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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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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3년초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했던 대통령선거일,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아빠와 난 평소 대화없던 부녀사이라 믿기 어려울만큼 격한 논쟁을 할 뻔 했다. 서로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달랐고 전형적인 보수와 진보사이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의 기쁨은 정말 잠깐이었고 노대통령의 집권기간 내내 주변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많은 비난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 때 보수적인 언론과 방송사때문에 당신의 의중을 의심한 적이 있었다고 이제와 고백하지만, 마음 속에선 언제나 그 분이 꿈꾸는 한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분의 마지막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내게도 그 분만큼이나 희망적이던 진보의 미래가 휘청이던 순간이었다.
 

노대통령의 서거 1주기가 지난 시점에서 격정적인 분노를 잠시 접어두고 이제야 진지하게 그 분을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이 책이 내게 왔다. 참여정부에서 노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분들이 당신이 몇 번을 읽고 되짚으셨다는 책 10권을 추렴해 집권기간에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정책이나 정치적 견해를 책의 내용에 대입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10권의 책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는 100여명의 청중이 11주동안 함께한 강독회의 뜨거운 열기는 노대통령이 그토록 원하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열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권력과 자본에 잠식당한 언론에 회의를 느껴 신문이나 방송을 보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는데 나의 지나친 무관심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야기하셨던 것이 깨어 있는 시민, 그것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민이 아닌 조직화된 힘입니다. 시민들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조직하지 않은 깨어 있는 시민은 허구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조직하지 않은 시민은 자칫 잘못하면 악의 편이 될 수 있습니다.    -p.98



10권의 책 중 사실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작가가 쓴 책임에도 우리 사회의 현상과 비교해 설명해주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해설은 참 쉽게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공부하는 대통령이라는 호칭대로 그 분이 책을 통해 배우고 실천으로 국민들에게 몸소 보여주려 했다는 교수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끝내 그 분의 진심을 제대로 봐주지 못한 채 떠나보냈구나하는 아쉬움이 들게 했다. 


특히 10권의 책 중 인상깊게 다가왔던 책은 국가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산업정책보다 사회정책에 힘을 실어야 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국가가 되야한다는 것을 역설하는 장하준의 [국가의 역할]과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보여줘야 진보가 제대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 말하는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세계인구의 1/6에 해당하는 절대빈곤층을 위해 원조해줌으로서 2025년 세계에서 절대빈곤을 몰아내야한다는 평화주의적 접근과 양극화로 나타난 한국의 상대빈곤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하는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 진정한 리더는 얼마만큼의 공적인 가치를 추구했느냐로 역사가 평가하게 된다는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회의적 사고로 모든 현상을 의심함으로서 언론의 왜곡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한다는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는 깊은 생각의 여지를 남겼다.


노대통령도 당신 책을 쓰면서 이 책을 무척 중요하게 보셨고,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바로 국가의 문제라고 보셨습니다.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국가란 바로 증세를 해서라도 국민들을 먹고 살게 해주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해주며 어디 가서 비겁하게 살지 않도록 하는 존재입니다.   -p.87


