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마빈 클로스 외 지음, 박영록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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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와 함성이 아직도 귓전에 쟁쟁한데 벌써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란다. 여기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기까지 밑거름이 되어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정권 아래 반정부시위를 벌이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해온 정치범들이 수용된 로벤섬에서 벌어진 축구경기를 알게 된다면 남아공에서 개최된 이번 월드컵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어떻게 자신들에게 철저히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교도소 당국을 설득하고 주말마다 축구경기를 할 생각을 했는지, 하루 반나절 이상을 채석장에서 고된 노동과 부실한 영향상태로 훈련을 하고, 종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교도소에서 기록을 남기고 심판위원회와 축구협회등 어떻게 체계적인 운영이 가능했는지 말이다. 산넘어 산이라고 한가지 과제가 해결될 때마다 그들에겐 더 험난한 산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막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종종 잊는 경우가 있었다. 끈기와 인내로 오랜시간동안 간수와 교도소당국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신념과 고집을 굽히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축구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축구를 통해 변화의 희망을 놓지 않은 그들의 강인한 정신력을높게 평가해주고 싶다. 


축구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열정을 부추기고, 선수와 응원자 사이를 끈끈하게 만들어 교도소 생활에서 오는 좌절감을 덜어주고 기분전환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p.123


처음 시작은 주말에 겨우 30분정도만 주어졌던 오합지졸같던 축구시합을 팀을 구성하고 리그별 시합계획을 세우며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붙들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심판위원회를 만들어 정당한 심판을 볼 수 있도록했으며 축구를 통해 생긴 노하우로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시도하고, 교도소 울타리 안이었지만 나름의 올림픽까지 열어 힘들었던 수감 생활을 잊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자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축구라는 스포츠종목이 왜 이렇게 오랜 세월 꾸준히 사랑받는지 알 것만 같았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교도소내의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했다. 이렇듯 교도소내의 축구를 가능하게 했던 많은 이들은 현재 남아공의 대통령을 비롯해 FIFA위원회, 헌법재판소등 정권이 바뀐 남아공의 주춧돌이 되어 있다는 것은 더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교도소에서 출소된 이 후, 그리고 정권이 교체된 이 후에도 그들은 로벤섬내에서 벌어진 축구경기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축구는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는 말처럼 축구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 되었던 것이다. 축구화대신 폐타이어로 만든 신발을 신고, 국제적십자사의 도움으로 근근히 받을 수 있었던 유니폼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성공시킨 열정과 노력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드컵이 몇개월 남지 않는 현시점, 뉴스에서는 남아공에서 연일 벌어지는 무력시위와 허술한 보안등을 문제삼으며 개최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월드컵과 축구에 대한 열망으로 개최국으로서의 자부심이 한껏 부풀어 있을 줄만 알았던 남아공은 국가적 축제를 눈 앞에 두고도 오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부디 월드컵을 무사히 개최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남아공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당시에는 그들도 몰랐지만, 그들이 섬에 남기고 온 것은 현대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주목할 만한 이야기였다. 헌신적이면서도 결단력 있는 지도력과 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지원으로, 그들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축구를 통해 로벤섬에 자유의 소중한 의미를 새길 수 있었다. 또한 수천 명의 수감자들에게 희망과 동기 그리고 목적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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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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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30도를 웃도는 뜨거운 기온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간질거리는 여름, 그 끝을 아쉬워하는지 8월의 더위는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찜통같은 무더위 속에 1964년 10월 10월에 있을 도쿄올림픽의 장대한 개막과 일본의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노동자들은 12시간을 넘는 고된 노역으로 인간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노동자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한 젊은이가 혹독한 육체노동으로 몸과 마음을 벼르며 프롤레타리아의 반역을 꿈꾸고 있다.


