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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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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그 불행에 감정이 격해지고 안타까워 하지만, 무엇보다 그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감사하게 된다. 이 책을 본 후 책의 배경에 대해 검색해 보는동안 나 또한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배경이 우리나라가 아닌 먼 이국땅이라는게 얼마나 다행인가하고 말이다. 멕시코 마약전쟁의 30년을 아우르는 2권의 대하드라마가 단순한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며,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섬뜩한 진실은 이 책을 읽은 누군가라면 분명 나와 같은 생각에 안도했을 것이라 믿게 된다. 개의 힘, 구약성서에 나오는 거부할 수 없는 악과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악의 가능성이라고 하는데 이 책을 보는 내내 나는 그런 불편한 진실도 마주봐야했다. 

 

멕시코 마약전쟁을 관통하는 마약 카르텔과 이를 둘러싼 나라와 나라, 조직대 조직, 인간대 인간등 장대한 스케일로 진행되는 이야기속에는 다양한 인물군상이 등장한다. 마약 카르텔의 보스(티오)와 그의 조카(아단), 그리고 마약 단속국의 직원(아트), 보스의 애인인 고급 매춘부(노라), 아일랜드계 킬러(칼란), 모두를 용서한다는 후안신부등 처음엔 관계없던 그들이 마약전쟁으로 인해 얼키고 설키면서 이야기는 짜임새있게 전개되고 배신과 음모, 권력과 암투를 둘러싼 살인은 하드보일드하게 그려진다. 나는 이 책을 보며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잔혹함에서 등을 돌릴 수 없는 것 또한 인간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악의 본성과 추악한 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지옥도를 보았는가. 나는 어느 책에서 본 지옥도가 너무 생생하여 다른 그림들이 압도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 이 책은 아트의 말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지옥도를 옮겨놓은 듯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안 된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제시할 수 없다.

가족, 일, 친구, 희망, 믿음, 고국에 대한 신뢰, 그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 의미있는 무언가를 제시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있었다. 그제야 아트는 이해했다. 케르베로스는 파수꾼이 아니라 안내자였다.

헐떡이고, 이를 드러내고, 혀를 늘어뜨린 채 당신을 악의 세계로 초대하려고 안달을 내고 있는 안내자.

그리고 당신은 결코 저항할 수 없다.    -1권 p.343

 

피로 얼룩진 복수와 살인, 다른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 최첨단 무기와 총을 보유하고 공권력을 매수하여 사회전반을 뒤흔드는 멕시코의 마약전쟁에서 승리자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피해자와 무고한 희생자만 늘어난 채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태로 악은 되풀이되고 있다. 멕시코가 이렇게 마약전쟁의 폐허가 될 수 밖에 없는 데는 역사적인 사실도 간과할 수 없었다. 어느 인터넷기사를 살펴보니 1994년 자유무역협정(NAFTA)이후 내수제품들이 저가수입품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간 후 빈부격차가 심해진 농민들이 도시로 쏟아져나왔고 그들은 도시빈민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들은 생계를 위해 마약카르텔의 조직원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마약으로 권력과 돈을 쥐게 된 마약카르텔은 점점 세를 불리며 국가에서조차 손을 댈 수 없는 거대조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 배경에는 끊임없이 마약을 밀수입하는 미국이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마약카르텔을 소탕하려는 미국의 마약단속국도 있다. 멕시코의 대통령 펠리페 칼데론이 6년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5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전쟁이 종식되어 멕시코에 평화가 찾아오길 바래본다.

 

아트는 마약 전쟁이 외설스런 부조리인지, 부조리한 외설 행위인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두 경우 모두 피로 더럽혀지 비참한 광대극이었다.    -2권  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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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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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워터스, 그녀의 작품은 이 책의 제목만큼이나 묘한 끌림과 은밀한 욕망의 손길이 뻗친다. 벨뱃 애무하기, 끌림, 핑거스미스까지 이르는 그녀의 빅토리아 3부작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매력을 선사한다. 앞서 말한 벨뱃 애무하기와 핑거스미스의 경우 지금 읽은 책과 달리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함과 여성동성애의 적나라한 성적표현으로 아슬아슬한 읽기의 위험수위를 넘나든 반면, 끌림은 오로지 밀뱅크의 여죄수인 셀리나와 부족할 것 없는 부를 가진 상류층 숙녀 마거릿의 일기로 채워진다. 총 5부작으로 구성된 끌림은 생전 믿고 의지하며 더없이 사랑했던 아버지의 죽음과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동생과 결혼하게 되며, 정신적 혼란을 거듭하던 주인공 마거릿이 여죄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밀뱅크 감옥에 방문하게 되고 그 곳에서 영매인 셀리나를 만나며 변화하는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의 다른 책들과 달리 매우 무겁고 또한 지루하다고 느꼈던 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긴시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는 처음엔 클로랄(진정제 혹은 최면제라고 함)에 의존하며 매우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인 마거릿이 점차 아편에까지 손을 뻗치며 셀리나를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과 들끓던 욕망에 이성을 잃고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함께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분명 작가는 내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을 결론에 도달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결코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놓고 인정할 수 없었던 마거릿이 셀리나에 대한 사랑이 확신으로 바뀌어갈수록 점점 대담해지고 용감해지는 것을 보며 함께 설렘을 느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강신회에서 영혼과 접신하며 영적인 능력을 보여준 셀리나의 매력 또한 숨길 수 없다. 그녀는 마거릿에게 자신의 영적재능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녀의 마음의 마구 휘젓는다. 그리고 마거릿의 일기를 통해 표현된 셀리나는 한층 신비로운 존재로 부각된다.
 
