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중독 - 불안과 후회를 끊어내고 오늘을 사는 법
닉 트렌턴 지음, 박지선 옮김 / 갤리온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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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조금 회피하고 있던 책들이 있다. "너의 태도를 바꾸면, 너의 삶이 달라진다"는 종류의 책들이다. 실은,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는 책이다. 그래서 요 몇달은 좀 피하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이 책도 그런 종류의 책이다. 아마도, 나의 행동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생각 중독.

'중독'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세 가지 뜻 모두 좋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결국 생각이든 무엇이든 중독은, 그러니까 과한 것은 아니한 만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 없이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결국, 내게 필요한 만큼 생각하고, 내 행동이나 삶이 나아질 정도만 생각해야지, 그것이 과해서 생각이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이 생각을 하다보면,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책에서는 "생각 과잉은 특정 사안을 지나치게 분석하고 평가하고 반추하고 걱정하는 것을 멈출 수 없어서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생각 과잉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왜 불안해 하는가? 생각 과잉, 생각 중독으로 이어지는 불안의 원인을 이 책에서는 자기 자신과 환경, 두 가지로 분석한다.


어떤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불안이 더 심한 성향을 타고나지만, 유전자가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생각을 한다->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생각 과잉에 빠진다는 악순환을 이어간다. 그런가 하면 집과 사무실처럼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환경이 불안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수선하고 어둡고 시끄러우면 우리는 불안해진다. 그리고, 사회, 문화적 환경(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경험)때문에 불안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과잉은 신체적, 정신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의 어려움도 야기한다.


우리가 생각과잉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그것을 방지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책에서는 4A 스트레스 관리법(4A: 회피, 변경, 수용, 적응), 스트레스 일기쓰기, 5-4-3-2-1 그라운딩 기법(감각에 집중) 등을 소개한다. 공황장애 같은 극단적인 상태에 몰린 사람들에게 유용한 기법이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불안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직장인으로서 관심을 갖게 되는 영역이 있는데, 그것인 바로 잘못된 시간 관리다. 불안을 줄이려면 의식적으로 시간 관리를 해야 한다. 아주 흔한 처방이지만, 할 일 목록을 정기적으로 만들고 업무 우선순위를 정하며 목표를 작은 단위로 나누는 것이다. 아니면, 앨런식 입력값 처리법(전화와 이메일처럼 아주 사소한 자극을 비롯한 입력값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하고 점검한 후 특정 자극에 다른 자극보다 먼저 대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계획하는 것)이나 스마트한 목표 설정도 유용한 기법이다. 목표를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목표 달성에 대한 측정 기준을 설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목표는 반드시 달성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목표가 자신의 가치 체계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이 목표를 달성하면 어떤 삶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지 평가하고, 합리적인 시간 안에 해내도록 한다.


이미 불안이 극에 달했거나 통제 불능 상태라고 느낄 때는, 자율 이완훈련, 유도 심상, 점진적 근육 이완, 걱정 미루기 등의 방법을 사용해볼 수 있다. 불안을 많이 유발하는 부정적인 사고 패턴에 갇힌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사고 패턴을 파악하고 이를 더 긍정적인 태도로 바꾸어 정신 건강을 개선해야 한다. 자신이 빠지기 쉬운 인지 왜곡(흑백논리 사고 등)을 파악하고, 어떤 상황, 사람, 환경이 특정 사고 패턴을 촉발하는지를 확인한다. 이러한 인지 왜곡을 이해한 후에는 자신의 사고 패턴을 바꿀 방법을 알아야 한다. 책에서는 행동 실험 기법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는 불안과 생각 과잉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략을 제시한다. 물론 그 전략이 아주 새롭거나 지금 당장 효과가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참고만 하자.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는 마음가짐은 다음과 같다.

1.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2.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3.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집중한다.

4.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한다.


