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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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마음속이든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하지만 묻고 대답을 얻는다 해도 전부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매번 묻다가는 귀찮아서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 말없이 서로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갈 수밖에없다. 본심 같은 건 캐물어 봐야 소용없다. 그것이 움직이지 않는진실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진실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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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동네서점의 유쾌한 반란, 개정증보판
백창화.김병록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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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24. 9. 3

 

과거에 메이커시장표는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었다. 시장표는 쌌고 메이커는 비쌌다. 어차피 파는 장소는 비슷했다. 시장의 난전이거나, 그 시장 안에 들어있는 작은 가게이거나. 물건에 그 물건을 만든 자의 이름(그야말로 maker)이 붙어있느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였을 뿐이다. 그 이름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이 붙어있기만 하면 모두 뭉뚱그려 메이커였고, 비쌌다. 왜냐면 시장표의 품질은 들쑥 날쑥이어서 믿을 수 없지만 메이커의 품질은 늘 균질하여 믿을 수 있으니까.

 

그 메이커가 각각의 브랜드로 분화하기까지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각자가 신뢰하는 메이커가 달라졌고 메이커라는 뭉뚱그린 말 대신 각각의 브랜드명을 부르기 시작했다. 삼성, LG, 나이키, 아디다스. 내 주변에는 백색 가전은 LG” 라고 외치는 분이 있다. 본인의 TV가 삼성 제품이 아니어서 빨리 고장 난 거라 믿는 분도 있다. 나이키 운동화는 발볼이 좁아 불편하고 아디다스가 발이 편하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 그 물건을 보기 이전에 그 브랜드의 이미지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 경험치는 어느 정도는 맞다.

 

물건만 그런 게 아니다. 돌고 돌아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브랜드는 취향에도 관여하기 시작한다. 각각의 출판사는 주력으로 출간하는 장르가 있다. 종합출판을 지향하는 시공사, 민음사 등의 브랜드에서도 임프린트를 내는 이유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니까. 낯선 작가에 낯가림이 심한 나는 특정 출판사에서 그 작가의 책이 두 권 이상 출간되었을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 작가 여기서 책을 두 권이나 내다니 기본은 하는 작가겠구나, 생각하게 되는 거다. 이또한 브랜드에 대한 믿음이다.

 

책에 관한 책은 일단 사들이고 보는 인간인 지라 예전엔 일단 보이는 족족 사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책에 관한 책에조차 신중하게 된 건 따라 살 수 없을만큼 많이 출간되기 때문이었고,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하잖아, 싶은 책도 꽤 많아서였다. 특히 서점 관련 책들이 그러 했다. 그러나 이 책을 발견한 순간에는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펼치기 전부터 잘 쓴 책이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남해의 봄날>이라는 출판사, 그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이어서 읽은 것이 아니다. 저자에 관해서도 전혀 초면이라 알 턱이 없고 오직 출판사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한 독서다.

 

<남해의 봄날>이라는 이 특이한 이름의 출판사를 처음 만난 책은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이라는 책이었다. 책에 관한 책 만큼이나 음식 에세이도 좋아하는데 이건 무려 남해 바다 밥상이야기란다. 얼른 사서 읽었다. 잘 쓴 책이고 잘 만든 책이었다. 출판사 이름이 하도 특이하고 낯설어서(2014년 경의 이야기다) 스치듯 기억에 담았다. 다음 책은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책이었다. 출판사 이름을 다시 한 번, 이번에는 꽤나 유심히 보았다. 책 날개에 있는 출판사 설명도 꼼꼼히 읽었다. 출판사가 통영에 있다고, 그래서 남해의 봄날이라는 근사한 사명을 지었구나, 신기하다, 통영에서도 출판사를 운영할 수 있구나. 뭐 이런 잡다한 생각들을 하였다. 그 다음에 읽은 책이 월인정원이었고, 그 다음은 가업을 잇는 청년들이었다. 물론 여기에 언급하지 않은, 남해의 봄날에서 나왔다고해서 읽었는데 내 취향과 전혀 맞지 않는 책도 있었다. 다만 이쯤되면 <남해의 봄날> 출판사의 책이라면 대략 신뢰를 깔고 가도 되겠다 수준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그러한 신뢰를 다시 한 번 공고히 해 주었다. 이 책 직전에 읽은 책방에 관한 책 몇 권이 아 진짜 너무하네 싶은 책이어서 기대치 자체가 아예 낮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꽤 잘 씌어진 책이다. 우리나라 전국 동네의 작은 책방들을 탐사하고 소개하는 글들은 딱 고만고만하게 나쁘지 않은 정도, 그러나 작가 부부 백창화 김병록이 쓴 자신들이 숲속작은책방이야기는 좋았다. 그들이 책방을 짓고, 열고, 운영하면서 한 생각들을 쓴 글. 특히 일단 방문하면 책 한 권은 꼭 사서 가야한다는 책을 강매하는 서점이라니. 커피와 차를 파는 대신 그러는 거라면, 충분히 납득 가능이다. 나는 그들의 그 합리적인 뻔뻔함(뻔뻔함이라는 표현의 부정적 뉘앙스 때문에 쓰기 싫은 말인데, 당당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전체적인 느낌이 담기지를 않는다.)이 가장 좋았다.

