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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레지스탕스 - 저항하는 인간, 법체계를 전복하다 ㅣ 레지스탕스 총서 1
박경신 외 지음 / 해피스토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평범하고 조용한 삶, 안정적인 현실을 위해 우린 때로 너무 많은 거짓을 눈감아주고 위선을 애써 외면한다. 혹은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더이상 깊이 관여하지 않기도 한다. 정작 그 부당함이 나의 일이 되어도 우리는 법이라는 국가의 거대권력앞에 무기력하게 대항할 힘을 잃고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는 권력이라 부르는 법앞에,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은 법앞에 정의를 호소하며 포기하지 않고 저항해온 혁명가들의 가슴뛰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1심, 2심, 대법원까지 거쳐 승소한 사건들은 고집스런 이 시대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이 되어주며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준다.
사회, 정치, 경제, 환경, 인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약자들의 반란은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할 수 현실의 문제를 되짚고 있다. 특히 몇년새 부쩍 늘어 우리나라 실업난의 가장 큰 핵심으로 대두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판자촌에서 생계를 꾸려살고 있는 극빈층의 주거문제, 4대강 관련 환경문제, 열린 인터넷 공간에서도 제약받는 언론의 자유등 근래 자주 논의되고 있으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일련의 사건을 예로 들어 신문이나 기사에서 읽지 못한 재판과정과 소송을 둘러싼 다각도의 입장차를 비교적 쉽게 정리해놓았다.
무엇보다 내게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사건은 콜트악기의 1300일간의 정리해고와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이야기였다. 88만원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2,30대 청년근로자들에게 '비정규직'이란 단어는 매우 익숙하면서 무언가 불이익을 내포하는 부정적인 말이 되었다. 나 역시 비정규직 타이틀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노동해오고 있다. 정규직과 분명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동안 비슷한 강도의 일을 하면서도 매우 다른 처우를 받는 비정규직의 설움은 이제 청년근로자들을 비롯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불편부당한 현실에 원청회사의 정리해고라는 무시무시한 통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바람앞에 등불처럼 더욱 위태위태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기댈 수 있는 언덕은 역시 법이었다.
직접고용 형태로 업무를 수행하던 기업이 일정 업무를 파견, 도급을 통한 간접고용 형태로 전환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당한 이유없이는 해고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법률의 제약 없이 쉽게 고용을 조절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함이다. 즉 사용자의 고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서 비용절감이라는 사용자의 이익만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종국적으로는 노동조합이 있는 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까지 쉽게 하려는 이유도 있다. 간접고용을 통해 얼마든지 정규직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47
그러나 콜트악기 해고노동자들의 경우 1300일간의 투쟁은 10건의 재판중 3건이 승소했으나 회사의 항소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경우는 그들을 현대자동차의 도급이 아닌 파견으로 결론내린 진보적인 판결이 나면서 사내하청 근로자들 역시 파견법으로 보호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하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제정과 개선으로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외에도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미네르바 사건 및 교내 종교자율화를 위해 1인 시위로 유명해진 강의석군의 사연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법의 손길이 구석구석 미치는 일이었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어디까지 침해당하고 침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해주는 사건이었다.
가장 청렴하고 결백해야할 법이 정작 기득권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해준 여럿 사건과 불미스런 뉴스가 횡행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법의 힘을 믿고 그 힘을 악용하지 않으려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믿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권력앞에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비판하는 눈을 길러야한다는 걸 이 책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덮어두기만하면 그들은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저항하고 반발한다면 그들은 고분고분하다고 생각했던 우리를 더이상 얕잡아보지 않을 것이다. 며칠동안 곰곰히 책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카프카의 '소송'에 주인공K가 떠올랐다. 그는 어느날 뜻하지 않은 소송에 휘말리게 되고 법원이라는 거대권력앞에 철저히 유린당하며 인격적 모멸감과 멸시를 당한다. 비운의 결말을 암시하는 이 소설은 무력한 개인의 쓰디쓴 패배감을 맛보게 했다. 그러나 21세기 우리는 주인공K가 겪는 불행보다는 희망적인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이 책의 혁명가들은 증명하고 있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다. 피해의 인식은 당연히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억압을 참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고난을 피해라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삶의 일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피해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면 사회는 발전하지 않는다.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