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이 좀 늦었습니다. 서관모 선생이 무언가 답변을 주실까 했더니,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할 듯하군요. 그래서 먼저 최원 형 댓글에 답변을 하면서 약간의 논의를 더 보충해보겠습니다. 

우선 civilité의 번역어는 정말 “시민인륜성”이 아니라 “시민인륜”이더군요. 헤겔의 Sittlichkeit가 대개 “인륜성”으로 번역되기에 무심결에 “시민인륜성”으로 봤는데, 제가 좀 부주의했네요. 어쨌든 “시민인륜”이라는 번역어에 대한 제 견해는 지난 번과 같습니다.

그 다음 puissance의 번역어인 “역능”과 notion의 번역어인 “의념”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검토하자면 상당히 오랜 논의가 될 듯해서 오늘은 다음과 같은 정도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선 제가 주소를 달아놓은 프랑스 사전에 나온 notion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사전에서는 notion이라는 단어에 세 가지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A. “어떤 사물에 대한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인식”이라는 의미지요.

B. 두 번째는 “정신의 구성물, 표상”이라는 뜻으로, 관념과 동의어라고 하고 있습니다.

C. 마지막으로 철학에서 쓰이는 특수한 어법에서는 “대상의 본질적인 성격을 함축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개념과 동의어로 쓰인다고 덧붙이고 있고요.


그리고 각각의 항목에 대해 몇 가지 사례들이 나와 있고, 또 각각의 항목에서 약간의 변이형도 보여주고 있지요. 

지난 번에도 이야기했듯이 사전에 나오는 정의는 엄밀한 정의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용례들에 대한 규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이러한 정의들은 불어에서 쓰이는 notion에 대한 용법들을 상당히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전의 정의에 대해 제 나름대로 몇 가지 논평을 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otion에 관한 불어의 용법에서는 일상적인 의미로 쓰이는 notion과 철학에서 전문적으로 쓰이는 notion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독일어에서 notion이라는 단어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어의 용법은 불어와 크게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불어의 용법에 비해, 모호함, 확실한 증거 없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신뢰를 보내는 관념 같은 의미가 좀더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사전들을 참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ttp://www.hydroponicsearch.com/spelling/simplesearch/query_term-notion/database-!/strategy-exact; http://dict.die.net/notion/)

일상적인 용법으로 본다면 notion은 사실 별도의 번역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단어가 쓰이는 상황에 따라, “관념”이라든가 “개념”, “용어”라든가, 또는 그냥 “말”이라고 번역해주면 무난하겠지요. 가령 “la notion d'espace”나 “la notion de cause” 같은 것들은 “공간 개념”이나 “원인 개념”으로 번역해도 좋고 아니면 “공간이라는 관념”이나 “원인이라는 관념” 또는 “공간이라는 용어”나 “원인이라는 용어” 같은 식으로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그런 게 자연스럽기도 하죠.

이 경우 각각의 경우에 “의념”이라는 단어를 대체한다면, 사실 매우 어색하게 들리지 않겠습니까? 반면 “통념”이라는 단어를 대체해본다면, 적어도 “의념”이라는 단어보다는 훨씬 덜 어색하게 들리리라고 봅니다. 그건 그만큼 통념이라는 말이 훨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이고, 이 경우에 notion이라는 불어 단어가 불어권에서 쓰이는 용어법과 좀더 가까운 용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뒤에서 더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철학적인 용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사전의 정의는 상당히 불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전에서는 notion을 “대상의 본질적인 성격을 함축하는 것”으로서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관념”이라고 규정하면서 개념과 동의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사실 굳이 notion에 대한 다른 용어를 고려할 필요가 없겠죠. 그냥 “개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충분합니다. 

이 사전은 철학 사전이 아니므로, 사실 어떤 점에서는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좀 아쉬운 것은 불어 사전임에도 불구하고 바슐라르 이래 프랑스 과학철학의 전통, 다시 말해서 알튀세르나 푸코, 또는 바디우 같은 사람들의 저작에서 상당히 널리 통용되고 있는 “concept”와 “notion”의 구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알튀세르나 초기 바디우(특히 “Le concept de modèle” 같은 저작)에서 notion은 전과학적ㆍ이데올로기적인 표상들, 관념들을 가리키는 반면, concept는 과학적 개념, 인식을 나타내는 용어들을 뜻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바슐라르가 창시하고 알튀세리엥들이 개조한 “절단coupure” 및 “단절rupture”의 인식론에 의거하고 있는 용어법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발리바르, [바슐라르에서 알튀세르로: 인식론적 단절의 개념], {이론} 95년 겨울호를 참고할 수 있겠죠.