 

책을 하도 모아대니 남편은 종종 나중에 중고책방을 열거냐고 물었다. 내가 과연 이 책들을 팔 수 있을까? 라고 대답하자 남편은 몹시 고통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래 그에게도 이 무모한 소비에 대해 납득 가능한 이유는 필요하지 싶었다. 그래서 깊이 고민한 척, 말해줬다. “나중에 너 퇴사하면, 강원도 산골에 정원이 딸린 예쁜 집을 사자. 거기서 정원 가꾸면서 나는 북까페를 할게, 너는 소를 기르렴.” 내가 제시한 청사진은 남편의 마음을 꽤 움직인 모양이었다. 소를 기르는 게 마음에 드는 건지, 이 무의미한 소비가 의미가 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음이 위안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과연 불특정 다수에게 내 책을 보여줄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겠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한적한 시골에서 정원을 가꾸는 삶은 원래도 꿈꾸었던 거라 거기에 북까페 또는 중고책방의 꿈을 끼워넣어 보았다. . 의외로 꽤 괜찮은 이야기 같아 보이기도.

 

소설가 김영하는 그의 소설에서 인간이 왜 문학을 읽는지에 관하여 말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 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 주었다.

 

김영하, 작별인사, 복복서가, 2022, p. 276

 

이 책 백창화 김병록 부부는 그야말로 내가 앞으로 살 수도 있을 삶을 상상속에서 살아보게 해 주었다. 시골 생태마을 안에, 가정식 서점이라니, , 가정식 서점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고, 민박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다만 예쁘게 꾸민 정원과 목공과 중고책도 파는 예쁜 서점이라면 이건 살아 볼 만 했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만이 아니라 출판사 자체도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시해주고 있었다. 통영에서 하는 출판사, 그런데 꽤 잘되는 출판사를 넘어서 이렇게 좋은 책을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통영에서 못할 건 또 뭔데? 싶었다. 그러게, 왜 굳이 서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돈을 벌어야하니까 싫은 서울에서라도 꾸역꾸역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만일 책이 팔리지 않으면 우리 둘이 나눠 갖자는 마음으로 책방 문을 열었다.

내가 좋아서 책을 사고, 책을 읽고, 그 책이 너무 좋아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고, 그 책을 팔아 밥을 먹는다는 일. (p.155)

 

이런 게 책방이라면 충분히 살아볼 만하겠다 싶어 남편에게 목공을 배우러 가라고 말했다. 나는 책을 제공 할테니 너는 책장을 제공하라고. 이 얼마나 공평한 역할분담이란 말인가. 한석봉과 엄마도 한 명은 글 쓰고 한 명은 떡 써는 역할분담을 했는데. 부부도 계산은 정확해야지. 남편은 또 한번 고통스러운 얼굴을 했다. . 결혼식장에 내가 네 멱살을 잡고 끌고 들어간 건 아니니까 뭐.

 

책리뷰를 쓰고 있지만 출판사 리뷰가 된 느낌. 남해의 봄날 출판사,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내 주시길.

