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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 - 작가와 작품의 모든 것을 담다
베브 빈센트 지음, 강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평점 :
스티븐 킹의 제작 발표회 『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by. 베브 빈센트
읽은 날 : 2024. 8. 27.
나는 어설픈 전작주의자다. 전작주의자면 전작주의자지 왜 거기 ‘어설픈’ 이라는 관형어를 굳이 붙이는가하면 나의 전작주의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작가의 출간작을 모두 읽으려는 욕심을 부리는 전작주의 성향은 있다. 구할 수 있는 한은 구해서 읽고 소장하고 절판된 책을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찾아보는 정도는 한다. 하지만 또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에까지 집착해 오프라인 중고 서점 책 사냥을 나설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어설프다는 거다.
딱히 어떤 학문적인 이유나 작가에 대한 탐구정신을 발휘해서는 아니고 음, 약간 게으른 독자라서 그렇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적응하는 것은 익숙한 작가의 익숙한 스타일의 새 글을 읽는 것보다 약간의 에너지를 더 소비하게 한다. 그 약간의 에너지 소모도 싫고 새로운 작가를 찾아보기도 귀찮은데 새로운 소설을 읽고는 싶으니 이미 친한(나 혼자 친한) 작가에겐 꽤 충성도 높고도 부지런한 독자임을 자부한다. 새 작가를 알아가는 것 보다 아는 작가의 진보를 따라가는 게 더 편하고 즐겁다.
이런 게으른 독자인 나라도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은 제법 자주 일어난다. 걸출한 신인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쇼코의 미소』로 최은영을 처음 만나던 날의 충격이란.)남들에게는 유명 작가지만 나는 낯가림을 하느라 외면하던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읽고 푹 빠지기도 한다. 문제는 그렇게 만난 작가가 작품활동을 시작한지 오래되었거나 다작하는 사람일 경우에 나의 이 전작주의의 기질이 발을 건다.
스티븐 킹은 이런 나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다. 워낙 유명하고 잘 쓰는 작가임은 알고 있었고 이런저런 경로로 책도 몇 권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스티븐 킹을 읽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던 어느날 데니스 루헤인을 거쳐 스티븐 킹으로 넘어갔다.(왜??) 황금가지에서 나온 스티븐 킹 걸작선 5번 스티븐 킹 단편선집. 이게 내가 처음 만난 스티븐 킹이다. 무려 걸작선이니 말 다한 거지. 나의 전작주의가 부릉부릉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스티븐 킹은 이런 어설픈 전작주의자인 나에게도 악몽이었다.
데뷔 연도가 1974년(물론 그 이전 작품들도 존재하지만), 『캐리』로 시작한다. 이 아저씨,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글을 써서 출간을 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다작의 비결”을 물어 볼 정도로 다작을 하는 분이다. 더 환장하겠는 건, 그 작품들이 대부분 고른 작품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지. 전작주의자가 아니라도 책을 고르기가 힘든 상황인 거다. 더욱 결정적으로 스티븐 킹의 작품은 대부분 한국어 번역판이 있다.
사도, 사도,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내가 스티븐 킹과 처음 조우한 게 2006년이었나 2008년의 일이었는데 그때 이미 데뷔 30년을 넘은 이 작가, 데뷔 5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아주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다. 작년에도 신간이 나왔고 올해도 아마 나오겠지. 코로나 팬데믹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내실 거라니 거 참.(아 물론 훌륭하십니다, 칭찬드려요~)신간이 나오는 족족 따라 읽는 건 물론, 기존 출간작도 열심히 찾아 읽는데도 끝이 나지 않는다. 파도 파도 또 있더라고, 스티븐 킹의 책이.
그나마 다행인 건, 중복 출간이 된 책은 별로 없다는 거고, 장정을 바꿔서 내기는 해도 제목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아서(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it’을 ‘그것’ 이라고 한국판 제목을 교체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납득가능하고.) 껍데기만 다른 똑같은 책을 중복 구매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너무너무 많다. 심지어 뭘 읽어도 다 재미있어서 다음 책, 다음 책, 걸려드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게 되는 것을 넘어 어라, 내가 빼 놓고 안 읽고 있는 책은 없나 걱정을 하게 된다.
자, 이 책은 이런 걱정을 하기 시작한 당신을 위한 책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국인이자 스티븐 킹 전작주의자에게는 그런 면에서 별로 유용한 책은 아니다.
스티븐 킹의 한국 출간작이 잘 정리 된 목록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다, 존재는 하는데, 내가 원하는 목록은 스티븐 킹의 미국 출간 목록(출간 연도가 표시된)과 나란히 놓인 한국 출간 목록(물론 연도 표시 된) 인데, 그게 없다. 물론 이 책의 뒤에 부록에 분명 스티븐 킹 출간작 목록이 있다. 미국 출간작 목록이다. 황금가지 출판사 관계자 님하, 거기에 한국 출간작 목록 넣는 건 원 저자 베브 빈센트와 협의가 안 된 건가요. 재판을 찍을때라도 넣으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텐데.
이 책을 구입할 무렵 미야베 미유키의 『청과 부동명왕』북 펀드에도 참여했다. 알라딘에서 진행하는 북펀드에 처음으로 참여해 본 거다. 뒤늦게 미미월드에 입성한 나는 미미 여사의 책을 읽으면서 스티븐 킹의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심지어 미미여사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은 시리즈물이라 어려움이 더 컸다. 그런 나를 도와준 것은 출판사 북스피어였다. 에도 시대 시리즈물의 책 날개에 지금까지 북스피어에서 나온 미미여사의 책 출간 순서 또는 읽는 순서를 써 줬다. 아마도 북스피어 사장이나 편집자가 미야베 미유키에게 지극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덕분인 듯 하다. 이번 북펀드에는 미미 북 플레잉 카드가 포함되어 있다. 미미 여사의 에도시대 시리즈물을 출간 순서대로 읽을 수 있는 좋은 가이드다. 그 북펀드를 신청해놓고 이 책을 주문할 때, 나는 그런 가이드를 기대했던 것 같다. 스티븐 킹은 딱히 시리즈물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바 세계관을 공유하거나 등장인물을 공유하고 있거나 한 경우가 많으니까. 스티븐 킹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너무 유명한 작가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걸까, 아니면 굳이 그런 관련성은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하긴 뭐, 일종의 이스터 에그 마냥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아 먹는 이야기도 나름의 가치는 있지마는.
내가 스티븐 킹을 좋아하는 이유는 참 많고도 많지만 작품에 관한 이유를 배제하고 말해보자면 그가 단 한명의 아내 태비사 킹과 60년 가까이 해로하고 있고, 글의 곳곳에 아내는 물론, 어머니나 형을 비롯한 자녀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티븐 킹의 작품 중 하나가 『리시 이야기』인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아내의 남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어서.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제작 발표회도 하고 상영 직전 일종의 홍보 행사 비슷하게 작가나 감독, 출연 작가들을 모아놓고 인터뷰를 한다. 이제는 이게 정해진 관행같이 느껴진다. 또 유퀴즈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화제의 인물을 모셔다가 그 뒷이야기를 듣는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인터뷰는 꽤 인기있다. 이 책은 약간 그런 느낌의 책이다. 스티븐 킹의 전작주의자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니지만 제작의 뒷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스티븐 킹의 소설에 관해 조곤조곤 이야기 해 주는, 그런 아기자기한 재미는 있는 책이어서 구매를 후회하진 않는다.
2024. 8. 30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