저자는 "반추는 불안을 키우고 비생산적으로 만드는 생각 과잉"이라고 말한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지짜 문제해결을 위한 생각인지, 단순히 반추인지 자문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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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지음, 이윤실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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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반캄 탐마봉사는 라오스계 캐나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라오스 난민촌에서 태어났다는 작가는 

한살에 정부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이주하여 살았다고 한다. 


한살이라는 나이는, 

라오스에서의 생활을 전혀 기억할 수 없는 나이다.

과거의 우리나라 이민자들의 자녀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오히려 떠나온 나라보다, 살고 있는 그곳이

그들의 고향이고, 그들의 터전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원주민들의 눈에는

그들의 직업과, 그들의 세금과, 그들의 땅을 훔쳐가는 

이들로 보였을 것이다.


아, 지금도, 

우리나라에도 그런 시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 많음을, 본다. 

그런 이들은 더 큰 소리를 낸다.

마치 우리가 많은 것을 그들때문에 잃는 것처럼.


그러니, 이 작가의 소설 곳곳에 드러난 

주인공들의 삶이 낯설지만은 않다.


책 제목이자, 맨 앞에 자리한 소설이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이다. 

왜 이 책의 제목이 되었는지,

소설을 읽자마자 알 수 있었다.

14개의 소설 중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드러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나마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소설일지도..


라오스에서 온 조이는

학교에서 매일 쪽지를 받아오지만, 

조이의 부모는 그것을 읽지 않는다.


라오스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탄탄한 직장에 다녔던 아빠는

이곳에 온 다른 친구들이, 그리고 본인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지금까지의 삶은 없었던 듯,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조이에게 라오어를 쓰지 말라고 한다. 


"네가 라오스인인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어디서 왔는지 말해서 좋을 게 없어."(p.13)


조이는, 

읽기연습을 하다 도저히 어떻게 읽어야할 지 모르는 단어를

아빠에게 물어본다.


"카-나-아이-프으, 카나이프"(p.15)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익히는 것과 같다.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것을

배워서 익히기위해서는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조이는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묵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걸 알지 못한다고, 알지 못했다고 해서

아빠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벽에 핀 곰팡이는 바닥 부근의 검은색 작은 점에서 시작됐다. 

아무 조취도 취하지 않자 곰팡이는 천장까지 퍼져나갔다. 

마치 검은색 민들레로 뒤덮인 들판처럼 보였다. 

누군가 내게 어디 출신이고 어디서 자랐는지 물으면 나는 그 장면이 떠오른다." (p.183)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들.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왔지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들.

나는, 이것이 굳이 국제적인 관계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서도 아직은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슬픈...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계측과 계급으로 선이 그어져있음을 느낀다.

아니라고 말하지만, 정말 아닌 것일까.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을 읽다보면,

그 슬픔 속에 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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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기린 - 제2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대상 수상작 파란 이야기 20
김유경 지음, 홍지혜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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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책을 읽을 때, 나만의 상상으로 시작한다.

이 책은 어떤 책일까?

헤드카피와, 책 제목과, 책 표지를 보는데,

뒷표지를 보는 건 상상이 끝난 다음이다.


《창밖의 기린》은 묘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뭔가 특별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데,

표지 그림은 기린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기린은 가상의 존재일까?


프롤로그

'리버뷰'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로 육체 없이 정신만을 옮겨 놓은 네트워크 세상이다. 인공 지능 에모스는 지구의 기후 위기가 인간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인류는 에모스에게 리버뷰의 설계를 맡겼고, 리버뷰가 완성되자 '지구 청소 정책'에 따라 모든 인류가 이곳으로 이주하기로 했다. 지상과 리버뷰 둘 다 에모스가 관리하는데, '관리'라는 표현은 에모스가 원하는 것이고 '통치'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 각 나라에는 정부와 대통령 대신 '리버뷰 연합'이라는 조직이 들어섰고, 인류는 언제나 정당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에모스를 신뢰했다.

