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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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가 정미경과 동향이다. 심지어 여고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나는 소설가 정미경을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좋아하고, 그녀의 몇몇 작품은 구절을 외고 있을 정도로 사랑하지만, 좋은 소설이고 좋아하는 소설이란 것과는 별개로 매번 의아해했던 것이,  

그녀의 글에는 그녀와 나의 고향 냄새가 없었다. 나에게 그것은 정말이지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 그대로 서울에 발목이 잡혀 주질러 앉혀졌다. 그래, 나는 '주질러 앉혀 졌다.' 그런데도 그녀의 글에서는 매끈한 서울내기의 냄새만 났다. 태생부터 서울인 듯,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구절은 단 한줄도 없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그럴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는데, 얼떨결에 직장에 발목이 잡혔다. 젠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서울에만 있었다. 직장생활 5-6년차쯤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가자 돌아가' 할 무렵 남편을 만났다. 나와 동향의 이남자,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서 "女"자 하나를 빼면 그가 나온 고등학교 이름이 되는 이 남자, 나와 결혼하자 꼬실 때만 해도, 

"남자는 평생 세 번 반한대요. 여자에 한 번, 일에 한 번, 고향에 한 번. 남자들은 다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죠." 

라는 말로 미끼를 던져 나를 휙 낚아챘다. 난 그가 내민 미끼를 물고 파닥파닥 댔다. 그래, 조금만 참으면 내려가겠다 이거지? 좋아좋아. 이러면서. 

그와 살기 시작하고 어느하루, 서울살이 타향살이의 지겨움이 농울쳐 들어오던 어느날, 그에게 물었다. 수줍게 배시시 웃으며, 우리, 언제쯤 돌아가요오오? 교태와 사랑스러움을 듬뿍 담아서. 

그의 대답은 이거였다. 

'어딜?' 

어딜, 이라니, 어딜, 이라니. 이 배신감이라니, 어떻게, 어딜? 이라고 물을 수가, 어딜 이라니. 너 나중에 내려간다지 않았느냐고, 내가 파닥파닥 뛰었을때, 그는 여전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려가 뭐해먹고 살게?' 

아니, 응? 이따위로 나오면 곤란하지. 니가 이럴줄 알았으면 난 내려가서 해먹을 거 있는 사람하고 결혼했거나, 이미 내려가서 뭘 해먹고 있는 사람하고 결혼했거나, 단 한번도 올라오지 않았던 사람하고 결혼했을 거라고오오오오오!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어어어! 사기 결혼이 별거냐, 응? 응? 응? 

향수는 주기적으로 몰려왔다. 어느때는 참을 수 없을만큼 나를 달달 볶아댔다가, 때로는 그저그만하게 견딜만 했다가. 동향 출신의 작가 책은 일단 사고보고, 어느 소설에선가 고향의 지명이 나오면 그건 그냥 지명이 아니게 되고. 

나의 그런 유난은 나로서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는 했다. 인간의 기억이 5살부터 시작된다면, 19살까지 살았던 그곳의 기억 14년. 20살부터 살았던 이곳의 기억 14년. 이만하면 어디가 고향이다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떠돌아 살았던것도 아니고 한 도시의 붙박이 14년인데. 그래도 서울은 유난히 정이 붙지 않는 도시였다. 만약 내가 직장생활을 했던 곳이 도심이기만 했어도, 나는  남편이 미끼를 던질 틈도 없이 내려가서 거기서 뭘 해먹고 있는 사람 등을 치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절대 내 손으로는 돈 벌지 않겠다는... 이 태도는 뭔가... -_-;;) 

그러다 한창훈의 글은 일단 반가웠다. 오, 그래, 너도 내 과구나, 싶었다. 그 사람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도 막,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응응, 그래, 내 맘 알지? 알지? 이런 마음이 되었다.  

