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자와 생존자 잘 자요, 엄마,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by 서미애

 

읽은 날 : 잘 자요, 엄마2026.3.7.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2026.3.8.

 

바로 며칠 전 뉴스에 세칭 모텔연쇄살인사건의 범인 20대 김모 여인이 사이코패스 진단 평가(PCL-R) 결과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는 친절하게도 사이코 패스 진단 검사의 만점이 40점 이라는 것부터, 25점 이상이면 통상적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것이고 유영철의 점수가 38, 정유정이 28, 강호순이 27점이라는 것까지 밝혀주었다. 언젠가부터 흉악 범죄가 벌어지고 그 범인이 검거되면 그들의 사이코패스 진단과 그 결과를 고지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듯 하다.

 

이 소설 잘 자요, 엄마에는 20여명의 여성을 살해한, 굳이 검사를 해 보지 않아도 사이코패스임이 분명한 연쇄살인범 이병도가 등장한다. 검거 후에도 밝혀진 범죄 외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는, 굳이 풋내기 범죄심리학자 이선경을 지목해 면담을 원하고 선경은 학자적 탐구욕으로 이 상황에 엮여 들어간다.

 

소설은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 내가 아는 맥도널드는 미국의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야뇨증, 방화, 동물을 상대로 한 잔혹행위라는 세 가지 아동기 특징으로 어떤 사람이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정상인지 판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특징이죠?”

연쇄살인범들의 어릴 때 특징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

이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았죠? , 특수 상황을 일반화시킬 때 생기는 오류죠. 그것들이 연쇄살인범의 어릴 때 특징이라고 하더라도 그 역의 경우, 즉 그런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연쇄살인범은 아니죠. 아니, 오히려 그 수는 극히 미미하다고 봐야죠.”

……

어릴 때 같은 경험을 했는데 그들은 왜 연쇄살인범이 된 거죠?”

서미애, 잘 자요, 엄마, 엘릭시르, 2010, p.42-45 발췌

 

풋내기 초보이기는 하지만 범죄심리학자인 선경은 연쇄살인범들은 수많은 퍼즐 조각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듯, 여러 가지 요인이 모여서 완성되는 존재”(p.47)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그 여러 가지 요인을 모아주는 것이 어린시절의 가정 내 학대라고 말한다.

 

요즘 유행하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이 있고 그 말에 일정부분 동의하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가해자의 서사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들은 왜 연쇄살인범이 된 거죠?’라는 말에 답을 할 수도 없다.

 

인류는 이 라는 질문을 통해 생존했고 그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라는 질문을 통한 원인과 결과 찾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원인의 소거를 통해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개별 범죄자에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지언정 그 왜?라는 질문을 멈출수는 없다. 인간이란 원인과 결과를 가지런히 정리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인류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기에.

 

이병도는 지독한 가정폭력 속에 성장하다 11-2살 무렵 그 폭력에서 도망친다. 도망의 끝에 다다른 곳에 과수원집 네 모녀가 있었고, 그곳에서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평화와 안정을 맛본다.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갈 수도 있었다. 아동폭력의 희생자였지만 아직은 그 무엇도 하기 전에 도망을 쳤고, 도망친 곳에서 만난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따뜻한 사람들이었기에.

 

선경의 의붓딸 하영은 선경의 남편 재성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결혼한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가, 어느날 남편이 12살이 다 되어가는 이 아이를 두 사람만의 안온한 가정으로 데리고 온다. 하영은 10살에 엄마를, 11살에 자신을 돌봐주던 외조부모를 동시에 잃은 불쌍한 아이다. 15살 무렵에 엄마를 병으로 잃었던 선경으로서는 이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병도와의 기싸움과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보이는 의붓딸 하영과의 기싸움에 선경은 점점 지쳐가고, 이병도도 하영도 선경에게 매달려 구원을 찾는다. 그 와중에 남편 재성은 때때로 이해할 수 없이 굴고, 사이코패스에 대한 학문적 지식은 있지만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선경은 점점 지쳐간다. 이병도의 선경에 대한 집착이 병적으로 진행될 무렵, 선경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병도와의 접점을 끊어내려 하고, 하영에 대한 어른이자 부모로서의 연민과 책임감, 인간으로서의 거부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이병도와 하영은 자신들의 구원자로 생각했던 선경에 대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

 

작가의 서술은 스피디하고 박력있다.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책이다. 작가는 독자의 입장에서 선경의 행동이나 사고가 거부감을 느끼게 할 것임을 알지만 적당히 뭉뚱거리는 성녀적인 인물을 그리지 않는다. 선경의 답답할 정도의 머뭇거림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선경에게 독약을 먹이고 이불을 덮어주며 잘 자요, 엄마라고 말하는 하영의 말은 기묘하게 슬프다. 소설 전체에서 처음으로 선경을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이 선경을 독살하는 순간이라니. 그 순간 하영이 죽인 것은 선경이라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구원자의 존재이기도 하다. 구원의 가능성을 잘라내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행위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작가는 연쇄살인범이 되는 여러 가지 요인을 한데 모으는 것이 본인의 선택임을 입증한다. 희망에의 포기.