창밖의 기린 p.7


프롤로그를 읽었다.

리버뷰, 마인드업로딩, 네트워크세상, 에모스, 기후위기

아, 그 어디에도 기린의 정체는 없다. 뭐지? 왜 기린이지?


재이의 가족들은, 리버뷰로 이주를 했다. 

책에서 마인드업로딩이라는 기술로 표현되는데, 

재이만 벌써 세번째 업로딩을 하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이는 마임드 업로딩이 되지 않는다.


재이네 집 거실에 놓인 리버뷰 시계에는 '85.3'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전 세계 인구 중 85.3퍼센트가 리버뷰로 옮겨 갔다는 의미이고, 

전 세계 인구 중 14.7퍼센트만이 지상에 남아 있는데 재이도 그중 하나란 말이다.


"에모스는 리버뷰로 넘어간 인구가 전체 인구의 90퍼센트가 넘는 순간부터 지상에 남아 있는 인간을 관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에모스가 계산해 보니 10퍼센트 정도의 잔류 인구는 지구 환경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p.19)


뭘까? 

그러면 이건 지구환경을 다룬 책인가?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내 머릿속에선, 

지구에 해가 되는 사람 90%를 리버뷰로 옮기고, 

지구에 무해한 사람들만 남기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재이가 업로딩이 되지 않는 건 

재이가 지구에 이익이 되는 사람, 자연과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서라고...


이런 상상을 하며 계속 읽어본다.


책은, 한장 한장을 넘길 때 이런 나의 상상이 작가의 상상과 맞아떨어질 지, 

아예 빗나갈지에 따라 흥미로워진다.

나의 생각은, 맞았을까? ^^


<리버뷰에 관한 에모스와 인간의 약속>

1. 에모스는 리버뷰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관리한다.

2. 에모스는 잔류 인구가 10퍼센트 미만일 경우에는 지상에 있는 인간을 관리하지 않는다. 단, 인간이 먼저 요청할 때는 도움을 준다.

3. 에모스는 인간의 행동이 리버뷰나 지구에 위해가 될 경우 특별 관리한다.

4. 관리 방법은 에모스의 판단에 맡긴다.

창밖의 기린 p,20


주인공 재이는 결국 네트워크 세계인 '리버뷰' 입주를 위한 업로딩을 미루고

(재이의 머리 속에 생긴 브라운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다. 

재이의 집 마당에 어느날, 기린이 한 마리 들어온다.

(오호 드디어 기린인가?) 기린이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하는 재이, 

그리고 점점 '브라운'이 자기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재이는 기린에게 '럭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리버뷰 입주를 포기하고 떠난 친구 소라를 만난다.


사실, 재이는 어린 시절 동물과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았고, 그 능력을 감추고 살아왔다. 

그러다 기린 럭키와 만나면서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만난 소라와 

지금의 현실과 상황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나의 상상은, 조금 엇나갔지만, 

재이와 소라의 만남을 통해 인공지능이 더 발달한 훗날의 지구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우리는 많은 영화나 이야기를 통해, 

인공지능이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어두운 현실에 대해 많이 접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처음엔 역시 이 이야기도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반대였다.

인공지능은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90%를 리버뷰로 보내버린 후의 지구는 그야말로 상쾌한 지구의 모습이다. 

지구에는 인간만 살고 있는 게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의식하게 된다. 

우리와 함께 하는 반려동물들 뿐만 아니라, 

보호구역에 있는 동물들, 야생에 살고 있는 동물들, 

그리고 수많은 식물들... 

그들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이기적인 인간의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닐까?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일까?”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어린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를 살면서, 

인간만이 아니라 모두가,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 지구를 구성하는 모두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한 후에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초등 고학년용이지만, 

책 좀 읽는 3~4학년 어린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어른들에게도 추천한다. 반려동물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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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25-08-08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감사합니다.
 
