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동네서점의 유쾌한 반란, 개정증보판
백창화.김병록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5월
평점 :
읽은 날 : 2024. 9. 3
과거에 ‘메이커’와 ‘시장표’는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었다. 시장표는 쌌고 메이커는 비쌌다. 어차피 파는 장소는 비슷했다. 시장의 난전이거나, 그 시장 안에 들어있는 작은 가게이거나. 물건에 그 물건을 만든 자의 이름(그야말로 maker)이 붙어있느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였을 뿐이다. 그 이름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이 붙어있기만 하면 모두 뭉뚱그려 ‘메이커’ 였고, 비쌌다. 왜냐면 시장표의 품질은 들쑥 날쑥이어서 믿을 수 없지만 메이커의 품질은 늘 균질하여 믿을 수 있으니까.
그 메이커가 각각의 ‘브랜드’로 분화하기까지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각자가 신뢰하는 메이커가 달라졌고 ‘메이커’ 라는 뭉뚱그린 말 대신 각각의 브랜드명을 부르기 시작했다. 삼성, LG, 나이키, 아디다스. 내 주변에는 “백색 가전은 LG” 라고 외치는 분이 있다. 본인의 TV가 삼성 제품이 아니어서 빨리 고장 난 거라 믿는 분도 있다. 나이키 운동화는 발볼이 좁아 불편하고 아디다스가 발이 편하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 그 물건을 보기 이전에 그 브랜드의 이미지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 경험치는 어느 정도는 맞다.
물건만 그런 게 아니다. 돌고 돌아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브랜드는 취향에도 관여하기 시작한다. 각각의 출판사는 주력으로 출간하는 장르가 있다. 종합출판을 지향하는 시공사, 민음사 등의 브랜드에서도 임프린트를 내는 이유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니까. 낯선 작가에 낯가림이 심한 나는 특정 출판사에서 그 작가의 책이 두 권 이상 출간되었을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 작가 여기서 책을 두 권이나 내다니 기본은 하는 작가겠구나, 생각하게 되는 거다. 이또한 브랜드에 대한 믿음이다.
책에 관한 책은 일단 사들이고 보는 인간인 지라 예전엔 일단 보이는 족족 사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책에 관한 책’에조차 신중하게 된 건 따라 살 수 없을만큼 많이 출간되기 때문이었고,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하잖아, 싶은 책도 꽤 많아서였다. 특히 서점 관련 책들이 그러 했다. 그러나 이 책을 발견한 순간에는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펼치기 전부터 잘 쓴 책이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남해의 봄날>이라는 출판사, 그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이어서 읽은 것이 아니다. 저자에 관해서도 전혀 초면이라 알 턱이 없고 오직 출판사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한 독서다.
<남해의 봄날>이라는 이 특이한 이름의 출판사를 처음 만난 책은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이라는 책이었다. 책에 관한 책 만큼이나 음식 에세이도 좋아하는데 이건 무려 남해 바다 밥상이야기란다. 얼른 사서 읽었다. 잘 쓴 책이고 잘 만든 책이었다. 출판사 이름이 하도 특이하고 낯설어서(2014년 경의 이야기다) 스치듯 기억에 담았다. 다음 책은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책이었다. 출판사 이름을 다시 한 번, 이번에는 꽤나 유심히 보았다. 책 날개에 있는 출판사 설명도 꼼꼼히 읽었다. 출판사가 통영에 있다고, 그래서 남해의 봄날이라는 근사한 사명을 지었구나, 신기하다, 통영에서도 출판사를 운영할 수 있구나. 뭐 이런 잡다한 생각들을 하였다. 그 다음에 읽은 책이 『월인정원』이었고, 그 다음은 『가업을 잇는 청년들』이었다. 물론 여기에 언급하지 않은, 남해의 봄날에서 나왔다고해서 읽었는데 내 취향과 전혀 맞지 않는 책도 있었다. 다만 이쯤되면 <남해의 봄날> 출판사의 책이라면 대략 신뢰를 깔고 가도 되겠다 수준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그러한 신뢰를 다시 한 번 공고히 해 주었다. 이 책 직전에 읽은 ‘책방’에 관한 책 몇 권이 아 진짜 너무하네 싶은 책이어서 기대치 자체가 아예 낮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꽤 잘 씌어진 책이다. 우리나라 전국 동네의 작은 책방들을 탐사하고 소개하는 글들은 딱 고만고만하게 나쁘지 않은 정도, 그러나 작가 부부 백창화 김병록이 쓴 자신들이 ‘숲속작은책방’ 이야기는 좋았다. 그들이 책방을 짓고, 열고, 운영하면서 한 생각들을 쓴 글. 특히 일단 방문하면 책 한 권은 꼭 사서 가야한다는 책을 강매하는 서점이라니. 커피와 차를 파는 대신 그러는 거라면, 충분히 납득 가능이다. 나는 그들의 그 합리적인 뻔뻔함(뻔뻔함이라는 표현의 부정적 뉘앙스 때문에 쓰기 싫은 말인데, 당당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전체적인 느낌이 담기지를 않는다.)이 가장 좋았다.
