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쓰정류장
김비 지음 / 가쎄(GASSE)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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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목적지를 찾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곳, 수많은 행인이 스치고 정차하거나 출발을 서두르는 버스들, 정해진 시간때문에 때론 그 곳을 향해 뛰기도 하고 새로 보게 될 풍경에 미리부터 가슴설레이는 내게 버스정류장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장소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버스정류장에서 아프고 쓰라린 기억의 샘을 끌어올렸다. 자신의 기억이 시작된 버스정류장을 찾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한 과거의 상처를 되짚으려는 한 여인과 불편한 다리로 힘겹게 현실을 버티는 그녀의 남편, 부부사이에서 남자와 여자의 경계를 아슬하게 오가는 이방인의 불안한 동행이 시작된다. 오로지 기억속에 존재하는 빠쓰정류장이란 간판과 그 곳의 풍경에 의지해 버스정류장을 찾기 위한 버스정류장 순례길.

 

남편의 다리가 사고로 절단되어 그가 절망에 빠졌을 때, 희망으로 밤잠을 설치며 시작했던 가게를 정리해야 했을 때도 순옥은 남편이 이야기한, 피안(彼岸)의 경지에 이르는 행복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죽게 된다는 의사의 암선고에 그녀는 돌연 여행을 결심한다. 평온하게 웃기 위한 마지막 결행을 각오한 듯, 죽음이란 낯설고 두려운 과정을 준비하기 위한 듯 자신이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을 찾기 위해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버스정류장을 찾아헤맨다. 그녀가 찾아헤맨 장소, 그 곳엔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가 있다. 엄마, 그녀가 자신을 버린 순간부터 순옥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어두운 터널이었다.

 

꿈이란 원래 그런 것. 날개 없는 것들은 하늘을 날고,
사랑을 잃은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그런 것이 바로 꿈 속. 팍팍하고 칙칙한 현실을  살고 있는 것들에게는 언제나
보드랍고 환한 희망이던 것이, 그런 꿈 속.     -p.19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 '빠쓰정류장'을 찾아헤매는 긴 여정동안 묵직하게 자신을 눌러왔던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고, 긴 터널의 끝에 소화되지 않는 불량식품처럼 차고 넘쳤던 '희망'의 비타민으로 밝게 웃을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이 여정에서 순옥을 비로소 웃게 만들어준 '리브'의 존재에 대해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기 위해  순옥처럼 녹록치않은 인생을 살아온 이방인 '리브'. 남편보다 더 큰 덩치에 원피스와 하이힐을 신고, 거칠은 수염자국과 특유의 웃음소리로 순옥과 독자인 나조차 혼란에 빠뜨린 존재. 나는 그(혹은 그녀)를 이방인이라 칭했다.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악의 존재가 아님에도 순옥처럼 자연스레 거부반응이 먼저 일어나는 '리브'의 존재는 낯섬 그 자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좀 다르다. 이제 트렌스젠더라 부르는 이들을 음지로만 내몰던 구시대적 고정관념은 어느 정도 포용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리브'가 더 낯설게 다가오는 건 거친 외모와 눈치없이 던지는 불편하고 직설적인 대사와 행동탓이었다. 그러나 최근 저자의 말을 들으니 '리브'는 실제 트랜스젠더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고 했다. -'리브'와 같은 입장의 저자를 생각했을때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리브'를 이방인이라 칭한 것조차 그들을 인정하는 관용을 베풀고 있다고 생각한 나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생각에 따라 삶의 모양은 바뀔 것이다. 냉수는 블루마운틴이 되고,
비명은 노래가 될 것이다. 희망의 미덕이란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함이라고.
......(중략) 그러나 그건 우는 아이를 달래는 막대사탕 같은 것에 불과하다.
새빨간 단물을 쪽쪽 빨며 그걸 집어삼키리라 기대하겠지만, 나는 어린애가 아니다.
내가 받아든 불량식품 같은 희망은 이미 자루 하나에 차고 넘쳤다.    -p.32

 

