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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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말은 종교인들은 신을 위대하다고 생각한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는 어떤 거창한 목적이 있어서라거나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종교 역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따라서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종교가 없어도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생각이 저자의 주장 속에 들어있다. 종교란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냈다는 것. 그러므로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에 불과하며 그 신이 한 일과 계시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종교가 없다고 해서,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적대시한 적이 없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종교인들도 내가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종교를 강요한 적도 없다. 물론 내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종교를 강요당한 적은 있지만. 어쨌든, 내가 신을 믿지 않는다, 아니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고 해서 이 책의 저자와 모든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미리 말해두자.

일단, 이 책은 내용적으로는 소재와 주제, 외관적으로는 두께 때문에 상당히 읽기 힘든 책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책을 읽기 시작하자 상당한 속도감으로 읽히는 책이었다. 저자의 글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각 소제목을 살펴보면, 종교인들이라면 핏대를 세울 만한 제목들이 보인다. 물론 나에게는 흥미로운 제목이었지만 말이다. 종교가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거나, 코란의 내용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화를 빌려온 것이라든가, 값싼 기적, 종교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가, 종교는 아동 학대인가 등등.

아래와 같은 문장을 보면, 저자는 종교를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전제한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신성모독에 해당될까?

"종교는 언제나 신자가 아닌 사람, 이단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의 삶에 끼어들려고 한다. 황홀하기 짝이 없는 내세를 이야기하면서도 이승에서 권력을 잡고 싶어 한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종교는 결국 속속들이 인간이 만든 것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종교는 자신의 다양한 가르침을 스스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의 공존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p.33-34)"

“첫째, 종교와 교회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이 사실이 너무나 뻔히 드러나 있어서 무시할 수가 없다. 둘째, 윤리와 도덕은 신앙과 그다지 결부되어 있지 않으며, 신앙에서 유래할 수 없다. 셋째, 종교는 자신의 행위와 믿음 덕분에 신에게서 특별한 면죄부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무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기도 하다.” (p.84)

"종교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종교가 대개 남성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통해서도 증명된다.“(p.87)

저자와 나의 일치하는 생각은 아래와 같은 문장이다. “믿음이 개인의 선택이 된 지금 신자들의 행동은 그들 자신이 알아서 할 문제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강제적인 방식으로 종교를 주입하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도 신경 쓸 필요 없다.”(p.146) 사실, 종교가 있든 없든 간에, 자기네들의 종교를 강요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은, 그들의 종교를 믿지 않으면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협박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의 종교 테두리 안으로 몰아넣고 싶은 것일까? 나와 같은 사람들이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때는 그런 협박을 받아 무서움을 느꼈을 때보다는, 그들의 행동이 귀감이 되어 그들의 종교를 새롭게 보게 될 때이다. 그다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저자는 이런 경우에도 그들의 종교 때문에 그런 선행이나 귀감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본성에서 우러나온 행동이고 우연히 그 행동을 한 사람들의 종교가 그것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즉 종교보다 인간의 본성이 먼저라는 것이다.

불신자, 이단자, 종교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자행된 만행은 저자가 예를 들어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도 많다. 대량학살과 수많은 전쟁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자행되었고, 표면적으로는 종교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들도, 대다수의 종교인들이 그 일에 침묵함으로써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들도 많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이고 만들어진 신이니 인간의 필요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종교는 아주 다양하다. 가톨릭과 개신교, 유대교와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도, 모르몬교, 통일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여호와의 증인, 부두교, 등등을 비롯하여 인간을 신격화하여 비롯된 문제들(예를 들어 북한, 일본 등)까지 다양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저자의 자료들은 저자의 주장을 증명하는데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나 또한, 그 많은 일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비종교인인 내가 읽기에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으나, 혹여 종교인이 읽는다하여도 배타적으로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거나, 침묵한 일들에 대해 반성을 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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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 메타포 2
클라라 비달 지음, 이효숙 옮김 / 메타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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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주인공은, 나쁜 엄마가 아니라 바로 그 엄마의 딸인 멜리다. 철저하게 멜리의 시각으로만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멜리가 되었다. 멜리는 엄마를 두 명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분홍빛의 상냥한 엄마, 또 하나는 검은 빛의 악독한 엄마이다. 어느 쪽이 진짜 엄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분홍빛의 엄마가 진짜 엄마였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으며, 검은 엄마를 동정하고 위로하면서 그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소녀가 멜리다.

