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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의 기술 - 나 홀로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들이 알아야 할 솔로여행의 모든 것
베스 휘트먼 지음, 강분석 옮김 / 푸르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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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솔깃하게 만든는 제목만으로도 끌리지 않는가? 나는 그랬다. 사람들은 '여자 혼자'라는 말이 붙으면 일단 얕잡아보거나 걱정과 비난이 담긴 목소리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닌 '여자 혼자' 여행이라면 출발하기 전부터 우려섞인 충고를 해댄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해 경험담을 들려주는 여자여행자들의 여행담은 그런 걱정을 일축시킨다. 낯선 환경에서 더욱 침착하게 대응하고 융통성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하는 그녀들을 보며 여행에 앞서 준비한 계획과 준비물보다 더 중요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결단력으로 인생에 큰 변화와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재충전과 휴식이다. 이 두가지를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p.30


저자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떠나라며 등을 떠밀진 않는다. 차근히 여행자금을 준비하고 일을 하며 맞게 되는 출장과 사업상 여행도 즐기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오랜 여행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와 지식이 가득하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해외에서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비롯해 현지인들과 친해질 수 있는 비법, 여러 여행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위기대처법, 숙소정하기와 여행전 꼭 준비해야할 것, 예약과 짐꾸리기부터 여러 경로와 실제 도움이 되는 인터넷 사이트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 실제 혼자서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고 떠나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여행지식이 대부분 경험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여행중독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저자 역시 여행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역설하는 부분이 주효하다. 그녀를 비롯한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당장이라도 가깝지만 낯선 곳이라도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에서 극적인 경험을 통한 완전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다. 나 역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굳이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걷고 새로운 사람들과 풍경을 보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면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 그리고 무언가 크게 변화하지 않더라도 그런 경험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해져가는 걸 느끼게 된다. 흔히들 여행을 재충전의 기회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우리는 지나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과방전상태에 빠져 무기력해져 간다. 사람들마다 재충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여행말고도 다양하다. 하지만 여행만큼 새로운 자극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다.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전부이다.
여행은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문화, 환경, 화폐, 언어, 음식, 잠자리, 관습, 일정, 모험, 교통수단, 환경 등등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것이 여행의 아름다움이다.   -p.65


혼자서, 그것도 여자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더 많은 위험과 부담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설렘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책에서 말해주는대로 확실히 계획을 세워 실천하게 되면, 오히려 함께 여행을 나선 동반자를 배려하거나 인내할 필요없이 더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숙소예약시 혼자임에도 2인객실 요금을 내야할 때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금전적 지출보다 더 값비싼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저자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 꼼꼼하고 세심하게 체크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을 요목조목 짚어주는 부분이 좋았다. 나는 당분간 해외여행보다 국내여행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와닿는 부분이 없는 건 사실이었지만, 여행자들의 경험담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여행의 기술과 요령, 느낌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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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깊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파리는 깊다 - 한 컬처홀릭의 파리 문화예술 발굴기 깊은 여행 시리즈 1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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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은 휴식이다는 말에 공감한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운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행은 바쁜 일상에 쫓기듯 살아온 자신에게 피로회복제가 되야 한다. 여행자의 시간은 귀하다는 말을 어느 분에게 들었는데 올여름 여행하는 내내 그 말이 따라다녔다. 시계를 보지 않고 자유로이, 그러나 자신 속으로 무한히 침잠해 들어갈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은 여행의 진정한 묘미였다. 그러한 자신의 시간동안 그 곳의 풍경과 문화에 깊이 매료됨을 느꼈다. 여행자의 시선은 그만큼 자유로웠다. 나는 파리를 소개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파리에서 품었던 태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파리는 과거에 천착하고 있다는 말이 서늘하게 가슴을 훑었지만, 오랫동안 파리를 여행하며 애정을 가졌던 저자가 변화의 광풍에 서서히 옛광영의 자리를 내주고 파리를 안타까워함은 그 장소를 깊이 이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관광지를 둘러보며 두 번이상 가고 싶다고 생각한 곳은 없었다. 그건 이 책을 읽으며 곱씹는 바인데 관광지에 대한 역사나 문화의식이 희박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정이 결여된 관람이었기에 어느 곳에서나 일정 이상의 감흥을 느낄 수 없던 탓이었을 것이다. 루브르와 오르세, 오랑주리 박물관을 수시로 드나들며 오로지 그림 한 점을 만나기 위해 새벽길을 오르고 2,3시간 기다림을 주저하지 않는 저자의 여행자로서의 마음가짐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촉박한 일정을 쪼개고 시간에 쫓겨 허둥대며, 사진찍을 생각에 정작 중요한 피사체는 놓친 적이 많았던 그동안의 여행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나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관광객의 일상을 잊은 느린 여행자가 되자는 저자에 생각은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하루 정도 무위도식한다는 게 관광객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은 느린 여행자가, 산책자가 되자. 정해진 시간과 예산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의 일상을 잠시 잊자. 잠깐 동안 여유로운 여행자로 변하자. 하루가 힘들다면 반나절도 괜찮다. 가벼운 책 한 권 들고 나가서 황금빛 햇살이 초록 잔디를 향해 떨어지는 공원에 털썩 주저앉자. 주저앉는 게 포기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휴식임을 느낄 수 있다.   -p.255