지나치는 김에 지적하자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발리바르의 원래 논문 제목은 “coupure épistémologique”인데, 서관모 선생은 번역본에서 이를 “인식론적 절단”이 아니라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번역했다는 점입니다. 서관모 선생은 162쪽에 붙인 역주에서 “알튀세르는 ‘인식론적 단절’ 개념에 독자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바슐라르의 rupture를 coupure로 개명하여 사용하였다”고 말하면서도 “알튀세르 자신도 80년대에는 별도로 coupure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rupture라는 용어를 쓴다”고 지적하면서 두 단어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단절”이라고 번역하고 있지요. 그 대신 양자를 구별하기 위해 원어를 병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좀 사실과 어긋납니다. 알튀세르는 단순히 rupture를 coupure로 대체한 게 아니라, 두 개념을 구별해서 함께 쓰고 있습니다(Éci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II에 수록된, “Sur la philosophie”라는 장을 보십시오. 특히 pp. 318 이하). 이건 발리바르도 마찬가지지요(Lieux et noms de la vérité, Aube, 1994 중에서 3장 “coupure et refont” 참조). 물론 두 사람이 이 두 가지 개념을 가공하는 방식에는 얼마간의 차이점이 존재하긴 합니다.  

따라서 “coupure”와 “rupture”는 서로 구별되는 용어로 번역하는 게 옳을 것 같더군요. “coupure”라는 단어가 “자르다”는 뜻을 지닌 “couper” 동사에서 나온 말이므로, “절단”이라는 번역어가 괜찮다고 봅니다. 언젠가 Gregory Elliott의 글을 보니까 “coupure épistémologique”를 “epistemological cut”이라고 옮기던데, 상당히 정확한 번역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이 번역문에서 서관모 선생은 notion을 “상념(常念)”이라고 옮기고 있는데, 왜 “상념”이라는 번역어가 “의념”이라는 새로운 번역어로 대체되었는지 그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서 선생은 이때부터 계속 notion의 번역어에 대해 관심을 가져오신 듯합니다.

다시 원래 논점으로 돌아가자면,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concept와 notion의 의미상의 차이는 서 선생이 “용어 해설”에서 인용하는 두 개의 사전에서 좀더 잘 드러난다고 봅니다. 곧 concept는 엄밀하고 정확한 이론적인 구성물에 해당하는 반면, notion은 이러한 엄밀성을 결여한 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어떤 관념이나 생각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서관모 선생은 두 개의 사전을 인용하면서, notion의 또 다른 의미에 주목합니다. 곧 서 선생은 notion은 제한된 집단이나 개인들에게만 한정되어 사용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다음과 같은 주장은 서 선생의 이런 생각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통념”이라는 역어는 notion에 “通”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總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통념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일반 사람들에게 공통된 생각”, “일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생각”인데, notion 일반은 “일반 사람들에게 공통된다”는 한정/특정과 무관하다.”(11쪽)

그런데 왜 서 선생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서 선생이 인용하는 사전에 나오는 다음 밑줄 친 구절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상적인 프랑스어에서 concept는 과학, 철학, 이론의 엄밀하고 정확한 구성물에만 사용되고, 일반적으로는 조직화되고 통제된 지식 활동에 사용된다. ... notion은 개별적인 conception 또는 한 사회 집단에 의해 수용된 conception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사용되나, 엄밀하거나 정확한 정의를 전제로 [p. 10] 사용하지는 않는다.”(Alain Rey, La terminologie, PUF, 2001)”(9쪽)

