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장 - 일상다반사, 소소함의 미학, 시장 엿보기
기분좋은 QX 엮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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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장을 좋아하고 시장보기를 좋아하지만 생각만큼 찾지 않게 되는 것도 시장이다. 요즘엔 대형마트에서 공산품부터 식료품, 가전제품까지 한 번에 쇼핑하는 편리함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시장상인과 직접 가격흥정에 덤이라는 기분좋은 서비스까지 있는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곳이지만, 대형마트나 슈퍼, 백화점에 밀리고 밀리다 이젠 뒷전이 되버린 곳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는 어김없이 시장이 들어선다. 빨간 바구니에 피라미드처럼 쌓은 과일, 2~3000원씩 담긴 싱싱한 야채, 생선, 바퀴벌레약부터 호박엿까지 시장을 보면 사람사는 모습,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녹색 풋사과가 나오면 여름이 왔구나 알게 되고, 팔이 긴 옷이 나오면 가을이 왔다는 걸 실감한다. 시장이란 반가운 타이틀의 이 책은 대형마트의 그늘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시장의 새로운 활력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5명의 공동저자가 소개하는 우리나라의 시장은 동네시장을 보는 것처럼 친근하기도 하고, 외국시장처럼 이국적이기도(제주도가 그러했다.) 하다. 지역 특색을 담은 먹거리와 푸근한 인심의 상인들, 오래된 간판과 볼거리들은 시장의 숨겨진 매력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어떤 지역에서든 그 지역특유의 모습과 시장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관광도시라는 화려함에 가려 보지 못했던 제주도의 시장이었다. 선물용으로 박스채 담긴 한라봉대신 리어커에 잔뜩 쌓아놓고 파는 모습이 유난히 예뻤고 결혼식때 먹는다는 빙떡, 백년초와 녹차로 만든 강정은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부산에 살기에 더 반가운 부산의 깡통시장과 시장통에서 유명한 단팥죽 할머니, 헌책방 골목은 자주 가는 곳이라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제주도부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까지 내노라하는 시장의 모습은 북적 북적 시끄러울 것 같지만, 어르신들이 지키고 있는 시장바닥의 모습은 냉엄하고 비루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파라솔하나에 의지해 -혹은 그조차 없이- 살을 에는 추위와 찌는 듯한 무더위에 온종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하루를 살아야하는 이들에게 시장이란 치열한 삶의 터전인 것이다. 그래서 시장의 생동감, 고된 하루가 삶의 나이테가 되는 시장의 모습을 담기에 다섯명의 저자가 들려주는 소심함은 감상적이고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실제 찾아갈 수 있는 방법과 지역 특유의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소개는 젊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게 할만큼 매력적이라 할 만하다. 

 
물건과 가격만 보이는 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과 인심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장보기 전에 주변의 시장을 찾아보자. 많은 이웃과 상인들의 모습에서 사람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면 그 물건을 판매한 사람들의 인상을 다시 회상한다. 그 분들의 친절과 표정, 자로 재지 않고 저울로 달지 않은 -혹, 이미 잰 것일 수도 있겠다- 마음을 가슴에 담는다. 그리고 꼭 다시 찾아가게 된다. 그 곳에 가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에게도 살아간다는 현실감을 전해준다. 그리고 변화하는 흐름에 발맞춰 안과 밖으로 달라지고 있는 한국시장의 내일은 희망적이라고 책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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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말고 당당하게 - 하종강이 만난 여인들 우리 시대 우리 삶 1
하종강 지음, 장차현실 그림 / 이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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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라는 단어는 얼핏 진보성향이나 사회주의의 냄새가 풍긴다. 혹은, 고된 육체노동자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우리는 분명 먹고 살기 위해서 몸이나 머리를 쓰며 일을 하는 노동자임에도 단어에서 주는 인상은 부정적이고 어둡기까지 하다. 이 땅 위에 학생이나 아기가 아니고서는 모두가 신성한 노동자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부당해고, 저임금과 능력과소평가등 분명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성들의 근무조건은 열악하다. 저자는 이렇듯 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의 편에 놓인 여성노동자들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되돌아보게 한다.


나 역시 여성노동자이기 때문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부당해고 되고 이유없이 좌천되어 사무직에서 청소직으로 몰리거나, 사측에 불공정한 부분을 항의하여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게 끌려가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바라는 건 급여인상이나 근무시간의 개선도 아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대해 인정받고 그 위치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아주 작은 바램이었는데 그조차 무시당하고 짓밟혔다는 사실이다. 근로자에게 적용되야할 근로기준법을 사회적 강자로서 철저하게 악용하는 고용주들의 태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에 한숨짓게 만들었다.  