 

작가는 잘 자요, 엄마를 통해 어린 사이코패스의 완성을 보여준 지 10여년이 지나 16살의 하영을 데리고 다시 왔다. 선경은 죽지 않았고, 하영은 3년여의 아동 상담을 받으며 선경의 곁에서 성장했다. 4-5년 간, 선경과 하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서로에게 침범하지 않으며 한 집에서 살아간다.

 

선경은 아동심리 전문가인 친구 최희주에게 하영의 심리상담을 맡기고, 하영은 어쩌면 최 선생을 통해 아줌마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서미애,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엘릭시르, 2021, p.69)에 그 상담에 응했지만 삼 년간의 상담은 결국 아줌마와 다시는 예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소설 초반부, 선경의 친구이자 하영을 상담하는 아동심리전문가 최희주의 말은 너무나 정답이어서 상대적인 반감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독자도, 주인공 선경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마, 라는 반발을 일으키는 말이랄까.

 

바보야, 그게 무슨 말인지 정말 몰라서 그래?”

?”

자기를 사랑해 달라고 하는 거잖아. 하영인 애정을 원하는 거야. 정에 목말라하는 거라고.”

……

삼 년 동안 너희 모녀 상담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 하영인 끊임없이 너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고 너는 햇볕 한 줌 안 주는 차가운 태양 같았어.”

서미애,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엘릭시르, 2021, p.91-92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작중인물만이 아니다. 독자 역시 작가의 유도에 따른 것이든 오독의 결과이든 편견을 쉽게 가지는 존재다. 그것이 시리즈물의 등장인물일 경우 더하다. 이전 시리즈에서 구축 된 작중인물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작중인물인 최희주에게 주어진 하영에 대한 정보보다 독자에게 주어진 하영에 대한 정보가 훨씬 많기에 독자 입장에서는 최희주의 저 교과서적인 말들이 하찮음을 넘어 주인공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너의 진심은 알지만 너는 모르는 일들이 있어. 랄까.

 

전 편 잘 자요, 엄마가 사이코패스 이병도의 서사를 탐구하는 과정이라면 후편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는 사이코패스 하영의 서사를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성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에 대한 답이 나온다.

 

재미있는 교차다. 이병도는 11살에 도망쳤고, 하영은 11살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능동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과수원집이라는 안온한 피난처에서 이병도는 16살에 스스로 떠나 그 지옥으로 돌아갔고, 하영은 16살에 과거의 지독한 기억이 있는 곳으로 본의와 상관없이 끌려들어간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 것일까요,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만들어진다면 왜 만들어지는 걸까요.

 

연쇄살인마와 외과의사가 냉정함과 대담함의 측면에서 동일한 특성을 보인다는 것은 흔히 알려진 말이다. 같은 특질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은 사람의 목숨을 끝도 없이 파괴하는 연쇄살인마가 되고 어떤 사람은 사람의 목숨을 끝도 없이 살리는 외과의사가 된다. 그 둘을 가르는 선은 무엇일까.

 

17살이 될 무렵의 이병도와 하영에게는 동일한 살인충동이 찾아온다. 물론 그 강도와 상황이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그 순간에 각자의 선택이 그 ?’라는 질문의 답이 된다. 왜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이 누군가는 연쇄살인마가 되고 누군가는 아니게 될까요. 라는.

 

 

새로운 작가를 소개받는다는 건 매번 망설여지는 일이다. ‘소개받는이라는 피동의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 작품을 읽는 것은 나의 능동적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때때로 그 피동을 가장한 능동의 행위가 흡족한 결과를 가져 올 때, 나의 독서쾌감은 더 커진다.

 

작가는 이 하영 연대기3부작으로 계획했다고 한다. 2편이 나왔으니 이제 한편 더 남았다.

하영의 선택이 지켜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주문해 둔 다음편을 기다리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는 중이다.

 

신작을 기다릴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건, 삶의 즐거움이 또 하나 늘었다는 소리다.

기쁘다.

 

2026.3.8.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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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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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필요했어. 생강빵과 진저브레드by 김지현

 

읽은 날 : 2026.3.4.

 

나는 음식 관련 이야기를 좋아한다. 음식을 주요 소재로 한 소설도 물론 좋아하지만 그보다 이야기의 갈피에 삽입된 음식 이야기들을 더 좋아한다. 내가 박완서를 좋아하는 건 그분의 소설에 음식이야기가 정말 맛깔나게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관련 최고의 박완서 작품은 그 남자네 집이지만(아 그 다양한 서울 음식의 향연), 도시의 흉년에 등장하는 음식들과 미망의 그 개성 음식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소설 속 음식 이야기는 전체 이야기에 생동감과 실제성을 높인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에서 눈 내리는 날 메이플 시럽 달이는 이야기와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에서 등장하는 그 다채로운 음식 이야기는 어떻고. 그 중 최고 백미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의 그 장면이다. 어멘가드와의 파티가 라비니아의 고자질에 따른 민틴 선생의 훼방으로 파토난 직후 등장한 그 마법 같은 한상.

