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 이윤기 산문집
이윤기 지음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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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산문은 재미있다. 무엇보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글의 뒷 이야기를 읽어 들인다는 점에서 특히 재미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글 자체의 재미에 다른 소설에서 느꼈던 재미마저 덧입혀진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이윤기의 산문집 중에서도 신화와 관련된 것이 아닌 생활의 일상 잡사를 다루고 있는 글이다. 일상 잡사에 자신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점, 세태에 관한 이야기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의 팬이라면 (한국에선) 이윤기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에코를 데려다 준 것이 이윤기였으니 말이다. 이윤기는 자신이 에코를 번역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담담히 기술한다. 그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한편으로 숙연해지기 까지 한다. 나는 무슨 일에 이토록 매달려 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반성, 자신의 일에 이토록 진지하게 온 힘을 기울여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따라서 이윤기 식으로(또 신화적으로) 이야기 하면 "괴물"을 죽여온 것이 아니라 "시간"을 죽여왔다. 나의 과거가 부끄럽다.

이 글과 이윤기에게서 발견되는 또하나 인상깊은 구절은 일간신문 사회면에 200자 원고지 5장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 매번 10장 분량의 글을 써서 5장으로 줄였다는 부분이었다. 절제와 함축, 제한에서 오는 형식미 등등을 그는 절묘하게 이용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렇지, 언제나- 줄이고 줄이고 줄이는 것에서만 올 수 있는 아름다움은 따로 있는 법이다. 언어란 언제나 방만해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 속성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좋은 글을 써 낼 수 있는 법.

늘,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은 나도 좋다. 본래가 미셀 투르니에나 김화영을 좋아해왔지만 이문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다시한번 이문구의 소설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윤기가 그렇게나 좋아한단 말이지.

천재란,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들 같다. 천재의 존재를 만들어준 하늘에 감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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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제5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이지민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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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마디로, 재미있다.
순간순간 치고 나오는 냉소적이라기보다는 그저 쿨한 문체와 이러나 저러나 또라이 같은 인물들. 단 이틀이라는 외형적 시간의 틀 안에 6개월에서 1년쯤의 시간을 때려 넣어 그런대로 잘 엮어놓은 구성. (신인작가의 글답게 그러한 구성은 처음에는 독자를 혼란하게 만들 뿐이지만 뒤로 갈수록 어느 순간부터 안정을 찾는다.) 신선하고 개성적인 인물들과 전혀 의외의 사건과 배경들. 이런 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소설은 읽는 재미가 쏠쏠한 소설이 된다. 어지간해서는 책을 놓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다.

1930년대의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의 아들로 총독부에 취직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독립에 기여한다고 주장하는 남자주인공 이해명과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포장하기 위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탈을 쓰는 여자주인공 조난실은 존재만으로도 흥미롭다. 특히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독립운동 단체의 구심점인 것처럼 나오던 조난실의 마지막 반전은 흥미롭다 못해 차라리 식상하다. 뭐야, 결국 그런 거였어, 랄까.

수많은 남자와 연애를 하고, 그 연애를 흥미진진한 것으로 바꾸어 놓기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하고(또는 투신하는 척을 하고), 끝내 자신의 거짓말에 자신이 함몰되어 가짜 독립투사가 진짜 독립투사로 바뀌어 버리고, 그런 그녀를 사랑해 뒤 쫓아 다니다 얼떨결에 진짜 독립투사가 될 뻔(이 ‘뻔’이 중요하다.) 하였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읽을 때는 읽는 재미에 빠져 정신 못 차리고 따라가다 책을 덮는 순간 ‘황당하군-’ 이라고 중얼거리게 만든다.

그 ‘읽는 재미’가 어떤 감동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황당하군-’ 으로 끝나버리게 되는 것은, 이 소설의 주제가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가벼운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고, 꽤나 흥미롭고 힘차게 진행되던 그 읽는 재미가 황당할만큼 약하게 끝나버리는 결말로 인하여 순식간이 힘이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말장난을 한참 하고 난 기분이랄까. 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라고 묻고 싶어지는 기분.

소설의 본령은 서사고 서사를 통한 재미라는 점에서 괜찮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무언가를 표출하는 것의 목적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하고자 하는 말(주제)이 명확하지 않은 글을 좋은 글이라고 쉽게 말하기도 어려워진다.