동행내내 '리브'를 이해할 수 없어 냉소적이었던 순옥의 태도는 조금씩 누그러든다. 곪은 채 아물지 못한 상처를 지녀 자기방어적일 수 밖에 없었던 자신과 '리브'의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인 듯 했다. 순옥의 남편 주열 역시 순옥과 마찬가지로 처음엔 '리브'를 거부하며 밀쳐내려 한다. 하지만 순옥의 웃음으로 인해 희망을 꿈꾸기 시작하면서 '리브'를 향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연다. 그러자 위태롭게만 보이던 셋의 동행이 꽤나 재미있는 장면들을 연출했다. 버스정류장을 이동하면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풍경들이 정겨웠다. 그래서 이 책을 보고 나니 모두 엇비슷하고 을씨년스럽게 보이던 버스정류장들이 마치 거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다가왔고, 저자가 찍은 수십장의 버스정류장 사진을 통해 그런 생각이 뚜렷해졌다. 모두 어딘가로 떠나는 듯 보이는 정류장의 모습. 하지만 반대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버스정류장 순례길을 떠난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의 끝에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그들의 삶도 조금은 평온해진 것 같았다.

 

또다시 우리는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아무리 먼 데를 보면서 걷고
또 걸어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시간. 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삶이고, 시간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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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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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할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처럼 성공한 사람이 겸손하기까지한(?) 예는 매우 드물다. 당장 눈 앞에 벌어진 성공에 취하고 비틀거릴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공의 기준을 어떻게 판단해야하는 것일까.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로 보자면 돈과 명예, 권력까지 쥐게 되었을때를 성공이라고들 한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순간의 그들이 어떻게 겸손해질 수 있겠는가.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한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성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성공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변하게 되고, 당연히 변하게 된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건 일종의 보상심리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하기까지하면 그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에게 찾아온 유혹의 순간, 그는 유혹앞에 영혼을 팔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성공하면 삶이 편해질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성공하면 삶은 어쩔 수 없이 더 복잡해진다. 아니, 더욱 복잡해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한 갈증에 자극을 받으며 더욱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바라던 걸 성취하면 또 다른 바람이 홀연히 나타난다. 그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우린 또 다시 결핍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시 완벽한 만족감을 얻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달려든다. 그때껏 이룬 것들을 모두 뒤엎더라도 새로운 성취와 변화를 찾아 매진한다.  -p.121

 

여기 인생의 성공과 실패, 좌절이 뭔지 보여주는 헐리우드식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이 있다. 데이비디 아미티지, 11년동안 서점에일하며 변변한 데뷔작하나 없는 시나리오 작가인 그에게 어느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자신이 쓴 <셀링 유>의 시트콤 대본이 텔레비전 방송국에 팔리면서 시트콤으로 제작되고 그 시트콤의 성공으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셀링 유>는 시청자와 평단의 호평으로 시즌3까지 제작되는 기염을 토하고 데이비드의 몸값도 나날이 치솟는다. 그러던 중 자신의 투자상담가인 바비를 통해 영화광인 백만장자 필립 플렉이 자신이 예전에 쓴 <세 불평꾼>이란 대본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제안을 전해듣게 되고, 자신은 손해볼 게 없다는 생각에 플렉의 제안을 받아들여 플렉소유의 섬으로 찾아가 그가 없는 동안 섬에서의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비틀린 욕망과 그릇된 가치관으로 꼬일대로 꼬인 플렉과의 만남 이후 그에게 인생최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작가로서 치명적인 표절의혹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그가 쥐고 있던 성공한 작가로서의 부와 명예는 모래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함께 일했던 모두가 그에게 철저하게 등을 돌린다. 