 

2024. 9. 4.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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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 - 작가와 작품의 모든 것을 담다
베브 빈센트 지음, 강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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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제작 발표회 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by. 베브 빈센트

 

읽은 날 : 2024. 8. 27.

 

나는 어설픈 전작주의자다. 전작주의자면 전작주의자지 왜 거기 어설픈이라는 관형어를 굳이 붙이는가하면 나의 전작주의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작가의 출간작을 모두 읽으려는 욕심을 부리는 전작주의 성향은 있다. 구할 수 있는 한은 구해서 읽고 소장하고 절판된 책을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찾아보는 정도는 한다. 하지만 또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에까지 집착해 오프라인 중고 서점 책 사냥을 나설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어설프다는 거다.

딱히 어떤 학문적인 이유나 작가에 대한 탐구정신을 발휘해서는 아니고 음, 약간 게으른 독자라서 그렇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적응하는 것은 익숙한 작가의 익숙한 스타일의 새 글을 읽는 것보다 약간의 에너지를 더 소비하게 한다. 그 약간의 에너지 소모도 싫고 새로운 작가를 찾아보기도 귀찮은데 새로운 소설을 읽고는 싶으니 이미 친한(나 혼자 친한) 작가에겐 꽤 충성도 높고도 부지런한 독자임을 자부한다. 새 작가를 알아가는 것 보다 아는 작가의 진보를 따라가는 게 더 편하고 즐겁다.

이런 게으른 독자인 나라도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은 제법 자주 일어난다. 걸출한 신인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쇼코의 미소로 최은영을 처음 만나던 날의 충격이란.)남들에게는 유명 작가지만 나는 낯가림을 하느라 외면하던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읽고 푹 빠지기도 한다. 문제는 그렇게 만난 작가가 작품활동을 시작한지 오래되었거나 다작하는 사람일 경우에 나의 이 전작주의의 기질이 발을 건다.

 

스티븐 킹은 이런 나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다. 워낙 유명하고 잘 쓰는 작가임은 알고 있었고 이런저런 경로로 책도 몇 권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스티븐 킹을 읽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던 어느날 데니스 루헤인을 거쳐 스티븐 킹으로 넘어갔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스티븐 킹 걸작선 5번 스티븐 킹 단편선집. 이게 내가 처음 만난 스티븐 킹이다. 무려 걸작선이니 말 다한 거지. 나의 전작주의가 부릉부릉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스티븐 킹은 이런 어설픈 전작주의자인 나에게도 악몽이었다.

 

데뷔 연도가 1974(물론 그 이전 작품들도 존재하지만), 캐리로 시작한다. 이 아저씨,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글을 써서 출간을 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다작의 비결을 물어 볼 정도로 다작을 하는 분이다. 더 환장하겠는 건, 그 작품들이 대부분 고른 작품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지. 전작주의자가 아니라도 책을 고르기가 힘든 상황인 거다. 더욱 결정적으로 스티븐 킹의 작품은 대부분 한국어 번역판이 있다.

 

사도, 사도,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내가 스티븐 킹과 처음 조우한 게 2006년이었나 2008년의 일이었는데 그때 이미 데뷔 30년을 넘은 이 작가, 데뷔 5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아주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다. 작년에도 신간이 나왔고 올해도 아마 나오겠지. 코로나 팬데믹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내실 거라니 거 참.(아 물론 훌륭하십니다, 칭찬드려요~)신간이 나오는 족족 따라 읽는 건 물론, 기존 출간작도 열심히 찾아 읽는데도 끝이 나지 않는다. 파도 파도 또 있더라고, 스티븐 킹의 책이.

 

그나마 다행인 건, 중복 출간이 된 책은 별로 없다는 거고, 장정을 바꿔서 내기는 해도 제목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아서(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it’그것이라고 한국판 제목을 교체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납득가능하고.) 껍데기만 다른 똑같은 책을 중복 구매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너무너무 많다. 심지어 뭘 읽어도 다 재미있어서 다음 책, 다음 책, 걸려드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게 되는 것을 넘어 어라, 내가 빼 놓고 안 읽고 있는 책은 없나 걱정을 하게 된다.

