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으로 알았다. 그 거짓말이 어떤 사람을 아프게하고 상처입혔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아하다는 형용사의 그림자는 다분히 폭력적이고 허울좋은 진실을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남편을 잃고 씩씩하게 두 딸을 키우던 엄마는 사랑하는 딸 천지마저 잃었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이 했던 말이 어린 딸에게 상처가 됐을거라 짐작할 뿐이다. 천지를 괴롭혔던 화연 역시 천지의 자살로 상실감과 죄책감에 빠진다. 천지의 죽음으로 화연은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지만, 반성이 아닌 변명과 자신의 정당함만을 내세우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천지의 죽음 뒤에야 주변사람들은 하나씩 사실과 모호한 진실을 뱉어낸다.     
 

지금은 그저 우스개소리가 아닌 사회적 이슈와 문제가 되었지만,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만 하더라도 왕따라는 말이 유행에 지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 비슷한 말 중 '은따'라는 속어도 아이들이 만들어 놀리곤 했는데 은근히 따돌린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화연이 천지를 대했던 과거의 행동이 '은따'라는 말을 떠오르게 했다. 오랫동안 교묘히 자신을 괴롭혀온 화연의 행동이 화근이 되어 천지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착한 아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한 채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할 수 없지만, 미운 마음만은 버리고 가겠다고 말하며 죽음을 택하는 천지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 죽음은 이제 온전히 살아남은 자의 몫이 되어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더이상 착한 아이가 아닙니다. 때문에 모두 용서하고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이제 나쁜 아이가 되어서 갑니다.용서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보다 편하고 싶어 떠나는 게 아닙니다. 내 몸이 더 이상 이곳을 원하지 않아서 떠납니다. 분명히 말하고 가겠습니다. 용서하지 않고 떠난다고......    -p.101 

 
미완의 죽음, 죽음을 부추긴 친구 화연, 화연의 따돌림을 방관한 미라, 가족이지만 보듬어주지 못한 엄마, 그리고 뒤늦게 천지의 죽음을 실감한 언니 만지. 이 모두는 살았기 때문에 천지의 죽음을 절절히 몸으로 끌어안아야하는 사람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되짚으며 그들의 우아한 폭력은 하나 하나 들춰진다. 처음엔 오래전 전학온 날부터 천지를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아온 화연이 가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지의 주변에서 분명 화연의 행동을 비난하면서도 직접 나서서 도와주지 못한 미라나, 3년 전부터 사실을 알았던 엄마 역시 죽음을 방조했던 것이다. 쉽게 했던 거짓말과 배려하지 않은 위로, 잔인한 무관심은 사춘기 소녀가 겪어내기엔 너무 거대한 먹구름이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어른들은 시시하다. 어른들이 생각한 아이들의 세계 역시 어설프다. 비록 지금 철들지 않는 어른일지라도 나의 10대를 되돌아보면 사춘기를 이르러 질풍노도의 시기라 하는 말이 이해될 정도로 변덕스럽고 예민했으며 거칠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세계를 들어가려는 노력 대신 우리 때는 저렇지 않았다는 탄식만 할 뿐이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도 분명 어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자아와 불안하게 흔들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해도 마찬가지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저자는 손을 놓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때의 감정이 전부인 것처럼 세상을 등지지 말라고. 뒤돌아보면 웃으며 털어버릴 수 있을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위로조차 진심으로 들리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모두 어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게 말이다. 너, 죽지 마라. 언젠가는 죽기 싫어도 죽어. 일부러 앞당기지 마.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 더 아프게 하는거야. 죽어서 해결될 일 아무것도 없어.
묻어둘 수는 있겠지. 근데 그거, 해결되는 거 아냐. 냄새가 진동하거든.
진짜 복수는 살아남는거야. 생명 다할 때까지 살아."   -p.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이야기는 허구다. 하지만 그 안에 분명한 현실이 있다. 불편한 진실과 무력한 개인의 처절한 사투가 이성적인 공간이라 여기는 법정에서 그려진다. 분명 사람아래 있어야 할 법은 사람위에서 그들을 조롱하며 관망하고, 대한민국의 주권과 권력을 가졌다는 국민은 다수가 아닌 소수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무시되는 곳,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과 그 곳의 법정이다. 민주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다수결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수결로 인해 묻히는 소수가 더 많다는 사실또한 민주주의의 평등원칙에 반하는 모순이다. 이 책도 그런 아이러니와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사회약자들의 목소리에 동정하면서도 낙담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시대의 변화는 소수의견에 귀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국선전담변호사인 주인공 윤변호사에게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박재호의 변호의뢰가 들어온다. 박재호는 아현동재개발지구에서 일어난 16세소년과 20대전경의 살인사건 피의자로 기소되었다. 그는 전경의 폭행에 의해 죽은 16세소년의 아버지이자 전경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진압경찰의 무혐의에 강하게 반발하며 항고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은 경찰이 누명을 씌운 폭력배 김수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투입된 진압경찰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을 비호한 검찰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는 건 검찰뒤에 있는 거대권력인 나라를 상대로 한 크나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윤변호사와 그의 선배 대석이 피고 대한민국에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100원, 그들이 원하는 건 청구금액이 아니라 여론을 환기시킬 목적이었기에 사건은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일파만파 커져간다. 게다가 법의 형평성과 공권력남용을 우려해 그들이 요구한 것은 국민참여재판. 결코 법에 호소할 수 없는 부분을 배심원 평결로 일방적 판결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주인공 윤변호사는 변호사로서의 자부심이나 신념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았다. 박재호 사건을 맡기 전까지 말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에야 느끼는 거지만 그는 교도소에서 만난 박재호를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 것 같다. 한 가족의 가장이었고 누구보다 큰 존재였지만, 평등한 법앞에 소수자가 되어 한순간 범죄자로 전락해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인 박재호를 보며 자신의 도덕과 이성사이에서 갈등할 순간도 없이 박재호의 변호를 선택한다. 그리고 항고를 준비하고 재판을 진행하는동안 법앞에 놓인 소수자의 진실에 그동안 자신이 고민해왔던 변호사로서의 신념을 되새긴다. 만인에게 공평한 법이라 배우고 연수원시절 소수의견에 집착해온 염만수 교수의 강의도 결국 현실과 달랐다는 걸 일깨웠지만, 박재호를 변호하며 그는 진정한 법은 소수에게 더 관대해야한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을까.  

