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디자인하라
유영만.박용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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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인정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어른이 많다. 미성숙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는 어른은 어리석어 보인다. 뭔가 다른 어른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부터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늘 어제와 다른 낯선 세계를 탐험하기때문에 경이로운 순간을 만날 때마다 언어의 부족을 느낀다. 오늘 만난 언어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내일의 나는 어떤 언어를 공부할 것인가? (p.144)



저 문장을 읽는데, 묘하게 겹쳐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한명이 아니고 꽤 여럿이 겹쳐지니 몇 달 전만 해도 느끼지 못하던 부끄러움을 오롯이 느끼는 중이다. 비참하게 말이다. 


굳이 직접 만날 일 없는 높으신 분들까지 가지 않아도, 가장 가까운 집 안에도 있고 회사에도 있다. 언어의 품격까지 바라지 않아도 자기가 한 말을 안했다고 우기지는 말자. 언어란 사회적 약속이라서 혼자서 아니라고 우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거나 성취를 이룬 사람은 언어를 탁월하게 디자인한 사람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담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삶의 격이 다르다. 잘 설계된 한 마디에 촌철살인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p.11)


위대한 인물이나 역사에 발자국을 확실하게 남긴 사람들을 우리가 그들이 한 '말'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명언)는 점만 봐도 이 문장이 확 다가온다. 위인들은 어떻게 저런 명언들을 남겼을까 했는데, 그들의 삶과 철학, 그리고 신념이 담겨 있는 말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던 거다. 부러 지어내려 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이 곧 그들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레벨이 당신 인생의 레벨이고, 언격(言格)이 인격(人格)을 결정한다. 삶의 격을 높이고 싶다면 사용하는 언어의 품격을 높이면 된다. (p.13)


나의 언어에 나의 삶이, 나의 인생이 묻어난다고 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는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젊은 아이들이 말끝마다 욕을 달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도 말끝마다 하는 욕에 깜짝깜짝 놀란다.


천박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생각의 높이가 낮고 인격이 무너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본인이 감동하는 것도 어렵다. 생각과 느낌은 결국 언어를 통해서 전달되는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게 되니, 그 언어의 수준이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사고 수준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의 수준을 높이는 데는 또 책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 고급 어휘는 물론이고 책을 통해 지식, 정보뿐만 아니라 저자의 경험마저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저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깊이 사유하는 뇌의 기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디지털 기술을 '디지털 방해기술'이라고도 부른다. 


이 책의 저자는 남의 책을 안읽는 것도 문제지만, 남의 책만 읽는 것도 문제라고 말한다. 책을 읽을 때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어서 깊이 읽어야 한다. "깊이 읽기란, 개념을 곱씹고 문장의 의미를 해석하며 자기 나름의 생각과 주장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책을 읽고 내 나름의 생각과 주장을 갖지 못한다면 남의 주장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것과 같다. 책은 딱 내가 살아온 삶만큼만 읽힌다고 한다. 내 그릇만큼만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지만, 간접경험은 말 그대로 간접일 뿐이라서 직접 경험에 비해 당연히 많은 부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 간격을 줄여주는 것이 바로 깊은 사유, 깊이 읽기가 아닐까?


이 책은 언격을 높이는 방법으로 나만의 개념사전을 만들라고 한다. 7가지 개념 사전을 소개하고 있는데 신념사전, 관점사전, 연상사전, 감성사전, 은유사전, 어원사전, 가치사전이 그것이다. 모두 만들어본다면 좋겠지만, 가장 하기 쉬운 것부터 하나씩 실행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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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10-16 1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아온 삶만큼 읽힌다니 무서운 말입니다. 제가 남의 주장에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나저나 저 분들은 남의 책이라도 읽긴 하는 걸까요. 인상도 중요하지만 언격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걸 배우는 요즘입니다.

하양물감 2022-10-16 19:45   좋아요 1 | URL
저도 그 부분 읽고 깜짝 놀랐어요. 우린 사실 모든 걸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경험도 꽤 중요하게 여겨왔으니까요. 하지만 내 그릇만큼 읽힌다면.... 그래서 독서모임 등을 통해 함께 읽기와 이야기하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덧붙인다면 그 분들은 안읽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완경 선언 - 팩트와 페미니즘을 무기로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방법
생각의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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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내내 읽고 있던 책을 오늘에서야 마지막 장을 덮었다. 처음엔 이 빨간색 표지의 책에 흥미가 없었다.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어보자고 했지만,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았던 책이다. 