 

여기까지의 줄거리만봐도 뒷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질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데이비드가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이나 진부한 결말때문에 뒷부분에선 다소 실망하였다. 저자의 유명한 전작인 <빅피쳐>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왠지 이 책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빅피쳐>에 대한 기대가 반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빠른 전개나 몰입도가 높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짧은 시간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눈부신 성공과 좌절, 배신과 음모라는 롤러코스터같은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기 때문이다. 비유하긴 그렇지만 TV재연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1시간짜리 에피소드처럼 헐리우드식으로 고급스럽게 포장했으나 스토리자체가 진부하기 때문에 신선하다는 느낌은 없다. '저건 정말 막장이다'라고 손가락질하면서도 리모컨의 채널을 돌리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이 드라마의 뻔한 유혹에서 쉽게 눈을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진부함, 나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누구나 그렇게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줄거리가 식상할 망정 성공을 바라보는 저자 나름의 사유는 그나마 이 책이 '사랑과 전쟁'보다 막장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플렉과 데이비드의 파시즘과 인간본질에 대한 대화, 성공으로 인해 변하는 데이비드와 그의 돈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의 속물근성에 대한 반성들이 그것이다. 그런 교훈마저 가볍다고 느껴지지만 뭐 이런 소설을 보며 철학적 깊이를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므로 쉽게 접근해 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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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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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은 불편하지 않아요. 진실은 아름다워요."

불편하기 때문에 외면하려했던 진실은 사실 아름답다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책장을 덮고 난 지금 이 순간도 그렇지만 나는 카밀라, 혹은 희재처럼 엄마 지은의 과거를 함께 따라가며 아름답다기보다 고통스럽고 아픈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한창 민감한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하고, 친구들과 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가며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의 날개라 말한 아이를 품었던 지은의 심정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희재는 과거의 엄마와 조우하며 누구보다 엄마를 이해하고 그녀의 슬픔에 닿았던 것 같다.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은 파도가 바다의 일인 것처럼 당연하게도 비극의 공간으로 카밀라를 운명인듯 이끌었고, 모두가 외면한 불편함에서 진실을 찾고는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25년 입양된 삶의 흔적이 담긴 여섯박스분량의 과거에서 동백꽃이 배경이 된, 자신이라고 확신하는 아이를 안고 있는 앳된 여인의 사진을 발견한다. 그녀는 그 사진에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좀 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코멘트가 붙지 않은 그 사진의 진실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그녀는 남자친구인 유이치와 함께 사진의 배경이 된 한국의 진남으로 오게 된다. 엄마가 다녔던 진남여고에서 교장인 신혜숙은 열일곱에 아이를 낳은 미혼모인 지은의 존재를 부인하고 졸업앨범에도 나오지 않는다며 잘라말한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지역 신문사에 사진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기사로 싣는다. 그 기사를 보고 자신이 묵는 호텔에 찾아온 김미옥에게 뜻 밖의 진실을 듣게 되고 다시 신혜숙을 찾아가게 된다.

 

그들의 욕망은 진실의 부력일 뿐이다.
바다에 던진 시신처럼, 모든 감춰진 이야기 속에는 스스로 드러나려는 속성이 내재한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력으로도 숨은 것들은 표면으로 떠오른다. 진실은 개개인의 욕망을 지렛대 삼아 스스로 밝혀질 뿐이다.
-p.101

 

저자는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사실과 진실이 있었지만 외면하고 싶은 과거때문에 혹은 자신의 욕망이나 이익때문에 엄마의 친구들은 희재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지은의 친구 유진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놓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는 타인에게 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날개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 자신에게 낙태를 강요하러 온 유진에게 뱃 속의 희재를 가리키며 희재가 자신에게는 날개같은 존재라고 지은은 말했었다. 타인에게 함부로 상처주고 자신에게 쉽게 상처받기 쉬운 십대의 위태로운 지은의 친구들은 서로의 불편한 진실을 숨긴 채 살아왔지만, 지은의 날개였던 희재를 통해 뒤늦게 지은을 죽음으로 내몬 자신들의 철없는 이기심을 바로 보게 되고 25년이 지난 후에야 그들 사이에 놓인 심연을 조심스럽게 건너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심연을 결코 건널 수 없다. 우리가 날개라고 착각하는 꿈과 건너려는 부질없는 노력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의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p.274

 