육체노동을 경험하지 않는담녀 자신은 타락하고 만다. 자본이 만들어낸 무한한 욕구가 품고 있는 비합리성,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밖에 없다. 세상을 바로잡는 건 프롤레타리아를 빼고는 없다. 고향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피눈물이다.    -p.184


그리고 어느 날 올림픽을 몇 달 앞두고 경찰 최고간부이자 올림픽 경비의 총책임자인 스가 경감의 사저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뒤이어 나카노 경찰학교의 배선실에서 두번째 폭발이 발생했다. 올림픽을 앞 둔 시점에서 경찰과 공안부는 발칵 뒤집혔고, 초긴급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범인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올림픽을 인질로 배후에 있는 국가의 거대권력과 맞서려는 범인의 모습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며 소설은 매우 긴박하게 전개된다.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형의 죽음이 후 돌연 노동자계급에 대한 부채의식을 떠안고 노동자가 되기로 결심한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 시마자키 구니오, 올림픽의 총경비책임자인 스가 경감의 둘째 아들이자 시마자키와 동창인 스가 다다시, 폭발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 이 세 사람의 90일동안의 행적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폭발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묘하게도 세 사람 모두 국가라는 조직의 부당함과 내부권력의 힘을 느끼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사소한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캐릭터의 끌림이 전체를 압도하고, 현재를 통해 전달되는 과거의 복선이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노동자의 목숨이란 얼마나 값싼 것인가. 지배층이 민중을 바라보는 시선은, 19년 전에 본토 결전을 상정하고 '1억 국민이 모두 불꽃으로 타오르자'라고 몰아치던 시절 그대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민중은 한낱 장기 말로만 취급되고,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게 전쟁이었고, 이제 그것은 경제발전이다. 도쿄올림픽은 그 헛된 구호를 위해 높이 쳐든 깃발이었다.    -p.386


1권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작가의 전작 중 가장 좋아하는 <남쪽으로 튀어>였다.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된 주인공 아버지의 모습이 이 책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시마자키 구니오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 아버지의 순결했던 젊은 시절, 자신이 주장해온 이론을 실천으로 옮겼더라면 분명 그 역시 시마자키 못지않은 과격함으로 가족이나 주변사람이 아닌 국가를 상대로 한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남쪽으로 튀어는 우리를 유쾌하게 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의식을 각성하게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시마자키가 겪은 빈부격차의 실체는 옛이야기같지만, 자본주의의 폐단은 21세기의 새로운 빈부격차와 피지배계층의 전락으로 프롤레타리아에게 더욱 뚜렷한 상실감을 맛보게 했다. 그래서 시마자키가 해석한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 해석은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한 개인의 쿠데타를 순수하게 포장해주는 설득력을 발휘한다. 2권을 읽기 전, 시마자키의 끝이 부디 불운하지 않기만을 수없이 되뇌어보았다. 그리고 개인의 저항이 결국 무력하게 끝나버릴것이라고 뻔히 예상하는 나의 생각을 확실한 반전으로 그가 뛰어넘어주길 바래본다.


공산주의라고 하면 금세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체재측에서도 노골적으로 경계하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을 생각하는 지극히 순수한 사상이야.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서, 창출되어야 할 어떤 상태이지 그것에 따라서 현실이 바로잡혀야 하는 어떤 이상이 아니야, 우리가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실천적인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이야.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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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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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하면 서양의 고전이나 소설에만 치중해 읽다보니 막상 내가 읽은 우리나라 고전들은 중,고등학교 국어책에서나 짧은 지문으로 만났던 것이 전부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제목만 들어봤지 간단한 줄거리조차 처음 접하는 것이 많았기에 이렇듯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선조들의 필력과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못하고 읽어내려갔다. 무엇보다 책의 깔끔한 구성과 단계별 해석은 옛소설의 읽는 맛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시대를 아울러 가장 인기있는 테마의 소설을 엄선한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 장에서 소개되는 세계 공통의 관심사인 사랑에는 시대의 금기를 깨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애틋한 이들의 연애사를 담았다. 두번째장과 세번째장의 테마인 전쟁과 남성들의 판타지에는 전쟁으로 상처받고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남성들의 성장과 성공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서는 신선과 동물의 시선을 빌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욕망,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꼬집는다.