나는, 왜 이 주제에 흥미가 없었을까? 바로 나의 몸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말이다. '완경'이라는 단어를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전히 폐경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고, 그로 인한 온갖 증상들은 갱년기라서 그래 라며 퉁쳐버렸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나는 내 몸과 증상에 대해 지나치게 무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춘기 첫 월경을 축하해주기 시작한 것도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월경이 완경기가 되면 쉬쉬 숨기고, 온갖 부정적인 증상의 원인으로 지탄받는 신세가 된다는 사실에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저출산 대책이라며 결혼을 장려하고, 결혼을 하면 출산을 강요하고, 하나를 낳으면 둘을 낳으라 몰아붙이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완경기가 되면 '퇴물' 취급을 하니 당연히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굳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갖고 올 필요도 없다. 무슨~이즘이 아니라, 바로 내 몸과 나의 남은 인생과 연관되는 생존과 삶의 질의 문제이다. 


나는 청소년기~청년기를 거치는 동안 (다행히 월경통은 없었으나) 월경 주기가 불규칙하였고, 지금은 아직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한 유방암 환자이다. 타목시펜을 복용하고 있으며 치료를 위해 강제로 월경을 멈추게 하여 흔히 말하는 완경기의 증상도 경험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았다. 


완경기는 최소한 사춘기와 동등한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남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질병이 아닌것과 마찬가지로, 완경기 또한 질병이 아니다. (P.29)


완경은 난소에 더는 난포가 없어서 배란을 할 수 없을 때 일어난다. 다시 말해 더는 남자가 없는 것이다. 완경이 일어나는 평균 연령은 (서구식 만 나이로) 50~52세이다. (한국의 평균 연령은 49.7세라고 한다.) 완경의 결정적인 특징 중 하나는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P.29)


완경이행기에 시작되는 호르몬 변동은 다양한 증상을 촉발한다. 어떤 여성들에게 이 증상은 치료가 필요할 만큼 괴로울 수도 있고, 어떤 여성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어떤 증상이 일어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이 시기를 견디는 힘을 얻는 데 충분할 수 있다. 기이한 신체 증상이 자신에게만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은 사람을 매우 힘이 빠지게 한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이 일반적이고 예상된 경험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낀다. 여성들이 어떠한 증상이 더 심각함 문제의 징후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증상이 짜증스럽기는 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증상들인지 아는 것 또한중요하다. (P.34~35)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여러가지 질병이 증가하고 노화가 진행된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남성의 질병에는 그 시대의 인간 신체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알맞은 설명이 붙었지만, 여성의 질병에 대해서는 언제나 '자궁'이 이유였다. 저자는 여성 생애의 3분의 1 혹은 절반 이상에 달하는 시기(완경 이후)를 자궁과 난소의 기능에만 결부하여 설명하는 것은 여성혐오적이라고 말한다. 남성의 노화를 설명할 때 성기능 감퇴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시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더이상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없는 몸이어서가 아니라, 이 시기에 여성들에게 심장 질환이 생길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완경기의 가장일반적인 증상이라면 발열감일것이다. 완경기 발열감은 일정하게 작동하지않아 실제로는 덥지 않은데도 '덥다'는 잘못된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데서 일어난다고 한다. 이러한 발열감은 뇌에 에스트로겐이 존재했다 사라지게 되어 벌어지는 일종의 금단현상(P.167)이다. 에스트로겐의 영향에서 벗어난 인체의 체온조절 시스템이 아주 작은 온도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여 실제보다도 더 덥다고 느낀다. 그러면 이 열을 식히기 위해 혈관이 팽창하고 열을 발산하도록 혈액이 피부 쪽으로 흐르게 된다. 그래서 얼굴과 목, 상체와 팔이 붉어지기도 한다. 땀샘도 자극되어 땀을 흘리고 심장 박동이 올라간다. 발열감이 시작되면 체내에서 열을 식히기 위해 체온을 떨어뜨리는데 이때 오한이 올 수도 있다. 