 

접시의 뚜껑을 열어 보니 충분히 끼니가 될 만한 따끈하고 먹음직스런 진한 수프와 샌드위치와, 둘이 먹고도 남을 만한 토스트와 머핀이 있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세라 이야기, 시공주니어, 2004, p.246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음식의 맛과 식감을 충분히 알고 상상할 수 있기에 세라가 받은 그 따뜻한 위안을 독자인 나도 함께 받는 순간이었다. 따끈하고 진한 수프와 샌드위치, 토스트와 머핀. 그게 어떤 맛인지 나도 알거든.

 

언제나 문제는 그 상상이 불가능할 때에 발생한다. 해리 포터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버터맥주(버터비어) 같은 것. 아직도 한참이나 미성년인 11-2살 아이들이 먹는 맥주라니, 19세 미만은 술을 사는 것조차 불가능한 나라에서 성장한 나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데 너무도 맛있게들 마시니까 더욱 몰입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어린시절에 읽었던 소설에 등장하는 요크셔 푸딩 이라든가, 작은 아씨들에서 막내 에이미가 끝내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원인이었던 라임 절임, 초원의 집에서 나오는 버터밀크나 로라의 아빠가 히코리 나무 연기로 처리한 햄만큼 맛있는 건 없단다.”라고 말하던 그 훈제 사슴고기나 돼지고기. .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데 어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요즘은 구글느님의 힘으로 클릭 몇 번이면 사진은 물론 제조법과 원한다면 구매처까지 일괄 검색이 가능하지만.)일단 내가 아는 햄은 고깃덩이가 아니고, 히코리 나무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박완서의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들이 오감을 동반한 실제감으로 몰입도를 높이는 것과는 정 반대에 있었다. 아는 맛과 모르는 맛의 차이.

 

그저 홀로 상상을 해 보는 수 밖에. 버터 맥주는 맥주에 버터를 녹여 넣은 건가, 아니면 맥주가 버터를 녹인 것처럼 걸쭉한 질감이 나게 만든 건가. 버터 밀크에 대한 상상은 나름의 합리성까지 띠고 있었다. 우유에 버터를 녹여서 더 녹진하고 풍부한 맛을 내게 한 건가보다. 하는 실제의 버터밀크와는 정반대의 상상을. 크리스마스 만찬마다 등장하는 칠면조 통구이는 어차피 같은 조류니 통닭 전기구이와 비슷한 맛이려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마다 일상의 음식을 하도 맛있게 조리하고 먹는 장면을 삽입하기에 하루키의 소설속 음식 관련 책들도 나왔다. (내 부엌으로 하루키가 걸어들어왔다1,2,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 작가정신, 2003 / 하루키 레시피, 차유진, 문학동네, 2013) 소설 속 주인공이 먹는 음식을 나도 먹어보는 건 그 무엇보다 강력한 몰입을 위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

 

나 같은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책이 나온 걸 보면. 이 책은 해외 소설(주로 영미권)에 등장하는 우리에게는 낯선 음식과 식재료, 그리고 오역으로 잘못된 소개로 잘못 알려진 음식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덕분에 몇몇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풀었고, 몇몇 음식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었으며, 몇몇 소설을 소개받았다.

 

그래, 이런 책도 있긴 해야지.

 

2026.3.4.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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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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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라는 신인류 제노사이드by 다카노 가즈아키

 

읽은 날 : 2026.2.21.

 

2월이 되어 일을 그만두면서 통으로 주어진 물리적인 자유시간덕에 그간 읽어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책들을 줄줄이 읽는 중이다. 이 책은 밀라노 동계 올림픽의 남자 쇼트트랙 5000미터 계주 결승 경기를 기다리며 읽었다. (나는 황대헌이라는 선수를 아주 좋아하고, 황대헌이 포함 된 한국 쇼트트랙 남자팀은 밀라노 동계 올림픽 계주에서 은메달을 땄다. 축하축하.)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알만하다. 다만 이 책이 처음 집필되고 한국에 출간되던 2012년에 읽었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로부터 14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이 책에서 말하는 진화된 인류는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상상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다는 느낌이라.

 

내가 기억하는 새로운 AI의 등장은 20164월이다. 그 전까지의 인공지능이란 검색형 인공지능- 다시 말해 인류가 만들어 놓은 지식 정보를 좀 더 빨리 검색하는 정도였다면, 20164월에 만난 알파고씨는 창조형 인공지능- 다시 말해 그간 습득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사고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였다. (이건 전적으로 문과형 인간인 나의 생각이므로 팩트와 다르다해도 어쩔수 없다. 여기까지가 나의 인식과 사고 한계다.) 그야말로 지능을 지닌 전혀 새로운 존재의 도래였다.

 

2016, 그 새로운 존재를 우리 삶에 처음 맞아들였을 때, 당시 최고의 석학들은 AI와 함께 하는 인류의 미래가 그리스 시대의 복원과 같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니까 각종 노동과 기술은 노예(AI)가 담당하고 그리스인(인류)는 자연을 벗 삼아 예술을 창조하고 철학을 논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6.