엄마는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으며, 그 병이 멜리에게 두 명의 엄마가 있다고 느끼게 한다. 물론 멜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고 하니 오래된 병이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멜리의 엄마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 역시 그런 이중적인 면이 많았음을 인정해야겠다. 나의 컨디션에 따라 똑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적이 분명 있었음을. 그리고 그러한 나의 태도는 아이에게 혼란을 느끼게 해주었을 거라는 것을. 멜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두 가지 행동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이 혼자 놀고 있도록 옆에 앉혀놓았다. 사실, 매주 토요일은 아이 아빠가 나를 위해 시간을 주기로 한 날이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토요일로 미뤄놓은 일을 해야만 하는 나는, 엄마의 일을 방해하고 같이 놀자고 떼를 쓰는 아이를 옆에 둔 채, 혹은 등에 업고 엉거주춤하게 앉은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다른 날은 괜찮은데 토요일만 되면 화를 내는 나는 나쁜 엄마일까? 아닐까?

멜리의 엄마는, 남들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하고 좋은 엄마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인정받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완벽한 엄마를 연기한다. 또한 엄마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검은 엄마의 모습을 드러내며 아이를 경멸하고 모욕을 준다. 아니, 멜리는 모욕을 준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이중적인 생활은 물론 엄마의 우울증이나 자살충동 등을 통해 병적인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런 엄마를 대하는 아빠나 할머니,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므로 멜리가 어렸을 때 엄마의 이중적인 행동(예를 들면 토요일의 나의 행동과 같은)을 두 명의 엄마가 있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망상이 커진 것은 아닐까? 엄마가 좋아하는 행동만을 해야 하고, 검은 엄마와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은 멜리이다. 3이라는 숫자(아빠, 엄마, 멜리가 포함된 가족의 수 3)에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 것도 멜리의 망상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엄마는 아이와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이다. 맞벌이부부가 많은 현실에서는 엄마나 아빠나 아이에 대한 친밀감이 그리 차이가 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이 책 속의 멜리는 엄마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엄마의 존재로 인해 늘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엄마의 병은 점점 더 깊어가고(이 부분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엄마의 병이 더 깊어졌다면 엄마가 취업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멜리의 정신적 측면이 더 악화된 결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빠는 점점 더 집으로부터 멀어진다. 멜리는 엄마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늘 숨긴다. 엄마가 아닌 주변 사람은 없다. (아빠까지도 늘 부재중인 이미지이다) 결국은, 멜리에게는 관심을 보여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도 멜리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멜리와 단둘이 있고 싶어 하지 않았고, 멜리의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도 엄마 편을 들기만 했지 멜리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멜리는 철저하게 무관심 속에서 생활했다.

나 역시 딸을 키우는 엄마이다. 내가 자라면서 우리 엄마의 행동이나 생각에 많은 영향을 받았듯이 나의 딸도 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이다. 지금 내가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네가 있어서 엄마가 행복하다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이기 때문에 포기해야하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때로는 아이를 향해 나도 모르게 검은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감정들이 자꾸 쌓이다보면, 멜리처럼 내 아이도 그런 감정 상태를 겪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어린이심리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아이에게 언제나 일관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을 접한다.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나쁜 엄마를 읽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남에게 보이기 위해 아이를 이용하지는 말아야지. 내가 다른 이들로부터 좋은 엄마라 불리는 것보다 내 아이로부터 좋은 엄마라 불리고 싶다는 것. 이 책 속의 [나쁜 엄마]는 사회적으로 볼 때는 나쁜 엄마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그녀를 대해는 사회의 태도(엄마의 친구들, 그녀의 취업)를 보면 안다. 그렇지만 멜리에게는 나쁜 엄마였다. 멜리가 자기 자신의 문제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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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미술 수업 - 한 젊은 아트컨설턴트가 체험한 런던 미술현장
최선희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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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도 있고, 정보도 많았던 책을 읽었다.

이게 내 첫 소감이다. 최근에 유명 화가의 전시회 소식이 들리기도 했고, 별로 유쾌하지 못했던 사회문제에 거론된 작품때문에 새로이 알게 된 사실도 있었기때문인지, 미술관련 책들이 많이 보이는 편이다. 나의 관심이라는 것도 시류를 타고 왔다갔다하는지라 최근의 관심과 맞아떨어지는 책이기도 했다. 게다가, 아트북스에서 출간되는 [이모션]이라는 잡지를 통해 미술과 돈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금 지식을 넓혔던 터라 그런지, 크리스티에서 배운 그녀의 미술수업은 내게도 재미를 주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베트남 그림여행]이, 다른 이들에게는 좋은 평을 받았지만, 나는 실망을 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내게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그녀의 미술수업을 통해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뽐내려한 글이 아니라 사람을 매개로 쓰여진 글들이라 인간냄새가 폴폴 나면서도 정보와 지식도 소홀히 하지 않은 책이라는 점에 있다.