 
정지된 시간 속에 박재호의 삶이 펼쳐졌다. 그는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역사였다.
그는 때로는 동정 받았고, 때로는 착취되었다. 나는 그 주먹 쥔 손을 바라보았다.
마디가 굵은 억세고 더러운 손. 흙은 꽉 쥘 수 있지만 법은 수이 그 손을 새어 나간다.      
-p.244 


그러나 그런 소수의 진실도 아름답지만은 않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진실이란 전혀 아름답지 않지.
그런 추한 것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만이 진실을 보게 된다오.
그리하여 이 세계가 너무 잔혹한 곳이라는 것을. 그 잔혹함마저도 기실은 진실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나 역시 잔혹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받아들이게 됐소.
그리고 나면 두 눈으로는 한 인간을 성장하게 만드는 모순과 투쟁만이 가득한 세계가 보이게 된다오.  
밤은 노래한다 中 -p.236


법정공방에서 드러나는 위법성과 논란, 사건의 이해관계에 얽힌 많은 사람들의 협박과 회유, 날조된 진실과 소수의견의 진실을 위해 윤변호사가 행하는 비양심적 논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그렇기에 잔혹한 진실을 목도하고 받아들인 순간 모순과 투쟁만이 가득한 세계라는 김연수의 말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두 변호사와 검사가 겨루는 팽팽한 접전은 다수에 의해 묵살된 소수의견의 진실성에 접근하기도 하지만, 실체없는 국가의 거대권력과 무력에도 맞닥드리게 된다.
생소한 법정용어와 긴 재판과정에도 흐름이 끊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읽히고, 많은 사회적 이슈와 논쟁이 되어 입에 오르내리지만 맥없이 스러진 사건사고를 되짚게 하며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이 책의 진짜 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의 시장 - 일상다반사, 소소함의 미학, 시장 엿보기
기분좋은 QX 엮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시장을 좋아하고 시장보기를 좋아하지만 생각만큼 찾지 않게 되는 것도 시장이다. 요즘엔 대형마트에서 공산품부터 식료품, 가전제품까지 한 번에 쇼핑하는 편리함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시장상인과 직접 가격흥정에 덤이라는 기분좋은 서비스까지 있는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곳이지만, 대형마트나 슈퍼, 백화점에 밀리고 밀리다 이젠 뒷전이 되버린 곳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는 어김없이 시장이 들어선다. 빨간 바구니에 피라미드처럼 쌓은 과일, 2~3000원씩 담긴 싱싱한 야채, 생선, 바퀴벌레약부터 호박엿까지 시장을 보면 사람사는 모습,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녹색 풋사과가 나오면 여름이 왔구나 알게 되고, 팔이 긴 옷이 나오면 가을이 왔다는 걸 실감한다. 시장이란 반가운 타이틀의 이 책은 대형마트의 그늘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시장의 새로운 활력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5명의 공동저자가 소개하는 우리나라의 시장은 동네시장을 보는 것처럼 친근하기도 하고, 외국시장처럼 이국적이기도(제주도가 그러했다.) 하다. 지역 특색을 담은 먹거리와 푸근한 인심의 상인들, 오래된 간판과 볼거리들은 시장의 숨겨진 매력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어떤 지역에서든 그 지역특유의 모습과 시장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관광도시라는 화려함에 가려 보지 못했던 제주도의 시장이었다. 선물용으로 박스채 담긴 한라봉대신 리어커에 잔뜩 쌓아놓고 파는 모습이 유난히 예뻤고 결혼식때 먹는다는 빙떡, 백년초와 녹차로 만든 강정은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부산에 살기에 더 반가운 부산의 깡통시장과 시장통에서 유명한 단팥죽 할머니, 헌책방 골목은 자주 가는 곳이라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제주도부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까지 내노라하는 시장의 모습은 북적 북적 시끄러울 것 같지만, 어르신들이 지키고 있는 시장바닥의 모습은 냉엄하고 비루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파라솔하나에 의지해 -혹은 그조차 없이- 살을 에는 추위와 찌는 듯한 무더위에 온종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하루를 살아야하는 이들에게 시장이란 치열한 삶의 터전인 것이다. 그래서 시장의 생동감, 고된 하루가 삶의 나이테가 되는 시장의 모습을 담기에 다섯명의 저자가 들려주는 소심함은 감상적이고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실제 찾아갈 수 있는 방법과 지역 특유의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소개는 젊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게 할만큼 매력적이라 할 만하다. 