그리고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문제로 자리잡은 양극화 현상이나 지역주의, 오랫동안 천착하셨던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복지문제, 무엇보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에 대한 고뇌는 언론에서 비꼬고 왜곡했던 것과 달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해결하려 노력하셨다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고백은 그 분에게 가졌던 그동안의 불신을 허물어버렸다. 국민들의 빈곤과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생행보보다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쇼를 통해 국민을 속이지 않겠다는 철학을 가진 그 분의 생각을 몰라주었던 것이다. 토론에 참여한 많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강의자에게 반론을 제기했고, 노대통령이 무리하게 추진한 정책들에 의심을 품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노대통령을 위시한 편향된 판단과 설득만 존재할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고 잘한 부분은 칭찬하며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함으로서, 진보와 민주주의의 올바른 가치, 그리고 진보의 미래를 이야기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안전한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품격이 있는 사회가 바로 진보가 추구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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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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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의 콩가루 집안이었다. 그런데 책의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갈수록 도대체 콩가루란 어떤 의미를 뜻하는가 싶은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막장드라마라 일컫는 스토리에는 출생의 비밀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이 집안에도 예상치 못한 출생의 비밀이 연이어 드러나고, 조카의 이름도 모르는 삼촌과 피자 한조각조차 삼촌들에게 나눠주지 않는 조카, 두 번의 이혼경력을 가진 주인공의 여동생과 평생 주먹을 쓰며 감옥을 수시로 드나드는 쉰 두살의 형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마흔여덟에 영화 한 편 말아먹고 이혼에 빈털터리가 된 작중 화자인 내가 있다. 단지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막돼먹었다 평할 수 없다. 그들에게도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파도에 떠밀려 마지못해 해안가로 쓰레기처럼 떠밀려온 삼남매가 칠순을 넘긴 엄마의 집에 엊혀살게 되며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게 흘러간다. 천명관은 이 책에서도 특유의 입심으로 욕망에 솔직하고 천진한 사람들의 모습, 그것도 가족이란 울타리아래 모인 남매와 어머니를 통해 우리가 진정 행복한 가족이라 일컫는 전형을 비웃으며,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행하는 것들이 위선이라 꼬집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어머니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엄마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는다. 희생을 미덕으로 살아온 엄마가 아닌, 과거 한 여자로서의 욕망을 간직했던 엄마와 평범한 인생살이에 실패한 자식들을 아무말없이 품으며 강한 모성애를 드러내는엄마가 등장한다.   


자식들이 장성해 머리가 희끗해져가는 중년이 되었어도 엄마눈엔 그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짖어대는 제비새끼들처럼 안쓰러워 보였을까? 그래서 비록 자식들이 모두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 그저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온 게 기쁘기만 한 걸까?   -p.58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처럼 책 속 주인공의 어머니는 실패한 자식들의 인생에 그저 묵묵한 버팀목이 되어 누구보다 강한 엄마의 내면을 보여준다. 주인공 나는 영화의 실패로 인생마저 패배자로 전락해버린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지만, 엄마의 집에 들어와 살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조금씩 인간성을 회복해간다. 그리고 한 때 자신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나는 뒤늦게서야 형제들과의 과거를 떠올리고 자신에게 새겨진 가족의 그림자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누구보다 어머니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남매가 모두 모였을 때 질리도록 고기를 굽고 고기반찬으로 삼일밤낮을 배불리 먹이며 흐뭇해하는 그녀를 보며 세상 모든 엄마들의 모습이 살짝 엿보였다. 나 역시 객지생활때문에 전화통화 끝에는 항상 밥 잘 챙겨먹으라는 엄마의 말을 흘려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고기를 해먹인 것은 우리를 무참히 패배시킨 바로 그 세상과 맞서 싸우려는 것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몸을 추슬러 다시 세상에 나가 싸우라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p.198


결국 가족이란 그릇에 엄마를 담기 위해 소설은 실패한 자식들을 앞세웠지만, 엄마의 역활은 어느 가족에서나 똑같다. 단지 이 책에서는 생선머리만 좋다며 몸통은 전부 자식들에게 양보하는 무조건적인 희생대신, 자식들이 어떤 방향을 향해가든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의 엄마가 있다. 물론 주인공의 엄마 역시 여자로서의 희생을 감내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엄마의 존재감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집이고 밥같은 존재가 되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지인은 한 인간을 길러봐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희노애락을 겪으며 성인이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역시 이타적인 행동속에서만 인간의 삶이 완성된다고 했던 부분은 엄마의 인생을 한마디로 압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평생 보살핌만 받았을 뿐 누군가를 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헌신적으로 나를 보살피는 캐서린을 지켜보며 나는 한 인간의 삶은 오로지 이타적인 행동속에서만 완성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는 삶...... 거기에 비추어보면 나의 삶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삶이었던지.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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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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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도 어김없이 납량특집드라마가 나오고 공포영화가 개봉하고 있다. 우선 납량특집하면 나는 가장 먼저 유명한 TV시리즈인 '전설의 고향'이 떠오른다. 아마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 같다. 전설의 고향 각 에피소드에 등장해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역시 귀신이다. 하얀 소복과 길게 풀어헤친 머리에 푸른 조명을 받으면 더 기괴한 모습으로 비춰져 주변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여자귀신. 한을 품은 귀신의 모습은 외국의 어떤 유령이나 괴물보다 심리적인 위협과 공포를 품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귀신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패배자로 낙인찍힌 여자귀신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이 말해주듯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한의 정서와 역사가 있다. 그 중에서도 뿌리깊은 유교사상과 가부장제에 억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인들의 삶은 죽어서도 한을 풀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되어 사람들에게 그늘을 드리웠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남자보다 많은 많은 성비의 여자귀신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 사대부의 능력이나 관리의 유능함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유희나 도구로 이용됐을수 있다는 해석은 나의 고정관념을 전복시켰다. 일단 귀신이야기가 많이 등장한 야담의 주요 독자층이 사대부 남성이었고, 그들의 관심사에 맞게 변형되고 꾸며낸 이야기속에는 어김없이 억울한 사연을 간직한 채 죽은 귀신들이 등장한다. 귀신의 호소에 귀기울이는 담력과 배짱을 가진 관리가 등장하고 그는 귀신의 억울함을 정의롭게 해결해주는 능력과 지혜를 가졌다. 귀신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기에 조용히 물러나고 관리는 유능한 존재로 급부상한다. 