 

2부로 구성된 책의 목차를 따라가니 파리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것들이 전부 나열되어 있다. 특히 1부의 파리 예술 산책은 그동안 어떤 형태의 그림으로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유명한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애정과, 당시 예술가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쉽게 재미있게 그려진다. 많은 예술가들의 장소인 전설적인 몽마르트르 언덕이나 <물랭루주>의 툴르즈-로트렉 이야기는 마치 그들의 일상이 손에 잡힐 듯 깊이 빠지며 읽게 된다. 그리고 오로지 모네의 <수련>을 보기 위해 오랑주리 미술관을 찾고, 넓은 전시관 삼면을 가득 채운 <수련의 방>에서 마음을 가득 채운 사념을 몰아내고 온전히 그림의 심연에 빠질 날만을 손꼽으며 일부러 꿈을 미루고 있다는 저자의 마음에서 진심으로 그 장소와 그림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마음이 읽혀졌다. 요즘 따라 19세기 인상파화가들이 자주 회자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데 파리는 인상파의 도시라고 한다. 오르세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미술관인데 작품 규모의 방대함에 놀라 제대로 즐기지 못할 수도 있으니 느긋한 마음으로 감상하라는 충고는 그 곳에 대한 지적호기심을 더욱 부풀린다. 
 

그림은 때로 물질적인 영역을 넘어선다. 꽃이 주는 단순한 아름다움만 포착하는 게 아니다. 시각젹 역역에만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프루스트는 모네의 그림이 꽃과 시각적 영역을 넘어서서 또 다른 아름다움의 세계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p.119


2부에서 만나는 파리 도시 산책코너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유명한 파리의 고서점을 비롯해 관광객들은 잘 오지 않는 파리의 골목 구석 구석, 저자가 애정을 가진 곳에 뻗친 손길은 다정다감하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소개되는 파리의 아름다운 정원과 '미슐랭 스리 스타'에 빛나는 전통적인 레스토랑과 까페문화를 선도하며 파리의 낭만에 정점을 찍은 파리의 역사적인 까페들은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잊지 못할 추억에 물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파리의 죽음이라는 에필로그인데 도시 가운데서 발견하는 공동묘지는 많은 예술가들의 혼이 잠들고 있기 때문인지 저자의 생각대로 죽음의 기운보다는 그들의 식지 않은 열정이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진원지같은 곳처럼 느껴졌다. 