완경기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청소년의 사춘기를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만큼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완경기 여성이 겪는 증상들을 이해하고 나면 내 몸의 변화에 대처하고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질병이 아니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적용해볼 수 있는 것이다. 호르몬 치료의 장단점과 유의점을 알려준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생각해보면 체중을 감량할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하지만 내 몸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처럼 완경기 증상에 대처하는 다양한 호르몬 요법도 나의 몸 상태와 증상에 따라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또한 음식을 섭취할 때도, 건강보조식품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완경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유방암'에 관한 정보가 이렇게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도 한번씩 들쳐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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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02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올 때 관심을 가졌는데 또 다른 책에 밀려서 잠시 잊고 있었네요. 하양물감님 리뷰 보니까 읽어야겟다는 생각이 무럭무럭합니다. 몰랐는데 유방암 투병중이셧군요.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씩씩하게 투병하시고 계신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게 참 마음이 먼저 우울해지기 쉽다는걸 느끼는 요즘이에요. 우리 같이 힘내요. ^^

하양물감 2022-10-03 13:46   좋아요 1 | URL
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이 책 읽으면서 반성도 했고, 알게 된 것도 많답니다. 사실 건강관련 서적은 잘 안읽게 되는데, 내 몸인데도 참 모르고 살았구나 싶더라고요.
 
그대만 모르는 비밀 하나 - 나를 응원하는 작은 목소리
후이 지음, 최인애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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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었습니다 **


가벼운 느낌의 에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중국과 한국이 정말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사는 것은 같다보니 공통점도 꽤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외국인에 대해 갖는 감정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낯설음'이 있다. 우리와는 다른 무엇, 그것 때문에 그들과 나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 책을 읽고 그들도 우리도 많은 부분 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같은 사회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게 끈기가 있다면 상대에게는 융통성이, 

내게 용기가 있다면 상대에게는 신중함이,

내게 감성이 있다면 상대에게 이성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서로 배울 만한 장점과 

보완할 수 있을 정도의 단점만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채워 주는 사이가 될 수 있다. (p.27)


이 책의 첫번째 에피소드는 결혼생활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부부, 결혼, 사랑 뭐 이런 이야기를 다룬건가 했는데, 다양한 인간사를 모두 다루고 있다. 그래도 첫번째 에피소드를 읽는 순간 이런 건 미혼보다는 기혼자들이 많이 공감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서로 배울 만한 장점...아니 보완할 수 있을 정도의 단점만 있어야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어느날 서로가 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른 사람은 함께 살기 쉽지 않다. 다만 그것은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기에 제삼자들이 이러쿵 저러쿵 할일은 아닌다. 


이 책의 3장에 나오는 에피소드에서도 결혼, 임신, 출산,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부분에서 중국도 한국과 똑같구나 했었다. 결혼 적령기란 누가 정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혼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호들갑을 떤다. 임신과 출산은 또 어떤가. 사회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제아무리 문제라하더라도 결정의 권한의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가난의 가장 아픈 점은

근본적으로 원하거나 원하지 않을 권리가 없다는 거야.

눈 앞에는 그저 한 갈래 길뿐이지.

'원하지 말 것' (p.101)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가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역시 '선택'의 문제이다.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일이, 10가지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이 선택한 행동일 때와 선택의 여지 없이 그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 선택한 행동일 때 보여지는 결과가 같다고 해서 그 둘이 느끼는 만족감도 같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책의 내용이 모두 내 마음과 같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례들을 읽음으로써 긍정의 메시지를 가슴에 담아본다. 결국은 이 책의 말미에 등장한 명휘씨처럼 남이 아니라 나를 먼저 챙기고 보살펴야 한다. 무너지고 우는 것보다, 웃으면서 나를 다독일 때 나는 빨리 일어설 수 있다. 