따라서 서관모 선생이 “통념”이라는 번역어 대신 “의념”이라는 번역어를 제안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notion은 결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conception 또는 한 사회 집단에 의해 수용된 conception>을 의미한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 선생이 <용어 해설> 마지막에서 “[의념은] “총념”이나 “통념”에 비해 훨씬 덜 한정된 “념”이기에 notion의 역어로 상대적으로 무난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하면 중국에서 이 단어가 최근 notion의 번역어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부가적인 논거인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는 좀 설득력이 부족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Alain Rey가 notion에 대해 저런 식의 정의를 제시할 때 염두에 두는 notion이 과연 어떤 용례로 사용된 것인지는 인용된 부분만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구절 하나에 의거해서 notion이 제한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서관모 선생이 인용하는 첫 번째 사전에서는 notion이 ““정신이 획득한 일반적인 관념, 이미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제공하지만 그러나 발전시킬 필요가 있는 그러한 관념이다.”(La notion philosophique 2, PUF, 1990, p. 1771)”(9쪽)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서관모 선생은 첫 번째 사전을 인용하기 전에 “현대 프랑스어에서 notion의 사전적 정의는”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정확히 지금 인용된 이 내용은 현대 불어의 용법이 아니라 스토아학파에서 notion 또는 notio가 가리키는 의미를 뜻합니다. 이 인용문은 La notion philosophique 2에 나오는 “notion” 항목의 첫 번째 대목을 옮긴 것인데, 이 항목에서는 스토아학파에서 칸트에 이르는 notion의 내용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고, 이 대목은 스토아학파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서관모 선생이 “통념”이라는 역어 대신 “의념”을 제안하기 위해 제시하는 논거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서 선생의 주장과는 반대로 notion은 오히려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관념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단 이 때 “받아들인다”는 말은 엄밀하게 학문적인 논증을 거쳐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 말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개념적으로, 예컨대 아인슈타인이 부여하는 개념적인 의미에서 이해하고 또 사용하고 있을까요? 물리학자들의 전문적인 학술회의나 대화에서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말을 쓸 때는 그야말로 “통념적”으로 쓰는 거지요. 곧 사람들 각자가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이해하는 어떤 관념, 어떤 통념에 따라 그 말을 쓰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이해는 대개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대개의 사람들은 시간은 1초, 2초, 3초, 1분, 2분, 3분, 1시간, 2시간 등등과 같이 정해진 단위에 따라 선형적으로 진행하는 흐름으로, 공간은 어떤 물리적인 실재들이 들어 있는 텅 비어 있는 틀로 이해합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한 시간과 공간 개념에 상응하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식의 철학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갈릴레이가 상대성 개념을 도입해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과 단절한지 대략 40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아인슈타인이 다시 이를 엄밀한 물리학적 개념으로 개조한지는 100여년이 흘렀지만, 보통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여전히 “통념적인” 상태, “notionnel”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튀세르가 concept와 notion을 구별할 때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 바로 이런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푸코에서도 이와 비슷한 용법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물론 푸코는 알튀세르와 상당히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가령 [정신착란의 초월성transcendance du délire]라는 제목이 붙은(국역본에는 [정신착란의 선험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광기의 역사} 2부 2장(및 3-4장)을 보면, “notion”에 관한 상당히 체계적인 용법이 나옵니다. 여기서 푸코가 notions이라고 부르는 것은 고전주의 시기에 의사나 철학자들이 광기를 분류하고 치료법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비과학적인 명칭들(과학으로서 정신의학은 19세기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을 가리킵니다. 푸코는 이러한 명칭들을 가리키기 위해 아주 체계적으로 no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요. 예컨대 다음 구절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 notions은 의학적 사유의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기능보다는 오히려 의학적 사유의 실제적 작용에 더 가깝다. 윌리스의 노력에서 발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notionsdlsep, 그는 조광증과 우울증의 순환주기에 관한 커다란 원칙을 그 notions에 입각하여 세울 수 있게 된다. ... 그것들은 엄격한 개념정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상상적 응집성에 의해 안정된 형상을 강요하면서 의학의 작업과 일체가 되었으며 ...”({광기의 역사} 이규현 옮김, 나남사, 2003, 340-41쪽)