"이제는 프리실라와 함께 앉아 있느니 차라리 밀뱅크의 죄수들과 함께 있고 싶다.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느니 차라리 앨런 파워와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낫다. 가든 코트에 있는 헬런을 만나러 가느니 차라리 셀리나를 만나러 가고 싶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셀리나가 하는 이야기에서는 평범한 규칙과 습관들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마치 그녀가 차갑고 우아한 달 표면에 사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p.253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소설의 배경은 산업혁명의 눈부신 발전으로 전성기에 해당한다. 물질적 욕망이 팽배한 당시 사람들은 물질을 뛰어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맹신하던 시기가 아닌가 추측해 보았다. 자신이 만나고 싶어하는 영혼과 교접을 위해 강신회를 열고 영매를 찾아다니며 그들을 통해 마음 속 불안을 치료하던 시기라니 소설은 실화처럼 가능해보인다. 앞서 만났던 그녀의 빅토리아 3부작 중 왜 가장 훌륭한 소설이라 칭하는지 알 것 같다. 단순히 본다면 마거릿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라 할 수도 있지만 마거릿을 통해 허구와 실체, 그 경계에선 시대의 불안도 절묘하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극의 전반을 휘감는 다소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가 읽는 내내 따라다니지만 그 분위기를 견딜 수 있을만큼 소설은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누구나 그녀의 매혹적인 글을 읽는다면 운명처럼 끌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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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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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고는 절묘하게도 난 이 책을 집기 전, 형암 이덕무의 산문집을 들추었다. 이미 사놓은 책이라 빌린 책만큼 빨리 봐지지 않았기에 여유롭게 생각해 책장에 꽂아둔 채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연암은 박지원의 호이며 박지원은 이덕무와 막역한 사이였다. 내가 책장에 꽂아둔 이덕무의 책에도 책머리에 박지원이 쓴 글이 실렸다. 참 재미있는 인연이었다. 이 책에도 연암에게 글을 배우려는 가상의 인물 지문이 나오는데 박제가가 지문을 보며 이덕무와 닮았다 칭하는 부분이 있기에 나는 더욱 이덕무와 박지원의 인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열하일기'를 남긴 박지원의 글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으니 그런 문인에게 글쓰기의 소양을 배운다는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연암 박지원이 돌아가신지 8년이 되던해 어느날 그의 아들인 종채에게 의문의 사나이가 책을 한 권 전해준다. 돌아가신 뒤에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심지어 제자의 글을 베꼈다는 소문까지 귀에 들어오게 되니 여간 심란하지 않았던 종채는 사나이가 전해준 책을 읽으며 소문의 진실에 접근하게 된다. 아들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시간 중 유일하게 오리무중에 빠진 연암협에서의 시간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바로 연암이 아끼던 제자 지문을 가르치던 시간이었다. 지문은 입신하지 않는 아버지와 반목하며 과거에 응시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사서삼경등 고서를 꿰뚫고 있으며 자신의 실력을 자만했던 지문은 아버지의 서가에서 우연히 '연암선집'을 읽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연암의 글을 보며 자신이 기존에 읽어왔던 어떤 서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에 빠지게 된다. 과거에 뜻을 둔 지문에게 연암은 과거에 응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지문은 연암의 제자가 되어 그가 내주는 문제를 풀어가면서 글쓰기의 기본기를 하나씩 익혀간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만 보고 단순히 글쓰기를 가르치는 인문교양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다면 나는 분명 책장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지루해 결국 끝까지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Faction)의 형식을 빌어 소설적 흥미와 이론적 접근을 절묘하게 섞어놓아 한 번 책을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글쓰기의 기본을 매우 설득력있게 그려놓았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역사적 인물인 박지원과 이덕무등 당대의 인물과 시대상까지, 꼼꼼하고 치밀한 사전조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독서와 글쓰기등 객관적 사실로만 전달되지 않는 것들을 매우 절묘하게 그려놓은 이 책을 통해 박지원과 박제가,이덕무등 당대의 문인들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다. 또한 정조시대 문체반정(文體反正)으로 박지원의 글과 같이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소설이나 소품집을 금서로 규정해 규탄했던 역사적 사건도 글의 배후에 등장해 흥미를 더한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글을 씀에 있어 이토록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을 살릴수도 죽일수도 있는 글의 힘을 얕게 보았던 나의 어리석음을 이 책을 통해 되새긴다. 연암이 지문에게 가르치는 글쓰기의 덕목을 들여다보니 첫째, 사물과 부러 거리를 두어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약(約)과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오(梧)의 이치가 그것이오. 둘째,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할 줄 알아야 한다는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의 이치다. 셋째, 양쪽을 고려하되 반드시 새롭고 유용한 시각을 창출해야한다는 간(間)의 이치이다. 연암의 가르침을 통해 지문은 예전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저 옛것을 고집하며 깊이를 헤아리기보다 겉만 핧았던 자신의 과오와 자만을 뉘우친 그는 글쓰기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지문과 같이 집필동안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웠다고 하며 스스로 연암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힌다. 글을 쓴다는 것은 때론 많은 인내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과연 책 속에서 박제가가 지문에게 말했던 아래의 대사는 글을 쓰기 전 각오를 다지게 만든다. 글을 쓴다는 것만큼 책임감이 뒤따르는 일은 없는 것이다. 너무도 뜨끔하게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글쓰는 이라면 자고로 아래 말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붓 끝을 도끼 삼아 거짓된 것들을 찍어버릴 각오로 글을 쓰게나. 알겠나?"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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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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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소설에서 손을 놓고 있자니 소설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그래서 허물없이 친한 친구가 추천한 이 책을 필두로 여러권의 소설책을 집어들었다. 그 중 소설가 박민규의 난해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친구가 추천한 이 책은 정말 참신함과 독특함으로 똘똘 뭉친 아주 멋진 책이었다. 날 것 그대로의 펄떡뛰는 느낌이 살아있다고 해야할까.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매료시켰다. 무엇보다 기존 문학작품의 위선과 권위, 진지함을 뛰어넘는 재기발랄한 시도로 보는 내내 통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책 제목과 동일한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비롯한 6개의 단편은 각기 주체할 수 없는 저자의 끼를 마음껏 발산한 듯 어디로 튈 지 예측할 수 없는 짜릿한 재미를 준다.  

