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딸아이를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들어와서 책을 펴고 앉았다.
나도 우리 딸도 워낙 태평한 성격이라 평소와 같이 담담하게 보냈지만, 오늘 하루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는 수험생들에게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다. 그들 모두에게 노력한만큼의 보상이 꼭 주어지기를!

공부를 좀 못하면 어때, 세상 사는데 중요한건 공부 잘하는게 아니더라, 라고 생각했던 나는 분당으로 이사오면서 멘붕을 겪었다. 그런 마인드로는 도저히 엄마들과 어울리기가 힘든 것이다. 내 나름의 교육철학은 항상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한번 키워봐! 나중에 대학 잘 가나!

나야 그런말쯤 무시해도 상관없지만, 경쟁터에 내몰려진 아이들은 불안해졌다. 독특하면 왕따 당하는 아이들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친구들처럼 유명 학원을 다녀보겠다고 하고, 가혹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쪽집게 과외를 추가해 보겠다고 욕심을 냈다. 이 세상에 적응해 살아보겠다는데 부모로서 말릴 수는 없다. 도와주지는 못 할 망정. 그렇게 점점 철학은 가벼워지고, 점점 세상의 박자에 발맞추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마음이라도 편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몸은 너무 피곤하고, 해야 할 공부는 쌓이고, 주변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정도로는 in서울 하기는 택도 없다고 겁을 준다. 물론 세상이 그렇더라도 뚝심있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 길도 쉽지는 않다. 결국 거의 다 이 전쟁터로 돌아온다. 이게 제일 쉬웠어!

그 전쟁이 오늘로 마감되었으면 좋겠지만, 오늘만 지나면 편해지겠지? 하며 좋아하는 아이에게 차마 잠깐의 휴식이 있을 뿐 앞으론 더 심한 경쟁이 기다린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짠한 이유다. 그리고 돌아와서 책을 폈는데 마침 이런 내용이다.

개천에서 나던 용이 하수구로 빠진 사연 - 자녀 교육비 그래프로 살펴 본 `승자독식`사회의 결말


사교육 열풍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가 지렛대 효과를 가져 자녀의 미래에 훨씬 더 큰 소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다시말해 한국이 승자독식인 사회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수능점수를 올리면 자녀의 미래 기대 수익이 크게 변하니, 고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이고, 사교육비를 지출할 능력이 없다면 더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승자독식`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가 `한 줄로 세우고 앞 사람에게 몽땅 몰아주기` 같은 분배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자녀교육비를 충분히 지출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부모의 아이만 입시에서 성공한다.

한 줄로 늘어선 사회의 맨 앞줄에 서지 않아도 좋다고, 마음 편히 가지고 니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라고 말을 하지만 그 앞줄에서 벗어난 삶은 어떨지, 과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지금의 사회는 보장해주질 못하는 듯하다. 오늘 신문 일면에는 일하는 20대의 네명중 한 명 꼴로 국민연금에 가입을 못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대부분이 알바와 비정규직인 까닭이다. 청년층의 빈곤이 노후빈곤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제 대통령이 sns에 올린 수험생 응원글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했다. 올해 수험생의 숫자는 63만 1184명이 아니라 63만 1434명이라야 했을 것이므로. 대통령은 외면했지만 그래도 국민들이 그 학생들을 잊지 않고 다시 불러서 함께 격려해주었다. 너희들도 잘 있지? 하고.
승자독식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방법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대다. 힘 없는 사람들은 서로를 챙기고 뭉쳐야 한다. 내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확실히 보아야 한다. 나는 수능을 보는 날에 단원고 아이들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앞 줄에 서지 않아도, 오히려 앞 줄에 선 사람들이 뒷줄의 연대를 부러워 할 만한 사회를 만들 순 없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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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11-1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연대와 기억과 희망,
따님도 지금까지 애쓴 좋은 결과 나오기를 기도 드립니다!

살리미 2015-11-12 09:28   좋아요 0 | URL
항상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해피북 2015-11-12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침부터 주책없이 눈물이 그렁그렁거렸어요 ㅠㅠ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짠하게 느끼시던 마음과 `1484`명이라던 말에 마음이 울컥거리네요 ㅜㅜ 수능을 치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늘 하루가 꿀과같은 하루가 되기를! 그리고 꼭 힘겨운 시간만큼의 결과가 있길 바래봅니다^^ 오로라님도 화이팅이예요 ㅎㅎ

살리미 2015-11-12 09:52   좋아요 0 | URL
ㅎㅎ 오늘은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마침 읽고 있던 책에서 이런 얘기가 나와서... 저도 울컥했네요 ㅋ 다들 응원해 주시니 좋은 결과 있겠지요^^

yureka01 2015-11-12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시사하는 바가 아주 많네요....오늘이 수능날이라 아이들의 미래를 한번더 생각하게 되네요...

살리미 2015-11-12 10: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서니데이 2015-11-1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오늘 시험 보는 수험생이시군요, 아쉬움 없이 시험 잘 봤으면 좋겠어요,
오로라님도 좋은하루되세요^^

살리미 2015-11-12 14:35   좋아요 1 | URL
네^^ 고마워요. 서니데이님!

