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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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욕망과 판타지, 종횡무진 확장해가는 이야기의 왕성한 번식력을 확실하게 보여준 그의 전작 [고래]때문인가. 그가 썼다는 책은 거두절미하고 읽고 싶다는 기대감에 부푼다. 최근 그의 인터뷰를 보고 뒤늦게 이 책을 찾아내 읽었다. 결론은 전작인 [고래]의 아성이 너무 두터워 그에 반할만큼 획기적이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위트는 여전했고 보통 사람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진지함을 보여준 단편들은 그에게 규정한 영역을 뛰어넘어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 소설집에서 보여준 그의 새로운 매력은 특이하게도 외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포르투갈 하녀 마리사와 [프랑스 혁명사-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에서는 철학자 토머스와 존, [더 멋진 인생을 위해-마티에게]에서는 추억을 회상하는 늙은 갱단 폴이 등장한다. 다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제목처럼 유쾌하기도 하고 때론 우울하며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런 특별한 주인공들만으로도 이야기는 기성작가들에게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그렇게 가볍고 무거운 기분을 오가며 읽은 단편들이지만 왠지 영국작가 로얄드 달의 단편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생각지 못한 반전과 전개가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외국인이 주인공인 단편들은 더욱 그러했다. 뭐,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처음에 느꼈던 새로움은 차츰 반으로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가 보여주는 평범한 삶에 녹아있는 보통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의 일상처럼 가엾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사실, 스무살 나이엔 아무것도 절실한 게 없다.
그것은 젊음이라는 빛나는 재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욕망이 구체화된 나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은 그저 무지와 암흑의 카오스에 갇혀 있는 어설픈 가능태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 中 [二十歲] 



[자동차없는 인생],[숟가락아 구부러져라], [비행기]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의
녹록치 않은 하루살이에 지치고 힘들어 크게 소리칠 힘조차 잃어버린 모습은 코끝이 찡해지게했으며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버려 제발 봐달라고 소리없이 외치는 그들의 절규는 가슴 먹먹해지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이런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겉모습에 감춰진 고뇌와 슬픔으로 얼룩진 내면을 들여다본 뒤에야 그는 진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고래]의 춘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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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클립스 - 나의 뱀파이어 연인 트와일라잇 3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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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인상깊었던 [트와일라잇] 이 후 근 1년만에 후속작인 [뉴문]과 [이클립스]룰 연달아 읽었다. 트와일라잇을 읽으며 느꼈던 재미와 설렘은 조금 떨어졌지만, 트와일라잇만큼 흥미롭게 읽을 순 있었다. 그런데 얘기가 점점 길어지자 트와일라잇을 읽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유치함과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닭살스런 대사나 애정행각은 글의 몰입을 방해할정도로 자주 등장해 나를 당혹케 했다. 뉴문에서는 분명 작가가 트와일라잇에서도 복선을 깔아준 듯한데 갑자기 등장한 듯 보이는 기존인물의 변화-행여 스포일러가 될까 싶어 구체적 언급은 피한다-는 점점 내용이 궤도를 벗어난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고, 이제 비극과 삼각관계, 연애에서 빠질 수 없는 극적인 요소들을 억지로 짜집기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책에 대한 반감마저 들었다.

중간에 책을 덮어버릴까 싶은 고비도 몇 번이나 찾아왔다. 결국 끝까지 다 읽었지만 남는건 뻔한 전개로 흘러가는 그저 그런 순정만화의 느낌, 그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버렸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식상한 주제로 시작했지만, 21세기형 뱀파이어의 무한한 잠재력을 현실에 접목해 비극적이고 애틋한 러브스토리로 완성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뉴문]과 [이클립스]에서 보여주는 어색한 전개와 벨라의 심리는 다소 과장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에드워드와 제이콥 사이에서 갈등하는 벨라의 모습은 더없이 이기적이었고 위선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분명 운명의 상대는 에드워드라고 말하면서도 제이콥을 혼란스럽게하는 말이나 행동은 그녀를 전형적인 순정만화 여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결국은 에드워드때문에 뱀파이어가 되기로 결심하는 그녀의 구체적 고민은 진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평생 가족이나 친구와 떨어져 지내야하고 흡혈욕망때문에 괴물로 변하게 될 자신이 모습을 두려워하는 그녀를 보니, 그 때까지 위험하지만 꽤 낭만적으로만 보이던 에드워드(뱀파이어)와의 사랑이 비현실적이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트와일라잇을 읽으며 품었던 소녀감성 판타지의 환상이 깨지다보니, 집중이 어려워졌고 충분히 공감할 수가 없게 되었다. 순정만화의 말랑 말랑한 감성도 삼십대가 되서 이해하려니 조금 버거워진 게 아닐까. 아니면 두 남자를 저울질하는 벨라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발동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다음 편인 [브레이킹 던]까지는 읽을 자신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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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2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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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마지막을 덮으며 품었던 반란의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어쩌면 당연한 결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역시 시마자키의 현실에 드리워진 장막에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도발적으로 시작한 개인의 반역도 결국 현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불보듯 뻔한 인질극이었지만 통쾌하게 반전시켜줄거란 기대를 저버린 작가에 대한 배신감이 무엇보다 컸다. 시작자체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당시 시대배경은 1960년대 휴대폰과 무전기의 보급이 활발하지 않았고 이동수단도 턱없이 부족한 시절이었지만, 공안부와 형사부의 정보력과 동물적 본능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흥미로웠던건 국가적 위기에도 공안부와 형사부는 절대 협력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나 일본드라마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검사와 형사들간의 보이지 않는 팽팽한 신경전과 구조적 모순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2권에서는 도쿄올림픽이 가까워옴에 따라 시마자키와 형사 오오마치의 1:1대결구도로 좁혀지며 더욱 긴박하게 진행되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희생자를 짓밟고 이루는 번영이라면 그건 지배층만을 위한 문명이에요."    -P.65