직장 생활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든 만남이 첫 만남인 듯 하라. 모든 것을 매번 처음인 듯 대하면 후회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느 순간 타성에 젖거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 '실수'는 일어난다.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조언이기도 하였다.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책은 삶의 지혜와 나를 토닥이는 위로로 가득한 책이니,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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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김민섭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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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친구들이 김민섭 작가와 친구를 맺고 있다보니 가끔 들러 살펴보곤 했다. 작가의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김민섭, 은행나무) 때문이다. 음.. 그가 무슨 이야기를 썼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로 인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회의적이기도 했다. 20년 쯤 전에 시간강사의 죽음으로 인해 4대 보험 가입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시간강사의 시간당 페이가 어디는 얼마고 어디는 얼마다... 국립대는 얼마인데 사립대는 얼마더라. 지방 국립대는 얼마인데 지방사립대는 그 반도 안되더라..등등. 말은 많았으나 속시원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었다. 그런 곳을 떠나 다른 일을 하며 살다보니 굳이 그 세계를 또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상당히 공감했고, 그렇게 선한 영향력이 퍼져나가는 걸 보았다. 2022년 부산 원북원 후보도서로 이 책 『당신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가 올라왔고,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기로 하였다. 슬쩍 훑어보니 그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와 후쿠오카 보내기 프로젝트의 이야기가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폈다.

작가의 헌혈과 관련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허삼관매혈기』(위화, 푸른숲)는 마침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서 공감하기가 더 좋았다. 우리는 헌혈을 할 때 무슨 마음으로 할까?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단체로 헌혈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헌혈부적합 판정을 받아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제법 많이 했었다. 그리고 또 30대 때 모 가수의 팬클럽에서 활동하면서 그 가수 이름으로 헌혈증을 모은 적이 있어서 그때 시도했지만 또 부적합. 그러고보면 나는 헌혈을 시도했지만 결국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꽤 건강한 피의 소유자임이 틀림없다. 

헌혈을 하면서 피를 판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피를 팔 수 밖에 없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피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헌혈을 한다고 생각한다. 한번도 만난 적 없지만 나와 같은 혈액형의 피를 가진 사람, 나의 혈소판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고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기 위해서 이런 DNA(서로 나누고 서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는 필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김민섭 작가가 자신이 가진 후쿠오카 비행기표를 누군가에게 양도하기로 했을 때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만큼 모여들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 과정이 이렇든 저렇든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SNS 속성 상 사람이 사람을 불러오기 쉽고, 소문이 퍼지는데도 한몫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김민섭 작가는 참 괜찮은 김민섭 씨를 만난 셈이다. 의도가 아무리 선량해도 곡해하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 질투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김민섭 작가가 '질문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의 독서지도를 하면서 내가 강조했던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그냥 덮지 말고 질문꺼리를 찾아봐. 그것이 너에 관한 것이든, 친구나 가족 또는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것이든 뭐든 좋으니 질문을 해보자 라고.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김민석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을 답을 찾아 나선다. 

교통사고 고소건도 그러하고 몰뛰작당도 그런 질문의 끝에 나온 행동이라고 보여진다. 그냥 덮고 말면 속은 쓰리겠지만 귀찮은 일을 안해도 되고, 굳이 매주 목요일 저녁 시간을 달리면서 보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 누군가를 떠올렸고, 남에게 무례하게 굴면서도 그게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한번 쯤은 반성하거나 조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또 세상은 달라진다. 

나는 독서모임을 10년 째 이어오고 있다. 작은도서관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6명이 시작한 모임으로 매주 1권의 책을 읽고, 쓰고, 토론이나 토의를 이어오고 있다. 1년을 52주이고, 그 모임을 10년째 이어오고 있으니 500여 번의 모임과 500에 가까운 책을 읽은 셈이다. 그 모임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모임에 가야한다는 약속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2명만 올 수 있으면 무조건 모임을 진행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그 2명이 안될까봐 매주 이 모임을 우선으로 했던 누군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의 내 이야기를 떠올렸고, 우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계속 질문하고 생각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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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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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하는 터라(좋아하는 거지,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이 책, 꽤 관심 가는 책이었다. 아무래도 소재 자체가 관심있다보니 책을 읽는 속도도 꽤 빨랐다. 어떤 사물을 놓고 세계사를 살펴보는 책들이 제법 많다. 세계 역사라는 것이 무역(혹은 수탈)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슬람 수피교도가 '욕망을 억제하고 수행에 정진하기 위해' 즐겨 마셨다는 검은 음료가 바로 커피이다. 저자는 이 커피로 인해 17세기 유럽 상업자본가와 정치권력자의 욕망을 자극하여 유럽과 세계 문화를 바꿔놓았다고 전한다. 