 
묘지 안에 있으니 사념이 많아진다. 파리에서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옛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파리를 파리답게 만든 예술가들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세대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파리는 여전히 '예술의 도시'라는 허장성세 속에 서 있다. 파리는 과거에 천착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뉴욕으로, 패션과 미식은 런던으로 그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 파리가 팔고 있는 것은 과거의 꿈과 지나간 역사인지도 모른다. 아니, 혹은 그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고 낭만이라는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과 함께 탄생했으나 문화가 쇠잔하면서 퇴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p.347


문화, 예술, 미식의 유행을 선도하고 세계의 내노라하는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다양한 기획전시로 관광객뿐만 아니라 높아진 내국인의 눈높이에 따라 점점 수준높은 전시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파리의 전시회는 파리의 대한 관심과 기대를 높인다. 인상파의 숲이라 일컫는 오르세 미술관이나 모네의 많은 작품을 소유하고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은 파리에 들러 꼭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림과 사진, 예술과 문화를 바라보는 눈은 한결같지 않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혜안을 가지게도 한다. 파리도 변화한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늘 예술가들이 자리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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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장 - 일상다반사, 소소함의 미학, 시장 엿보기
기분좋은 QX 엮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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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장을 좋아하고 시장보기를 좋아하지만 생각만큼 찾지 않게 되는 것도 시장이다. 요즘엔 대형마트에서 공산품부터 식료품, 가전제품까지 한 번에 쇼핑하는 편리함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시장상인과 직접 가격흥정에 덤이라는 기분좋은 서비스까지 있는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곳이지만, 대형마트나 슈퍼, 백화점에 밀리고 밀리다 이젠 뒷전이 되버린 곳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는 어김없이 시장이 들어선다. 빨간 바구니에 피라미드처럼 쌓은 과일, 2~3000원씩 담긴 싱싱한 야채, 생선, 바퀴벌레약부터 호박엿까지 시장을 보면 사람사는 모습,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녹색 풋사과가 나오면 여름이 왔구나 알게 되고, 팔이 긴 옷이 나오면 가을이 왔다는 걸 실감한다. 시장이란 반가운 타이틀의 이 책은 대형마트의 그늘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시장의 새로운 활력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5명의 공동저자가 소개하는 우리나라의 시장은 동네시장을 보는 것처럼 친근하기도 하고, 외국시장처럼 이국적이기도(제주도가 그러했다.) 하다. 지역 특색을 담은 먹거리와 푸근한 인심의 상인들, 오래된 간판과 볼거리들은 시장의 숨겨진 매력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어떤 지역에서든 그 지역특유의 모습과 시장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관광도시라는 화려함에 가려 보지 못했던 제주도의 시장이었다. 선물용으로 박스채 담긴 한라봉대신 리어커에 잔뜩 쌓아놓고 파는 모습이 유난히 예뻤고 결혼식때 먹는다는 빙떡, 백년초와 녹차로 만든 강정은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부산에 살기에 더 반가운 부산의 깡통시장과 시장통에서 유명한 단팥죽 할머니, 헌책방 골목은 자주 가는 곳이라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제주도부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까지 내노라하는 시장의 모습은 북적 북적 시끄러울 것 같지만, 어르신들이 지키고 있는 시장바닥의 모습은 냉엄하고 비루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파라솔하나에 의지해 -혹은 그조차 없이- 살을 에는 추위와 찌는 듯한 무더위에 온종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하루를 살아야하는 이들에게 시장이란 치열한 삶의 터전인 것이다. 그래서 시장의 생동감, 고된 하루가 삶의 나이테가 되는 시장의 모습을 담기에 다섯명의 저자가 들려주는 소심함은 감상적이고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실제 찾아갈 수 있는 방법과 지역 특유의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소개는 젊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게 할만큼 매력적이라 할 만하다. 