그의 고향에대한 집착은 나만큼이나 유난하다. 오죽하면 소설집의 제목이 <나는 여기가 좋다> 일까. 피폐해진 농어촌의 현실에 못견딘 아내가 출향 아니면 이혼이라고 해도 이 남자, 아내보다 고향을 택해 주질러 앉는다. 그런 그에게 아내는 

   
  "당신은 육지를 무서워하고 있소." 
그 말에 발끈한 게 한순간에 발목 잡힌다.
"여기서는 모두 잘났다고 추켜세워 주는디, 육지 가믄 그렇지를 못하니께, 그게 겁나서 못 가는 것 아니요?"

p. 32, <나는 여기가 좋다> 중
 
   

 

라고 다그치지만,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그것이 아니다. 육지가 무서운 것보다 여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훨씬 큰 것이다. 그래서 ,첫번째 단편 <나는 여기가 좋다>에서는 마치 떠날 것 처럼 끝을 맺었던 남편이 이어지는 이야기인 <섬에서 자전거 타기>에서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섬에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마치 전도연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떠올리게 하던 <올 라인 네코>나 <바람이 전하는 말><아버지와 아들>은 섬생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풍광묘사를 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섬에서만 가능한 어떤 정서나 관계를 보여주는 데 그것의 아름다움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집착에 가까운 애정, 아니, 이미 집착으로 변해버렸지만 어쩔수 없는 거야, 라고 어깨를 으쓱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애정 말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스럽게 나는 여기가 좋다, 를 외치고 있다.  

그런 그의 글에서 그가 말한 '여기'로 가지 못한 나는 위로를 받는다. 마치 내가 그곳에 가 있는듯한 위로.  

이러한 그의 고향에 대한 집착은 이전의 소설집 <청춘가를 불러요>,<가던 새 본다>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으며 장편 <홍합>과 최근에 발간한 에세이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그 정점을 보여준다. 고향과 어촌이라는 존재 바다와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창훈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루어낸다. 어떤 부분에서 그는 이미 타인이 범접하지 못할 경지에 올랐다. 영등포 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이명랑을 비롯하여, 이렇게 특정부분, 남들이 쓰지 못하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화젯거리를 가진 작가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래본다.  

ps. 이 글이 고향에 관한 글로 타겟을 맞추느라 말하지 않았지만, 이 소설집에서 최고의 작품은 아무래도 <밤눈> 같다. 그리고 내게는 가장 찡했던 <가장 가벼운 생>과. 

201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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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0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밤 눈! 저는 올라인 네코도 완전 좋더라구요. 하하하하
그나저나 아시마님, 정말 사기결혼 했네요. 하하하.

아시마 2011-01-08 21:03   좋아요 0 | URL
완전 불쌍한거죠, 저. 서울로도 모자라서 이제 여기까지 나와서 이러고 있슴다. 정말이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둘리 목소리로 읽으셔야 합니다.) 입니다.

그나저나 저 이 책 덕에 한창훈 책 죄다 구해서 콜렉션 했잖아요. 한창훈 완전 좋아요. ㅎㅎㅎ 좀 있다 줄줄이 리뷰 올릴테니 기대하삼! 절판 품절이 많아서 애 먹었더랬어요.

저절로 2011-01-0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러다 궁둥이에 털 나겠어요,,울다 웃다..하여튼 몽땅 책임져잉이이히히힝~

아시마 2011-01-08 21:0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며... 면도기라도? ^0^

한창훈 참 좋아요, 에파타님. 꼭 읽어보세요. 아마 한창훈도 되게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접신 박완서 샘도 한창훈 소설 되게 좋아하신다는 후문이 있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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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책 <비밀노트>를 읽었을 땐 조안 해리스의 <오렌지 다섯 조각>이나 저지 코진스키의 <잃어버린 나>류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세계대전 때에, 유럽의 시골에 방치된 어린 소년의 생존 투쟁기 말이다.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이야기의 화자를 여섯살 어린 여자아이 옥희로 선택함으로써 얻게되는 효과는?" 