1652년 런던 최초의 카피하우스가 문을 연다. 커피하우스가 급성장한 것은 17세기 후반이다.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커피하우스 덕에 커피산업과 커피문화가 일상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국은 커피의 나라가 아니라 홍차와 티하우스의 나라로 불린다. 18세기 중반부터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영국의 사회적 변화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슬람 세계에서 커피가 뿌리내리는데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도사, 수피교 수도사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커피는 마시면 쉬이 흥분하게 되고 잠들기 어려워진다. 이런 커피의 부정적인 특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수피는 잠들지 않으려고 커피를 마신다. 이슬람 문화는 '밤'과 '잠들지 않는 것'에 본질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천일야화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슬람에서 가장 흔한 종교행위는 바로 밤을 새우면서 기도하는 일이다. 또한 수피교도는 먹는 것 자체를 지극히 절제했다. 식욕이 떨어지는 커피는 당연히 수피교도들에게 도움이 되엇을 것이다. 마른 몸이 이슬람의 미의식이다보니 커피를 마시면 살이 빠진다는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그 자체적으로 종교의식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커피는 빵과 소금처럼 신성시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커피하우스는 어떻게 유행하게 되었을까? 종교적 의식이 아닌 사교의 장으로서의 커피하우스가 유행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가장 사적인 집을 떠나서, 혹은 공적인 장소를 떠나서 그저 편안한 한때를 혼자, 아니면 동료들과 함께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람을 보고,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면 편하게 대꾸하면서,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즐기면 되고 지루하면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런 공간 자체가 지닌 매력이 사람들을 끌어모았다."(p.70)


내가 생각하는 카페도 이와 비슷하다. 나는 집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여유를 찾지 못한다. 집에 있으면서 눈에 보이는 가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카페로 간다.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다. 오롯이 2시간 동안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느 정도 힘을 얻는다. 매번 바쁘게 움직이다가도 '회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영국에서 커피가 일반 가정으로 들어가는 데 실패했지만, 프랑스에서는 달랐다. 프랑스에서 맨 처음 커피를 받아들인 이들이 베르사유궁의 귀족부인이었다. 귀족부인들 사이에서 커피모임이 유행을 하였고, 일반 평범한 부인들 사이에서도 카페 출입을 할 수 있었다. 


1778년, 프랑스에서는 와인 판매량이 급감했다. 와인과 브랜디는 프랑스 세계 교역의 대표상품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포도 재배를 위해 곡물 재배를 등한시한 결과, 와인 판매량이 급감하자 빵 가격을 유지할 수 없었다. 프랑스 농업이 받은 타격은 프랑스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마른강과 센강에는 화물선의 모습이 아예 자취를 감추었을 정도라고 한다. 프랑스를 위협하던 불황은 선거권이 없던 사람들마저도 선거운동의 열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커피에는 차나 술과는  다른 점이 있다. 첫째, 저 먼 중남미나 아프리카 어딘가의 세상에서 커피를 생산해야 한다. 둘째, 그 커피콩을 우리에게 안전하게 보내주는 일련의 산업구조(수출업자, 중개인, 선박회사, 창고회사, 가공업자, 소매점, 커피점 등)가 트럭 한 대, 사람 한 명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고도 성실하게 기능해여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차나 술을 마시는 행위와 달리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며 인공적이고 문명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 지배라는 오랜 과거와 원활한 세계 교역의 존재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한 행위이기도 하다. (p.315) 


책에서는 유럽 열강이 커피를 얻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커피 생산을 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유럽의 식민지 개척과 수탈에는 비단 커피만 해당하지는 않지만, 커피를 얻기 위해 생산지를 개척하고 식민지 국민들이 하나의 작물에 몰입하게 하여 자급자족을 어렵게 만들었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이 한 잔의 커피에도 노동력에 대한 공정한 대가가 지불되었기를 바래본다. 


세계사를 재미있게 훑어볼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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