 

, 이 책은 이런 걱정을 하기 시작한 당신을 위한 책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국인이자 스티븐 킹 전작주의자에게는 그런 면에서 별로 유용한 책은 아니다.

 

스티븐 킹의 한국 출간작이 잘 정리 된 목록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다, 존재는 하는데, 내가 원하는 목록은 스티븐 킹의 미국 출간 목록(출간 연도가 표시된)과 나란히 놓인 한국 출간 목록(물론 연도 표시 된) 인데, 그게 없다. 물론 이 책의 뒤에 부록에 분명 스티븐 킹 출간작 목록이 있다. 미국 출간작 목록이다. 황금가지 출판사 관계자 님하, 거기에 한국 출간작 목록 넣는 건 원 저자 베브 빈센트와 협의가 안 된 건가요. 재판을 찍을때라도 넣으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텐데.

 

이 책을 구입할 무렵 미야베 미유키의 청과 부동명왕북 펀드에도 참여했다. 알라딘에서 진행하는 북펀드에 처음으로 참여해 본 거다. 뒤늦게 미미월드에 입성한 나는 미미 여사의 책을 읽으면서 스티븐 킹의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심지어 미미여사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은 시리즈물이라 어려움이 더 컸다. 그런 나를 도와준 것은 출판사 북스피어였다. 에도 시대 시리즈물의 책 날개에 지금까지 북스피어에서 나온 미미여사의 책 출간 순서 또는 읽는 순서를 써 줬다. 아마도 북스피어 사장이나 편집자가 미야베 미유키에게 지극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덕분인 듯 하다. 이번 북펀드에는 미미 북 플레잉 카드가 포함되어 있다. 미미 여사의 에도시대 시리즈물을 출간 순서대로 읽을 수 있는 좋은 가이드다. 그 북펀드를 신청해놓고 이 책을 주문할 때, 나는 그런 가이드를 기대했던 것 같다. 스티븐 킹은 딱히 시리즈물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바 세계관을 공유하거나 등장인물을 공유하고 있거나 한 경우가 많으니까. 스티븐 킹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너무 유명한 작가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걸까, 아니면 굳이 그런 관련성은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하긴 뭐, 일종의 이스터 에그 마냥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아 먹는 이야기도 나름의 가치는 있지마는.

 

내가 스티븐 킹을 좋아하는 이유는 참 많고도 많지만 작품에 관한 이유를 배제하고 말해보자면 그가 단 한명의 아내 태비사 킹과 60년 가까이 해로하고 있고, 글의 곳곳에 아내는 물론, 어머니나 형을 비롯한 자녀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티븐 킹의 작품 중 하나가 리시 이야기인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아내의 남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어서.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제작 발표회도 하고 상영 직전 일종의 홍보 행사 비슷하게 작가나 감독, 출연 작가들을 모아놓고 인터뷰를 한다. 이제는 이게 정해진 관행같이 느껴진다. 또 유퀴즈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화제의 인물을 모셔다가 그 뒷이야기를 듣는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인터뷰는 꽤 인기있다. 이 책은 약간 그런 느낌의 책이다. 스티븐 킹의 전작주의자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니지만 제작의 뒷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스티븐 킹의 소설에 관해 조곤조곤 이야기 해 주는, 그런 아기자기한 재미는 있는 책이어서 구매를 후회하진 않는다.


2024. 8. 30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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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제주일기
정우열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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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아닌 그곳의 삶 올드독의 제주일기by. 정우열

 

읽은 날 : 2024.8.11.

 

책장을 전체적으로 정비하다 새삼 놀랐다. 서가 한 코너를 책에 관한 책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던 것이지만 시골살이에 관한 책도 그만큼이나 많았다. 그렇다, 나는 시골살이를 꿈 꾼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누구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은밀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 소망을 현실로 옮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뭘까. 이곳이 아닌 그곳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관하여 소설가 정미경은 기가막힌 한마디를 남겼다. 구심력과 원심력이라니.

 

두고 온 곳으로의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큰 사람들은 혀뿌리에 감기는 모래를 묵묵히 삼킬 수 있다.