많은 고전 중에 기억에 남는 몇편이 있는데 사랑테마에 있는 세 소설 [이생규장전], [소설], [윤지경전]과 [박씨전], [옥루몽], [금방울전], [남궁선생전]이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시대와 상상을 초월한 판타지와 사랑, 신선과 선녀의 이야기는 현대의 어떤 소설보다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며 서사적이다. 실제 원문을 접한다면 운치있는 문장과 재치있는 말솜씨, 다양한 캐릭터가 어우러져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연암 박지원 선생의 [호질]에 대한 부연설명은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부추긴다. 시대를 거슬러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비결은 역시 글 속에서 찾을 수 있겠으니 책에서 소개된 고전들을 꼭 찾아 읽어보기로 하였다.


이렇듯 재미있고 파격적인 우리이야기들이 현재까지 널리 읽히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운데 그건 작가가 서문에서도 밝혔듯 한문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대중화된 번역본도 구하기 어렵고. 고전의 매력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시험문제에서 먼저 만난 탓에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열 세 편의 이야기를 본문에 다 옮기지 못해 요약만 해놓았기 때문에 천천히 읽기, 깊이 보기, 넓게 읽기의 단계로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며, 더 많은 고전들과 연계해 읽을 수 있게 한 구성은 옛소설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소설의 시대배경을 알고 보면 그 재미가 더할 것이니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공부도 함께 하게 되어 1석 2조의 효과를 누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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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과 밤배 - 하
정채봉 지음 / 까치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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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시 집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 흘렀다. 나의 순수했던 시절과 조우하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책꽂이를 가장 많이 차지했던 <샘터> 잡지에서 "생각하는 동화"라는 글로 나의 철없던 시절 치기어린 마음을 잠재우던 정채봉 작가였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간에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찾아 읽고 가슴에 새겼던 일이 멀지 않은 시간의 경험처럼 생생하다. 작가의 아이같은 웃음과 미소를 떠올리며 난나의 순수함에 물들고 싶은 나는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은 철부지 어른아이였다. 그 때 그의 책을 읽었던 순수한 열정을 되새기기 위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초승달과 밤배>를 읽게 되었다.
 

군부독재시절, 빨갱이로 몰려 행방불명된 아버지와 도망간 어머니. 부모에게 버림받은 주인공 난나는 곱추동생 옥이와 할머니, 외팔이 삼촌과 멀리 백령도가 보이는 바닷가 섬마을에 살고 있다. 가난하지만 고운 심성과 지혜롭고 곧은 마음을 지닌 난나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은 섬마을의 목가적인 분위기와 서울의 삭막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대비되어 난나의 심리적 변화를 뚜렷히 엿볼 수 있다.


어떤 책이든 처음 읽었을 때와 두번째 읽었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처음과 두번째 사이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생경함은 더해가고 전혀 다른 감동과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13년전의 내 마음과 감동은 지금에와 느끼는 여운과는 전혀 다른 이상과 순수의 질문을 던졌었다. 정채봉 작가 특유의 사색과 깊이 때문인지 사춘기시절 나의 심미안은 고즈넉한 섬의 바람에 자갈처럼 단단히 영글어가던 난나의 맑고 투명한 성정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다. 

 
저는 일월의 들녘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텅 빈 들, 얼어붙은 개울, 앙상한 나뭇가지가 전부이지만, 이 들녘의 땅껍질을 가만히 떠들어보셔요. 풀씨들이 움을 준비하고 있고 개구리가 꿈결 같은 아지랑이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개구리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듯이 제 가슴도 그렇게 오는 봄을 향해서 두근거리고 있습니다. 나무 줄기에 물이 오르듯이 제 가슴의 가장자리에도 엽록의 빛이 스미기 시작하는 저는 일월의 들녘입니다.   -p.27(하)
 

하지만 다시 읽은 <초승달과 밤배>에서는 닮고 싶었던 난나의 때묻지 않은 천진함과 솔질함보다 청년이 되어 도시로 나간 난나가 겪는 열패감과 삶의 그늘, 고된 노동자로 하루를 살아가고 방황하는 모습이 더 크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거짓과 위선의 가면으로 어두운 내면을 감춘 도시인들의 불안함이 그에게 물들어가고 점점 피폐하게 변해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고요하고 잔잔한 수면에 무심코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큰 파문을 일으키듯 난나의 마음에 인 소용돌이가 성인이 된 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변한 그를 탓할 수 없었다. 처음과 두번째의 간극사이 변해버린 내 마음을 원망해야 할 일이었다. 난나의 동생 옥이처럼 작고 낮은 것들이 착하다는 걸 잊고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운 과거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의 나를 일깨우는 소중한 책으로 기억에 새겨두기로 하였다. 
 