또, 그렇게 특별나 보이지 않는 저자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할 기회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외국인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배려도 흔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현명하게 잘 이용했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자주 만나는 나는, 그녀들도 최선희씨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그래도 항공사 근무를 했기에 어느 정도 어학에 자신이 있는 여성이었을 거고 그러니 어학에 대한 부담이 적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도 아니었다. 미국식 영어를 배운 한국인인 그녀가 프랑스에서 살아가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우고, 또 영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영국식 영어를 다시 배워야했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 그녀가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다가온 수많은 기회를 놓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언어란 필요에 의해 습득되는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이 말하는 [시각이미지]를 기억하는데 특출났던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살린 공부를 하고, 그 결과 자신의 일을 찾은 것도 귀감이 되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고 일생을 살다 죽는 일도 흔하니까 말이다. 자신의 장점은 자기 스스로 파악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어떤 경험을 통해 표출되고, 또 남에 의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 자신의 장점을 발견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또 얼마나 행운일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덕분이었다. 미술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오로지 수업내용으로 알려주려고 했다면,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는 책이 되었을까? 그녀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나는 미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 게다가, 이 책이 미술수업 자체에만 한정된 정보와 지식을 나열하고 있지는 않다. 저자가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점을 미술수업과 연계해 이야기해줌으로써 그림에 대한 선입견(어렵다는?)을 버릴 수 있었다. 또한 그녀가 생활하고 움직였던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도 참 좋았다.

크리스티라는 경매회사가 하는 일을 통해 미술품 경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것도 좋았다. 미술이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무슨무슨 경매에서 얼마에 그림이 팔렸다더라는 소식도 자주 듣는다. 그렇지만, 미술품 경매라는 것을 돈 많은 부자들의 돈자랑이라고까지 생각했던 내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기도 하다. 경매를 통해 미술품을 구입하건, 전시회에서 그림을 구입하건간에 컬렉터의 마음으로 하라는 이야기도 좋았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모은 컬렉션을 경매에 내놓은 이가, 자신의 아이들이 고급차를 사고 집을 사는데 쓰는 돈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그 작품을 진정으로 원하는 이가 가져가는게 더 좋다고 말한 컬렉터의 이야기는 컬렉터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누구는 미술품을 투기의 대상으로 구입하고, 누구는 비자금을 숨기는 용도로 사용한단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멀게만 느껴지던 미술품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가깝게 느껴졌다. 중간중간 런던에서의 미술수업과 관련된 정보를 실어놓고 있어서 이런 공부를 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동기부여가 될만한 책이다.

그뿐 아니라, 그녀가 한국의 작가들을 유럽에 소개하고 그들의 작품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신인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모습도 참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참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삶도, 커리어도,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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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53가지 - 젊은 철학자의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이야기
이창일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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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솔직히 말해서, “정말 궁금한”이라고 했는데 “그리 궁금하지는 않았던” 소재가 [예절]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예절 얘기 운운했다가는 고리타분하다는 얘기 듣기 딱 좋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절]을 소재로 책이 나왔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예절을 “세상을 살만한 것으로 만드는 현명한 삶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서두에서 밝혔듯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사랑에 관한 테크닉이 아니었던 것처럼 여기서 말하는 삶의 기술 역시 어떤 구체적인 방법론은 아니다. 그러니까 “삶의 기술로서의 예절은 우리 삶이 더 좋은 상태가 되도록, 행복한 삶이 되도록 해주는 것”(p.11)이다.