나는 문어 스콜라 창작 그림책 101
서수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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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문어가 귀여운 모습으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책이다. 

제목을 보자.

"나는 문어"


그림책을 보기 전에 상상을 해 본다.

이 그림책은 무슨 내용일까?

제목을 보니, 

'자존감, 자기애, 자긍심'

'자신감, 확신, 자기신뢰'

'자기의식, 자기성찰, 자기이해'

와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앞표지에서는 단서를 그다지 잡을 수 없다.

뒷표지에서는 "깊은 바닷속에서도 보물처럼 반짝이는 나, 있잖아, 나는 내가 정말 좋아!"라는 카피가 보인다. 역시 제목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건강하게만 태어나렴

다른 건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단다.


음, 나는 참 못된 생각이긴 한데,

이 말처럼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문장이 또 있을까 싶다.

모두들, 이런 마음으로 아이의 탄생을 기다린다고 해놓고

아이가 태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각도, 행동도 다 바뀌어 버리니까..

그저 건강하게 태어나서 무탈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런 생각을 가진 양육자들도 이 그림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이건 아이들에게 

'너는 소중하단다, 너는 너라서 아름답단다'를 알려주고 싶다기보다

양육자들에게 건네는 이야기같다.


온갖 육아서적을 쌓아두고(물론 읽었겠지?) 

좋은 음악을 들으며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 조개 안에는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진주가 있다.

동글동글한 진주, 반짝반짝 빛나는 진주 말이다.


읏차~~ 진주가 태어나리라는 상상은 깨지고, 

문어가 태어난다.

물론 '진주'라는 이름을 가진 문어의 엄마는 

문어를 진주로 키우려고 애쓴다.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당연히 진주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내 아이가 다른 진주들과는 좀 다르다는 걸 알아챘겠지만,

그래도 수많은 진주들처럼 우리 '진주'도 빛나는 진주가 되기를 바란다.


동글동글 진주가 되기 위해 굴려지는 진주들.

어째서 타코야끼가 생각나는걸까?

진주들은 동글동글해진 모습으로 나오지만, 

'진주'인 문어는 힘들기만 하다.


결국, '진주'라는 이름을 가진 문어가 자기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이 반짝반짝 빛나는 진주는 아니지만, 

먹물을 힘차게 뿜어내며, 

긴 다리에 붙은 빨판을 이용해 진주들과 함께 논다.


진주인 줄 알고 태어났지만,

문어였던 문어 이야기.

문어는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하면서 살 때

행복해졌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을까?

획일화된 모습으로,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키우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나라서 행복한 삶,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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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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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가제본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집이다. 작은 일기라는 제목처럼, 일기로 써내려간 기록이다.

작가가 써내려간 기록들을 읽으며, 나는 내가 경험한 그 시간들을 다시 되살려본다. 내가 잠든 그 밤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던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의결로 해산, 그리고 그 뒤로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내란 우두머리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의 끊임없는 상식 밖의 짓거리는 아직도 여전하다.

작가는 거리와 광장을 오가며 시민들의 분노와 연대,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낌 소외와 따뜻함까지를 생상하게 담아낸다. 나와 우리집 딸아이도 그 일이 일어났던 다음날 서면에 나가 길거리에서 함께 했지만, 서울에서 느꼈던 것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지역의 목소리는, 아니, 부산의 목소리는 조금, 조금 작았다고 느낀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과 염원은 서울, 부산이라는 공간을 떠나 같았을지라도... 뭘 하든 눈감고 표를 주는 부산에서는 확실히 내가, 내 아이가 서울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분명 달랐던 것 같다.

이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작가는 식물을 돌보거나, 책을 읽거나(아, 저자가 언급한 도서들을 읽어보리라 생각하며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사소한 순간도 함께 기록한다. 그리고 광장에서 만난 다양한 세대와 연대하는 사람들을 통해 아직은 세상을 사랑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발견한다.

