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에 모도서관에서 학부모를 위한 독서지도와 글쓰기지도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다. 원래 내가 하던 일은 어린이 독서지도와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예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대상이 대학생이었기때문에 지도의 초점이 조금 달랐다. 그런 내가 어린이 독서교육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집 아이가 태어난 이후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가 태어났어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늘 읽었고, 우리집 아이는 늘 내가 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리고 당연히(?) 아이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도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아이의 또래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만난 또래 아이들은 책도 좋아하고 다양한 체험도 많이 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도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책읽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었고, 현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독서지도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나의 경험과 책읽기에 대한 주관에 독서지도라는 이론을 더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년이 된 지금 나는 나름대로 독서지도에 대한 강의도 하고 독서지도사들의 모임에서 조언을 하기도 한다.


이번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실제로 어떻게 하면 좋으냐에 대한 답을 듣기를 원한다. 나는 수업 중에 학부모들에게 물어보았다. 여러분은 얼마나 책을 읽으시나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짐작하겠지만, 그들 자신은 그다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대답이 가장 많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녀 독서지도의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여러분이 책을 즐겨 읽는 것입니다" 라고. 그런데 이런 말은 대부분 그들이 나에게서 듣기를 원하는 강의의 내용이 아니다.


아이가 1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독서록 숙제를 받아왔다. 1학년이니 그림을 그리거나 5줄 이하의 짧은 글로도 충분한 숙제이다. 나는 아이의 숙제가 힘겹다고 여기지 않았고, 독서록이나 일기때문에 골머리를 썩이지도 않았다. 아이 역시 그다지 버거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1학년 엄마치고는 꽤 편안하게 보낸 편이다. 그런데 엄마들의 모임에 가서 보면, 아이의 숙제가 곧 엄마의 숙제가 되어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엄마들에게 아이가 읽을 책을 함께 읽어보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늘 같이 읽는다고 이야기하는데 엄마들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책을 읽어주기만 했을 뿐이지 정작 자신은 읽지 않은 것을 모른다. 이게 무슨 말인가? 엄마는 글자를 읽어준 것이고, 아이는 글자를 들은 것이다. 즉 엄마도 아이도 그림책을(혹은 읽어주는 다른 종류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책의 내용을 이해한다는 말이다. 주인공의 삶에 공감하거나,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거나, 마치 나의 일인양, 내 친구의 일인양 할 말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읽어 준 엄마도, 들은 아이도 내용을 이해하지 않고 글자만 읽었으니 서로 할 이야기가 없고, 할 이야기가 없으니 쓸 이야기도 없다. 


학교나 학교, 또는 다양한 독서수업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해줄 수 없다. 그러다보니 보편적인 이야기에 머무를 수밖에 앖다. 그러나 엄마 또는 주양육자는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나 최근의 관심사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므로 그 부분을 특화시켜줄 수 있다.


아이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거나 호기심을 느낀 것을 소재나 주제로 다룬 책들은 책 읽기의 단계를 높일 때 좋은 기폭제가 되어준다. 그림책에서 글밥책으로 넘어갈때도, 문학에서 비문학으로 넘어갈때도 도움을 준다. 아이가 3학년쯤 되니 그림이 없는 100쪽 이상의 책을 읽으면서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자기 이야기를 잘 풀어낸다. 책을 잘 읽는 아이도 글쓰기를 하면 유독 힘들어하는 때가 있다. 아이가 글쓰기경험이 거의 없다보니 어떻게 써야할 지를 모르는 것이다. 글쓰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단문에서 시작해서 단문과 단문을 연결하는 연습, 문단을 만들고 문단과 문단을 연결하는 연습, 그리고 그 문단들을 처음, 가운데, 끝으로 만들어가는 연습을 끊임없이 한다. 나는 일기나 편지쓰기가 가장 쉬우면서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매일 써야 하는 일기나, 숙제로 써내야 하는 독서록이 더이상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엄마를 비롯한 주양육자의 적절한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도, 엄마를 위해서도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얼마 전에 "엄마와 아이가 꼭 한 번은 치러야 할 독서록전쟁"이라는 책을 보았는데, 이거 또 엄마 숙제만 양껏 강조하는 책 아냐? 하는 마음으로 들었다가,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다. 그리고 다음에 독서지도관련 강의를 나가면 알려주고싶은 몇가지 방법도 챙겼다. 아이의 독서지도를 위해 조언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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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6-12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가 아이와 책을 읽을적에 부모는 글자만 읽고 아이는 그림을 읽어서 부모가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을 아이들이 더 많이 느낄때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저두 아동문학에 관심이 많아 독서와 글쓰기 관련책을 보는데 좋은 말씀해주셔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ㅋㅂㅋ, 그리구 멋지세요 ㅎㅎ

하양물감 2015-06-12 11:20   좋아요 0 | URL
멋지진않아요^^ ㅋㅋ
나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더군요.
아이들은 어느 하나 똑같은 아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유의해야할듯합니다

cyrus 2015-06-12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또 다른 착각이 집에 책을 잔뜩 마련하면 아이가 알아서 읽을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요즘은 유치원생도 스마트폰을 만질 수 있으니까 책 100권이 있는 방에 아이 혼자 있으면 스마트폰의 유혹을 이길 수 없을 겁니다. ^^;;

하양물감 2015-06-13 09: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같이 읽어야 하는거구요. 읽으면서 함께 책의 내용을 공유해야 하는거랍니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도 그랬지요. 하물며 스마트폰을 손에 쥔 아이들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