야담이라는 장르가 사대부들이 여가에 읽는 독서물이라는 것과 관련된다. 후대로 가면서 독자층이 확대되기는 했지만, 야담의 주요 독자층은 여전히 사대부 남성이었다. 야담에 관리의 일화가 그토록 많이 등장하는 것, 왕과의 일화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은 주된 독자층인 사대부와 관리들의 관심사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p.79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귀신이야기속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이었다. 완전한 죽음으로 끝맺지 못한 생의 그들을 패배자, 금기를 깬 아웃사이더, 불온의 상징으로 여겨 바로잡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여자귀신들이 품은 원한조차 결국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떳떳해지려는 노력이었다. 많은 야담속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자귀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귀신들이 이승을 떠도는 이유는 여자귀신과 달리 한이나 원한이 아닌 일상적 대화였다고 한다. 죽어서도 가장이나 남편, 주인으로서 역활을 행사하고 현실을 간섭하고 지배하려 했다는 대목에서는 남성우월주의의 전형을 보는 듯해 씁쓸했다. 결국 귀신이야기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문화조차 남성위주였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에 맞게 씌어진 것이었다. 여자귀신의 죽음과 등장 이면에 보수적인 사회시각과 냉대, 선택이 아닌 강요에 의한 자살 역시 사회의 폐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여자 귀신 이야기는 원한 맺힌 여인의 자살담 형태로 구성되어 귀신의 한을 공포로 전이시키는 방식을 채택해왔다. 그 과정에서 귀신이 등장한 배경으로서의 문화 논리는 은폐되었다. 이야기가 그들이 왜 여귀가 되었는가에 주목하기보다는 귀신의 등장이 가져오는 공포와 파괴적 속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또한 귀신의 '한'에 귀기울이기보다는 귀신을 물리친 '똑똑한 남성'의 문제 해결력에 주목하는 서사 논리가 관여되었기 때문이다.   -p.28


조신시대 여성에게 '열'은 죽음을 불사하고 지켜야 할 윤리적 가치였다. 따라서 과부들이 자결을 택해 '열녀'가 되었던 현상의 이면에는, 여성의 정조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작동하고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의 목숨은 개인의 몫이기 이전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리의 대상이었다. 남편이 죽은 여성은 자살을 통해 자신의 성을 남편에게 바침으로써 성적 귀속의 단일성을 사회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p.101