거기 고통과 슬픔이 있었따면, 그것은 그 아이의 고통과 슬픔이었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은 고통스럽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우리와 그 아이의 사이에는 심연이 있고, 고통과 슬픔은 온전하게 그 심연을 건너오지 못했다. 심연을 건너와 우리에게 닿는 건 불편함뿐이었다. 우리는 그런 불편한 감정이 없어지기를 바랐다, 그럴 수 밖에. 그때 우리는 고작 열여덟 살, 혹은 열아홉 살이었으니까. 우리는 저마다 최고의 인생을 꿈꾸고 있었으니까.   -p.286

 

입양아의 과거 진실을 찾아가는 줄거리가 처음엔 꽤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딸을 이끄는 비극적인 공간과 인물들의 연결고리가 쉽게 밝혀지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다. 겉은 그리 보이지 않으나 뜨거운 맛을 감추고 있는 진남의 매생이국처럼 의뭉스러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인물들의 과거를 따라가다보니 이야기의 실마리가 보였다. 실제 이야기의 배경이 된 진남이라는 곳은 저자가 만든 허구의 공간인 듯 하다. 지리상으로는 경상남도에 그런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치 그림처럼 그려지는 양관의 비극적 전설과 배경은 지은과 희재의 이야기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꾸미기에 충분해보인다. 그러나 짐작조차 되지 않는 미스테리한 부분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저자인 김연수 스타일의 글은 매력적이다. 책장을 덮고 난 뒤 여운이 오래간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쉽게 짐작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생각하게 되는 탓이다. 그리고 독자인 내가 저자의 본심에 가닿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생각할수록 진실이 뭘까 곱씹게 되는 면에서 그의 전략은 반쯤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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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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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사회면이 크고 작은 살인사건으로 뒤덮혀 넌더리가 날 때쯤 이 소설을 읽었다. 저자의 책 [알렉스]를 먼저 읽었고 살인사건에 대한 내성이 생긴 덕분인지 이 책에서 보는 살인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범인으로 짐작되는 소피의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고 겁에 질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늘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발견된다. 그녀의 의식에는 살인을 기억하는 단 한나의 실마리조차 남아있지 않다. 소피가 잠에서 깨어보면 피해자의 죽음에 증거가 될만한 자신의 소지품이 나오고 죽음에 결정적으로 기인한 무기가 들려있는 식이다. 그녀는 자신이 저질렀다고 추측되는 모든 살인으로부터 일단 도망치기 시작한다.

 

여섯살 아이 레오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젊은 여성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의 용의자 역시 그녀로 지목되었다. 프랑스내 1급 수배대상이 된 그녀의 도피생활은 8개월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치밀한 계획으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했고 장소를 옮겼으며 근무지를 바꾸면서 도망자의 신분으로 살아간다. 그동안에도 그녀의 의식은 출렁이는 파도처럼 심한 기복과 불안의 징조들을 보이고 우울해했으며 피폐해져간다. 자신이 살인용의자가 되어 도망다니기전 그녀의 남편은 촉망받는 화학자였으며, 자신 역시 경매회사에 중요 언론담당관으로 근무했고 회사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음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그녀의 회사생활도 엉망이 되어간다. 결정적으로 그녀를 괴롭게 했던건 남편 뱅상의 죽음이었다. 그녀로 인해 죽게 된 많은 이들은 매일 꿈에 나타나 그녀를 힘들게 한다.

 

오랜 도피생활에 지친 그녀는 자신의 신분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 순간, 프란츠를 만나게 된다. 기한이 짧은 가짜 신분증으로 그녀는 결혼을 서둘렀고 남편의 성으로 살며 자신의 신분을 감출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잠시동안 프란츠의 사랑으로 안정을 되찾는가 싶었던 소피는 프란츠의 소지품에서 놀라운 물건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며 매우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저자의 작품 중 먼저 읽은 [알렉스]보다 흡입력이 더 뛰어나다.