차라리 아주 착실한 블랙코메디가 되거나 마지막 반전을 사용한 신파가 되어버렸다면 이보다는 외려 나아질 것 같다. 전형적인 결말이라고 해도. 전형적이지 않은 결말을 써서 전형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아, 이상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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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수필 - 새로 가려 뽑은 현대 한국의 명산문
방민호 엮음 / 향연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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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몰랐다.
어쩌면 학부시절에도 몰랐던 것 같다.
서정주의 〈귀촉도〉〈추천사〉 정지용의 〈유리창〉 고려가요 〈청산별곡〉〈가시리〉 그리고 그 숱하게 많은 작품들의 아름다움을. 그때까지는 그저 시험에 많이 나오는 시들이니 토막 쳐 외고, 모더니즘이니 생명파니 그런 것들이나 외고 있었지. 그 작품들의 아름다움이 내 가슴에 스미기 시작한 건 시험과 관계없어지고부터 비로소였다.

과외를 하느라 펼쳐 든 문제집의 갈피갈피에서 발견한 서정주와 윤동주, 지용과 육사의 시편은 어쩌면 그렇게도 아름다운지!(이 말의 끝에는 느낌표를 아니 붙일 수 없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에서 계연이 떠나는 장면을 지켜보는 성기를 묘사하던 부분을 읽었을 때 새삼스레 느꼈던 그 감동이란. 그야말로, 아, 그렇구나, 그래서 이 작품들이 끊임없이 교과서에 실리고 학생들에게 읽히는 것이로구나 라는 말을 수도 없이 중얼거리게 만드는 우리나라 근대문학 초기의 작품들.

이 책은 그들의 산문을 모은 산문집이다.
고전이란 시대를 초월하여 아름답다는 것을, 소설이나 시에 비해 시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산문임에도 그 시대와 관계없는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작품들이 실렸다.

특히, 정지용의 산문은 압권이다. 월북작가라는 오명을 쓰고(그가 납북작가였음은 2001년 남북 이산가족 교류를 통해 겨우 밝혀졌다.) 88년에야 겨우 해금이 되어, 89년, 내가 중1이 되던 그해, 5차 교육과정 개편과 함께 중등 교과서에 <고향>이라는 시를 올려놓았던 그 시인. <향수>와 <유리창>의 시인. 나는 지용의 시를 배운 1세대였다. 운이 좋기도 했지.

지용의 산문은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다. 섬세하고 아름답다.

한국인이 영어 교육에 그렇게 열을 올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지지리도 못하는 이유는 한국어와 한글이 지나치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언어이기 때문이라는 설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세상 어느 언어가 이처럼 아름다울까. 이처럼 삽삽하고, 이처럼 질박하고, 이처럼 처연하고, 이처럼 연연하고, 이처럼 요요롭고, 이처럼 실큿하고, 이처럼 화려하고, 이처럼 단아하고, 이처럼 섬세하고, 이처럼, 이처럼 고울까. 

몇몇 사람을 석 달 열흘만 방에 가둬놓고 이 책을 비롯한 근대문학 작가들의 소설과 시집을 딱 열권씩 읽히고 두 번만 배껴쓰게 하고 싶다. 진심으로. 그럼 부끄러워 자살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이 아름다운 언어를 그따위로 망쳐놓지 말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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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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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엊그제의 괴테 번역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은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지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편집위원/김우창, 유종호, 정명환, 안삼환


몇년째, 나의 북 콜렉팅 목록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포함되어 있는데, 하고많은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중 민음사판을 선택하여 콜렉팅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저 글에 나온다.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고 감동시키는 새로운 번역. 민음사에서는 모든 해외문학을 재번역해서 문학전집을 펴 내고 있다.

확실히, 세대마다 어필하는 문체는 따로 있다. 하다못해, 사건 중심의 대중소설조차 80년대 후반 삼중당 판 로맨스 소설은 도저히 읽지를 못하겠다. 옥수수수염 같이 빛나는 머리털, 또는 옥수수빛 머리털 이라고 번역해 놓은 문장을 보고 “오오, 멋진 머릿결이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 옥수수수염을 직접 본 기억도 없다. 물론, 옥수수는 길거리에서 파는 알록달록한 빛깔의 참옥수수나  누리팅팅하다고 말하기조차 낯설어지는 기묘한 빛깔의 옥수수밖에 보지 못하였으니. 참고로, 나는 옥수수를 먹지 않는다. (아마 그 표현을 쓴 작가와 번역자는 분명, 밭에서 자라는 씩씩하고 싱그러운 옥수수를 매일 보고 자랐음에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저러한 묘사가 80년대 후반의 클리쉐였거나.)

정이현이라는 낯선 작가의 신작 소설집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이, 오호, 잘 읽히는 군. 이었다. 이어, 아하, 이것이 요즘 어필하는 문체구나 하는 생각.