'노동조합'이라는 중요한 단어가 자기 인생과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며 자란 청소년들...... 자기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회사에서 인간답게 일하며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신세대 노동자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 땅의 교육과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자본과 권력의 잘못이다.   -p.113


그렇지만 노동자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와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의 활동은 2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 역활을 꾸준히 실천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측에서 노동조합에 보내는 시선은 늘 따갑다. 근로자들이 단결하여 파업이라도 하는 날에는 팽팽한 신경전과 까다로운 조건으로 협상을 몇 번이나 번복하기도 하고 경찰까지 동원하여 몸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과연 노조측이 제시하는 협상안이 그렇게 비합리적인지, 언론까지 들고나는 가진자의 이기적관점은 그들을 모두 배부른 소리하는 사람으로 비추기까지 한다. 더구나 노동조합안에서 위원장으로 여자가 뽑히자 분개하며 반대하는 남성조합원들의 모습까지 더해지자 여성조합원들이 해내려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됐고, 근로기준법의 생리휴가조항 하나까지도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닌 그들의 노력과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노동조합은 결코 노동자에게만 유익한 집단이기주의적 조직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문제점을 고쳐 더 좋은 사회로 만들어 가는 올바른 수단을 제공한다. 노동조합은 지금까지 200년이 넘는 역사에서 그 역활을 수행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p.61

 

사회는 급변한다. 여성들의 지위도 예전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의 지위는 아직도 불평등하다. 이 책이 말해주고 있다. 지금도 사회 여러 곳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고용주의 부당대우와 차별, 냉대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변화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다. 실로 무거운 주제였지만 저자는 자신이 만난 여성들을 통해 짧고 가벼운 에피소드로 쉽고 재미있게 전달했다. 때론 울음을 삼키고, 때론 큰소리치고 싶기도 했다. 노동운동이 최소한의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선언이라는, 한 노동자의 선언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과 파업, 그리고 죽음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내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게 만들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져야 할 최저의 기준입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노동자가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동안 했던 활동은 단지 인간선언일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노동운동은 지금 인간선언의 절박한 요구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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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제국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기록한 우리 시대 음식열전!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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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이미 작가의 고집스러움이 풍기는 책이다. 아니나 다를까. 맛컬럼리스트라는 자신의 직업을 백분활용해 음식부터 요리재료 하나에 이르기까지 절대미각의 진실을 들추어낸다. 한식이 주를 이루는데 우리가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한식의 진실, 혹은 맛집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오로지 자신의 감각을 믿을 수 밖에 없는 맛을 평가하는 사람이니 다분히 주관적인 의견이 섞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처음엔 너무 편파적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는 당당히 밝힌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횡행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입맛에 반기를 드는 나만의 미각의 제국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선언하며 운을 뗀다. 처음엔 그저 즐기는 미식가가 되었다가 맛전문가가 되고 나서 그가 맛본 국적불명의 한식과 재료본연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조리법, 기본을 무시한 요리에 그는 분명 분노한 것 같았다. 특히 화학조미료편 드러나는 그의 분노는 차라리 체념에 가깝다. 오랫동안 맛보며 커온 엄마의 맛이 이 화학조미료의 실력이었으니 그 입맛을 바꾸기가 쉽지 않음은 두말해 무엇하리. 짜고 맵고 달고, 유난히 자극적인 음식에 강하게 반응하는 민족이다보니 그들의 입맛을 휘어잡으려면 점점 더 자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학조미료는 그 자체로 맛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식재료들 제 각각의 맛을 뭉그러뜨리는 역활을 하는데, 툭툭 튀어나오는 맛들의 중간에 서서 조절을 한다. 이것저것 양념을 넣었는데 맛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 고민일 때 화학조미료 한 숟가락이면 모두 해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짜고 매운맛을 음식의 중심에 두고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내는 한국 음식에 화학조미료는 '맛의 조절자'로 항상 유용(?_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 음식에서 화학조미료를 버리자면 짜고 맵고 강한 양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심심하고 순하게 먹으면 화학조미료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p.39

 