물론 정답은, 아이의 천진한 눈을 통해 어른들의 사랑을 거짓없이 드러내게 만든다 류일테고. 이 시리즈의 첫번째 책 <비밀노트>에서 얻어내는 효과도 그와 비슷하다. 여섯살 소년 둘의 눈에 비친 세계대전 당시의 유럽 시골 풍경은 삭막하고 살벌하기 그지없고, 천진하기 때문에 더욱 잔혹하게 비친다. 아이는 사실을 듣기 좋고 먹기 좋게 포장할 줄 모른다. 아이에게 사실은 오직 그대로의 사실일 뿐이고, 그것을 날 것 그대로 기록해 낸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인지. 아이들의 기록은 그들이 당한일, 한 일, 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지 못하(거나 알려 하지 않)고 그렇기에 가감없이 드러낸다.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하는 데에 아이의 눈보다 더 좋은 창은 없다. 시에라리온 내전의 참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은 유니세프나 유엔의 보고서가 아니라 소년병 이스마엘 베아의 <집으로 가는 길>인 것처럼.  

이렇게 천진한 아이들이, 천사같은 이라는 수식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하지만 어리고 천진하다는 점에선 재론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이 겪는 전쟁이란, 그 무엇보다 전쟁의 진실을 잘 드러낸다.  

2부 <타인의 증거>는 1부의 연장 선상에 놓인다. 전쟁 직후의 피폐한 사회상을 보여주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의 대척점에 있는 타인이라는 존재다. 아니, 정확히는 타인의 대척점에 있는 나 라는 존재다. 1부의 쌍둥이 클라우스와 분리된 나 루카스는 누군가의 보호자로서 존재하고, 누군가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존재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좌표를 찾는다. 그러다 상대의 좌표가 변화하면 나의 좌표는 길을 잃고, 결국 소멸하기도 한다. 1부가 충격적이었다면 2부는 슬펐다.  

그러나 3부의 충격에 비하면 1부의 충격은 충격도 아니었다. 3부에 가서는 모든것이 뒤죽박죽 섞여버리고 만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더니 모든 거짓말은 마치 변증법처럼 거짓이 거짓을 거짓으로 반박하고 그 거짓이 중첩되어 또다시 새로운 거짓을 만들어 내고, 그 거짓에서 가지는 의미 또한 거짓이 되고... 그러나 3부를 읽다보면,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 책이 전쟁 소설이라는 생각을 접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주 테마는 전쟁이 아니다. 이 책의 테마는, 테마는.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가 아니라 존재는 거짓말을 한다, 랄까, 아니면 존재는 거짓말 속에 있다, 라고 해야하나.  

3부를 끝까지 다 읽고 아주 드물게 1부를 다시 펼쳐들어 3부까지 천천히 정독했다. 처음 읽을때의 충격과 경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번엔 눈물이 줄줄줄(그야말로 줄줄줄!) 흘렀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뭐가 중요한가. 인간이란 존재는 왜 이리도 참혹하게 슬픈가..... 

이 책은, 두번 읽어야 하는 책이다. 3부의 끝에는 도돌이표가 달려있다.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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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0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지를 않았어요. 그걸 한번 해봐야겠어요.

아시마 2011-01-06 01:19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꼭 한번 그렇게 해 보세요.

3부를 읽은 직후에 읽은 1부는 정말이지, 처음 읽었을때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어요. 전혀 다른 이야기. 그러니까 저는 아마, 루카스가 혼자 할머니도 아닌 집에 소개되어 가는 상황을 혼자 가정하고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그 둘의 이야기가 정말 사무치게 아프더라구요. 사람이 이렇게까지 외로울 수 있나, 하는 생각도 하고.

너무 많이 울어서(저 의외로 책 읽다가는 거의 안웁니다. 영화는 폭풍눈물 하는데 책은 정말 안해요.) 나중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어요.

이 책 띠지에서였나, 1,2,3부중 어느것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면서도... 각각의 역학관계가 형성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가는... 놀라운 소설이었어요.


