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
최수연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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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동 태극마을, 다음 촬영지로 정해놓은 곳이었다. 색색깔의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예쁜 풍경이 되는 그 곳은 사진찍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출사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 풍경 가운데 저자가 운영하는 [우리누리 공부방]이 있다. 1988년 7평 남짓의 작은 단칸방에서 시작해 동네에 홀로남은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해 열린 [우리누리 공부방]은 20년이 넘는 현재까지도 많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느낀 거지만 수많은 사진 속 풍경에서, 집만 볼 줄 알았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놓치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공부방의 큰이모이자 저자인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방치된 아이들을 품은 그 풍경을 진짜 사랑한 사람이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카메라를 먼저 들이대려고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4장으로 구성된 책에는 [우리누리 공부방]의 20년 역사와 공부방을 거쳐간 아이들과 이모, 삼촌의 이야기, 그리고 공부방을 통해 배움의 기쁨을 함께 나눈 부모님들과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부모를 잃고 돌봐주시던 조부모마저 떠나보내 홀로 남게 된 아이들과 자신마냥 가난했던 자식에게 기대기 싫어 외롭게 사시던 아랫집 할머니의 쓸쓸한 죽음앞에서는 코끝이 찡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한글을 모르던 어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들에게 영어수업을 하고, 중학생이 되어 받아줄 수 없던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공간마저 허물어 도서원을 만들어주는 장면에서는 슬며시 미소짓게 되었다. 무엇보다 원래 동네사람이 아니었기에 체감할 수 없었던 이웃들의 가난을 그들과 똑같이 일하고 겪으며 배우려했던 저자의 노력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무엇보다 가난의 가장 큰 문제는 되물림이다. 특히 먹고사는 일이 빠듯한 부모들은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버리기까지 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쉽게 탈선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기도 한다. [우리누리 공부방]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이런 아이들을 올바르게 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데 있다.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고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에게 문화적 혜택과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사회나 국가가 해야할 일을 개인이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저자의 종교인 카톨릭 단체에서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과 힘든 고비를 넘기며 끝까지 공부방을 지켜온 큰이모와 공부방 자원교사를 자처한 수많은 이모와 삼촌들의 노고를 높게 사고 싶다. 무엇보다 공부방을 통해 잘 자라준 아이들이 큰이모마냥 그렇게 대견할 수 없었다. 


작고 좁은 단칸방에서 시작한 [우리누리 공부방]은 현재 단란한 2층으로 장소를 옮겨, 오늘도 여전히 부모의 빈자리때문에 텅빈 집을 지키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열려있다. 그리고 공부방을 통해 어엿한 성인이 되고 한 집안의 구성원이 된 아이들은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공부방은 진정 희망이라는 단어를 구체적 현실로 만들어주는 곳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방치된 아이들과 소외된 이웃들에게 공부방이 없었다면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불안한 미래와 막막한 현실에 분노하고 주저앉으며 사회적 약자나 그늘이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진정 행복하게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작은 관심과 애정,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건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배움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용기라 말하고 싶다. 아무리 일회성 기사일지라도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훈훈한 이야기거리를 읽을 때마다 사람들은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말을 한다. 나 또한 [우리누리 공부방]같은 곳이 있기에 부산은, 그리고 세상은 살맛나는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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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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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전까지 잊고 있었는데 나 역시 언제부턴가 마흔살이 되면 꼭 전국일주를 하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떤 유혹에도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 마흔,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우리땅 구석구석에서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의 지난한 삶의 모습은 확고부동한 그녀의 신념마저 뒤흔들었을까. 왠지 그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책표지의 늙고 주름진 손이 말해주듯 작가 공선옥이 걸었던 길은 그 손만큼이나 거칠고 척박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그저 보고 느끼기 위한 떠남이 아니라, 진정 무언가를 얻고 배우기 위해 떠난 여행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녀와 사람들 사이의 공감은 그저 여유부리는 여행에서 찾을 수 없는 고단한 삶의 여정이 녹아있다.

 

이제 더 이상 관광지에 가서, 고상하고 멋진 것만 보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임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고상한 것 보려고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풍경이 되어 주는 것들이 사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p.201


서른셋에 집을 떠나 팔십세까지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며 약을 팔았다는 지복덕 할머니, 순창고을에서 만난 정노인 내외, 참 얘기하기 껄끄러웠을 강원도 화천에서 만난 군인들, 여수에 2년넘게 살았지만 처음 와봤다는 화양의 김용득 할머니, 가리봉에서 만난 중국인 노동자 우씨와 최씨, 경북 봉화의 화전민 마을사람들, 양주에서 만난 효순이, 미선이의 가족, 한참을 헤매고 다녔다던 인사동과 낙원동, 수마가 닥친 무주 무풍면의 풍경, 안동 하회마을에서 흔쾌히 단감을 건네주던 류전하 할아버지, 휑한 슬픔으로 덮힌 강원도 평창, 공고출신 노동자 배달호씨가 다니던 창원의 공장. 마흔에 그녀가 보기로 작정한 풍경은 오래된 과거같았다.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 알았지 들여다 볼 생각조차 못한 곳, 혹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곳이었다.
 

