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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텃밭 ㅣ 사계절 그림책
김병하 글.그림 / 사계절 / 2013년 4월
평점 :
나의 어머니는 20여년 전 도시를 떠나 시골에 터를 잡으셨다.
노후를 귀농하여 편안하게 보내신다거나,
뜻한 바가 있어 젊은 날 귀향한 것이 아니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떠난 그곳에서
이웃의 땅을 빌려 텃밭을 가꾸며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
농사라고는 지어보지 않았던 초보농꾼이었지만,
지금은 그 동네에서 제일 농작물이 잘 되는 집이기도 하다.

이 그림책을 보는데,
그 생각이 났다.
텃밭에 감자를 심어놓았는데, 밤새 멧돼지가 내려와
파헤쳐놓았다거나
콩을 심어놓았는데 새들이 죄다 먹었다거나 하던 일들.
이 그림책 속 작가 겸 화가인 아저씨도 텃밭을 망쳐놓은 동물을
잡으려고
밤을 새며 기다리는데
고라니 녀석이 딱 걸린다.
잡지 못하고 놓쳐버렸는데
어느날, 고라니가 새끼들과 함께 내려 온 모습을 보고'마음을
바꿔먹는다.

그림책에서 이 장면은 극적인 반전을 가져온다.
텃밭을 망쳐놓는 도둑이자 훼방꾼인 고라니와 눈을 마주치는 저
장면은
슈렉인가 거기서 나온 장화신은 고양이의 눈을 떠올리게 한다.
산에서 먹을 것이 없으니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는
것이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도 몇 가지 더 늘어난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갈 방도는 없는걸까?
아저씨는
그 날 이후 텃밭을 아래 그림과 같이 두개로 나누었다.

울타리를 친 텃밭은 아저씨와 딸이 가져 갈 것이고
울타리가 없는 곳은 고라니가 와서 자유롭게 먹을 밭이다.
그림책의 묘미는 숨어있는 그림을 발견하는 재미일 것이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할 때부터 민들레 싹이 나 있는 작은 텃밭이
보인다.
텃밭 주변으로 난 길처럼 민들레를 둘러싼 돌에도 길이 나
있더니
고라니가 내려와 밭을 엉망으로 만들 때는 텃밭의 울타리가 꽉
막혀있는 것처럼
민들레 돌담도 입구 없이 막혀있다.
그러다 아저씨가 고라니와 마주치고 고민을 할 때는 꽃이 핀 민들레
돌담 바깥에 작은 싹이 나온다.
그리고 반 반 나누어진 텃밭처럼
민들레 돌담도 작은 싹을 받아들여 하나가 된다.
인간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가지고자 할 때 문제가 생겨나고
전쟁이 일어난다.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때
평화가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고라니텃밭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