 

이제는 과거만큼의 권위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나 여전히 많은 문청들을 설레게 하는 신춘문예’. 2026년 최고의 화두는 AI 였다. 그러니까 응모작의 일부 또는 전부가 작가 본인의 창작품인지 AI를 활용해 쓴 것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거냐는 문제가 대두 된 거다. 그 판별 또한 AI에게 맡기게 된다면, 여기서 인류가 설 자리는 어디지.

 

이 문제에 쐐기를 박은 건 202622일 조선일보와 한 소설가 황석영의 인터뷰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황석영이라는 작가의 사상(정치적 스탠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관쪽의 불호가 심하다)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와 별개로 글을 정말 잘 쓰는 작가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 황석영이, 최근 출간작 할매를 쓸 때 AI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 것이다.

 

최근 신작 장편 할매를 내놓은 황석영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에 나와 GPT를 조수로 활용했다“600년 된 팽나무, 시대 배경, 구성 방법 등 대여섯 가지 요소를 입력해 놓고 AI(인공지능)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이 작업을 “(소설의) 밑그림이라고 표현했다.

기사 전문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6/02/02/ADCHCE5GXFAYDFD5A5SNJL3DOM/

 

예전 만화가들은 문하생제도를 두고 그림을 그렸다. 작가가 연필로 스케치를 하면 배경 담당, 스크린톤 담당 등이 원고의 완성을 돕는 것이다. 그렇게 만화의 기법을 배워 새로운 만화가로 성장해 나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후 문하생어시스턴트’(어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 역할과 위치도 변경되어 가곤 하다가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웹툰계에는 복붙’(복사해서 붙이기)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전에 썼던 장면을 복사해서 새로운 장면에 붙여넣고 대사만 바꾼다거나 다른 작가가 그린 배경과 구도를 카피해서 자신의 작품에 쓴다거나.

 

이제는 AI에게 몇가지 조건을 제시(이게 황석영 작가가 말하는 밑그림인가)하고 스토리와 대사를 입력하면 AI가 알아서 근사한 웹툰을 그려 가지고 온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이 방법으로 웹툰 작가로 활동 중이다. 복붙논쟁은 이제 조선시대 사색당파의 이야기만큼이나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최근에는 소설 한편을 던져주고 웹툰으로 그려줘, 라고 하면 근사한 만화로 변신한 소설을 받아볼 수 있다. 그림체 지정도 가능하다.

 

일러스트레이터나 웹툰 작가들은 이제 뭘 해서 먹고 사나.

 

황석영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쓸 때 GPT”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창작했음을 말한 그 인터뷰 기사가 실렸던 조선일보 202622일자에는 또 다른 AI 관련 기사가 실렸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영미권에 수출할 예정인 조선 시대 장유의 시 홀로일 때 삼가라(愼獨箴·신독잠)’에 대해 전문 번역가가 번역한 영어 버전과 챗GPT로 번역한 버전을 놓고 국내 영문과 교수 16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누가 번역했는지는 가린 채 한글 원문과 두 번역본만 보여주며 어느 번역이 더 좋은지 물은 결과, 교수 12명이 챗GPT 번역을 선택했고, 2명은 인간 번역을 택했다. 2명은 판단 불가를 선언했다.

기사 전문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6/02/02/OIG5JDUYT5BV3GTVRDVZ66EM7Q/

 

AI의 압승이다. 나는 지난 2년간 개인적으로 구글 제미나이의 중국어 번역을 살펴보고 있는 중인데, (제미나이 1.5 버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최근엔 3.0pro 버전이 나왔다) 1.52.0 까지는 번역문을 다시 여기저기 트리밍 해 줄 필요가 있었다면, 2.5 버전 이후의 번역은 정말로 어설픈 인간 번역자보다 훨씬 나았다.

 

AI가 우리 곁에 등장하고 10,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있으리라 예상했던 예술분야가 가장 먼저 박살나고 있다. 더 재미있는 건, 2025년의 어느 신문기사에서는 향후 가장 유망한 직종을 기술 육체 노동직(도배공, 타일공, 배관공 등)이라고도 한다. 2016년의 예측이 단 10년만에 이렇게 완벽하게 뒤집힌다.

 

이 책에서는 유전자 변이로 등장하는 신인류의 특징에 관해 이렇게 묘사한다.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의 인간은 대뇌신피질이 보다 크고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압도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지적 능력을 올리비에는 이렇게 상상했다. ‘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 할 수 있는 점, 6감의 획득,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 특히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

p.247 하이즈먼 리포트5. 인류의 진화

 

이 소설은 내내, 에마와 누스(아키리)라는 신인류에게 현생인류가 어떻게 농락당하는지를 보여준다. 소설 내 최고 천재로 묘사되는 아서 루벤스를 비롯한 미국의 최고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수준으로 신인류 누스를 이해하고 예단하는 뻘짓을 벌인다. 그나마 루벤스는 그의 적어도 인간들 중에서는 뛰어난 지적 능력 덕에 상황을 조금 더 빨리 이해하기는 하지만. “누스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존재입니다. 그의 사고를 쫓는 일은 인류에게는 불가능합니다.”(p.316)

 

그리고 이어지는 서술은 묘하게 현재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

 

