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연일 30도를 웃도는 뜨거운 기온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간질거리는 여름, 그 끝을 아쉬워하는지 8월의 더위는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찜통같은 무더위 속에 1964년 10월 10월에 있을 도쿄올림픽의 장대한 개막과 일본의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노동자들은 12시간을 넘는 고된 노역으로 인간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노동자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한 젊은이가 혹독한 육체노동으로 몸과 마음을 벼르며 프롤레타리아의 반역을 꿈꾸고 있다.


육체노동을 경험하지 않는담녀 자신은 타락하고 만다. 자본이 만들어낸 무한한 욕구가 품고 있는 비합리성,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밖에 없다. 세상을 바로잡는 건 프롤레타리아를 빼고는 없다. 고향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피눈물이다.    -p.184


그리고 어느 날 올림픽을 몇 달 앞두고 경찰 최고간부이자 올림픽 경비의 총책임자인 스가 경감의 사저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뒤이어 나카노 경찰학교의 배선실에서 두번째 폭발이 발생했다. 올림픽을 앞 둔 시점에서 경찰과 공안부는 발칵 뒤집혔고, 초긴급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범인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올림픽을 인질로 배후에 있는 국가의 거대권력과 맞서려는 범인의 모습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며 소설은 매우 긴박하게 전개된다.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형의 죽음이 후 돌연 노동자계급에 대한 부채의식을 떠안고 노동자가 되기로 결심한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 시마자키 구니오, 올림픽의 총경비책임자인 스가 경감의 둘째 아들이자 시마자키와 동창인 스가 다다시, 폭발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 이 세 사람의 90일동안의 행적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폭발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묘하게도 세 사람 모두 국가라는 조직의 부당함과 내부권력의 힘을 느끼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사소한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캐릭터의 끌림이 전체를 압도하고, 현재를 통해 전달되는 과거의 복선이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노동자의 목숨이란 얼마나 값싼 것인가. 지배층이 민중을 바라보는 시선은, 19년 전에 본토 결전을 상정하고 '1억 국민이 모두 불꽃으로 타오르자'라고 몰아치던 시절 그대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민중은 한낱 장기 말로만 취급되고,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게 전쟁이었고, 이제 그것은 경제발전이다. 도쿄올림픽은 그 헛된 구호를 위해 높이 쳐든 깃발이었다.    -p.386


1권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작가의 전작 중 가장 좋아하는 <남쪽으로 튀어>였다.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된 주인공 아버지의 모습이 이 책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시마자키 구니오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 아버지의 순결했던 젊은 시절, 자신이 주장해온 이론을 실천으로 옮겼더라면 분명 그 역시 시마자키 못지않은 과격함으로 가족이나 주변사람이 아닌 국가를 상대로 한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남쪽으로 튀어는 우리를 유쾌하게 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의식을 각성하게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시마자키가 겪은 빈부격차의 실체는 옛이야기같지만, 자본주의의 폐단은 21세기의 새로운 빈부격차와 피지배계층의 전락으로 프롤레타리아에게 더욱 뚜렷한 상실감을 맛보게 했다. 그래서 시마자키가 해석한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 해석은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한 개인의 쿠데타를 순수하게 포장해주는 설득력을 발휘한다. 2권을 읽기 전, 시마자키의 끝이 부디 불운하지 않기만을 수없이 되뇌어보았다. 그리고 개인의 저항이 결국 무력하게 끝나버릴것이라고 뻔히 예상하는 나의 생각을 확실한 반전으로 그가 뛰어넘어주길 바래본다.


공산주의라고 하면 금세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체재측에서도 노골적으로 경계하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을 생각하는 지극히 순수한 사상이야.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서, 창출되어야 할 어떤 상태이지 그것에 따라서 현실이 바로잡혀야 하는 어떤 이상이 아니야, 우리가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실천적인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이야.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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