작은 것들을 왜 생각해? 큰 것들이 위대한 거야."

"작은 것들은 착한 걸."

"아니야. 큰 것들이 좋아. 나는 고래가 좋고 군함이 좋아. 빌딩이 좋고 거인이 좋아. 그래, 나는 고래잡이배의 선장이 되겠어."

"오빠와 나는 반대다. 나는 작은 것이 좋은데...... 눈송이가 좋고 피래미가 좋아. 피래미가 좋아. 돛단배가 좋고 초가집이 좋아. 냉이꽃이 좋고 아기가 좋아."    -p.220(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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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식물 - 세상을 보는 식물의 시선
마이클 폴란 지음, 이경식 옮김 / 황소자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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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에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식물의 시선'이라는 말이 있다. 땅에 뿌리박혀 있어 사람이나 벌의 손길을 기다리는 매우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 식물이 역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라... 꽤 독특한 발상에서 시작한 책이었다. 사과와 튤립, 대마초와 감자의 네가지 식물로 대변되는 인간의 네가지 욕망, 즉 달콤함, 아름다움, 황홀함, 지배력의 관점으로 바라본 식물의 진화론적 선택은 그들을 길들였다고 생각한 인간의 주체적 오만함을 비웃는 듯 했다. 실은 네가지 식물이 종의 번식을 위해 인간의 욕망을 도구로 이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작가의 지적은 자연 속에 인간은 아주 미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도 일깨웠다.


이 책에서 다루는 네 가지 식물들은 소위 인간에게 '길들여진 식물 종'들이다. 길을 들였다는 표현은 우리 인간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길들인다고 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인간의 일방적인 주도권을 떠올리지만, 이 과정이 실은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교묘하게 선택한 진화의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p.21 
 

네가지 식물이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된 역사적 사건과 장소를 추적하고 저자 자신의 정원에 식물들을 키우기도 하면서 그 식물에 직접적으로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야생의 식물들을 우리가 먹기 좋게, 보기 좋게 길들이고 지배했다고 생각한 발상을 뒤엎고 실제 식물들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우리 인간세상을 지배해온 것일 수 있다는 작가의 논리와 근거는 정말 집요할만큼 세세하다. 미개척지에 사과씨를 뿌리고 사과나무를 심어 이주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만든 조니 애플시드의 일화, 사람들의 심미안을 자극해 천정부지로 자신의 몸값을 높인 네덜란드의 튤립열풍, 금지와 금기를 넘나드는 대마초 재배, 유전자 조작으로 병충해의 접근도 못하게 했던 몬산토사의 지적재산인 감자 '뉴 리프'에 얽힌 이야기들은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주체적인 입장의 식물을 보여준다. 
 

식물의 진화는 이제 서로 다른 종 사이의 매력과 유혹이라는 새로운 동기에 따라 진행되었다. 이제 자연선택은 가루받이 매개체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꽃이나 먹이 사냥꾼이 좋아하는 열매를 가진 식물의 편을 편들었다. 자기 종이 아닌 다른 종의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식물의 진화에서 가장 큰 과제로 떠올랐다. 다른 종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잘 충족시키는 식물이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생사를 결정하는, 나아가 한 종의 번성과 멸종을 결정하는 핵심 전략의 문제로 떠올랐다.   -p.188


무엇보다 신화 속 인물인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관점으로 인간의 욕망을 해석한 것이 흥미로웠고, 다윈의 진화이론과 유전자공학으로 분석한 식물들의 생태도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이 책 속에 등장한 식물들은 더이상 수동적인 객체로서 인간에게 길들여진 식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았고 왕성하게 번식했으며 다양하게 진화해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파고들었다. 자연선택이 아닌 인위선택으로 인간의 밭에서 살아남았고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쉽게 인정할 수 없었던 역발상의 논리를 쉽고 재미있는 설명과 경험을 토대로 한 예시, 설득력있게 다가온 역사속 이야기와 실제인물의 자취는 지루할틈없이 빠르게 전개되어 읽는 맛을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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