크게 관혼상제로 나누어진 이 책은, 왜 하는지도 모른 채 해왔던 것들의 의미를 알려준다.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그저 귀찮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무시했던 것들, 그리고 현대화 한답시고 마구 변형시켜버린 것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관혼상제 중에서 내가 실생활에서 접하고 그나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혼상제이다. 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아무도 내가 성년이 되었다고 축하해주지 않았고, 성년이 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성년의 날이랍시고 학교 정문 앞에서 팔던 장미꽃은 생각이 난다. 그러나, 어른들로부터 받는 제대로 된 축하가 아니었던 것이다. 옛날의 관례와 그 절차에 대해 설명을 한 다음 지금도 관례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현실로 끌고 온다. 저자는 관례의 형식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방황하는 청소년은 물론이고 무늬만 어른인 채 나이를 먹은 아이들, 어른을 회피하고 외면하려는 응석받이들, 이들에게 어른으로 들어가는 문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줄 삶의 예식이 필요”(p.56)하다고 말한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어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갖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른들의 행동만을 답습하게 되니 어른다운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혼에 대해서는 재미있게 읽었다. 나도 결혼식이란 걸 했기 때문에 그 내용이 그나마 쉽게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서양식인 결혼식이 아니라 전통혼례를 했다. 10분 20분에 한 쌍씩 급하게 해치우는 결혼식이 못마땅하기도 했고, 그렇게 할 거면서 큰돈 들이는 것이 아깝기도 해서였다. 날이 추워서 야외에서 하지는 못하고 실내에서 이루어진 전통혼례였지만, 나름대로는 의미 있는 결혼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혼여행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우선 결혼, 아니 혼인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관혼상제에는 음양오행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그것을 단순하게 미신이니 하는 식으로 폄하하기보다는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조상들의 지혜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하다. 혼과 관련된 질문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연애결혼과 중매결혼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걸 보면, 실제로는 연애결혼이든 중매결혼이든 간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옛날식의 중매결혼이라면 얼굴도 모른 채 혼인날에야 알게 될 터인데, 요즘의 중매결혼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소개로 만나기는 했으나, 어느 정도 상대에 대해 파악한 다음 혼인이 이루어진다. 또 중매로 만난 후에 1년 정도 연애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가하면 연애결혼이라 하여도 당사자들의 의견만으로 혼인이 성사되지는 않는다. 상견례를 통해 부모와 만나고 부모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지는 혼인이기 때문이다. 결혼축의금은 왜 홀수로 내는가에 대한 의견도 읽을 만하다. 그런데 결혼축의금을 홀수로 내느냐 짝수로 내느냐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왜 축의금을 내야하는가,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적어놓는 것은 괜찮은가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궁금하니까.(^^) 면사포가 어떤 의미가 있나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종교적 관점, 남녀차별에 대한 생각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섞어놓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생각할 바가 많은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너울’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 페이지의 그림이 뜬금없는 ‘장옷’이라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상과 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상의 경우 예전과 달리 전문업체가 맡아서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보니 상에 대해 잘 몰라도 그런대로 진행이 되기는 하지만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따른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나도 몇 년 전 아버지의 상을 치루면서 이것저것 경험해본 터에 이 책이 설명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런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조금 어렵지 않나(책을 쓴 저자는 쉽게 풀어놓았으나 그 내용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는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일 듯)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의 경우에는 그런대로 이해가 쉬울 듯하다. 차례를 비롯하여 기제사는 대부분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니까. 이 책에서 지적한 대로 제사에 관해서는 생각해야 할 점이 많다. 종교적인 이유로 싸움이 나는 집을 나도 몇 번 봤으니 말이다. 저자의 글이 때로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이는 아무래도 전통 풍습과 기독교가 많이 부딪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굳이 저자가 기독교를 비판했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관혼상제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많은 생각이 스친다. 명절 때면 연휴라고 좋아하고, 성년식이든 결혼식이든 이벤트가 되어버렸고, 상업화의 물결에 휩쓸려 다니는 상례가 그러하고, 제사 때문에 싸우기도 하는 걸 보면서 이런 걸 그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치부하고 말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현대에 어울리는 접점을 찾아 유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저자의 글 모두에 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예절 속에 담긴 정신만은 올바르게 계승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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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거울 메타포 1
미하엘 엔데 지음, 에드가 엔데 그림, 이병서 옮김 / 메타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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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거울]을 본 적이 있는가. 거울 속의 거울은 끊임없이 똑같은 상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현실이 아닌가를 구분할 수 없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이 그러하듯, 이 책의 내용이 바로 거울 속의 거울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맨 앞으로 돌리기를 수차례, 결국 맨 앞이라는 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깨달은 다음에야, 편안하게 읽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끝까지 읽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포기했을 지도 모를 책이었다. 그러나, 순서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나자, 짧은 단편 읽듯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자, 희한하게도, 책 중반을 넘어서자 익숙한 인물들, 익숙한 소품들이 재차 등장하면서 책을 전체적으로 바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거기서부터 이 책은 재미를 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 순간부터 다시 그 인물과 소품을 찾아 앞으로 넘기지는 않았다. 그건 나를 또다시 지치게 할 게 뻔하니까. 그냥, 끝까지 읽어나가는 사이에 미하엘 엔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기를 바랐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오,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몇 번을 맨 앞으로 되돌리다 역자후기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솔직히 소설보다 역자 후기가 더 어려웠다. 그것은, A부터 Z까지 퍼즐 맞추기를 하듯 읽기에는, 번역텍스트로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작품의 원문에 나오는 수많은 단어 가운데 'Y'로 시작하는 유일한 단어 'Ypsilon'을 내가 어떻게 찾아내겠는가. 원문에서 주는 묘미는 번역작을 읽는 사람이 감수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문학작품을 읽는데 있어서 그 감상 혹은 의미를 찾는 일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바가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의도를 알아차림으로써 그 작품이 빛을 보겠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한 단어나 문장을 통해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독자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18. 남편과 아내가 전시회에 가려고 한다 : 전시회에서 남편과 아내가 본 작품들을 한번 보자. [양, 총채, 사막의 모래, 불타는 횃불, 그물, 상자 모양 추시계, 비둘기 집, 시한폭탄, 문자, 물고기 눈, 양철통, 목발, 달걀, 이파리, 망원경, 서커스 채찍] 전시회의 작품들은 이 책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중요한 소재들이다. 책 속 주인공들에게는 현실인 세계가 또 다른 책속 주인공들에게는 의미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 전시회의 작품에 불과하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나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올바로 인식함으로써 과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과제인 셈이었다. (p.19)