 
물건과 가격만 보이는 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과 인심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장보기 전에 주변의 시장을 찾아보자. 많은 이웃과 상인들의 모습에서 사람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면 그 물건을 판매한 사람들의 인상을 다시 회상한다. 그 분들의 친절과 표정, 자로 재지 않고 저울로 달지 않은 -혹, 이미 잰 것일 수도 있겠다- 마음을 가슴에 담는다. 그리고 꼭 다시 찾아가게 된다. 그 곳에 가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에게도 살아간다는 현실감을 전해준다. 그리고 변화하는 흐름에 발맞춰 안과 밖으로 달라지고 있는 한국시장의 내일은 희망적이라고 책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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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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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전까지 잊고 있었는데 나 역시 언제부턴가 마흔살이 되면 꼭 전국일주를 하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떤 유혹에도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 마흔,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우리땅 구석구석에서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의 지난한 삶의 모습은 확고부동한 그녀의 신념마저 뒤흔들었을까. 왠지 그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책표지의 늙고 주름진 손이 말해주듯 작가 공선옥이 걸었던 길은 그 손만큼이나 거칠고 척박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그저 보고 느끼기 위한 떠남이 아니라, 진정 무언가를 얻고 배우기 위해 떠난 여행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녀와 사람들 사이의 공감은 그저 여유부리는 여행에서 찾을 수 없는 고단한 삶의 여정이 녹아있다.

 

이제 더 이상 관광지에 가서, 고상하고 멋진 것만 보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임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고상한 것 보려고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풍경이 되어 주는 것들이 사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p.201


서른셋에 집을 떠나 팔십세까지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며 약을 팔았다는 지복덕 할머니, 순창고을에서 만난 정노인 내외, 참 얘기하기 껄끄러웠을 강원도 화천에서 만난 군인들, 여수에 2년넘게 살았지만 처음 와봤다는 화양의 김용득 할머니, 가리봉에서 만난 중국인 노동자 우씨와 최씨, 경북 봉화의 화전민 마을사람들, 양주에서 만난 효순이, 미선이의 가족, 한참을 헤매고 다녔다던 인사동과 낙원동, 수마가 닥친 무주 무풍면의 풍경, 안동 하회마을에서 흔쾌히 단감을 건네주던 류전하 할아버지, 휑한 슬픔으로 덮힌 강원도 평창, 공고출신 노동자 배달호씨가 다니던 창원의 공장. 마흔에 그녀가 보기로 작정한 풍경은 오래된 과거같았다.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 알았지 들여다 볼 생각조차 못한 곳, 혹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곳이었다.
 

막상 이렇게 적고 보니 꽤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을텐데 세 아이를 떼놓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발길 닿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때론 정열적이고 때론 수더분하고 때론 정의감에 불타며 그녀는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피력하고 주로 만난 어르신들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의 값진 교훈, 혹은 덧없는 인생의 간단명료한 답을 듣는다. 간접적이지만 그녀가 보고 배운 것들은 내게도 막연하지만 실질적인 의미가 되어주었다. 공 것을 바라지 않는 그들의 노동과 견고한 삶, 불평불만하지 않고 그저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게 만드는 그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봐도 눈물과 회한으로 얼룩질 것 같은 날의 사람들, 그들에게는 착실히 인생을 살아왔고 인내해왔다는 느낌이 든다. 비루하고 가난한 삶 속에서 순간을 살고 오늘을 말하며 욕심없는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욕심과 허영으로 하루를, 또 몇 년을 되돌아봐도 켜켜이 쌓인 인생같은 것이 없다면 매순간 산다는 건 사치일 뿐이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또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매정한 사회나 국가앞에 좌절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더 또렷하게 그녀를 각성시킨 듯 했다. 한량같이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여행, 그녀의 마흔여행길은 더없이 값지고 풍성하다. 