따라쟁이 2011-01-04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권에서 도돌이표. ^-^

아시마 2011-01-06 01:19   좋아요 0 | URL
어머, 정말요?
저는 중권을 읽고는 뒷 이야기가 넘 궁금해서리... ^^
따라쟁이님의 도돌이표는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궁금해요.

blanca 2011-01-0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 저 안 그래도 이 책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결국 읽어야 하는 책이군요. 궁금해요. 저는 어떤 느낌이 들지. 요새 잡은 책들이 대체로 재미가 없어서--;; 처지는 중입니다.

아시마 2011-01-06 01: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저도 블랑카님의 느낌은 참 궁금합니다. 정말로 참 궁금해요.

요새 잡은 책들이 무슨 책이었길래 재미가 없으셨나요?
근데 사실, 가끔보면 블랑카님은 난 읽기 싫은 되게 어려운 책도 막 읽고 그러시는 것 같드라~ ㅎㅎㅎ 난 어려운 책이 재미없어서 싫어요.

저절로 2011-01-05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찔찔이 도돌이표 군요.
이 책, 어른 울리는 재주가 있군요. 겁나는데요?

아시마 2011-01-06 01:22   좋아요 0 | URL
음, 어른 울리는 재주가 남다른 책입니다. 에파타님 감성이면, 정말 많이 우실지도 몰라요.
그저 에파타님께서 써 주시는 페이퍼와 리뷰로 짐작할 뿐이라 외람되지만, 에파타님은 공감의 능력이 특히 뛰어난 분 같아요. 남들보다 훨씬 섬세한 현을 가진 듯. 그런 에파타님이 읽으시면, 음음음,

후유증은 제 탓이 아닙니다. ㅎㅎㅎ

저절로 2011-01-07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이제는 콧물까지~)
아무래도 책임은 지셔야 겠네요;;

아시마 2011-01-08 20:56   좋아요 0 | URL
아니, 제가 읽으시면 남들보다 훨씬 힘드실 거라고, 경고(를 가장한 강력추천)도 드렸건만 굳이 굳이 읽으시고 제게 와서 이러시면, 저는, 음 그저,
뿌듯함을 느낄 뿐이고! ㅎㅎㅎ

책임의 근원을 찾으시려거든 다락방님을 잡으셔야 합니다요. 예예.
제게 그 책을 소개하고 읽게 하신 분이십니다. ^^

그런데 참... 슬퍼요, 그죠?

다락방 2011-01-10 08:48   좋아요 0 | URL
저...저....절, 잡으실겁니까? 하핫 ;;

저절로 2011-01-10 18:30   좋아요 0 | URL
쌩=3=3=3=3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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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심지어 유일하기까지 했던 직장은 서울 한가운데, 산 중턱의, 숲 속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23살부터 30살까지 만 7년을 일했고, 처음 2년은 혼자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작은 자취방까지 그 숲근처에 구해놓고 혼자 외따로이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이를 닦고, 걸어서 15-20분쯤 되는 호젓한 산길을 혼자 자박자박 걸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혼자 일을 하다, 혼자 점심을 먹고, 몇통의 전화를 걸고 받고, 그리고 다시 사무실 문을 닫고 혼자 자박자박 걸어 집으로 갔다. 하루종일 누구도 만나지 않는 날도 종종 있었고, 하루종일 입 한번 떼지 않았던 날도 가끔은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널널한 직업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직업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난 정말 많은 일을 해치웠고, 그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그야말로 새롭게 맺어왔는데, 게다가 처음 2년을 제외하면 내내 일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는 사무실이었는데 왜 내 기억속의 나는 항상 외따로인건지 모르겠다.  

그 숲 속으로 숨어들 때, 그래, 숨어들 때, 나는 내가 '숨어든다'라는 걸 의식하며 숨어들었다. 그 숲의 산 그늘 속에 꼭꼭 숨어 숲과 함께 숨 쉬는 나무이고 싶었다. 숲은 한없이 고요했고, 침묵과 외면에 능했으며, 시침떼기도 잘 했다. 그러면서 숲은 때로 나의 기쁨과 함께 자지러졌고, 나의 슬픔과 함께 통곡해주었다. 20대 중후반의 시기에 나에게 그 숲과, 그 나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그곳은 정말, 현실적인 의미의 '내 젊은 날의 숲' 이었다.  