 
물건과 가격만 보이는 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과 인심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장보기 전에 주변의 시장을 찾아보자. 많은 이웃과 상인들의 모습에서 사람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면 그 물건을 판매한 사람들의 인상을 다시 회상한다. 그 분들의 친절과 표정, 자로 재지 않고 저울로 달지 않은 -혹, 이미 잰 것일 수도 있겠다- 마음을 가슴에 담는다. 그리고 꼭 다시 찾아가게 된다. 그 곳에 가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에게도 살아간다는 현실감을 전해준다. 그리고 변화하는 흐름에 발맞춰 안과 밖으로 달라지고 있는 한국시장의 내일은 희망적이라고 책은 말해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지말고 당당하게 - 하종강이 만난 여인들 우리 시대 우리 삶 1
하종강 지음, 장차현실 그림 / 이숲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동이라는 단어는 얼핏 진보성향이나 사회주의의 냄새가 풍긴다. 혹은, 고된 육체노동자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우리는 분명 먹고 살기 위해서 몸이나 머리를 쓰며 일을 하는 노동자임에도 단어에서 주는 인상은 부정적이고 어둡기까지 하다. 이 땅 위에 학생이나 아기가 아니고서는 모두가 신성한 노동자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부당해고, 저임금과 능력과소평가등 분명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성들의 근무조건은 열악하다. 저자는 이렇듯 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의 편에 놓인 여성노동자들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되돌아보게 한다.


나 역시 여성노동자이기 때문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부당해고 되고 이유없이 좌천되어 사무직에서 청소직으로 몰리거나, 사측에 불공정한 부분을 항의하여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게 끌려가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바라는 건 급여인상이나 근무시간의 개선도 아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대해 인정받고 그 위치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아주 작은 바램이었는데 그조차 무시당하고 짓밟혔다는 사실이다. 근로자에게 적용되야할 근로기준법을 사회적 강자로서 철저하게 악용하는 고용주들의 태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에 한숨짓게 만들었다.  


'노동조합'이라는 중요한 단어가 자기 인생과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며 자란 청소년들...... 자기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회사에서 인간답게 일하며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신세대 노동자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 땅의 교육과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자본과 권력의 잘못이다.   -p.113


그렇지만 노동자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와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의 활동은 2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 역활을 꾸준히 실천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측에서 노동조합에 보내는 시선은 늘 따갑다. 근로자들이 단결하여 파업이라도 하는 날에는 팽팽한 신경전과 까다로운 조건으로 협상을 몇 번이나 번복하기도 하고 경찰까지 동원하여 몸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과연 노조측이 제시하는 협상안이 그렇게 비합리적인지, 언론까지 들고나는 가진자의 이기적관점은 그들을 모두 배부른 소리하는 사람으로 비추기까지 한다. 더구나 노동조합안에서 위원장으로 여자가 뽑히자 분개하며 반대하는 남성조합원들의 모습까지 더해지자 여성조합원들이 해내려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됐고, 근로기준법의 생리휴가조항 하나까지도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닌 그들의 노력과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노동조합은 결코 노동자에게만 유익한 집단이기주의적 조직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문제점을 고쳐 더 좋은 사회로 만들어 가는 올바른 수단을 제공한다. 노동조합은 지금까지 200년이 넘는 역사에서 그 역활을 수행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p.61