 
하지만 책을 덮은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책의 결말에 대한 씁쓸함이 오래 남았다. 분명 도쿄올림픽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역사적 사실을 뒤엎을 자신은 없었던 것일까. 그만큼 마음 한 켠으로는 시마자키의 계획이 실행되길 바라는 간절함이 더 컸다. 국가란 이기적인 권력에 맞서는 개인의 무력함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권에서는 완벽한 노동자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시마자키의 모습을 통해 가난한 노동계급을 비호하는 그의 신념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쿄올림픽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급조된 번영을 바탕으로 거행되려 하기 때문이에요. 이 나라의 프롤레타리아는 완전히 짓밟혀 마치 발판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그대로에요. 이걸 용서한다면 국가는 점점 더 자본가를 우대하겠지요. 누군가가 반기를 들지 않으면 민중은 앞으로도 계속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합니다. "    -P.206


거대한 사회그늘에 개인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라는 폐배감이 엄습해왔고, 그러자 그의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더 확연해졌다. 고지식한 이론을 들먹이며 끝이 뻔히 보이는 인질극을 계획했다고 그를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자본과 권력에 맞서 지배층을 뒤흔들 위협을 했다는 통쾌함만으로도 작은 위안은 되었으니 시도자체를 손가락질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이런 유쾌한 발상에 모처럼 가슴두근거릴 수 있었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도 있었다. 분명 맞는 말이었고 누군가 해주길 바랐기 때문에 그가 보여준 행동을 통해 대리만족했지만, 당사자인 그가 불행해지는 모습은 안타깝고 씁쓸해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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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마빈 클로스 외 지음, 박영록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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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와 함성이 아직도 귓전에 쟁쟁한데 벌써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란다. 여기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기까지 밑거름이 되어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정권 아래 반정부시위를 벌이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해온 정치범들이 수용된 로벤섬에서 벌어진 축구경기를 알게 된다면 남아공에서 개최된 이번 월드컵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어떻게 자신들에게 철저히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교도소 당국을 설득하고 주말마다 축구경기를 할 생각을 했는지, 하루 반나절 이상을 채석장에서 고된 노동과 부실한 영향상태로 훈련을 하고, 종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교도소에서 기록을 남기고 심판위원회와 축구협회등 어떻게 체계적인 운영이 가능했는지 말이다. 산넘어 산이라고 한가지 과제가 해결될 때마다 그들에겐 더 험난한 산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막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종종 잊는 경우가 있었다. 끈기와 인내로 오랜시간동안 간수와 교도소당국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신념과 고집을 굽히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축구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축구를 통해 변화의 희망을 놓지 않은 그들의 강인한 정신력을높게 평가해주고 싶다. 


축구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열정을 부추기고, 선수와 응원자 사이를 끈끈하게 만들어 교도소 생활에서 오는 좌절감을 덜어주고 기분전환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p.123