막상 이렇게 적고 보니 꽤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을텐데 세 아이를 떼놓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발길 닿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때론 정열적이고 때론 수더분하고 때론 정의감에 불타며 그녀는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피력하고 주로 만난 어르신들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의 값진 교훈, 혹은 덧없는 인생의 간단명료한 답을 듣는다. 간접적이지만 그녀가 보고 배운 것들은 내게도 막연하지만 실질적인 의미가 되어주었다. 공 것을 바라지 않는 그들의 노동과 견고한 삶, 불평불만하지 않고 그저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게 만드는 그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봐도 눈물과 회한으로 얼룩질 것 같은 날의 사람들, 그들에게는 착실히 인생을 살아왔고 인내해왔다는 느낌이 든다. 비루하고 가난한 삶 속에서 순간을 살고 오늘을 말하며 욕심없는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 욕심과 허영으로 하루를, 또 몇 년을 되돌아봐도 켜켜이 쌓인 인생같은 것이 없다면 매순간 산다는 건 사치일 뿐이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또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매정한 사회나 국가앞에 좌절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더 또렷하게 그녀를 각성시킨 듯 했다. 한량같이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여행, 그녀의 마흔여행길은 더없이 값지고 풍성하다. 


인생은 이렇게 걷는 거야. 두려워할 것 없어. 걷다 보면 당도하는 곳이 있게 마련이지. 우리같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오직 걷는 것, 누구의 힘도 빌릴 것 없이 오로지 내 튼튼한 두 발로 내 앞에 떨어진 인생길을 타박 타박 걸어가는 것, 거기에서 힘이 나오는 거라구. 그 흔한 탈것 한 번을 안타고, 말 그대로 누구의 도움 하나도 구하지 않고 의연하게, 당당하게. 공 것은 원하지도 않고 그저 내 한발 내딛는 딱 그만큼씩만 얻으며.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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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시공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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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한창 폼잡으며 거들먹거리고 남들 눈 의식해가며 번듯한 간판의 '레스토랑'이니 '돈가스'집을 당연한 외식코스로 삼고, 음식점들을 평가하고 다니던 때가 이제는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진짜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찾는 곳은 다름아닌 허름한 간판의 식당, 정겨운 이름의 식당들이었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이타령하긴 싫지만 나이가 들고보니 그런 번지르르한 레스토랑들이 애들 장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렴한 가격에 적당한 반찬과 찌개, 국이 나와 주린 배를 뜨뜻하게 채워줄 수 있고,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훈훈한 인심으로 밥한공기 더 퍼다줄 수 있는 그 곳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면서 손님인 내게도 생생한 삶의 일부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그래서 식당이라는 단어자체가 그리운 과거를 불러일으키듯 친근하고 푸근하다. 여기 책 속, 영등포 시장통에서 '삼오식당'을 하고 있는 홀어머니의 둘째딸인 나(지선)는 푸지게 차린 상차림처럼 시장 속 사람들의 생활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밤낮으로 커피구루마를 끌고 다니는 차씨아줌마와 그녀의 박복한 딸이자 친구인 정희, 삼오식당의 새벽설겆이에 고물장수까지 겸하고 있는 악착같은 박씨아줌마, 공중화장실 앞을 가로막고 돈을 내야 들여보내주는 똥할매, 호랑이새끼를 키운 0번 과일가게 아줌마, 삼오식당의 여주인인 자신의 어머니까지 어디 하나 굴곡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없고, 구구절절한 사연하나씩 꿰지 않은 이 없는 삼오식당의 풍경은 애달프다. 변변한 남자구실하나 제대로 하는 이 없고 보니, 시장통 여인들의 한많은 세월을 보상해줄 자식들조차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은 되물림되고 장사꾼의 고생은 더께더께 얹혀 있다.