초인류의 특질은, 그대로 현생인류의 결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하는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도 보유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로서의 습성인 것이다. 식욕과 성욕을 채운 인간만이 세계 평화를 입에 담았다.

p.316-317

 

지금 우리 곁에 창조의 능력까지 가지고 존재하고 있는 homo-AI는 애초에 식욕과 성욕 자체가 없다.(, , 없겠지? 이 또한 비루한 현생인류의 예단인가.)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에 관해서는 모르겠지만, 팩트 이외에 학연 지연 등등의 어설픈 편견(즉 현생인류의 결함)을 가지지 않을 것은 확실하기에 AI로 판사를 대치하자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 있다. 인류 전체는 아니어도 한 인간 개체의 운명과 미래를 AI에게 맡기는 것에 대해서 별 저항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개체가 전체로 변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소설은 뒤로 가면 급속히 맥이 빠진다.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은 1865지구에서 달까지라는 SF 소설을 쓴다. 19세기에 달로 가는 우주선을 상상한 것이다. 로켓이 제대로 실용화 되기도 전에 쓴 소설임에도 1965년의 아폴로 계획과 비교해 봐도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엄밀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가진 쥘 베른이 우주에 띄운 비행선 안에서 쓰는 조명 기구는 가스등이다. 에디슨의 백열전구가 1879에 나오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뒤죽박죽인가를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이 소설도 그 쥘 베른 로켓 속의 가스등을 상상하게 하는 대목들이 있다.

 

소설의 설정상, 신인류 에마와 누스(아키리)는 특정 유전자 변이로 인해 나타나게 된 존재들이다. 각자의 모친이 다른 데도 둘 다 신인류인 것을 보면 아버지 에시모로부터의 변이인 듯 하다.

 

인간 게놈 지도는 이 소설이 쓰이기 전 200399,99% 완성 되었고, 2022년 나머지 8% 미해독 영역까지 포함한 100%의 완전한 지도가 완성되었다. 작가가 집필할 당시 게놈지도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한다고 해도, 작가가 설정한 신인류의 지능이라면 그 당시 미완인 게놈 지도를 완성하는 건 어려울 것도 없다. 현생인류의 기술로도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어 그렇지 이미 유전자 조작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 건 가능하다.

 

굳이 근친교배의 위험성을 대비해 약을 개발하고 어쩌고 하는 짓을 할 필요 없이, 수정란의 유전자 조작만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닐까. 그 어마어마한 지능이라면 말이지. 굳이 굳이 번식을 위해 암수 서로 정다울필요가 없었는데. 뭘 그리 기를 쓰고 일본까지 날아가느냐고. 누나가 보고 싶고(현재 유일하게 나와 같은 종이니까) 일본에 숨어 살겠다는 뭐 그런 설정이라면 모를까.

 

뭐 인류 최고 지능으로 설정된 루벤스도 신인류를 이해하는데 실패하는데 작가라고 한들, 이정도의 구멍 쯤이야.

 

즐거운 독서였다. 재미있게 읽었다. 다카노 가즈아키가 집필할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을 14년 뒤의 상황속에서 읽으니 허술한 듯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기도 했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2026.2.21.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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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이야기
김형국 지음 / 나남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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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평전을 읽는다는 것 박경리 이야기』 by 김형국

 

읽은 날 : 2026.2.19.

 

나는 몇몇 작가의 언어적 사생팬에 속한다고 자인自認하는 바, 특별히 추종하는 작가에 관한한 그 작가 본인이 쓴 글은 물론, 그 작가에 대해 타인들이 평한 글도 열심히 찾아 읽으며 내 머릿속에 그 작가의 상을 재구성하는 걸 좋아한다. 순서는 보통 이러하다. 작가 본인의 작품 작가 본인이 쓴 에세이 언론이나 기타 인터뷰 타인이 그 작가에 대해 쓴 글(여기에 작품 평론이 포함된다) 작가의 에세이집에 포함되지 않을 사소한 잡문들(ex. 문학상 작품 심사평이나 책 추천글 등). 다행히 작가의 오프라인 사생활을 침해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나 혼자 구성한 그 작가의 상을 어디가서 우겨댈 생각도 전혀 없으니 다행이라 할지.

 

이 책은 그 차원에서 읽었다. 그러니까, 박경리 사생팬이어서, 내가. (참고로, 내가 2002년에 발간된 나남출판사 판 토지의 오탈자 투정을 하며 김형국 사장님 욕을 거하게 했는데, 정정한다. 김형국은 나남출판사 사장이 아니다. 2002년 당시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2002년 나남 출판사 사장은 조상호였고, 나남출판사 판 토지의 책임 편집자는 방순영이었다. 이름을 왜 이야기하느냐면, 내가, 하도 하도 분해서 그런다! 난 뒤끝 길고 질긴 여자.)