에이바 2015-11-1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에게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오로라님^^

살리미 2015-11-12 15:22   좋아요 0 | URL
아아아앙~ 에이바님..... 끝날 시간이 다가오니 떨려요 ㅎㅎㅎㅎ

붉은돼지 2015-11-1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멋!! 오로라님에게 다 큰 따님이 있었군요...^^
제 조카도 오늘 시험치러 갔습니다. 모두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

살리미 2015-11-12 15:55   좋아요 1 | URL
네^^ 제 플필 사진이 우리딸인데, 어느새 커서 시험보러 갔어요^^ 전 이제 슬슬 따님 모시러 가 보려고요 ㅎㅎ 제2 외국어까지 치면 다섯시 종료에요. 수능 시험장을 가까운 곳에 배정받아서 끝나면 걸어오겠다고 하던데, 혹시나 시험 보고나서 너무 슬플까봐 ㅋ 문앞에 있다가 데리고 와야겠어요^^

인디언밥 2015-11-12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따님이 수험생.. 이셨군요 우와... 저는 수능 끝나고 터덜터덜 모르는 길 한참 걷다가 집에 왔는데.. 혼자 걷는 시간도 나쁘지 않더라구여. 흫! 그나저나 오로라님 진짜 멋있어요

살리미 2015-11-12 18:57   좋아요 0 | URL
혼자 오는 길이 너무 쓸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데리러 갔더니 교문앞에 엄마들이 너무 많이들 마중 나와 있어서 안 왔으면 섭섭할 뻔 했겠구나 싶더라고요^^ 수능이 끝나니 만감이 교차하나봐요 ㅎㅎ 그래도 울고 불고 하는 애들도 많던데 히히덕 거리고 나오더라고요^^ 멘탈갑이에요.

조선인 2015-11-1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결과 있기를. 줏대있게 아이 키우기란 정말 힘드네요.

살리미 2015-11-12 19: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아이가 어릴땐 언제면 커서 걱정이 없어질까 했는데, 그때 선배들 말씀이 지금이 좋을때다, 클 수록 고민이 더 많아진다 하더라고요. 품안에 있을 땐 내 방식대로 키울수 있었지만 자라면서는 포기할게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15-11-12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결과 있기를 저도 기원합니다^^
1484명~~~갑자기 한숨 나오네요!ㅜ

살리미 2015-11-12 19:1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오늘 아이가 시험치르는 동안 페이스북에 올라온 단원고 엄마들 글 읽으면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우리 딸과 같은 나이고 또 그 사고가 없었더라면 같은 경로로 수학여행을 갈 뻔 해서 더 마음이 쓰여요 ㅠㅠ

달팽이개미 2015-11-1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라님 같은 선배맘이 많~은 사회였음 좋겠어요^^ 뒤따르는 저같은 병아리맘들이 갈팡질팡 하는 일 없이 올곧게 나아갈 수 있게요...그래야 아이들이 사는 세상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따님분과 함께 오늘 하루 맘고생 많으셨을텐데...좋은 결과가 있길 바랄게요^^*

살리미 2015-11-12 22:55   좋아요 1 | URL
저도 정답은 모르겠어요.다만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정도도 쉽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역시 제일 훌륭한 조언은 책 속에 있을 때가 많다는 ㅎㅎ 그래도 시험이 끝나니 간만에 온가족이 저녁다운 저녁을 보내서 기분이 좋아요^^ 고마워요!

지금행복하자 2015-11-12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이제 끝나고 저녁먹고 쉬고 있겠군요~

제 주변에도 여러명 시험보는데 시험보는 아이들에게 아무말도 할 수 없었어요. 인사말로라도 최선을 다해. 시험 잘봐 해야하는데.. 말은 버벅이고.. 해서 그냥 안아만 주고.. 초콜릿 건네 주면서 손만 잡아 줬어요~
끝나고 나서도.. 수고했다는 말 밖에 못 하겠더라고요~ 어려웠다고 시무룩하게 나오는데.. 오늘 하루를 위해 3년을 묵묵히 보냈을 그 아이를 생각하니.. 정말 아무말 못 했어요~~ 제 친구 딸인데도 맘이 이런데...
그냥 친구만 위로하고 왔어요~~ 위로하는것이 너무 서툴러서 괜히 말실수 할까봐 더 조심스러워요~~

살리미 2015-11-12 2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마음 너무 잘 알겠어요. 우리 딸도 태연한 척 하지만 울다가 웃다가 그러더라고요.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까 저도 아무말을 할 수 없더라고요. 위로하는 건 너무 어려워요. 그냥 같이 티비나 보면서... 마침 딸이 응답하라 1988 보고 싶었다고 해서 같이 보면서... 웃다가 울다가 했네요^^

transient-guest 2015-11-13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능이었군요. 그 어느 때보다 더 멀게만 느껴지는 한국의 하루였습니다, 저에겐. 아무 생각없이 하루를 보냈네요. 그나저나 박씨는 말투마저 유신의 악취가 폴폴 난다면, 저만 그럴까요??ㅎ

살리미 2015-11-13 10:24   좋아요 0 | URL
혼자서만 범접하지 못할 세계에 계시는 분 말투죠. 혼이 고귀하셔서 글켓지요 ㅠㅠ 그나저나.... 저 폰트가 바쁜벌꿀체라고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