이런 해석덕분에 올 여름 TV나 영화를 통해 만나는 귀신들은 내게 전혀 공포스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측은하고 슬플 것이다. 진정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죽음은 시대가 변해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왜 그들이 억울해 원귀가 되어 사람들앞에 나타났는지가 아니라, 왜 그들이 죽을 수 밖에 없었는가를 되짚어보면 시대적 억압과 사회적 차별은 비단 옛날 옛적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각을 통해 공포를 해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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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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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알았다. 그 거짓말이 어떤 사람을 아프게하고 상처입혔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아하다는 형용사의 그림자는 다분히 폭력적이고 허울좋은 진실을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남편을 잃고 씩씩하게 두 딸을 키우던 엄마는 사랑하는 딸 천지마저 잃었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이 했던 말이 어린 딸에게 상처가 됐을거라 짐작할 뿐이다. 천지를 괴롭혔던 화연 역시 천지의 자살로 상실감과 죄책감에 빠진다. 천지의 죽음으로 화연은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지만, 반성이 아닌 변명과 자신의 정당함만을 내세우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천지의 죽음 뒤에야 주변사람들은 하나씩 사실과 모호한 진실을 뱉어낸다.     
 

지금은 그저 우스개소리가 아닌 사회적 이슈와 문제가 되었지만,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만 하더라도 왕따라는 말이 유행에 지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 비슷한 말 중 '은따'라는 속어도 아이들이 만들어 놀리곤 했는데 은근히 따돌린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화연이 천지를 대했던 과거의 행동이 '은따'라는 말을 떠오르게 했다. 오랫동안 교묘히 자신을 괴롭혀온 화연의 행동이 화근이 되어 천지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착한 아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한 채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할 수 없지만, 미운 마음만은 버리고 가겠다고 말하며 죽음을 택하는 천지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 죽음은 이제 온전히 살아남은 자의 몫이 되어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더이상 착한 아이가 아닙니다. 때문에 모두 용서하고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이제 나쁜 아이가 되어서 갑니다.용서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보다 편하고 싶어 떠나는 게 아닙니다. 내 몸이 더 이상 이곳을 원하지 않아서 떠납니다. 분명히 말하고 가겠습니다. 용서하지 않고 떠난다고......    -p.101 