그가 아쉬워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다. 혀와 뇌를 마비시킬 정도의 자극적 식감때문에 재대로 된 음식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진실을 파헤치기로 한 결심이 된 듯하다. 그리고 그런 음식을 만드는 사이비들에게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이비요리사만 난무하는 세상은 아니지만 기본도 모르는 사이비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저 유행을 쫓아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을 섞고, 재료 본연의 맛을 감추어 먹는 사람들의 미각을 속이는 얄팍한 상술에 당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만든 음식을 먹고 미각을 벼르는 일 밖에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장에서 주정으로 만든 양조식초로 만족한다.
유명 한식 요리사는 저만의 천연식초 하나 없이 '2배 식초'를 쓰면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막회로 큰 손님을 모으고 있는 식당에서는 막걸리식초가 있는 줄도 모른다.
기본이 없으면 사이비일 뿐이다.    -p.25

 

책을 읽는 내내 사실 참 많이 웃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 웃음의 뒷맛은 씁쓸했다. 왜냐, 그가 말하는 사실이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상술과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맛의 속임에 내가 맛있다고 먹은 음식들까지 모조리 의심스러워졌으니 참 불편한 책이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한 기본에 충실한 요리들을 먹기 위해선 그만큼의 많은 음식들을 맛보아야할 것이다. 꼭 한식에만 국한되지 않고 음식의 재료가 되는 모든 것들, 우리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국적불명의 음식들까지도 기본을 지켰을 때 가장 맛있는 요리가 된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 요리의 기본은 아는게 병이 아니라 아는게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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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가게를 시작, 했습니다 - 여성 오너 15인의 창업 이야기
다카와 미유 지음, 김희정 옮김 / 에디터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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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면 선뜻 혼자 힘으로 가게를 차리겠다는 계획이 쉽지는 않다. 점포를 알아보는 일부터 물건을 매입하고 컨셉을 정하며 손님을 상대하는 일에 경영과 회계등등, 가게라는 왠지 허름해보이는 이름과 달리 하고 싶다는 마음만 먹고 섣불리 시작하기 힘든 것이 바로 자기 사업이다. 게다가 여자가 하겠다는 일은 일단 얕잡고보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바로 자기 가게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 속, 15명의 여성오너가 들려주는 자기 가게의 운영노하우는 의외로 쉽고 간단했다. 어쩌면 20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고객과의 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뚜렷하게 자기 가게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공통적이었다.
 

나 역시 여성 오너들이 자신의 가게를 상상하며 즐거워했던 시기를 오래전부터 겪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들과 확연하게 다른 건 바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데 장애물이 되었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불확실했던 20대보다 갖춰진 게 더 많은 지금도 가게를 갖고 싶다는 꿈만 부풀린 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도 두려움이었다. 오너들 모두 입을 모아 불끈했던 시작과 달리 고비를 맞고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지만 슬기롭게 극복해나간다. 그들은 이미 가게를 시작하기전 겪어야 했던 두려움이란 큰 산을 넘었기 때문에 더 큰 위기도 넘길 수 있는 용기와 끈기,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믿고 유행을 쫓지 않으며 확고한 컨셉을 가지고 인내했던 부분은 내가 가게를 하더라도 마음속에 새겨두기로 했다. 
 




 

 

 

 

 
잡화 전문점-vanilla chair                         일본 동화풍 잡화점-라무네 저택  
 

"가게를 열고 싶다는 상담도 꽤 많이 받는데, 이상으로 그리는 가게를 이것 저것 상상하는 시간은 아주 즐거운 것이에요. 그렇지만, 실천으로 옮기려면 상상대로는 되지 않아서, 큰 노력과 각오가 필요하죠."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 결정하는 것도 자신, 움직이는 것도 자신이다.  -p.74


최근 우리나라에서 급격히 늘어난 소규모 까페나 음식점들은 대형 체인점화되버린 까페나 패스트푸드점에 식상해진 사람들에게 관대한 칭찬과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개인의 취미나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이런 작은 가게들을 통해 사람들은 진정 소통하는 느낌을 받는 듯하다. 이 책에 소개된 컨셉 가게들도 모두 가게 주인을 닮아있다. 주인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다. 그리고 가게 주인들 역시 손님들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그래서 대형 까페나 음식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타인과의 관계형성과 감성교류는 이런 작은 가게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가게라는 것이 하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거은 아니에요. 너무 높은 장애물이라고 생각해서 결국 하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많은 거죠. 가게를 만드는 것보다 시작하고 나서가 더 힘들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거라면 과감히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p.93 
  

 

 

 

 

 

 

