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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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의 콩가루 집안이었다. 그런데 책의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갈수록 도대체 콩가루란 어떤 의미를 뜻하는가 싶은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막장드라마라 일컫는 스토리에는 출생의 비밀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이 집안에도 예상치 못한 출생의 비밀이 연이어 드러나고, 조카의 이름도 모르는 삼촌과 피자 한조각조차 삼촌들에게 나눠주지 않는 조카, 두 번의 이혼경력을 가진 주인공의 여동생과 평생 주먹을 쓰며 감옥을 수시로 드나드는 쉰 두살의 형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마흔여덟에 영화 한 편 말아먹고 이혼에 빈털터리가 된 작중 화자인 내가 있다. 단지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막돼먹었다 평할 수 없다. 그들에게도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파도에 떠밀려 마지못해 해안가로 쓰레기처럼 떠밀려온 삼남매가 칠순을 넘긴 엄마의 집에 엊혀살게 되며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게 흘러간다. 천명관은 이 책에서도 특유의 입심으로 욕망에 솔직하고 천진한 사람들의 모습, 그것도 가족이란 울타리아래 모인 남매와 어머니를 통해 우리가 진정 행복한 가족이라 일컫는 전형을 비웃으며,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행하는 것들이 위선이라 꼬집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어머니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엄마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는다. 희생을 미덕으로 살아온 엄마가 아닌, 과거 한 여자로서의 욕망을 간직했던 엄마와 평범한 인생살이에 실패한 자식들을 아무말없이 품으며 강한 모성애를 드러내는엄마가 등장한다.   


자식들이 장성해 머리가 희끗해져가는 중년이 되었어도 엄마눈엔 그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짖어대는 제비새끼들처럼 안쓰러워 보였을까? 그래서 비록 자식들이 모두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 그저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온 게 기쁘기만 한 걸까?   -p.58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처럼 책 속 주인공의 어머니는 실패한 자식들의 인생에 그저 묵묵한 버팀목이 되어 누구보다 강한 엄마의 내면을 보여준다. 주인공 나는 영화의 실패로 인생마저 패배자로 전락해버린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지만, 엄마의 집에 들어와 살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조금씩 인간성을 회복해간다. 그리고 한 때 자신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나는 뒤늦게서야 형제들과의 과거를 떠올리고 자신에게 새겨진 가족의 그림자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누구보다 어머니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남매가 모두 모였을 때 질리도록 고기를 굽고 고기반찬으로 삼일밤낮을 배불리 먹이며 흐뭇해하는 그녀를 보며 세상 모든 엄마들의 모습이 살짝 엿보였다. 나 역시 객지생활때문에 전화통화 끝에는 항상 밥 잘 챙겨먹으라는 엄마의 말을 흘려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고기를 해먹인 것은 우리를 무참히 패배시킨 바로 그 세상과 맞서 싸우려는 것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몸을 추슬러 다시 세상에 나가 싸우라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p.198


결국 가족이란 그릇에 엄마를 담기 위해 소설은 실패한 자식들을 앞세웠지만, 엄마의 역활은 어느 가족에서나 똑같다. 단지 이 책에서는 생선머리만 좋다며 몸통은 전부 자식들에게 양보하는 무조건적인 희생대신, 자식들이 어떤 방향을 향해가든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의 엄마가 있다. 물론 주인공의 엄마 역시 여자로서의 희생을 감내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엄마의 존재감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집이고 밥같은 존재가 되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지인은 한 인간을 길러봐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희노애락을 겪으며 성인이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역시 이타적인 행동속에서만 인간의 삶이 완성된다고 했던 부분은 엄마의 인생을 한마디로 압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평생 보살핌만 받았을 뿐 누군가를 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헌신적으로 나를 보살피는 캐서린을 지켜보며 나는 한 인간의 삶은 오로지 이타적인 행동속에서만 완성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는 삶...... 거기에 비추어보면 나의 삶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삶이었던지.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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