“모든 걸 다 놓아야 해!”, “억지로 하는 상황이 되기 전에, 너 스스로 자진해서 해. 그렇지 않으면 때를 놓치게 돼.”, “그 불안도 놓아야 해!”, “너 자신도 놓아야 해!”(p.116) “별들은 서로 부딪치는 일 없이 저마다 자기 궤도에서 서로서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 별들은 서로 피붙이기 때문이야. 우리 역시 그래야만 하는 거야. 나의 일부는 네 속에 있어. 우리는 서로서로 받혀주는 거야. 그것 말고 아무것도 우리를 받혀주지 않아. 우리는 원을 그리는 별이야. 그러니 모든 것을 버려라! 그리고 자유롭게 되라!” “너는 자유롭게 되거나, 아니면 너는 존재하지 않게 될거야.” (p.121-122)

“자신이야말로 이 세계가 존재하도록 자기 주변의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p.128)

24. 검은 하늘 아래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가 있다 : 무대 뒤의 피가드가 관객 중의 한 아이의 상상에 의해 엔데로 되살아나고, 엔데는 아이에게 미하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아버지는 아이의 상상에 의해 태어나고, 아버지는 아이를 구체화시켜준다. 내가 상상하고 창조해내는 것들이 나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그것이 나의 존재를 의미있게 만든다.

26. 교실에는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 24에 이어 역시 상상이 큰 역할을 하는 장이다. 교실에 갇혀서 빠져나가지 못하던 사람들이 상상을 통해 칠판 속으로 사라진다. 그들은 자신의 배역을 창조해내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떠난다.

27. 우리는 배우들의 복도에서 몇 백 명이나 되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 그들은 모두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의상을 준비한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이 삶은 우리가 창조한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9. 서커스가 불타고 있다 : 꿈에서 깨어나라. 여기는 현실이 아닌 꿈일 뿐이다. “모든 것은 꿈. 모두 꿈이란 걸 난 알아. 내가 존재한다고 꿈꾸기 시작한 때부터 난 쭉 알고 있었어. 이 세계는 현실이 아니야.” (p.362)

거울 속의 거울은 이렇게 현실이 아닌 세계를 마구 만들어낸다. 결국은 어느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조차 구분되지 못하게 말이다. 결국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 육체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 역시 아무도안, 아무도 아닌 사람일 뿐이다. 존재에 대해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는 책, 그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생각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매력으로 끌어당기는 책. 결코 한 번 읽어서는 그 맛을 모를 것이다. 입안에서 씹고 또 씹어서 넘긴 음식처럼 그렇게 책을 읽고 또 읽게 만든다.

덧붙임 : 번역자의 유머감각일까? “그건 그 때그 때 달라요.”(p.405) 띄어쓰기에 유의해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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