 
미완의 죽음, 죽음을 부추긴 친구 화연, 화연의 따돌림을 방관한 미라, 가족이지만 보듬어주지 못한 엄마, 그리고 뒤늦게 천지의 죽음을 실감한 언니 만지. 이 모두는 살았기 때문에 천지의 죽음을 절절히 몸으로 끌어안아야하는 사람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되짚으며 그들의 우아한 폭력은 하나 하나 들춰진다. 처음엔 오래전 전학온 날부터 천지를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아온 화연이 가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지의 주변에서 분명 화연의 행동을 비난하면서도 직접 나서서 도와주지 못한 미라나, 3년 전부터 사실을 알았던 엄마 역시 죽음을 방조했던 것이다. 쉽게 했던 거짓말과 배려하지 않은 위로, 잔인한 무관심은 사춘기 소녀가 겪어내기엔 너무 거대한 먹구름이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어른들은 시시하다. 어른들이 생각한 아이들의 세계 역시 어설프다. 비록 지금 철들지 않는 어른일지라도 나의 10대를 되돌아보면 사춘기를 이르러 질풍노도의 시기라 하는 말이 이해될 정도로 변덕스럽고 예민했으며 거칠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세계를 들어가려는 노력 대신 우리 때는 저렇지 않았다는 탄식만 할 뿐이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도 분명 어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자아와 불안하게 흔들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해도 마찬가지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저자는 손을 놓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때의 감정이 전부인 것처럼 세상을 등지지 말라고. 뒤돌아보면 웃으며 털어버릴 수 있을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위로조차 진심으로 들리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모두 어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게 말이다. 너, 죽지 마라. 언젠가는 죽기 싫어도 죽어. 일부러 앞당기지 마.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사람들, 더 아프게 하는거야. 죽어서 해결될 일 아무것도 없어.
묻어둘 수는 있겠지. 근데 그거, 해결되는 거 아냐. 냄새가 진동하거든.
진짜 복수는 살아남는거야. 생명 다할 때까지 살아."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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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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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허구다. 하지만 그 안에 분명한 현실이 있다. 불편한 진실과 무력한 개인의 처절한 사투가 이성적인 공간이라 여기는 법정에서 그려진다. 분명 사람아래 있어야 할 법은 사람위에서 그들을 조롱하며 관망하고, 대한민국의 주권과 권력을 가졌다는 국민은 다수가 아닌 소수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무시되는 곳,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과 그 곳의 법정이다. 민주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다수결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수결로 인해 묻히는 소수가 더 많다는 사실또한 민주주의의 평등원칙에 반하는 모순이다. 이 책도 그런 아이러니와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사회약자들의 목소리에 동정하면서도 낙담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시대의 변화는 소수의견에 귀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국선전담변호사인 주인공 윤변호사에게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박재호의 변호의뢰가 들어온다. 박재호는 아현동재개발지구에서 일어난 16세소년과 20대전경의 살인사건 피의자로 기소되었다. 그는 전경의 폭행에 의해 죽은 16세소년의 아버지이자 전경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진압경찰의 무혐의에 강하게 반발하며 항고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은 경찰이 누명을 씌운 폭력배 김수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투입된 진압경찰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을 비호한 검찰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는 건 검찰뒤에 있는 거대권력인 나라를 상대로 한 크나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윤변호사와 그의 선배 대석이 피고 대한민국에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100원, 그들이 원하는 건 청구금액이 아니라 여론을 환기시킬 목적이었기에 사건은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일파만파 커져간다. 게다가 법의 형평성과 공권력남용을 우려해 그들이 요구한 것은 국민참여재판. 결코 법에 호소할 수 없는 부분을 배심원 평결로 일방적 판결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주인공 윤변호사는 변호사로서의 자부심이나 신념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았다. 박재호 사건을 맡기 전까지 말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에야 느끼는 거지만 그는 교도소에서 만난 박재호를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 것 같다. 한 가족의 가장이었고 누구보다 큰 존재였지만, 평등한 법앞에 소수자가 되어 한순간 범죄자로 전락해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놓인 박재호를 보며 자신의 도덕과 이성사이에서 갈등할 순간도 없이 박재호의 변호를 선택한다. 그리고 항고를 준비하고 재판을 진행하는동안 법앞에 놓인 소수자의 진실에 그동안 자신이 고민해왔던 변호사로서의 신념을 되새긴다. 만인에게 공평한 법이라 배우고 연수원시절 소수의견에 집착해온 염만수 교수의 강의도 결국 현실과 달랐다는 걸 일깨웠지만, 박재호를 변호하며 그는 진정한 법은 소수에게 더 관대해야한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을까.  

 
정지된 시간 속에 박재호의 삶이 펼쳐졌다. 그는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역사였다.
그는 때로는 동정 받았고, 때로는 착취되었다. 나는 그 주먹 쥔 손을 바라보았다.
마디가 굵은 억세고 더러운 손. 흙은 꽉 쥘 수 있지만 법은 수이 그 손을 새어 나간다.      
-p.244 


그러나 그런 소수의 진실도 아름답지만은 않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진실이란 전혀 아름답지 않지.
그런 추한 것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만이 진실을 보게 된다오.
그리하여 이 세계가 너무 잔혹한 곳이라는 것을. 그 잔혹함마저도 기실은 진실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나 역시 잔혹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받아들이게 됐소.
그리고 나면 두 눈으로는 한 인간을 성장하게 만드는 모순과 투쟁만이 가득한 세계가 보이게 된다오.  
밤은 노래한다 中 -p.236


법정공방에서 드러나는 위법성과 논란, 사건의 이해관계에 얽힌 많은 사람들의 협박과 회유, 날조된 진실과 소수의견의 진실을 위해 윤변호사가 행하는 비양심적 논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그렇기에 잔혹한 진실을 목도하고 받아들인 순간 모순과 투쟁만이 가득한 세계라는 김연수의 말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두 변호사와 검사가 겨루는 팽팽한 접전은 다수에 의해 묵살된 소수의견의 진실성에 접근하기도 하지만, 실체없는 국가의 거대권력과 무력에도 맞닥드리게 된다.
생소한 법정용어와 긴 재판과정에도 흐름이 끊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읽히고, 많은 사회적 이슈와 논쟁이 되어 입에 오르내리지만 맥없이 스러진 사건사고를 되짚게 하며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이 책의 진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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