책을 하도 모아대니 남편은 종종 나중에 중고책방을 열거냐고 물었다. 내가 과연 이 책들을 팔 수 있을까? 라고 대답하자 남편은 몹시 고통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래 그에게도 이 무모한 소비에 대해 납득 가능한 이유는 필요하지 싶었다. 그래서 깊이 고민한 척, 말해줬다. “나중에 너 퇴사하면, 강원도 산골에 정원이 딸린 예쁜 집을 사자. 거기서 정원 가꾸면서 나는 북까페를 할게, 너는 소를 기르렴.” 내가 제시한 청사진은 남편의 마음을 꽤 움직인 모양이었다. 소를 기르는 게 마음에 드는 건지, 이 무의미한 소비가 의미가 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음이 위안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과연 불특정 다수에게 내 책을 보여줄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겠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한적한 시골에서 정원을 가꾸는 삶은 원래도 꿈꾸었던 거라 거기에 북까페 또는 중고책방의 꿈을 끼워넣어 보았다. 음. 의외로 꽤 괜찮은 이야기 같아 보이기도.
소설가 김영하는 그의 소설에서 인간이 왜 문학을 읽는지에 관하여 말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 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 주었다.
김영하, 『작별인사』, 복복서가, 2022, p. 276
이 책 백창화 김병록 부부는 그야말로 내가 ‘앞으로 살 수도 있을 삶’을 상상속에서 살아보게 해 주었다. 시골 생태마을 안에, 가정식 서점이라니, 음, 가정식 서점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고, 민박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다만 예쁘게 꾸민 정원과 목공과 중고책도 파는 예쁜 서점이라면 이건 살아 볼 만 했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만이 아니라 출판사 자체도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시해주고 있었다. 통영에서 하는 출판사, 그런데 꽤 잘되는 출판사를 넘어서 이렇게 좋은 책을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통영에서 못할 건 또 뭔데? 싶었다. 그러게, 왜 굳이 서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돈을 벌어야하니까 싫은 서울에서라도 꾸역꾸역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만일 책이 팔리지 않으면 우리 둘이 나눠 갖자는 마음으로 책방 문을 열었다.
내가 좋아서 책을 사고, 책을 읽고, 그 책이 너무 좋아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고, 그 책을 팔아 밥을 먹는다는 일. (p.155)
이런 게 책방이라면 충분히 살아볼 만하겠다 싶어 남편에게 목공을 배우러 가라고 말했다. 나는 책을 제공 할테니 너는 책장을 제공하라고. 이 얼마나 공평한 역할분담이란 말인가. 한석봉과 엄마도 한 명은 글 쓰고 한 명은 떡 써는 역할분담을 했는데. 부부도 계산은 정확해야지. 남편은 또 한번 고통스러운 얼굴을 했다. 음. 결혼식장에 내가 네 멱살을 잡고 끌고 들어간 건 아니니까 뭐.
책리뷰를 쓰고 있지만 출판사 리뷰가 된 느낌. 남해의 봄날 출판사,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내 주시길.
2024. 9. 4.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