quantité de travail ou d'énergie produite, consommée ou transférée par unité de temps et s'exprimant généralement en watts.”
이 밖에도 뭐 사회과학 분야나 시사 분야에서 “힘”과 등가의 의미로 쓰이는 다양한 사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grands puissances”라고 하면 “열강”이라고 번역할 수 있고 “puissance absolu du roi”라고 하면 “왕의 절대권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최원 형이 염두에 두는 것이 바로 이런 용법이겠지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다른 단어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puissance라는 단어에도 말하자면 “notion”의 차원이 있고 또 “concept”의 차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일상생활에서 이 단어를 쓰는 것을 “notion”의 차원이라고 한다면 철학자들이 엄밀한 규정을 붙여서 쓰는 경우는 “concept”의 차원이 되겠지요.
그런데 notion의 차원에서 본다면 puissance라는 단어가 지닌 저 다양한 의미를 모두 충족시켜 줄 만한 우리말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잠재적인”이라는 뜻으로 번역해야 옳을 때가 있고 어떤 때는 “힘”이나 “~력”(또는 “n 제곱”)으로 번역하는 게 좋을 때가 있으며 또 어떤 때는 그냥 “능력”으로 번역하는 게 무난한 경우도 있죠. 물론 “권력”이나 “열강” 같은 식으로 번역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notion의 차원이라면 puissance에 굳이 한 가지 번역어를 고정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notion”이라는 단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notion”이라는 단어에도 notion의 차원과 concept의 차원이 있겠죠. notion도 어떤 맥락에서는 “용어”로, 어떤 맥락에서는 그냥 “관념”이나 “개념”으로 번역하는 게 무난하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원 형이 인용한 발리바르 문장에서도 puissance는 notional한 차원에서 쓰인 거라고 봅니다. 그런 경우는 그냥 “자본의 권력”이라고 하면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읽히겠죠. 저는 “역량”이라고 써도 괜찮다고 보는 생각이긴 합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