 

나는 몇몇 배우의 팬이기도 한데, 정확하게는 그 배우의 팬 이라기 보다는 그 배우가 맡은 역할의 팬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그 배우의 사생활이나 인품이나 기타등등을 알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들거든. 그래서 나는 연예프로그램을 전혀 보지 않는다. 딱 드라마만 본다. 문학으로 옮기자면 작가 본인의 작품을 보는 데서 끝나버리는 셈이다. 사실, 내가 전작하고 있는 작가들도 대부분은 , 또는 번까지가 끝이다. 타인이 쓴 글이나 사소한 잡문들까지 찾아보는 건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 내가 사생질을 하는 작가의 수는 몇 되지 않는다는 건 게으른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타인이 쓴 글을 읽는 건, 그리고 그 타인의 글솜씨가 범상할 경우, 참 힘든 일이 된다. 보통은 작가에 대한 글을 다른 작가가 쓰기 때문에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데(작가들의 글솜씨는 일단은 범상한수준을 넘으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음. 이 식재료가 너무 먹고는 싶은데, 맛없게 조리된 음식을 한 접시 앞에 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은, 작가의 평전은 대개가 그러하다. 그리고 이 글도 그렇다, 슬프게도.

 

이 글은 1980년대부터 작가가 타계하던 2008년까지 작가의 문하에 드나들었던 인연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다. 같은 서부경남에 속하는 마산 출신이라는 인연도 있어(시장과 전장의 주인공 남지영은 마산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다.)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다. “작가 박경리 선생이 제 말을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다 해서 정해진 것입니다. 제가 박경리 선생과 거의 비슷한 억양, 비슷한 발성법으로 우리말을 하기 때문”(p.527)이란다.

 

김형국은 사람 일대를 연대기적으로, 곧 시간대별로 살펴본 것이 아니라 의미론적으로 일대를 재구성 하려’(p.603)는 시도를 했다. 문제는 작가의 의미론이 아니라 김형국 본인과 박경리와의 만남에 따른 의미론으로 진행을 했다는 점이다. , 본인은 평전이 아니라 하였으니 김형국이 본인의 의미론 순서에 따라 글을 진행했다고 한들 딱히 뭐 잘못이라고 할 건 없겠다.

 

글의 시작은 토지의 제 3부까지가 완간되었을 무렵, 김형국이 자신의 전공(도시계획학)과 관련하여 토지를 해석하는 글을 쓴 것을 기점으로 박경리와 인연을 맺는 이야기로 시작해, 시장과 전장을 저본으로 살펴보는 박금이(박경리의 본명)의 결혼 이야기와 소박데기가 되어 딸의 집에 함께 살던 어머니 김용수의 이야기를 엮어가다 박금이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박경리가 이미 다른 에세이나 인터뷰 등에서 밝힌 이야기들(14세 소년과 18세 처녀의 결혼, 버림받은 본처 김용수가 결혼 4년 만인 22살에 우연히 외동딸 박경리를 얻게 되는 사연, 기봉이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던 아버지의 첩실 이야기, 어머니와의 불화,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미움의 감정 등.)을 재구성해 낸다. 이후 박경리의 등단 이후 정릉 시절의 단절된 생활 이야기와 김약국의 딸들파시를 저본으로 살피는 고향 통영에 대한 애정, 유방암 투병과 사위 김지하 이야기 등등이 이어지며 끝내 토지의 완간기념 행사-솔출판사 주관- 이후 토지문화관을 건립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렇게 써 놓으면 꽤 재미있을 것 같은데, 별로 재미가 없다. 슬프다. 박경리 선생의 색채보다 김형국의 색채가 훨씬 강해서 그렇다.

 

그 와중 이 책 덕에 새롭게 알게 된 건, 박경리 선생이 통영 피란시절 음악교사와 재혼을 한 일이 있다는 사실이고(1년 살고 헤어진다), 시인 고은의 추잡한 행동이다. 고은 선생 좀 창피하시겠어요, 좀이 아니고 많이. 박경리 선생의 이름을 도용해 자작 추천사1967년 출간한 에세이집 ·高銀 엣세이: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의 표지 안쪽에 붙여서 냈단다.(p.512-514. 박경리 이름을 도용한 외에, 이어령, 박목월, 강신재의 추천사도 있다. 박경리는 이름 도용이 확실하고, 나머지 세 분은 모르겠다) 한 번만 그랬으면 좀 창피하고 말 일인데, 같은 책을 1968년 문성출판사에서, 1969년 평화문화에서도 재출간 하면서 여전히 그 도용한 추천사를 달고 다녔다는 사실은 좀 추접스럽다.

 

김형국은 작가 연구의 저본으로 이 책이 기능하기를 바란 모양이라 첨언한다.

 

p.279 에서 파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는 부산 사는 처형의 부탁을 받고 통영사람 조만섭이라고 한다거나 p.284에서 보호해 주겠다며 집에 들인 피란민 수옥을 처음 범했던 이도 바로 조만섭의 손위 동서였다. 수옥을 계속 집에 두면 제 서방이 계속 그 짓을 할 거라며 멀리 통영에 사는 동생 집으로 다시 피란, 아니 피신시키는 서울댁 언니의 처신이라는 서술이 있는데 명백히 오류다. 부산 사는 사람은 조만섭의 처제, 서울댁의 여동생 영자.