 첫번째 단편인 '버니'는 랩이라는 형식을 빌려 단편이 끝나는 내내 짧고 강렬한 문장과 반복되는 단어로 비트감을 살린 이 글은 글이라기보다 한 곡의 질펀한 랩을 듣는 듯 하다. 어느날 기봉이 운영하는 보도방에 친구가 순희라는 자신의 동생을 데려온다. 말없는 순희는 노래에만 반응을 했는데 특히 랩을 좋아해 랩으로 대화했다. 그러다 정말 우연찮게 순희는 래퍼로 가요계에 데뷔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의 단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햄릿 포에버'는 피의자 조서형식의 문답으로 이어가고 있으며 '옆에서 본 저 고백은-告白詩代'는 앵벌이를 하던 주인공이 그래도 자신이 하는 일보다 번듯해보이는 사채업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면서 겪는 고백형식을 취한다. 

무엇보다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한 건 책 제목의 단편인 '최순덕 성령충만기'이다. 제목처럼 단순하게도 성경처럼 두 단으로 설정된 형식하며 성경의 문체를 그대로 빌려온 이 단편은 저자의 상상이 얼마나 기발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외에도 어느날 뒷통수에 박정희 대통령의 눈이 달려있다고 믿게 된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백미러 사나이'와 기묘한 힘을 가진 머리카락의 에피소드를 다룬 단편 '머리칼傳言'도 무척 새로운 시각으로 읽은 글이었다. 단편들을 다 읽고 나니 그의 다른 글도 어떠할지 기대가 되었다. 그의 글이 모두 맘에 들었던 건 낮은 시선때문이었다. 정말 평범한 소시민들, 어쩌면 그보다 더 낮은 사람들의 일상을 쫓는 시선이 유쾌하고 가감없이 솔직했다. 보도방의 순희나 앵벌이를 하고 본드를 흡입하며,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는 여러명의 이시봉들 모두 중산층 이하의 삶을 고단하게 살아가는 하층민들이었다. 그들이 꿈꾸는 판타지가 지극히 현실적이라 더 눈을 뗄 수 없었던 것 같다.