 

사회는 급변한다. 여성들의 지위도 예전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의 지위는 아직도 불평등하다. 이 책이 말해주고 있다. 지금도 사회 여러 곳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고용주의 부당대우와 차별, 냉대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변화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다. 실로 무거운 주제였지만 저자는 자신이 만난 여성들을 통해 짧고 가벼운 에피소드로 쉽고 재미있게 전달했다. 때론 울음을 삼키고, 때론 큰소리치고 싶기도 했다. 노동운동이 최소한의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선언이라는, 한 노동자의 선언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과 파업, 그리고 죽음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내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게 만들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져야 할 최저의 기준입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노동자가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동안 했던 활동은 단지 인간선언일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노동운동은 지금 인간선언의 절박한 요구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p.1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각의 제국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기록한 우리 시대 음식열전!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에서 이미 작가의 고집스러움이 풍기는 책이다. 아니나 다를까. 맛컬럼리스트라는 자신의 직업을 백분활용해 음식부터 요리재료 하나에 이르기까지 절대미각의 진실을 들추어낸다. 한식이 주를 이루는데 우리가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한식의 진실, 혹은 맛집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오로지 자신의 감각을 믿을 수 밖에 없는 맛을 평가하는 사람이니 다분히 주관적인 의견이 섞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처음엔 너무 편파적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는 당당히 밝힌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횡행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입맛에 반기를 드는 나만의 미각의 제국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선언하며 운을 뗀다. 처음엔 그저 즐기는 미식가가 되었다가 맛전문가가 되고 나서 그가 맛본 국적불명의 한식과 재료본연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조리법, 기본을 무시한 요리에 그는 분명 분노한 것 같았다. 특히 화학조미료편 드러나는 그의 분노는 차라리 체념에 가깝다. 오랫동안 맛보며 커온 엄마의 맛이 이 화학조미료의 실력이었으니 그 입맛을 바꾸기가 쉽지 않음은 두말해 무엇하리. 짜고 맵고 달고, 유난히 자극적인 음식에 강하게 반응하는 민족이다보니 그들의 입맛을 휘어잡으려면 점점 더 자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학조미료는 그 자체로 맛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식재료들 제 각각의 맛을 뭉그러뜨리는 역활을 하는데, 툭툭 튀어나오는 맛들의 중간에 서서 조절을 한다. 이것저것 양념을 넣었는데 맛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 고민일 때 화학조미료 한 숟가락이면 모두 해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짜고 매운맛을 음식의 중심에 두고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내는 한국 음식에 화학조미료는 '맛의 조절자'로 항상 유용(?_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 음식에서 화학조미료를 버리자면 짜고 맵고 강한 양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심심하고 순하게 먹으면 화학조미료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p.39

 

그가 아쉬워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다. 혀와 뇌를 마비시킬 정도의 자극적 식감때문에 재대로 된 음식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진실을 파헤치기로 한 결심이 된 듯하다. 그리고 그런 음식을 만드는 사이비들에게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이비요리사만 난무하는 세상은 아니지만 기본도 모르는 사이비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저 유행을 쫓아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을 섞고, 재료 본연의 맛을 감추어 먹는 사람들의 미각을 속이는 얄팍한 상술에 당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만든 음식을 먹고 미각을 벼르는 일 밖에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장에서 주정으로 만든 양조식초로 만족한다.
유명 한식 요리사는 저만의 천연식초 하나 없이 '2배 식초'를 쓰면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막회로 큰 손님을 모으고 있는 식당에서는 막걸리식초가 있는 줄도 모른다.
기본이 없으면 사이비일 뿐이다.    -p.25

 

책을 읽는 내내 사실 참 많이 웃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 웃음의 뒷맛은 씁쓸했다. 왜냐, 그가 말하는 사실이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상술과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맛의 속임에 내가 맛있다고 먹은 음식들까지 모조리 의심스러워졌으니 참 불편한 책이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한 기본에 충실한 요리들을 먹기 위해선 그만큼의 많은 음식들을 맛보아야할 것이다. 꼭 한식에만 국한되지 않고 음식의 재료가 되는 모든 것들, 우리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국적불명의 음식들까지도 기본을 지켰을 때 가장 맛있는 요리가 된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 요리의 기본은 아는게 병이 아니라 아는게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