김훈의 이 책이 나왔을때, 그 표지의 백색과 은청색이 가지런히 섞인 문양은 겨울숲을 연상하게 만들었고, 나는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나의 유폐를 떠올렸다. 내가 혼자서 세상을 왕따시켰던 그때, 그때의 그 평화와 그 외로움과 그때 맺었던 인간관계들의 기묘한 단절감들을. 여전히 세상을 왕따시키고 싶어하는 나를.  

이 책의 내용도 그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세상에서 유폐 시키는 사람. 숲 속의 적막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숲 속의 나무들이 그러하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만을 원하는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참 그렇다.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와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
p. 187 
 
   

 

주인공은 본다와 보인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한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설사 그 간극을 뛰어넘어 본다와 보인다 사이의 거리를 없앤다고 한들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다.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내가 아는 너는 이미 너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내가 아는 너' 일 뿐이고, 네가 아는 나 역시 마찬가지이니, 내가 너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에 대한 깨달음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난다. 나는 내가 아는 너 만큼만 너에게 접근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김훈이 변했다.  

단 한번도 희망에 관한 말을 해 본적 없던 김훈이, 이 글에서 처음으로 마지막의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비록 희망아닌 희망이고 의미없는 희망이라고 해도, 김훈은 처음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을 말하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숲을 통과해 나오며, 숲의 치유력의 영향을 입은 것일까. 주인공이 입은 그런 치유력을 김훈도 입은 것인가. 희망을 말하는 김훈의 문체는 여전히 예리하고 날렵하지만 따뜻해졌다. 아. 김훈의 글이 따뜻하게 읽히는 날이 다 오다니. 김훈선생께서 늙으신 겐가.

나는, 33살, 내 젊은 날의 숲에서 나왔다. 순순히는 아니고 자유의지는 더욱더 아니고, 그럼에도 불가항력으로 나는 내 젊은 날의 숲을 나왔다. 나왔으되 버리지는 않았다. 숲이 준 것들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언젠가 나는,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201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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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토끼 2011-01-0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어요 ^^ 매번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글 솜씨에 비해서 방문자수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블로그 모음 사이트에 가입하셔서 더 많은 분들에게 노출시키면
많은 홍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요번에 새로 생긴 사이트에 가입해보세요(http://thegle.net )
얼마 전 오픈해서 님의 글쓰기 솜씨면 충분히 메인에 올라갈 수 있을꺼에요 ^^
그리고 오픈 이벤트도 하고 있으니 꼭 같이 참여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 올해도 원하시는 일 이루세요~!!

아시마 2011-01-03 19:12   좋아요 0 | URL
네. ^^ 그렇군요.
올해도 원하시는 일 이루세요. ^^

blanca 2011-01-0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김훈의 문장은 '벼린다'는 용어가 항상 떠올라요. 한겨레21의 편집장 일기를 보니 문체가 거의 비슷해서 기자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아시마님의 문장들도 정결하고 깔끔하고 그래요. 아시마님이랑 저랑 동감 아니면 한 살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올해가 왔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 앉더라구요. 내가 나도 나마저 결국 중년으로 들어가는구나, 싶어서. 게다가 아시마님, 전 아직 둘째도--;; 이렇게 육아로 소진되는 (물론 생산적이고 고귀한 과정이라고 상찬할 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잖아요) 시간들로 나는 늙어가는 구나, 싶어서요. 아시마님 페이퍼에 또 중언부언하고 갑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아시마 2011-01-03 22:15   좋아요 0 | URL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예요.. ^^
김훈의 문장은 지우개의 문장이죠. 길게 길게 써 놓고 지우고 또 지우고 지워나간 문장이라는 느낌. 하긴, 김훈의 어느 인터뷰에서였나 에세이에서였나, 여<칼의 노래>에서 죽은 여진을 대하는 대목이요. 그 부분을 원고지 두장쯤 썼다가 싹 지우고 "내다 버려라." 한 마디만 남겨 놓고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날 하루는 글 안쓰고 종일 나가 자전거 타고 놀았다더라구요. ㅎㅎ 그런게 "벼린다" 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듯해요.
결국 벼리는 것도 깎아 내는 거니까.