하룻밤 사이에 상황은 바뀌었지만, 그날 이후 (지난 3년 동안 일어난 비상식의 세계를 압축하여 보여주듯)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보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2016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광장이 진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이 사태 초반부터 광장을 채운 다수 구성원의 영향일 것이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 여성들."(p.58)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술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p.83)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글이나 말로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미안하고.

놀랍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고."(p.85~86)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 줄 절반 이상이 이삽십대 남성이라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같은 세대 여성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려고 추운 날 거리를 돌아다니고 서로를 돌보며 밤을 새우고는 할 때, 저들은 비틀린 세계 인식과 자아 인식으로 국가기관인 사법부에서 난동을 부렸다. 대가를 치를 것이다. 동시에 이 광경을 봐야 하는 사회 구성원들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려쳐온 걸까. 1월 19일 새벽, 우리 사회가 그간 육성해 온 일부가 크게 자라나 이 괴상망측한 열매를 거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이것도 과정이지, 결과도 아닐 것이다. 젊은 남성들의 이 고집스러운 고집이 징그럽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 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트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이 그들과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스펙트럼으로 이 내란을 보면 윤석열이 그들의 일면이기도 할 테니까."(p.98~99)

"나는 딱히 상식의 편도 아니었는데, 이 사회 상식의 수준이 무너져가는 걸 지켜보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p.99)

"지난 두달은 아름답고 좋은 것들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그보다 내게는 오염의 시간이었다. 뭐가 오염되었느냐면. 매일 갱신되는 새로운 사건과 경악과 한계가 없는 것 같은 질 낮음으로, 어제의 경악이 오늘의 경악으로 무던해지는 일이 반복되어서, 그런 식으로 세상을 향한 감(感)이 오염."(p.102)

"공부를 잘한다는 건 뭘까. 내린 이후로 엘리트 카르텔과 부패의 면면을 이렇게 속속 확인하고 보니 이 사회의 '공부'가 틀렸다는 걸 새삼, 정말로 뼈가 아프게 알겠다. 이제 이 사회에서 어떤 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건, 그를 양육한 보호자들에게 경제적, 문화적, 인적 자원이 충분했다는 것 말고,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p.111)

"초법적 존재들. 초밥적 운명 공동체들. 초법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며 온갖 위법한 일을 저지른 자들이 법의 보호를 이토록 꼼꼼하게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 내게 너무나 큰 무력감을 안긴다. 이 사회에 강고하게, 혹은 헐겁더라도 분명하게 장벽으로 존재했던 상식, 규범, 법규.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것을 홀로그램인 양 관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지금 매일 목격하고 있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도덕률이 있다. 나머지 다수의 세계가 비난하고 경악해도, 자기들끼리 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납득하는, 되니까 되는, 어떤 도덕, 어떤 상식, 어떤 자연율이 저들에게 따로 있다."(p.112~113)

그 일이 있고 난 후,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곧이어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작가의 에세이는 여기까지는 가지 않는다. 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일, 그리고 선거를 치루고, 대통령이 당선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뻔뻔스러운' 그들은 본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상식이 어디까지 몰상식화되는지, 국민을 대변한다는 그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지를 본다.

요 며칠은, 부산지역 정치인들이, 해수부 이전을 반대하고, 민생지원 25만원이 필요없다고 외치고 있다. 이건, 미친 짓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인과 바다'라던 부산이 '노인과 아파트'라는 오명으로 불리우고 있는다는데, 일거리도 발로 차고, 소비진작을 위한 지원금마저 튕겨내려고 발악한다.

나는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읽으면서, 숨가쁘게 흘러 온 지난 반년을 떠올린다.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그 일을 겪고도 붉은색으로 덮여있던 우리 지역의 대통령 선거를 기억한다.

덧붙임: 상식이 무너진 국가가 한국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경악스럽다.



** 클럽창비 회원으로, 이 책은 창비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협찬(광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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