언젠가 빚쟁이들이 몰려와 식당을 난장판으로 뒤집고 가버린 뒤에, 뽑혀져 나온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으며 엄마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세상에서 젤로 무서운 건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게 없다는 거라고.    -p.25 

 

시끄럽고 구질구질한 삶의 한가운데, 그들은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싸우고, 서로 잘났다며 얕잡아보고, 악을 쓰며 험한 말을 헤대지만 그런 그들이 싫지 않았다. 진짜 사람사는 것처럼 리얼했다. 그저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나 뚫어져라 보며 머리싸움을 헤대는 사람들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그 곳은 직접적인 시장경제의 단순한 논리를 생동감있게 보여주는 곳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이 보여주는 삶, 그 속에는 작가가 말하는 진짜 생활이 자리잡고 있다. 돈에 욕망하고 솔직한 사람들에겐 거짓이 없다. 그 욕망을 숨기려는 사람들의 속내가 더 구린법이다. 마치 욕쟁이 할머니 수십명을 만난 듯 거침없고 질펀한 대사와 욕에 잠시 당황하면서도 기분나빠하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의 인물들은 그런 욕쟁이 할머니를 일부러 찾는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역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른이 아니어서 할 수 없는 거, 그건 대체 뭐냐고 물었더니 현미는 눈물자국마저 깨끗이 닦아낸 얼굴로 쾌활하게 대답했다.

"아, 그거? 우리 작은 언니가 그러는데, 그건 생활이래."    -p.78

 

또한 작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기에 그 시장통에 더 애착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뒤늦게 진짜 식당의 매력을 알았듯 작가도 벗어나고 싶었다던 시장통에서 뒤늦게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글에서 이렇게 애정이 듬뿍 묻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삼오식당을 오랫동안 지켜온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같기도 했다. 제대로 무릎 펼 날 없이 세 딸을 위해 밤낮으로 식당에서 밥을 짓는 어머니를 통해, 시장사람들을 달리 보게 됐고 그들의 등 뒤에 그늘진 현실대신 후광을 보게 된거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오른쪽 무릎이 벌에 쏘인 것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무릎 안쪽에 솜뭉치를 쑤셔넣은 듯했다. 아니다, 그건 솜뭉치가 아니었다. 엄마가 버텨온 세월이 거기, 당신의 무릎 안쪽에 고스란히 고여 있었다. 가난 앞에 주먹질 한번 할 수 없었던 세월의 막막함이 거기 한줌의 응어리가 되어 박혀 있었다. 스스로 한 마리 우매한 소가 되어 그저 묵묵히 현재만을 일궈야 했던 늙은 어미의 무르팍엔 열매 대신 염증이 맺혔고 어미는 자신이 곷 피워낸 그 흉한 꽃이 못내 부끄러워 두 손으로 얼른 무릎을 감싸쥐었다. 무릎을 감싸쥔 엄마의 손등 위엔 벌겋게 부어오른 무릎보다 더 붉고 더 깊은 주름이 그어져 있었다.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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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라이프 - 카모메 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 Life 라이프 1
이이지마 나미 지음, 오오에 히로유키 사진 / 시드페이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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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 [안경],[남극의 쉐프], 일본드라마 [심야식당]의 공통점은 훈훈한 스토리와 음식(飮食)이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치유되는 요리(理)가 있다. [카모메 식당]에서는 주먹밥과 시나몬롤, [안경]에서는 얼음을 가득채운 팥빙수와 드라마 [심야식당]의 매회 오프닝에 나오는 돈지루(돼지고기와 야채를 넣은 된장국), [남극의 쉐프]에 라스트에 나오는 라멘은 별다른 설명없이 보여주는 요리과정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따뜻해지는 그런 음식들이었다.

 

그렇게 요리과정으로 기억되는 영화의 음식을 직접 해볼 수 있는 꼼꼼한 레시피와 노하우가 정겨운 단편들과 함께 실려있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간단하고 쉬워보였던 요리들도 레시피를 들여다보자 번거롭기도 하고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아 차일피일 실습을 미뤄왔다. 그래도 책을 세 번정도 다시 정독한 뒤, 큰 맘먹고 도전한 요리가 "버터토스트와 햄에그"였으니 요리에 대한 열정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이 쉬운 요리조차 레시피대로 하려니 여간 손이 많이 가는게 아니었다. 계란의 흰자표면이 바삭하게 익어 먹는 내내 수고스러움도 감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현실은 편집된 영화와는 달리 낭만적이지 않다는 사실만 일깨웠다.