정미경, 아프리카의 별, 문학동네, 2010, p.104

 

두고 온 곳이란 크게 봐서는 나라일 것이고 작게 봐서는 고향 도시, 또는 뿌리내렸던 어떤 곳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적인 차원에서는 그렇다. 이걸 시간적인 차원으로 본다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현실에 자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원심력이 커진다. 또는 구심력이 강한데도 두고 온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늘 떠나온 삶을 살았고, 떠나갈 준비를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이 아닌 저곳의 삶을 늘 꿈꾸는 거다. 스무살부터는 늘 떠돌이의 삶이다, 라고 말을 한다면 왜 그렇게 생각해? 라는 질문을 듣게 될 것 같지만, 떠돌이라는 게 그렇다. 정착하지 못한 사람이 떠돌이라고 생각한다면, , 나는 떠돌이가 아닌 건 확실한데,(한 도시에 30년 가까이 살았으니) 그렇다고 이곳에 정착할 이유가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말하겠다, 아니오. 라고. 이쯤되면 서울도 내게 억울함을 느낄 거다. 이제 그만 나 좀 사랑해주지 않겠니, 서울에 이만큼 살았으면 사랑할 때도 됐잖니. 라고 말할지도.

 

서울이 싫다는 게 아니다. 이만큼만 되어도 나로서는 얼마나 큰 발전인지 모르겠다. 예전엔 서울이 싫다고 외쳐댔으니까. 다만, 굳이 서울이어야 할 이유를 나는 찾지 못했다는 거지. 굳이 떠날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여기에 살고 있고, 그러니 언제든 훌훌 털고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알아알아. 쉽게 떠나지 못할 거라는 거.

 

시골살이의 장소로 꿈꾸는 곳은 보통은 강원도의 산골이거나 지리산 자락 어디메라서 제주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제주도는 택배비가 3000원에서 5000원 정도 추가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더욱 음, 제주는 여행지로만 두는 게 좋겠어, 라고. 그런데 이 책을 읽은 이유는 표지에 있는 한줄,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냅니다.” 라는 말 때문이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대사로 유명한 おげんきですか? わたしはげんきです이 대사가 가진 다정함이 좋아서 나도 자주 썼다. 당신의 안부를 묻고, 나의 안부를 전해 당신을 안심시키는 말. 이곳을 떠나 그곳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이곳에 남은 사람에게 이 말을 해야 할 의무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의 다정함을 나는 편애한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어라, 이 친구 우울종자로세. .

 

제주에 대한 예찬은 있으나 애착은 없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내가, ‘굳이 이곳이 아닐 이유가 없어서그저 살고 있듯 정우열의 제주살이도 비슷해보인다. 말하자면 굳이 제주가 아닐 이유가 없어서그냥 살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라는 느낌. 내가 좋아하는 시골살이 특유의 다정다감함이 없다. 그렇다고 건조한 것도 아니고. 이 사람도 참 힘든 한 시기를 제주에 기대어 지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가 있어서, 당신이 이 한 시기를 잘 넘기고 있어서.

 

우정이라는 건 좀 더 어렴풋하되 덜 흔들리는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지금은 비록 소원하거나 섭섭하더라도 한때 주었던 마음, 받았던 호의, 함께 보낸 시간 같은 걸 마음속에 좀 더 단단히 고정해두고 자주 꺼내 보는 습관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현재가 어떻든 대역죄를 지은 게 아닌 한, 과거의 어떤 중요했던 순간에 의지해 우정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쪽이 이 부박하고 부질없는 세상 속에서 그나마 우리를 지켜내는 길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p.209

 

의도하지 않게 30년 지기와 거리를 두고 있는 중이다. 그 친구의 탓도 아니고 싸운 것도 아니다.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나에게 있는데, 친구는 나의 거리두기에 몇 번 서운함을 표하다 이제는 이 거리가 지금의 나에게는 정말로 절실한 거라는 것을 납득한 뒤엔 내 멋대로의 거리를 그냥 내버려 둬 준다. 고맙다. 친구에게 이 구절을 보내주었다.

 

시골살이에 관한 책이 서가 한편을 꽉 채운 것을 보고 조금의 위기감을 느낀다. 사라지고 싶다는 내 마음을 내가 나에게 들켰다. 앗 따거.

