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지음, 이윤실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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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반캄 탐마봉사는 라오스계 캐나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라오스 난민촌에서 태어났다는 작가는 

한살에 정부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이주하여 살았다고 한다. 


한살이라는 나이는, 

라오스에서의 생활을 전혀 기억할 수 없는 나이다.

과거의 우리나라 이민자들의 자녀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오히려 떠나온 나라보다, 살고 있는 그곳이

그들의 고향이고, 그들의 터전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원주민들의 눈에는

그들의 직업과, 그들의 세금과, 그들의 땅을 훔쳐가는 

이들로 보였을 것이다.


아, 지금도, 

우리나라에도 그런 시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 많음을, 본다. 

그런 이들은 더 큰 소리를 낸다.

마치 우리가 많은 것을 그들때문에 잃는 것처럼.


그러니, 이 작가의 소설 곳곳에 드러난 

주인공들의 삶이 낯설지만은 않다.


책 제목이자, 맨 앞에 자리한 소설이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이다. 

왜 이 책의 제목이 되었는지,

소설을 읽자마자 알 수 있었다.

14개의 소설 중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드러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나마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소설일지도..


라오스에서 온 조이는

학교에서 매일 쪽지를 받아오지만, 

조이의 부모는 그것을 읽지 않는다.


라오스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탄탄한 직장에 다녔던 아빠는

이곳에 온 다른 친구들이, 그리고 본인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지금까지의 삶은 없었던 듯,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조이에게 라오어를 쓰지 말라고 한다. 


"네가 라오스인인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어디서 왔는지 말해서 좋을 게 없어."(p.13)


조이는, 

읽기연습을 하다 도저히 어떻게 읽어야할 지 모르는 단어를

아빠에게 물어본다.


"카-나-아이-프으, 카나이프"(p.15)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익히는 것과 같다.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것을

배워서 익히기위해서는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조이는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묵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걸 알지 못한다고, 알지 못했다고 해서

아빠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벽에 핀 곰팡이는 바닥 부근의 검은색 작은 점에서 시작됐다. 

아무 조취도 취하지 않자 곰팡이는 천장까지 퍼져나갔다. 

마치 검은색 민들레로 뒤덮인 들판처럼 보였다. 

누군가 내게 어디 출신이고 어디서 자랐는지 물으면 나는 그 장면이 떠오른다." (p.183)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들.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왔지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들.

나는, 이것이 굳이 국제적인 관계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서도 아직은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슬픈...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계측과 계급으로 선이 그어져있음을 느낀다.

아니라고 말하지만, 정말 아닌 것일까.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을 읽다보면,

그 슬픔 속에 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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