처음 시작은 주말에 겨우 30분정도만 주어졌던 오합지졸같던 축구시합을 팀을 구성하고 리그별 시합계획을 세우며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붙들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심판위원회를 만들어 정당한 심판을 볼 수 있도록했으며 축구를 통해 생긴 노하우로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시도하고, 교도소 울타리 안이었지만 나름의 올림픽까지 열어 힘들었던 수감 생활을 잊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자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축구라는 스포츠종목이 왜 이렇게 오랜 세월 꾸준히 사랑받는지 알 것만 같았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교도소내의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했다. 이렇듯 교도소내의 축구를 가능하게 했던 많은 이들은 현재 남아공의 대통령을 비롯해 FIFA위원회, 헌법재판소등 정권이 바뀐 남아공의 주춧돌이 되어 있다는 것은 더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교도소에서 출소된 이 후, 그리고 정권이 교체된 이 후에도 그들은 로벤섬내에서 벌어진 축구경기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축구는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는 말처럼 축구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 되었던 것이다. 축구화대신 폐타이어로 만든 신발을 신고, 국제적십자사의 도움으로 근근히 받을 수 있었던 유니폼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성공시킨 열정과 노력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드컵이 몇개월 남지 않는 현시점, 뉴스에서는 남아공에서 연일 벌어지는 무력시위와 허술한 보안등을 문제삼으며 개최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월드컵과 축구에 대한 열망으로 개최국으로서의 자부심이 한껏 부풀어 있을 줄만 알았던 남아공은 국가적 축제를 눈 앞에 두고도 오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부디 월드컵을 무사히 개최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남아공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당시에는 그들도 몰랐지만, 그들이 섬에 남기고 온 것은 현대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주목할 만한 이야기였다. 헌신적이면서도 결단력 있는 지도력과 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지원으로, 그들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축구를 통해 로벤섬에 자유의 소중한 의미를 새길 수 있었다. 또한 수천 명의 수감자들에게 희망과 동기 그리고 목적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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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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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30도를 웃도는 뜨거운 기온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간질거리는 여름, 그 끝을 아쉬워하는지 8월의 더위는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찜통같은 무더위 속에 1964년 10월 10월에 있을 도쿄올림픽의 장대한 개막과 일본의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노동자들은 12시간을 넘는 고된 노역으로 인간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노동자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한 젊은이가 혹독한 육체노동으로 몸과 마음을 벼르며 프롤레타리아의 반역을 꿈꾸고 있다.


육체노동을 경험하지 않는담녀 자신은 타락하고 만다. 자본이 만들어낸 무한한 욕구가 품고 있는 비합리성,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밖에 없다. 세상을 바로잡는 건 프롤레타리아를 빼고는 없다. 고향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피눈물이다.    -p.184


그리고 어느 날 올림픽을 몇 달 앞두고 경찰 최고간부이자 올림픽 경비의 총책임자인 스가 경감의 사저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사건이 일어났다. 뒤이어 나카노 경찰학교의 배선실에서 두번째 폭발이 발생했다. 올림픽을 앞 둔 시점에서 경찰과 공안부는 발칵 뒤집혔고, 초긴급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범인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올림픽을 인질로 배후에 있는 국가의 거대권력과 맞서려는 범인의 모습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며 소설은 매우 긴박하게 전개된다.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형의 죽음이 후 돌연 노동자계급에 대한 부채의식을 떠안고 노동자가 되기로 결심한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 시마자키 구니오, 올림픽의 총경비책임자인 스가 경감의 둘째 아들이자 시마자키와 동창인 스가 다다시, 폭발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 이 세 사람의 90일동안의 행적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폭발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묘하게도 세 사람 모두 국가라는 조직의 부당함과 내부권력의 힘을 느끼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사소한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캐릭터의 끌림이 전체를 압도하고, 현재를 통해 전달되는 과거의 복선이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노동자의 목숨이란 얼마나 값싼 것인가. 지배층이 민중을 바라보는 시선은, 19년 전에 본토 결전을 상정하고 '1억 국민이 모두 불꽃으로 타오르자'라고 몰아치던 시절 그대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민중은 한낱 장기 말로만 취급되고,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게 전쟁이었고, 이제 그것은 경제발전이다. 도쿄올림픽은 그 헛된 구호를 위해 높이 쳐든 깃발이었다.    -p.386


1권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작가의 전작 중 가장 좋아하는 <남쪽으로 튀어>였다.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된 주인공 아버지의 모습이 이 책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시마자키 구니오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 아버지의 순결했던 젊은 시절, 자신이 주장해온 이론을 실천으로 옮겼더라면 분명 그 역시 시마자키 못지않은 과격함으로 가족이나 주변사람이 아닌 국가를 상대로 한 엄청난 모험을 감행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남쪽으로 튀어는 우리를 유쾌하게 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의식을 각성하게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시마자키가 겪은 빈부격차의 실체는 옛이야기같지만, 자본주의의 폐단은 21세기의 새로운 빈부격차와 피지배계층의 전락으로 프롤레타리아에게 더욱 뚜렷한 상실감을 맛보게 했다. 그래서 시마자키가 해석한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 해석은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한 개인의 쿠데타를 순수하게 포장해주는 설득력을 발휘한다. 2권을 읽기 전, 시마자키의 끝이 부디 불운하지 않기만을 수없이 되뇌어보았다. 그리고 개인의 저항이 결국 무력하게 끝나버릴것이라고 뻔히 예상하는 나의 생각을 확실한 반전으로 그가 뛰어넘어주길 바래본다.


공산주의라고 하면 금세 빨갱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체재측에서도 노골적으로 경계하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을 생각하는 지극히 순수한 사상이야.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서, 창출되어야 할 어떤 상태이지 그것에 따라서 현실이 바로잡혀야 하는 어떤 이상이 아니야, 우리가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실천적인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이야.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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