그리 자주 음식을 만들고 즐겁게 요리할 시간이 많지 않지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음식의 맛으로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누군가를 상상하며 만들 때의 요리과정은 간결하고 정갈하며 하나 하나 세심한 마음이 들어가 음식의 맛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소소한 일상의 상황을 설정하여 만들어낸 음식들에는 만든 이의 마음과 정성이 들어갔음을 먹지 않고도 그 맛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음식이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라도 말이다. 휴일날 아버지가 만들어준 카레나 여름의 끝자락에 가족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켜줄 튀김요리는 그 상황의 음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옴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문득 딱히 이름을 명명할 수 없는 아버지의 음식들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도 났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되는 음식 같은 건,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책 속 단편의 작가 이토이 시게사토의 말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과연 그럴 것이다. 어떤 음식이든 개인에게 소중히 기억될 추억속에 자리하는 음식이라면 그건 절대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라이프에서 선보인 요리들을 통해 다시금 영화나 드라마의 감동도 떠올리고 더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과거의 그리운 맛을 회상하기도 했다. 달달한 과자나 빵이 귀했던 시절 엄마가 후라이팬에 반죽을 붓고 연탄불로 만들어준 카스테라는 지금의 그 어떤 폭신한 카스테라도 대변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녹아있으니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음식이다. 그 과정과 재료를 똑같이 재현하더라도 흉내낼 수 없는 엄마만의 음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이지마 나미의 음식과 레시피를 정의하자면 바로 치유이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 생소하고 낯설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본다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성스레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과장되지 않은 소박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그 음식을 맛보자마자 "오이시~!"라며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에 번진다. 우리는 매일 먹는 밥과 반찬이 지겨워지면 패스트푸드를 생각하고 귀찮을 땐 레토르트 식품으로 허기를 달랜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와 레토르트 식품이 남긴 안락함뒤에는 음식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추억이 없다. 무엇보다 마음이 없다. 마음이 전해지는 음식, 그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며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식객]에 보면 맛있는 음식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는 말이 나온다. 어머니표 밥상, 그것이 바로 이이지마 나미가 보여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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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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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여자연예인들의 얼굴이 대부분 비슷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 나왔던 여배우들은 데뷔때 모습을 잃어버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고, 신인여배우들은 예쁘다는 여배우들의 얼굴을 묘하게 조합해놓은 듯한 인상때문에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미디어의 발달속도만큼 사람들이 판단하는 미의 기준도 급격하게 변화했다. 그리고 그만큼 발달한 의학기술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서 컴플렉스를 느끼는 부분에 과감하게 칼을 들이댈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은 뼈를 깎는 고통도 감내할 정도의 보상이 되어주었다. 마치 외모가 전부인 세상, 심지어 외모가 선악의 척도를 구분하는 웃지 못할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 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p.219
 

여기 수많은 사람중에 세상에 다시 없을 못생긴 얼굴로 눈에 띈 그녀가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 첫 눈 반했다고 생각하는 그가 있다. 시대배경은 30년정도를 거슬러 올라갔지만 그 때에도 못생겼다는 것은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었나보다. 그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있는 백화점은 불행히도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인종들이 득시글대는 곳이었고, 그녀는 분명 훌륭한 성적에 사무직으로 들어왔으나 점점 한직으로 내몰려 아르바이트생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궂은 일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가는 그녀의 짐을 나눠들어주고 친구가 되지 않겠냐 말한 그였지만 그녀는 그의 진심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다가와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남자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끼어든 요한은 서로의 진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둘을 위해 잦은 술자리를 만들고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대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p.185


그녀의 못생긴 얼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추측으로만 가능케하는 온갖 비유가 난무할 뿐이다. 그리고 그는 평범함 이상의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 미남과 추녀의 사랑이라... 어째 뻔한 스토리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시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그의 순애보 뒤에 따른 부모의 그늘, 못생긴 엄마를 끝내 온전하게 사랑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사랑받지 못한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이 그녀를 향해 맹목적으로 불타올랐다고 생각했다. 무정보다 더 비참한 게 동정이라 말하는 극 중 대사처럼 그녀에 대한 그의 감정이 동정이었다면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순간 나는 그녀편이 되어 그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맹렬히 끓어올랐다. 같은 여자인 내가 그녀를 동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그의 진심을 알게 되며 그녀는 절대 동정따위는 필요없을만큼 강인해졌는데 나는 뒤늦게 그녀의 괴로움과 상처를 알게 됐고 남자들을 비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여자보다 더 예쁜 꽃미남에 열광하고 성형을 한 여자연예인들을 헐뜯고, 지나가는 다른 여자들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자신을 비교하는 속물스런 여자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비난받아 마땅한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주인공이 보여준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그녀가 행복했을 거라 생각하며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사그라들었고 오랜만에 사랑이란 감정에 가슴이 짠해졌다.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보여지는 아름다움을 전부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고, 아름답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을 보이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작가는 분명 지금의 세태를 꼬집고 비틀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읽고 난 지금도 소설이니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 것은 내가 행여나 상상했던 결말로 끝나지 않았다는 안도감때문에 해석도 관대해졌다는 것이다. 


미녀가 싫다기 보다는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부자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누구인가, 또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나는 생각했었다. 나 역시 무작정 그들에게 관대했던 인간이었고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의 조건을 갖추어야 할 인간이었다.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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