그리고, 김훈의 글을 볼 때나 조선희의 글을 볼때나 느끼는 거지만, 언론인, 기자로서의 문체가 있는 것 같아요. 최대한 팩트에 근접한,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제 문장이 정결하고 깔끔하다니... 오, 최고의 찬사이십니다. ㅎㅎ

전 아마, 블랑카님과 동갑인 것 같은데요. ^^ 학번은 아마 하나 빠를테고요. 저는 올해가 왔을때 정말 오히려 아무생각도 없었어요. 우리 나이를 벌써 중년이라고 하기엔 전 너무 억울하단 말이죠. 전 아직 중년 안할랍니다. -_-;;;

육아로 소진되는 시간들로 나는 늙어간다는 말, 정말 저도 동감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독서라는 취미를 통해서 그 시간들을 무미하게 보내지만은 않잖아요. 전 지난 5년간 정말 애 둘 임신해서 낳아서 젖먹이고 기저귀 갈다 다시 임신하고 젖먹이고 기저귀 갈고... 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음음, 기억나는 건 육아의 기억 절반과 내가 읽은 책들의 기억 절반인걸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좋아요. ^^아

둘째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님의 방명록에 쓴 그대로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제 둘째는 두돌이 지났습니다아아아아!!! 으쓱으쓱.

저절로 2011-01-0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은 항상 젊어요 그죠, 정작 나는 늙어가는데 말이죠.
언젠가 나는,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왠지 짠해지는걸요.^^

아시마 2011-01-03 22:18   좋아요 0 | URL
옴마나, 그 문장이 뭔가 의미심장해 보였나봐요. ㅎㅎㅎ
젊의 날의 숲과 겹쳐져서 그런가 ^^
숲이 항상 젊지는 않은 것 같아요. 늙은 숲은 없지만, 그래도 어린숲과 젊은 숲, 장년의 숲은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예를 들면, 제게 지리산의 숲은 젊은 숲이고 설악산의 숲은 장년의 숲이거든요. 그 차이가 뭐냐 물으시면, 음음,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답했는데 왜 홍시맛이라고 했냐 물으시면,

이라는 답을 차용할밖에요. ^^

근데 아잉... 이분들이 왜 새해 벽두부터 늙음을 말하실까나.
저 처럼 철이 없으면 아무 생각 안하고 살 수 있는데요. ㅎㅎㅎ
 

인터뷰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터뷰가 진실이라고 믿으세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을때가 있나요? 인터뷰를 읽은 것으로 내가 그의 마음을 들여다 본 거라고 믿으세요? 

인터뷰라는 형식이 그렇죠. 어쩌면 그 어떤 글쓰기보다 공적인 글쓰기 같기도 하고, 그 어떤 발언보다 사적인 발언 같기도 하고 그래요. 극단적인 개인사와 극단적인 공적 발화가 뒤섞인 장르가 인터뷰죠. 

잠깐, 제가 방금 '장르'라는 말을 썼나요? 흠. 인터뷰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을까요? 문학의 범주안으로 들어간 하나의 장르. 그럼 이 인터뷰는 "한국문학통사"를 집필한 조동일 선생식의 분류를 따르자면 교술장르인 걸까요, 서정장르인 걸까요. 인터뷰란 결국,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발화인 건가요, 아니면 나의 외면을 치장하기 위한 발화인 건가요. 이것에 따라 서정이냐 교술이냐가 나뉘겠군요. 인터뷰를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도 여기서 결정이 나겠군요. 그런데 잠깐. 우리 흔히 그런말 하잖아요. 패션은 나의 개성을 표출하는 거라고. 그럼 말로 나를 치장하는 것또한 나의 내면의 반영이니 결국 인터뷰란 내 내면의 표현이되는 거네요? 결국 서정장르로 들어가야 하나요? 아. 학부시절에 참 지겹게도 했던 말들.  

