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기행 - 칭기스 칸의 땅을 가다
박찬희 지음 / 소나무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에필로그에 '약속 한 때가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누구와의 약속이냐면 바로 저자의 딸아이와의 약속이다. 이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여섯 살이 되면 같이 몽골에 가자"고 말해왔는데 이 딸아이가 여섯 살이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같이 가자고 말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정말 좋았거나,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 아니라면 말이다. 더군다나 가깝지도 않은 그곳이기에.


오늘 아침에 이 책을 덮으며 나도 생각한 것이 있다. 작년부터 나는 딸아이에게 6학년을 마치고 중학교에 가기 전에 페루에 한 번 가자고 했었다. 꼭 페루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남미여행을 하고 싶었다. 나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저자는 몇 번의 몽골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몽골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건 그들과 함께 한 기억" (p.9)때문이라는 말은 공감이 간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군가는 여유로운 휴식을 위해, 누군가는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위해, 누군가는 발견과 공부를 위해, 누군가는 추억을 위해 여행을 간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몽골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칭기스 칸의 흔적을 쫓아가는 여행이야기이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초원은 낭만이지만 유목민에게는 죽음을 각오한 삶의 현장이다"(p.54) 농번기에 들판에 서 있는 농민들을 차 안에서 바라보며 우리는 농촌의 목가적인 분위기라고 말하지만, 농민들에게는 힘든 삶의 현장인 것과 마찬가지다. 관광지에서 관광상품을 볼 때와,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 이웃으로서 만날 때 의미는 분명히 달라진다. 저자는 몇 번의 몽골 여행을 통해 몽골사람들과의 만남에 의미를 두었고, 그것을 풀어내어 이 책을 쓴 듯하다.


늑대를 바라보는 관점도 그래서 달라진다. 몽골에서는 숙적이지만 경외하는 모순적인 존재가 늑대이다. 우리나라의 호랑이가 그랬던 것처럼. 유목민들은 초원의 라이벌로 늑대를 들지만, 그렇다고 늑대를 악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늑대를 악의 상징으로 끊임없이 활용하는 사람들은 늑대와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는 몽골 유목민이 아니었다. 그림이나 말로만 늑대를 접하는 다른 세상 사람들이었다."(p.96)


이 책을 읽는 동안 몽골사람들이 물과 불을 어떻게 대하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사람과 동물이 겨우 살아갈 정도로만 비가 내리는 몽골, 그리고 불이 나면 저절로 꺼지기 전까지는 불을 끌 수도 없는 초원에서 살아가는 몽골이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물로 살아가고 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조심을 한다. 우리 눈에는 분명히 부족해보이는 물이지만 몽골사람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청결과 불결이라는 개념으로 문화적 수준을 논하는 사람들에게 이 점을 지적한다. 책에서는 몽골과 우리나라와의 관계, 교류, 연결성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계속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책의 중간 쯤에 운전기사인 새럿이 감동에 겨워 읽어달라고 한 시가 나온다. 체덴잡의 조국에 대한 시이다. 저자는 전혀 감동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혀놓았다. "조국을 둘러싼 그들과 우리 사이의 간극은 여행이 끝난 후까지 머리에 남았다. 나에게 조국이란 어떤 의미일까? 돌이켜보면 나에게 조국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강요되거나 교육된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라에 무조건 충성을 해야 했고 조국에 대한 사랑 역시 무조건적이어야 했다. 때로 조국은 폭압적인 권력자들의 허울 좋은 방패막이로 전락했고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강력한 논리로 작용했다. 늘 조국과 민족은 선이었고 어떠한 물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이 시를 들었을 때 나는 본의를 잃은 채 도구화된 조국을 떠올리며 그 이미지로 이 시의 조국을 받아들였고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p.156) 라고.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는 영화에서 나온 몇 장면들이 겹쳐 떠오른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의 장면으로, 애국을 아주 잘 묘사한 장면으로 기억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독재자가 강요한 억지충성의 모습으로만 보인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에 기초하여 자기식대로 해석을 하기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는 강요된 애국과 억지충성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조국에 대한 애국이 가슴에 와닿아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유목민들의 나라로 기억되는 몽골도 변화를 겪고 있다. 요즘의 몽골은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한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빈부의 격차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지만 절대빈곤만큼이나 무서운 상대빈곤이 몽골유목민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조드가 지나고 먹을 것을 찾지 못한 가축들이 죽고 더이상 키울 가축이 없는 유목민들은 도시로 간다. 도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가는 도시빈민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몽골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더 지켜봐야 알 것이다. 그러나 유목민의 나라 몽골로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몽골에서 온 유학생이 한국의 친구들로부터 매일 말만 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며 몽골에는 유목민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몽골의 도시에 대해서는 많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유목민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초원 위에 남겨진 그들의 역사, 그리고 칭기스칸의 흔적을 쫓아갈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이 책이 몽골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러나 몽골의 일부지만, 그곳에서 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1-01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몽골 여행은 꼭 가보세요. 솔직히 저는 몽골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지인의 생생한 몽골 여행담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 생각했어요. 몽골 평야와 밤하늘을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바람돌이 2015-01-02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살 딸을 데리고 몽골여행이라... 용기있는 분이군요. 저도 실크로드따라 몽골까지 쭉 가는게 로망이긴 한데 이분처럼 유목지들보다는 아무래도 전 도시에 더 관심이 많아요. ㅎㅎ 자연이 만든것들보다는 인간이 만들어온것들에 좀 더 관심이 가는건 개인차겠죠. ^^

하양물감 2015-01-02 09:54   좋아요 0 | URL
6살이면 어리긴하죠?
그런데 이 분이 쓴 글 보면 딸도 아빠의 관심사를 늘 같이 접해서인지 몽골에 대해서 공부도 되어있는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