지나가는 김에 지적한다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역자는 notion을 전부 “선험적 개념”이라고 번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역자는 특별히 역주를 하나 붙여서 여기서 notion은 “칸트의 비판 철학에서 말하는 ‘오성의 산물’”(340-41쪽)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것은 전혀 그릇된 설명이지요. 칸트에서 notion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는 하지만, 칸트의 용법은 매우 특수할뿐더러 푸코가 사용하는 notion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역자의 그릇된 설명 때문에 국내 독자들이 {광기의 역사} 2부 2-4장에 나오는 푸코의 논의를 정확히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지고 있을 뿐입니다. 아울러 이 책의 번역 상태는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이지만, 주요한 철학적 논의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꽤 많은 오역들이 있어서, 이 번역본을 기초로 학문적인 논의를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루빨리 상당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푸코의 용법은, 바슐라르 이래 프랑스 철학자들, 특히 구조주의-과학철학 노선에 속하는 철학자들에게 concept와 notion의 구별은 나름대로 상당히 일반화된 용법이었다는 점을 예시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notion에 대한 번역어로는 “통념”이 적합하며, 굳이 “의념” 같은 단어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저는 “의념”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단학을 하는 분들이 사용하는 용어더군요. 그 분들은 이 단어에 “간절히 바라는 마음”, “마음을 어떤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더군요. 그래서 서 선생이 이런 의미를 아시고 “의념”이라는 단어를 제안하신 것인지, 또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더군요.

puissance에 관해 보자면, 저는 인터넷 서점에 나온 간략한 소개글에 “역능”이라는 단어가 보이길래 puissance를 이 단어로 번역했나보다 생각했는데, 스피노자의 맥락에서는 “역량”으로, 보통의 맥락에서는 “역능”으로 번역했나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스피노자 때문에 puissance를 “역능”으로 번역해서 쓰는데, 최원 형이나 서 선생의 경우는 반대군요. ㅎㅎ

어쨌든 간에 저는 puissance나 potentia의 번역어로 “역능”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적합지 않다고 봅니다. 스피노자가 이 개념에 대해 얼마간 새로운 내용을 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피노자에게만 고유한 번역어를 따로 쓴다든지, 스피노자 때문에 “역능”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잠재태나 가능태와 다른 의미에서 puissance라는 개념은 상당히 오랜 전통을 지닌 개념이고, 스피노자를 포함해서 이 전통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얼마간의 차이는 있지만, dynamis/potentia/puissance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 전통과는 구별되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피노자에 대해서만 별도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가령 스토아학파나 플로티누스, 또는 브루노나 니체 등에 대해서도 각각 상이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그렇게 될 경우 dynamis/potentia/puissance가 갖는 개념적인 통일성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게 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최원 형은 “역능”이라는 단어가 일부 국어사전에 나온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 단어는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 아닙니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이 단어는 주로 네그리나 들뢰즈 철학에 관심 있는 분들만 사용하는 용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어가 어떻게 일부 국어사전에 수록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어떤 학문 분야에서 모종의 필요상 이런 단어를 만들어서 쓴 것이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듯합니다(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정서심리학에서 capacity를 “역능”이라고 번역해서 쓰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네그리나 들뢰즈 철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 이 단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그 용어가 실질적인 “용어”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요컨대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역량”이라는 용어가 “역능”이라는 번역어보다 더 나은 점은 이 말이 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기 때문에 이 말을 쓸 경우 어색함이라든가 거부감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론을 하는 분들은 이 점을 상당히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번역어라는 것이 널리 쓰이기 위해서 만든 용어라면 이런 화용론적인 측면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실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번역어나 철학 개념으로 채택되면,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 용어는 몇몇 전공 학자들의 테두리를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일례로 칸트 철학은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도입된 철학이지만, 칸트 전공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들 중에는 아직까지도 그들만의 용어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예취”라든가 “통각” 또는 “오성” 같은 것들이 그렇죠. 현상학에서 사용하는 “충전성(充全性)”이나 “현전”, “현성(現成)”, “시숙(時熟)” 같은 용어들도 그런 예가 되겠죠. 좀 나쁘게 말한다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용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의념”이나 “역능”이라는 단어도 이와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이 용어들이 사용된다 해도 그것은 일부의 들뢰즈, 네그리 전공자들, 또 발리바르 연구자들의 테두리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최원 형은 마지막에서 “관개체성”, 곧 “transindividualité”라는 개념을 언급했는데, 이 개념은 puissance나 notion이라는 개념과는 처지가 좀 다르죠. “transindividualité”는 “trans-”라는 접두어를 추가해서 만든 신조어인 반면, puissance나 notion은 흔히 쓰이는 일상적인 단어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신조어도 가능한 한 일상 생황에서 쓰이는, 좀더 자연스럽고 편한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원칙이겠지요.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부득이 새로운 말로 표현해야겠지만 ...

notion이나 puissance에 관해서는 좀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벌써 상당히 이야기가 길어졌으니까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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