 서양과자 전문점-machilda 
 

20대에 가게를 시작했다는 거창한 타이틀은 15인의 여성오너들을 대단한 존재라고 믿게 만들지만, 사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떨결에 시작한 사람부터 뒤늦게 자신의 가게를 갖고 싶다고 생각해 일단 저지른 사람들도 많았다. 단지 손님들로부터 '귀엽다'는 한마디를 듣기 위해 밤낮으로 케이크모양의 오르골을 만드는 일본동화풍 잡화점의 24살 오너 아오키 메구미씨까지. 사연은 가지각색이지만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자신만의 색을 입힌 가게의 어린 오너들은 당당하고 멋졌다. 아무래도 일본의 가게들이다보니 점포를 오픈하는 과정부터 개업자금까지 우리나라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것 같지만 물가비싸기로 소문난 일본의 개업자금치고는 소자본이었다 생각하니, 일을 벌여도 충분할 것 같아 나의 계획을 앞당겨보는 건 어떨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 때까지 오너들의 초심을 두고 두고 기억해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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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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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수많은 매니아를 거느린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만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만큼 소설 화차는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친 수작이었다 말하고 싶다. 또한 여작가이기 때문에 더 밀도있게 그려지는 여자들의 심리묘사는 순간 순간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정도 더 거슬러 올라갔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다중채무자나 개인파산, 대출, 사채로 인한 폐해는 현재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요목조목 집어주는 듯해 매우 놀라웠고, 일본의 신용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때문인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근무중 총상으로 휴직하게 된 형사 혼마에게 죽은 아내의 사촌인 가즈야의 느닷없는 방문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부모의 반대에도 강행한 약혼이었기에 가즈야는 말이 새나갈 염려가 없는 혼마를 찾아와 자신의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가즈야의 부탁을 받을 때만해도 일이 커질 줄 몰랐던 혼마는 단순한 가출이나 실종으로 판단하며 약혼녀인 세네키 쇼코의 행방을 쫓게 된다. 개인파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가즈야가 쇼코에게 사실을 물은 뒤, 그녀가 사라졌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찾던 중 세네키 쇼코가 전혀 다른 인물임을 알게 된다. 그 이후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빠른 속도로 그녀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난 책을 읽은 후 조금 장황하고 디테일하게 설명된 신문의 사회부 한귀퉁이를 본 듯 했다. 만일 내가 이 책을 출간한 당시였던 2000년도에 보았다면 이 놀라움은 나에게 신용카드 한 장 만들지 못하게 할만큼 무시무시했을 것이다. 돈이 없어도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사고, 현금을 주며, 대출까지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무절제한 신용카드의 남발은 우리나라에서도 IMF위기를 초래하며 수많은 노동자들과 실직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나 역시 신용카드인 줄 모르고 만든 월급카드가 신용카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현금서비스나 할부구매로 많은 카드값을 지불하며 비싼 교훈을 얻었다. 카드사용을 줄여가고 있지만 이미 습관이 된 카드사용은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보니, 책 속의 쇼코이야기는 비단 남의 일이 아니라는 변호사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제가 드린 말씀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세키네 쇼코 양은 특별히 형편없는 여성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어요. 그녀에게 일어난 일은 바람의 방향만 조금 바뀌었어도 혼마씨나 저한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상황을 항상 머릿속에 넣어 두시기 바랍니다. 안 그러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p.148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만난 동료에게 이런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급하게 취직하게 된 친구였는데 취직하게된 계기를 설명하다 카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카드를 사용하고 다닐 때는 당장 내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아 좋았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다음달 청구서에 찍혀 빚이 되어 날아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참 철없는 친구라며 혀를 찼는데 나 역시 카드사용이 늘면서 결제일이 다가올 때마다 수십번을 돌이켜봐도 쉽게 쓴 돈은 없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일이 늘어나자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보일 수가 없었다. 변호사의 말마따나 이 사회에서 신용카드는 사회의 필요악인 존재다. 


쇼코 양이 돌오와서 왜 개인파산을 해야만 했는지 해명을 해야한다면 제가 얼마든지 협력하겠습니다. 그런 일이 반드시 그녀만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현대사회에서 카드빚으로 인한 파산은 어떤 의미에서는 공해와 다름없는 것이죠.    -p.67
 

제목인 화차는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라고 한다. 그녀는 신용카드를 -혹은 신용사회를- 여러사람을 지옥으로 빠뜨린 화차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이런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차를 타버린 두 여자의 삶을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해자조차 사정을 헤아리자 감히 함부로 손가락질하고 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건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녀는 강한 반기를 들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 같다. 특히 변호사가 교통사고를 예로 들어 개인의 파산을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충고하는 부분은 설득력있게 전해진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기려는 기업의 일방적 태도와 국가의 방관도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1인당 개인부채가 총소득의 80%를 넘었다는 최근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이 지경이 되도록 개인을 부추겨온 사람들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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