 

부산 바닥에 있으면 아무래도 동서하고 연락을 해서 다시 만난다는 거지. 쫓아내지 않고 나를 부른 것은 당신 동생이 똑똑한 때문이고.”

참 기가 막혀서.”

남자가 나쁘지 계집애야 무슨 죄가 있나. 인생이 불쌍해서 데리고 왔지. 피란 와가지고 오갈 데 없는 처지고 보니 두었다가, 지같이 의지가지 할 데 없는 사람에게 시집이나 보내면 지도 좋고 부산 처제도 안심할 게고…….”

박경리, 파시, 마로니에북스, 2013, p.34

 

p.335에서 작가 박완서와 대학 국문과를 함께 다녔던, 토지2부 가 연재되었던 월간지 <문학사상>을 위해 작가로부터 원고수령 일도 맡았던 문학평론가(강인숙)”라는 서술이 있는데, 일단, 박완서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지만 6.25 발발이후 대학을 다닌 바 없다. 강인숙은 서울대 국문과 52학번이 맞고, 박경리와는 친분이 있지만, 강인숙의 남편 이어령이 <문학사상>주간이요, 본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문학평론가였기에 박경리와 교류했을 뿐 토지가 문학사상에 연재되던 당시 원고수령일을 맡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토지 3부의 연재 관련 문제로 접촉이 있기는 했다. 그 부분을 옮겨본다.

 

토지를 문학사상에 연재하고 있을 때였는데, 무언가에 기분이 상하면 선생님은 연재를 중단하는 습관이 있었다. 마지막은 원주에 계실 때였는데 원고료를 인상하라고 요구하시면서 연재 원고를 주지 않으셨다.

……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 선생(이어령)이 긴 여행을 떠나자 편집실에서 내게 박 선생을 만나 그 일을 마무리해 달라고 자꾸 부탁을 했다.

강인숙, 강인숙 평론전집여류문학, 유럽문학 산고, 박이정, 2020, p.101

 

월간지 <문학사상>은 토지3부가 연재 될 예정이라는 광고까지 실었지만, 결국 토지 3부의 <문학사상> 연재는 불발되었고 <주부생활> 잡지에서 19771월부터 연재되기 시작한다. 1976년 하반기의 문학사상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2026.2.20.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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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전장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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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다시 읽기박경리의 6.25 시장과 전장by 박경리

 

읽은 날 : 2026.2.18.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 또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에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나목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박완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6.25 전쟁이 터진 직후, 정부가 먼저 도망쳐 버린 서울에 남겨진 박완서는 자신의 체험을 글로 써서 고발하리라는 욕망이 그 시절을 버티게 하는 힘(목마른 계절)이었다고 말한다.

 

포 소리가 바로 미아리고개 너머에서 들리는데도 서울을 사수할 테니 시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런 방송은 27일 밤까지도 계속되었다. 아마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남으로 후퇴한 뒤까지도 그 소리는 계속됐을 것이다.

……

그렇게 국민을 기만하고 도망갔다가 돌아온 주제에 국민에 대한 사죄와 위무 대신 승자의 오만과 무자비한 복수가 횡행한 게 또한 9.28 수복 후의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지고 생생하게 억울하다.

남들은 잘도 잊고, 잘도 용서하고 언제 그랬더나 싶게 상처도 감쪽같이 아물리고 잘만 사는데, 유독 억울하게 당한 것 어리석게 속은 걸 잊지 못하고 어떡하든 진상을 규명해 보려는 집요하고 고약한 나의 성미가 훗날 글을 쓰게 했고 나의 문학정신의 뼈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박완서,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박완서 문학앨범, 웅진, 2011, p.30-31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박완서는 31년생, 6.25 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에는 서울 돈암동에 살던 서울대 국문학과 신입생이었다. 620일에 입학식을 하고, 강의를 3-4일 듣고 바로 터진 전쟁으로, 박완서는 영영 서울대 국문과와 이별을 한다. 20살 박완서가 겪은 진공상태의 서울(6.25 발발직후에서 9.28 서울 수복까지의 3개월)에서의 경험과 이후 3년간 지속된 전쟁 체험은 다양한 소설에서 변주되어 나타난다. 목마른 계절은 그 진공상태의 서울에서 겪은 일이고,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는 중공군이 밀려 내려오던 시절, 1.4후퇴를 따라 피란을 떠날 때다. 이후 나목에서는 1951년부터 1953년 휴전이 될 때까지의 서울시절 이야기다. 장편 그 남자의 집또한 이 시기의 이야기다.

 

박경리는 1926년생, 6.25 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에는 서울 흑석동에 살던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 시절 여인들 대부분이 그랬듯 정신대 징용을 피해 급히 한 결혼이었다. 남편은 일본 주오(中央)대학 출신의 화학 엔지니어 김행도였고, 소박데기였던 친정어머니 김용수가 함께 살고 있었다. 박경리의 전쟁체험은 1964파시이전까지는 내내 전쟁직후의 혼란한 사회상만을 주로 배경으로 한다. 파시는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전쟁의 후방에 위치한 통영-부산에서의 전쟁 체험기다.