 

소름끼치는 광기와 잔인함, 확실한 반전의 묘미를 지닌 이 소설의 매력은 책을 펼친 순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그리고 소설 전반을 휘감는 인물들의 각기 다른 광기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묵직하게 옥죄어 온다. [알렉스]처럼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형사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 책의 경우 대립하는 두 인물의 심리상태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극의 긴장감을 높였기 때문에 몰입이 더 빨랐다. 불안과 우울의 광기, 집념의 광기, 복수의 광기 인간의 뒤틀린 광기와 욕망이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그려지지만, 현대사회의 가학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면 비단 소설속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목인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며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진실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으로 책을 읽는 순간 결말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빠져들게 된다. 현재 영화로도 제작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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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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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마음속에 늘 품고 있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삶은 죽음을 먹는 것이다" 라는, 살기 위해 살아있는 것을 죽여 먹는 것이 바로 밥이니, 밥벌이가 치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삶은 하루 하루 죽음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지루할 수 없고, 빚지지 않은 적이 없고, 치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이다. 나이가 들고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회의가 들고 사직서를 던져버리고 싶을 때마다 난 이 말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기술이 고도화되고 심화되는 경기침체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로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몇십년째 제자리인 급여로 인해 먹고 산다는 것은 모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죽음을 먹고 살기 때문에 치열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치열함에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인간성을 포기하면서 버거워하고 있다.

 

여기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후 어둡고 긴 터널의 실직생활에 빠진 남자가 있다. 그의 아내는 적금통장을 깼고 자기 대신 동네 마트에 취직을 했다. 그는 돼지엄마라는 사람을 통해 마늘까기 부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울고 싶은 날이면 마늘을 깐다는 그는 인형눈알 붙이기, 바비인형 속눈썹붙이기, 학과 공룡알 만들기등 다양한 부업을 하게 된다. 그 사이에 인형눈알을 붙이다 본드를 흡입하게 된 그는 환각에 빠지며 헤어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돼지엄마를 통해 준공무원에 해당한다는 동물원 취업 제안을 받고서 한 달동안 체력단련에 매진한다. 생각보다 낮은 경쟁률로 바로 합격하여 출근하게 된 그는 자신이 동물원의 동물로 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한순간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동물탈을 쓰고 동물흉내를 내며 일하는 그 곳에서 때때로 괴롭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통해 진한 동료애로 울고 웃으며 인간성을 회복해나간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보았을 때 정말 기발한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의 전개를 머리속으로 그리자 그렇게 슬프고 비통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과 함께 고릴라사에서 일하는 만딩고나 앤, 조풍년의 과거사를 통해 그려지는 현실의 단면이 애처로웠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남을 배신하고 짓밟아야하고 아등바등 하루를 살았지만, 결국 동물이 되어서야 인간답게 살게 된 그들을 보며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늘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보다 쉽게 일하는 사람들만 비교하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단할까 한숨지은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쉽게 돈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회는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주며 그 돈보다 높은 효율과 가치를 기대하며 숫자로 모든 것을 재단해왔다. 사람들은 사회가 기준한 대열에서 낙오되었고 대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잔인하고 독해졌다. 독해진 그들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했고 모든 가치의 잣대가 돈으로 환산되었다. 

 

모든 게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 시대의 비참함을 저자는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때론 아픈 곳을 살짝씩 건드리기도 하고 비틀기도 하고 진지한 날카로움으로 폐부를 후벼파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을 보며 나는 위로받을 수 있었다. 내가 사는 방식이 맞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소설을 보며 나 자신을 버리며 일했다고 억울해했던 시간과 보상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하루들이 먹고 사는 것의 위대함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고릴라탈을 써야 한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고릴라탈을 쓰고 일하면서도 인간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더럽고 치사한 직장생활도 하루에 열두번도 더 써내려간 사직서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열심히 일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때문에 오는 상실감과 허탈함은 그들을 좌절의 늪에 빠뜨리고 소설의 말미에 동물원의 동물들은 아프리카 원시림의 동물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되는데 사람으로 살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먹고 산다는 것 이상으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가혹한 현실속에 '세렝게티 동물원'은 어디에도 없지만 나는 동물원에 갈 때마다 치열하게 사는 그들을 마주하게 될 것 같다. 

 

동물원에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해도 돼. 솔직히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 난 거의 없다고 봐.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내가 그랬잖아. 사는 게 코미디라고.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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