친구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고 서로 맞장구치며 이야기했었다. 2시간의 짜임새있고 밀도높은 영화라기보다는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하는 단막극형식의 드라마말이다. 황금시간대에 방영하는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스토리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참신하며 기발한 발상의 형식과 연출로 한 번 보게 되면 끝까지 채널을 고정하게 만드는 단막극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편집 '맛'으로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국작가 '로얄드 달'도 떠올랐다. 비틀고 우회하지 않기 때문에 직설적인 그의 글덕분에 오랜만에 소설읽기의 재미에 푹 빠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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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도 좋아, 달라도 좋아! - 선현경, 이우일, 그리고 딸 이은서의 유쾌한 한지붕 생활 고백
선현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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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으로 떠나는 주말, 결혼식때문이긴 했지만 2시간 가까운 거리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동안 읽기에 이 책만큼 가벼운 듯 진지한 책이 없었던 듯 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고민이나 만화로 그린 재미있는 사생활 이야기를 통해 중간 중간 풋!하고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안겨준다. 무엇보다 여자아이를 키우는 소소한 일상을 통해 아이와 함께 커가는 엄마의 성장이 많은 이야기를 시사한다. 교육이나 육아에 대해 방관하는 자세를 보이는 듯해도 확고한 교육철학이 있음을 보여주고 부모의 자유로운 일상과 강요하지 않은 공부는 아이에게 좀 더 창의적인 생각을 북돋워주고 있었다.

한때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파맘과 베타맘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며 각각 장단점은 있겠지만 내가 만약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알파맘보다는 베타맘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알파맘보다는 베타맘에 가까워보인다. 무책임한 방관이라기보다 아이 스스로 깨우치는동안 엄마는 그저 옆에서 조언을 해주며 든든한 조력자 역활을 해주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교육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엄마의 모습은 때론 철없어보이고 친구처럼 든든해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독립성이나 자주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베타맘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저자의 일상을 통해 희망을 갖는다.

알파맘(alpha mom)
아이의 재능을 발굴해서 탄탄한 정보력으로 체계적인 학습을 시키는 유형의 엄마를 말한다. 즉, 이들은 아이의 미래를 하나부터 열까지 정해놓고 그에 맞춰 교육을 시킨다. 그러나 이는 아이에게 부모의 결정을 무조건 따르게끔 한다는 점에서 아이의 독립심이나 자립심을 상실케 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성장하게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베타맘 [ beta mom ]
자녀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해주는 유형의 엄마다. 이들은 아이의 행복과 주도성, 독립성, 자립성 등을 중요시하며 자녀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게끔 옆에서 도움을 줄 뿐, 부모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네이버 지식사전

또한 저자가 보여주는 가족의 일상도 흥미롭다. 만화가 부부의 모습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패턴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기에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는 일조차 버거워하고, 아이와 함께 게임기를 하며 게임속 가상세계에서 만나 정답이 없는 세상에 열광하며 함께 즐기기도 한다.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에 서로 얼굴 마주보며 대화하거나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부모 자식간에 허물이 없으니 게임을 하더라도 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철부지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안에 엄마와 아빠의 역활이 이래야 한다는 규정이 없으니 책 속에 등장하는 저자의 가족은 상하관계가 없고 모두 수평적이다. 그래서 하루 하루 즐겁지 않은 날이 없는 듯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시선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당당하며 행복해보인다.


이런 가족에게 사회가, 그리고 학교가 내주는 숙제는 넌센스다.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장래희망이란 과제를 풀며 사회가 정의하는 직업군이 아닌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든지 너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만화속 장난스런 그들의 대화는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학교교육의 틀아래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생각을 가진 나같은 사람에게도 이 가족의 대화는 신선함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깨우치고 필요성을 찾게 될 때 비로소 강요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공부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는 값진 교훈이 된다. 부모란 무릇 아이에 대해 조급함을 가져선 안된다는 것이다. 넘어질 때 손을 잡아 일으켜주는 것이 아니라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바로 부모의 역활이 되야한다는 것을 새삼 마음에 새겨본다.


공부를 하기 전에 먼저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감히 내 딸에게 무작정 공부를 시킬 수가 없다.
먼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생각할 수 있는 아이라면 그 삶을 위해 치를 희생이 즐거울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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