 

박완서가 동어 반복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집요하게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장편, 중편, 단편 가리지 않고 써 내려 가는 동안 박경리는 전쟁이 끝난 이후의 혼란기를 여성가장의 입장에서 썼다. 그러다 나온 소설이 시장과 전장이다. 표류도이전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은 독자의 짐작이 아니라 박경리 본인의 서술에 따른 것이다.

 

당신의 장편소설 시장과 전장(1964)을 들먹였다. 주인공 남지영이 자신의 분신이었고, 그만큼 책 서사가 당신 내력이라 했다.

김형국, 박경리 이야기, 나남, 2022, p.7

 

정부를 믿었다가 낙동강 오리알 아닌 한강변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이 이후에 국가와 정부를 믿게 되기란 쉽지 않았다. 정부는 도망을 치는 동안에도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한강다리를 끊어놓는 부지런함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했던 것은 멀리 보이는 한강 철교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많은 차들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철교 중간에 있는 어느 한 지점에 다다르면, 약속이나 한 듯이 헤드라이트들이 꺼져 버리는 것이다. 필름이 끊기듯이 깔끔하게 불들이 꺼져 버리고, 또 꺼져 버리고, 또 꺼져 버리고……

…… 차량은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헤드라이트들이, 정지선에 이르면, 꺼지고 꺼지고 하는 일이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강인숙, 어느 인문학자의 6.25, 에피파니, 2017 p.44-46

 

강인숙은 1933년생, 6.25가 발발하던 당시 경기고녀 2학년이었고, 함경남도 갑산 출생이다. 해방과 함께 분단이 일어나자 북쪽의 살림을 정리해 남하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6.25가 발발하던 바로 그날, 삼각지에서 한강변 용산 이촌동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150만이었던 서울 인구 중에서 남쪽으로 피란길에 동참한 인구는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가운데 80%정도는 1945-1950년의 분단상황에서 북한의 집을 버리고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권헌익, 전쟁과 가족: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창비, 2020, 김형국 박경리 이야기에서 재인용 p.132

 

권헌익의 말대로 북한의 집을 버리고 내려온강인숙은, 아니 강인숙의 가족은 한강철교 폭파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도 강변에서 밤을 새워 기다려 이튿날 보트를 타고 한강을 건너 피난을 간다. 이미 인민군이 지척에 와 있을 때여서 남쪽 강변에 보트가 닿기도 전에 북쪽 강변에 인민군이 나타났단다. 따발총 소리가 진동을 하고 탄환이 강물에 떨어져 물보라를 일으키는 상황에서도 강인숙 가족은 미친듯이 그 험한 언덕을 기어 올라갔다.’(같은 책, p.57)

 

그렇게 한강을 건넌 강인숙의 가족은 아버지의 의형제가 살고 있다는 경기도 광주 정자리를 목적지로 피난을 떠난다. 그러던 사이 인민군은 강인숙 가족을 앞질러 갔고, ‘한강에서부터 내내 인민군에게 쫓기다가, 피난을 한답시고 헐떡거리며 찾아간 곳이 바로 전쟁터 한복판’(같은 책, p.61)이었음을 알게 된 강인숙 가족은 어쩔수 없이 서울 이촌동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피란을 가고자 했으나 갈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정부는 9.28 서울 수복 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예고도 없이 인도교를 폭파하고, 자기들만 떠나고 나서, 수복이 되자 강을 건넌 사람들이 한강 북쪽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죄인 취급을 하는 이상한 현상’(같은 책, p.41)이 벌어지는 것이다. 박경리의 남편 김행도(소설 속 하기석)는 이 상황에 희생된다. 정확히는 생사불명이 되고 만다.

 

국가를 믿을 수 없게 된 박경리는 중공군의 참전에 따른 1.4후퇴때는 기를 쓰고 남으로, 남으로 피란을 떠난다. 다행히 고향의 이모부가 올라와 남지영의 피란에 동행한 덕에 박경리는 통영으로 피란을 갈 수 있었고 2년간 통영에 머무른다.

 

26년생,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이미 직장을 가지고 있던 한 여성이 6.25를 거치며 여성가장이 되는 과정과

31년생,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한 여성이 6.25를 지나며 조카를 포함한 한 가족의 가장이 되는 모습,(박완서는 끝내 대학에 복학하지 못한다.)

33년생, 아직 고2였던 한 여성이 6.25를 지나며 그래도 그나마 부모의 보호아래 전쟁의 참상을 치루어 내는 모습(강인숙은 1.4후퇴때 오빠가 살던 군산으로 피란을 가 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부산으로 피란가있던 서울대 국문과 52학번으로 입학한다.)

이 세 가지 각각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 공통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무책임하고도 무능력했던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의 모습이다. 그들의 무능해서 악했던 모습은 당사자의 상황이 어떠했건 동일하게 잔인했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박경리라는 한 개인의 6.25 전쟁 목격담이다. 전쟁 그 자체가 휘두른 폭력보다 무능했던 정부가 자신의 무능을 위장하기 위해 휘둘렀던 폭력이 훨씬 잔혹하고도 비참했다.

 

그러했다.

 

2026.2.19.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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