21세기,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단어는 쿨(COOL)이다. 일종의 부사어(관형어?)로 시작된 이 단어는 곧 문화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문학까지 침투하였다. 심드렁, 관심없음, 가볍고 발랄하지만 묘하게 냉소적, 겉으로만의 친분, 내면과 외면의 전혀 다름, 내면과 외면의 완벽한 일치.(극과 극은 맞닿아 있다고, 쿨이라는 단어로는 이 두 가지의 뜻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놀라운 단어다, It's so cool!!!)

우리 문학에서 이러한 쿨한 매력은 은희경 소설의 냉소로 시작하여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짓이다』에서 그해 한국을 발칵 뒤집었고, 김영하, 이지형(『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이 소설 역시 문체의 쿨함이 보통은 넘는다.)등으로 이어졌다. 95-6년 썰렁 개그가 히트를 칠 때는 뭐든 썰렁해야 살아남더니 쿨(가수가 아니다.)이 히트를 치니 쿨하지 않은 소설은 살아남지를 못하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개인적으로 쿨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매력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진 않달까. 마찬가지로 문학에 있어서의 쿨~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영하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쿨~에 깊이가 있기 때문이고, 그가 쿨~ 이라는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얻어지는 놀라운 문학적 성취에 깊이 탄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봐도 김영하나 은희경의 그 냉소적 문체를 얕은 깊이를 감추기 위한 가소로운 가면으로 보기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쿨~은 매력이 있다, 분명. 심드렁하고, 가볍고, 스스로 무책임한데서 오는 타인의 무책임에대한 너그러움. 쿨 한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무책임한데 이유가 있다. 물론, 스스로 무책임하다는 것을 알아 책임질 일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은 칭찬할 만 하지만 그래서야 호모 폴리티쿠스(사회적, 정치적 인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가.

다시, 이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서, 정이현의 이 소설집의 문체는 최고로 쿨~하다. 요즈음의 감성에 가장 잘 어필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매력있고, 재미도 있다. 페이지도 쉽게 넘어가고,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별로 남는 것이 없다. 웹 세계의 좀 괜찮은 필진을 보유하고 있는 게시판의 설왕설래를 읽고나서, 아, 재미있다, 하고 돌아서는 것과 비슷한 심리랄까. 무엇보다 생각할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 소설은 여엉, 재미가 없다. 여기서 이 인물은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하는 고민을 전혀 던져주지 못하는 소설이다. 깊지 못한 사유를 가볍고 냉소적인 문체에 얹어 가려보려 애쓰지만, 글쎄, 매력적이지만 금방 바닥이 보이는 쿨~과 똑같다.

스스로는 냉소적인척, 관심없는 척, “늬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이게 내 스타일이야, 간섭하지 마.” 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 잔머리가 유리알처럼 환히 보인다. 그런 소설은 별로 재미가 없다. 산뜻하고 감각적인 문체인 것은 맞으나. 서로 전혀 다른 특질을 가지고 있지만, 시나리오 작가 고은님도 생각이 날락말락이다. 사유의 가벼움을 문체의 화려함으로 대충대충 어떻게 메꿔보려 노력하는 부분이.

뭐, 어쨌든, 작가가 쉽게 쓴 글이, 독자도 쉽게 읽히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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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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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서는 하루키 보다는 차라리 류가 낫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생각해 보면 하루키도 류도 읽은 것이 별로 없다. 게다가 하루키는 워낙에 광 팬이 많아서 의외로 반감이 드는 작가랄까. 모든 사람이 다 좋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개성 없는 맛일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선입관도 있고.
여기저기서 한두개 주워 읽은 단편 몇 개를 제외한다면 읽었지만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노르웨이의 숲』에 이어 하루키의 장편을 다 읽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추석연휴의 초반 이틀 동안 꼬박 읽은 책인데, 상하 합하여 9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술술 페이지가 넘어갔다. 이야기 자체의 서사적 구조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상징 코드들 때문에 일견 느슨해 보인다는 것을 감안해 보았을 때,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이다. 하루키 흡입력의 가장 큰 매개는 그 문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문체가 특별히 당긴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문체만으로 놓고 본다면 지나가다 읽은 예전의 단편들이 훨씬 독특하고 감칠맛 있었다는 느낌.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전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만들어 놓는데서 온다고 할까. 도쿄를 떠난 다무라 카프카 군이 간 다카마쓰 시 라든지, 고무라 기념 도서관이라는 지명과 장소 자체가 현실이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나 그곳의 특이한 사람들 -사에키 상과 오시마 상-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카프카 군의 표현대로라면 “세계의 움푹 파인 데와 같은 은밀한 장소”(상권, p.78)이니까 이곳에 특이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 그리고 모여서 특이한 사건을 겪는 것은 평범한 속세의 세상에서 된장국에 아침밥을 먹는 것과 동일한 일과 같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해서 나름의 매력을 가지게 되는 요시모토 바나나와는 또 다른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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