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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퇴보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보수적이고 답답한 사람. 수줍고 비위 맞추기가 어려운 사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불렀지만 그 외에도 자신들에 대한 생각을 완강하다고 할 수 있으리만치 옹호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 까다로움이나 절제가 단지 인기 없는 자질이라는 이유로 비판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P.7)
"해리엇은 자신의 미래가 구식이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왕국의 열쇠를 그녀 손에 쥐어 줄 것이고 그곳에서 자신의 본성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발견할 것이며, 그것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그녀는 인생의 모든 굴곡이나 진창을 처음에는 잘 모르면서 그러나 점차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그곳으로 나아갔다. 반면에 데이비드에게 미래는 그가 목표로 삼고 보호해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자기 부인은 이런 점에서 그와 같아야만 했다. 즉 그녀는 행복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지키는가를 알아야만 했다. 헤리엇을 만났을 때 그는 서른 살이었고 야심찬 남자가 지닌 완고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일해 왔었다. 그러나 그가 일해 온 목표는 가정이었다."(P.13-14)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보통은 전통적인 결혼생활과 육아에서 벗어난 예를 보여주기 마련인데.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그 반대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반해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보수적이면서 결혼과 가정에 관해서도 '우리만을 위한 가정'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는 전통적인 대가족적 만남과 생활을 선호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생각은 일치하였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집도 구입했다. 집을 사는 과정에서 데이비드의 두 부모(이 가정은 이혼 가정으로 부모가 각각 재혼 가정을 이루고 있다) 중 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해리엇의 출산과 함께 해리엇의 어머니로부터도 도움을 받는다. 나는 여기서부터 계속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뭐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걸까?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그들이 생각했던대로 아이를 낳고, 여러 사람들이 휴가를 함께 보내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 그들의 집으로 오는 것을 반긴다. 그들의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축하를 하고 행복한 가정의 전형을 보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 그렇지만 과연 그러했을까? 해리엇은 아이 다섯을 낳는 동안 계속해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반복한다. 먼저 낳은 아이는 자연스럽게 해리엇의 엄마인 도로시가 양육을 하고, 헤리엇은 또다시 임신을 하고 침대에 누운 채 보내거나 날카로워진 신경 탓에 모두가 눈치를 본다. 그렇게 연이어 아이를 낳는다. 참 이기적이다. 그렇다.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그거였다. 이기적이다.
그들은 모두가 함께 하는 집을 구하기 위해 굳이 재혼해서 살고 있는 아버지로부터 돈을 지원받는다. 그들의 수입으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먹이고 재우는 데 필요한 돈을충당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줄이거나 늦추지 않는다. 먼저 태어난 아이가 충분히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도 또 새로운 아이를 임신하고, 그 아이를 낳기 위해 먼저 낳은 아이는 오롯이 친정엄마인 도로시의 몫이다.
자신들의 꿈을 위해 양가 부모는 돈과 시간을 무상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해리엇의 자매인 사라는 넷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고 부부 간에 문제도 있지만, 그의 엄마인 도로시는 헤리엇의 아이를 봐주느라 사라를 돌볼 여유는 없다. 사라도 그렇다. 그렇게 고생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신과 자신의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다니... 아니, 딸들이 왜 이렇게 다들 이기적이고 멍청한지.
물론 데이비드도 마찬가지다. 해리엇이 아이를 연이어 낳는 것은 해리엇 혼자 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데이비드가 조절을 하거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연이어 임신을 한 상태에서 몸이 축나는 것은 해리엇이다. 물론 데이비드도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에 많이 힘들었겠지만. 결국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났을 때. 나는 해리엇도, 데이비드도 모두 자기 밖에 모르는 철부지들처럼 여겨졌다.
앞서 태어난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그들의 기쁨이 되어주었을망정 연이어 태어나는 동생들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의 삶, 그리고 부모와의 애착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한 상태로 살아가는 넷째.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다른 성향을 갖고 태어난 벤.
벤의 탄생으로 인해 그들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들이 셋째, 넷째를 낳는 동안 그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벤'은 사라가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은 것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네명의 아이를 연이어 낳고 키우면서 지치지 않은 상태였다면, 벤도 그들에게는 사랑스러운 아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벤은 그들이 지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때 태어났다. 결국 그들은 벤을 기관에 보내버린다.
해리엇이 강한 모성애 때문에 그 애를 되찾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성'이라는 것이 또 한번 남은 아이들을 뿔뿔히 흩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리엇이 힘들게 벤을 보냈다면, 남은 아이들과의 관계를 다시 원상복귀를 하려고 노력했어야 한다. 그러나 해리엇은 그러지 않았다. 다시 벤을 데려왔지만 그 또한 엄마로서 감싸앉지 못했다. 벤이 존 패거리와 있을 때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데(물론 거기에는 힘의 관계가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왜 그들의 가정에서는 그러지 못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가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나는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양보가 따르는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로를 있는그대로 이해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결혼 생활이란 것이 있을까? 과연?
결국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희생과 양보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이상적인 가정'='행복한 가정'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