 

2024.8.26.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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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어수웅 지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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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독서 흉내내기 탐독by. 어수웅

 

읽은 날 : 2024. 8. 24

 

올해는 여름 휴가를 느지막히 잡았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숙소를 예약하려고 보니 성수기엔 자리가 없더라는 극히 단순하고도 선명한 까닭이다. 남해 바다 출신인 내가(그리고 남편이) 가장 선호하는 여름 휴가지는 동해 바다라 올해도 내나 거기. 광해군(not 光海君 but 狂海群)의 피가 옹골차게 흐르는 우리 부부는 백사장 세트를 아주 잘 구비해 차에 싣고 다닌다. 파라솔과 접이식 의자와 꽤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한 피크닉 매트와 블랭킷. 바다에서만 쓰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 세트를 펼쳐놓고 있으면 폰 따위를 들여다보고 있기 미안해진다. 그래서 출발할 때부터 사가독서 흉내내기 삼아 책도 세 권 챙겨 가방에 넣었다. 본격적으로 집중해 책을 읽지는 못할 거 같아 가볍게 가볍게 한꼭지씩 읽고 덮어두기 편할 책을 고르다보니 세 권 다 인터뷰 집이다.

 

이번 휴가는 참 좋았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근사한 휴가였다. 날은 해수욕하기 딱 좋을 만큼 더웠고, 성수기가 한풀 꺾인데다 리조트 프라이빗 비치로 운영되는 해안은 딱 좋을 만큼만 한산했다. 해수욕을 하지 못할 사정이 있어 애들과 남편은 바다에 던져두고 나는 혼자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폰에서는 Il mondo가 울려 나오고, 햇볕은 따갑고, 모래는 뜨겁고, 그 와중에 파라솔 그늘은 시원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이 구절을 읽었다.

 

늙어가는 게 두렵지 않은 것은,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야.

어수웅, 탐독, 민음사, 2016, p.137

 

어수웅 기자와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책(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소설가 은희경이 한 말이다. 이번 휴가는 그 바닷가에서 이 한 구절을 읽는 순간에 완성 되었다. 그래, 이쯤되면 사가독서를 하였노라 큰 소리칠 엄두도 난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세 권 모두 오래된 인터뷰 집이었다.

2008년에 지승호가 인터뷰한 11명을 모아놓은 열정 바이러스와 백영옥이 2013년에 인터뷰한 15명을 모아놓은 다른 남자그리고 이 책 탐독2016년에 나왔다. 이 책들을 한데 모아 읽으면서 새삼 인터뷰라는 게 얼마나 시의성을 타는 형식인가를 생각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상관없이 읽을 점이 있다는 사실도 생각했다. 2008년의 지승호 책에 인터뷰이로 실린 사람 중 셋이 유명을 달리했고 그 중 둘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인터뷰라는 게 워낙 개인을 드러내기 위한 형식의 글인지라 꽤 묘한 느낌으로 글을 읽었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이 인터뷰를 할 때 만해도 이 사람의 마지막이 이런 형태일 줄은 상상도 못했지. 뭐랄까, 죽은 사람의 육성을 듣는 기분. 삶이 참 부질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을 읽는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혹은 읽어도 몇 권만 겨우 읽는 사람들은 왜 나 같은 사람들이 서재를 가지고 책을 보관하는지 모를 거요. 언젠가는 꼭 알고 싶고, 참고하며 필요한 책이라는 사실을.

어수웅, 탐독, 민음사, 2016, p.105

 

책을 5만권이나 소장하고 있다는 움베르토 에코가 자신이 안 읽은 책을 갖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다. 역사와 민족 앞에서, 문학 앞에서, 예술 앞에서 나의 자세와 위치와 포부와 욕심과 겸양에 대하여 힘차게 말을 내뱉던 사람들의 죽음은 참으로 허무하였다. 그 죽음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은 더욱 더. 그 허무를 견디게 하는 것은 결국 나 같은사람에게는 책인 거다.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늙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고, 시간을 긍정할 수 있다.

 

그래서 올해 나는 세익스피어 베케이션에 버금가는 사가독서를 하였노라 자랑하는 중이다.

 

2024.8.25.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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