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미술 수업 - 한 젊은 아트컨설턴트가 체험한 런던 미술현장
최선희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재미도 있고, 정보도 많았던 책을 읽었다.

이게 내 첫 소감이다. 최근에 유명 화가의 전시회 소식이 들리기도 했고, 별로 유쾌하지 못했던 사회문제에 거론된 작품때문에 새로이 알게 된 사실도 있었기때문인지, 미술관련 책들이 많이 보이는 편이다. 나의 관심이라는 것도 시류를 타고 왔다갔다하는지라 최근의 관심과 맞아떨어지는 책이기도 했다. 게다가, 아트북스에서 출간되는 [이모션]이라는 잡지를 통해 미술과 돈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금 지식을 넓혔던 터라 그런지, 크리스티에서 배운 그녀의 미술수업은 내게도 재미를 주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베트남 그림여행]이, 다른 이들에게는 좋은 평을 받았지만, 나는 실망을 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내게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그녀의 미술수업을 통해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뽐내려한 글이 아니라 사람을 매개로 쓰여진 글들이라 인간냄새가 폴폴 나면서도 정보와 지식도 소홀히 하지 않은 책이라는 점에 있다.

또, 그렇게 특별나 보이지 않는 저자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할 기회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외국인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배려도 흔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현명하게 잘 이용했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자주 만나는 나는, 그녀들도 최선희씨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그래도 항공사 근무를 했기에 어느 정도 어학에 자신이 있는 여성이었을 거고 그러니 어학에 대한 부담이 적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도 아니었다. 미국식 영어를 배운 한국인인 그녀가 프랑스에서 살아가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우고, 또 영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영국식 영어를 다시 배워야했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 그녀가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다가온 수많은 기회를 놓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언어란 필요에 의해 습득되는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이 말하는 [시각이미지]를 기억하는데 특출났던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살린 공부를 하고, 그 결과 자신의 일을 찾은 것도 귀감이 되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고 일생을 살다 죽는 일도 흔하니까 말이다. 자신의 장점은 자기 스스로 파악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어떤 경험을 통해 표출되고, 또 남에 의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 자신의 장점을 발견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또 얼마나 행운일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덕분이었다. 미술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오로지 수업내용으로 알려주려고 했다면,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는 책이 되었을까? 그녀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나는 미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 게다가, 이 책이 미술수업 자체에만 한정된 정보와 지식을 나열하고 있지는 않다. 저자가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점을 미술수업과 연계해 이야기해줌으로써 그림에 대한 선입견(어렵다는?)을 버릴 수 있었다. 또한 그녀가 생활하고 움직였던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도 참 좋았다.

크리스티라는 경매회사가 하는 일을 통해 미술품 경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것도 좋았다. 미술이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무슨무슨 경매에서 얼마에 그림이 팔렸다더라는 소식도 자주 듣는다. 그렇지만, 미술품 경매라는 것을 돈 많은 부자들의 돈자랑이라고까지 생각했던 내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기도 하다. 경매를 통해 미술품을 구입하건, 전시회에서 그림을 구입하건간에 컬렉터의 마음으로 하라는 이야기도 좋았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모은 컬렉션을 경매에 내놓은 이가, 자신의 아이들이 고급차를 사고 집을 사는데 쓰는 돈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그 작품을 진정으로 원하는 이가 가져가는게 더 좋다고 말한 컬렉터의 이야기는 컬렉터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누구는 미술품을 투기의 대상으로 구입하고, 누구는 비자금을 숨기는 용도로 사용한단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멀게만 느껴지던 미술품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가깝게 느껴졌다. 중간중간 런던에서의 미술수업과 관련된 정보를 실어놓고 있어서 이런 공부를 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동기부여가 될만한 책이다.

그뿐 아니라, 그녀가 한국의 작가들을 유럽에 소개하고 그들의 작품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신인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모습도 참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참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삶도, 커리어도,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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