인생은 이렇게 걷는 거야. 두려워할 것 없어. 걷다 보면 당도하는 곳이 있게 마련이지. 우리같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오직 걷는 것, 누구의 힘도 빌릴 것 없이 오로지 내 튼튼한 두 발로 내 앞에 떨어진 인생길을 타박 타박 걸어가는 것, 거기에서 힘이 나오는 거라구. 그 흔한 탈것 한 번을 안타고, 말 그대로 누구의 도움 하나도 구하지 않고 의연하게, 당당하게. 공 것은 원하지도 않고 그저 내 한발 내딛는 딱 그만큼씩만 얻으며.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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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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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풍경과 풍경.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낯선 사진안에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숨어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찍어온 사진과 글이라는 평이한 형식은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책을 집어들며 가졌던 뻔할 것이라는 판단은 책장을 넘길수록 심장이 두근거리는 설레임으로 바뀌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을 듯했다. 그렇기에 여행책은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오만도 부끄러워졌다. 그의 글에서는 여행에 관한 짧은 단상이나 개인적 감상이 흔해빠진 스타일리쉬함을 몸에 두른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여정으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청년 던, 멕시코에서 만난 물장수 아저씨, 파리토박이면서 막노동으로 경비를 모아 파리를 여행하는게 일이라던 청년, 너무 많이 끌어올린 책때문에 무너져버린 2층 가게의 할아버지, 옥수수 두 개가 담긴 봉지를 그에게 내밀던 페루의 옥수수 청년, 썩어들어가는 동물가죽 냄새를 맡으며 힘들게 일하는 모로코 페스의 사람들, 불가리아로 가는 새벽기차안에서 만난 북한사람들, 헤어진 남자친구가 와보고 싶다던 시칠리아를 혼자 여행하던 안젤라, 베트남 산호섬에서 만난 한국혼혈인 '김'... 여행지에서 만난 모두가 그에게 친절하고 상냥했던건 아니지만 그는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다시 사람들 틈바구니로 들어간다. 
 

습관처럼 다닌다. 습관처럼 여행을 다니려고 한다. 여행을 다니는 습관만큼 내가 사람을 믿는 건 사람에게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을 게 있다는 확신에 기대는 바람에 나는 자주 사람에 의해 당하고 패한다.  ......(중략)
그렇다고 항상 당하는 쪽인 나같은 이에게 쓸쓸함만 남는 건 아니다. 고맙게도 쓸쓸하면 할수록 다시 사람을 떠올리며 사람의 풍경 안으로 걸어갈 힘이 생긴다.


때론 '던'처럼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는 현지사람들때문에 여행자라는 자각을 뼈저리게 느끼게도 하지 않았을까. 이방인이라는 철저한 외도에도 미친 듯 꿈틀거리는 열망을 잠재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런 발동이 느껴진다. 코 앞에 집을 두고도 멀리 떠나온 기분에 젖어보기 위해 여관에서 밤을 보낼만큼 익숙한 것의 안락함도 가족이나 주변사람들도 그의 발을 붙잡지는 못한다. 사치스럽고 화려한 여행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의 온기를 확인하는 여정, 누군가를 더 그리워하게 만드는 여정, 그 안에서 그는 희노애락을 발견하고 삶이라는 거대한 발자취를 따라간다. 


누구든 떠나는 순간이 되면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서 거꾸로 매달려 있던 자신과 가능하다면 한동안 품고 살았던 정신의 부산함을 그 자리에 걸어두고 떠나려 한다. 그래서 돌아본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 되고 수심 깊디깊은 강을 건너는 일처럼 시작하지 말아야 했을 일이 돼버린다.
 

여행에서 그 곳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친해진다는건 내게 너무도 겁나는 일이다. 정확한 의사전달도 어려울 뿐더러 그들의 문화나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간극도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덤벼들어 바가지를 씌우려거나 이방인 취급으로 우습게 볼 때는 잔뜩 주눅이 들어버린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여행은 애태우게 만든다. 사람냄새가 진동하고 낯선 공기가 등을 떠밀고, 웃음짓는 사람들이 결국 나와 똑같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눈빛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나에게 마음을 열어줄 낯선 이를 찾아나서고 다시 한 번만이라도 그 곳을 밟고 싶다는 기대를 키우는 것이며, 그 기억만으로도 눈이 매워지는 게 여행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지금 떠날 수 없다면 언제라도 떠날 수 없다는 말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도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뭐? 바로 열정이라고 그는 여행의 시작을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었다.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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