작년(그래요, 벌써 작년!), 2010년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었던 김혜리의 책을 볼까요.  

 

 

씨네 21의 기자인 김혜리와 22명의 "크리에이티브 리더"가 한 인터뷰를 하나로 묶어서 냈어요. 아무래도 영화잡지라는 한계가 있으니 당시 이슈가 되는 영화를 홍보하려는 목적이 포함된 인터뷰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영화와 상관없는 신경민 앵커나 유시민 님이나 장한나, 번역가 정영목 등등의 인터뷰도 있네요.  

사실 이 책은 고현정의 인터뷰가 보고 싶어서 샀는데, 정영목의 인터뷰가 뜻밖에도 몹시 흥미로웠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처음으로 번역가의 이름을 의식하기 시작한 번역가가 정영목이었거든요. <눈 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말이죠. 인터뷰 중에 정영목도 그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데, 줄바꿈이나 따옴표를 전혀 쓰지 않고 줄줄줄 기술하는 책을, 그것도 중역(포르투칼어->영어->한국어)으로 옮겼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그 뒤로는 정영목의 번역이라면 별 고민없이 집어들죠. 그렇다고 정영목이 자기 냄새를 많이 풍기는 번역자는 아니예요. 이윤기는 이윤기 스럽게, 김연수는 김연수 스럽게 번역을 하는데 정영목은 자기 냄새를 최대한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걸 정영목은 이렇게 말하죠.  

   
 

저보고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번역스러운 번역쪽을 택하겠죠. '번역투'가 나쁘다는 것이 통념인데, 왜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거든요. 번역인데 번역투가 아니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도 있지 않나요?................ 저는 번역의 매끄러움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번역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p. 318 

 
   

 번역문이 번역스러운거, 그게 정영목스러운 번역일거예요. 아마. 그래서 저는 정영목을 좋아하구요.  

김혜리의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이런식으로 흘러가요. 누군가의 장점을 잘 끄집어 내고, 상대방이 물어 주었으면 하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김혜리의 인터뷰집을 읽고 있다보면 새록새록, 어머 이 사람 참 매력있네, 싶을때가 많아요. 이 책 이전에 나온 인터뷰집  

 

 

이 책에서도 김혜리의 장기는 달라지지 않아요.  

김혜리의 인터뷰는 보통 이런 형식으로 진행되죠. 한두페이지 정도, 김혜리가 생각하는 인터뷰이에 대한 스케치가 들어가요. 그 스케치를 읽어보면, 김혜리는 이 사람을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인터뷰는 어떤 형태로 흘러가겠구나... 하는 걸 짐작할 수 있죠.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문답 형식이 시작되요.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듯 중간중간 괄호안의 (좌중 폭소)라는 대목도 들어가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공격성은 별로 없는, 가능하면 장점을 뽑아 내려 노력하는, 그래서 이충걸 식으로 말하면 '아름다운 거짓말'을 완성하는 거죠.  

이 책에서 김혜리의 인터뷰이는 전방위적이예요. 배우는 물론 기본베이스이고요, 소설가(박민규, 박완서) 만화가(김진) 건축가(황두진) 디자이너(정구호) 사진작가(구본창) DJ(전영혁) 등등. 그래서 인터뷰집 본연의 재미를 충족하게 해 주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재미요.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별난 생각들을 하며 각각의 스타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걸 보는 재미요. 그게 아마도, 제가 인터뷰라는 걸 읽는 최고의 목적이니까요.  

김혜리의 인터뷰집은, 말하자면, 사실과 비유의 비율을 7:3 정도로 유지하고 있고,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비율이 6:4 정도 되어요. 김혜리라는 창의 색깔이 너무 강해서 김혜리가 인터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간씩은 김혜리의 아우라를 덧입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다들 닮은 꼴로 보인다는 단점이. ^^ 하지만, 어쨌든, 정말이지 썩 괜찮은 인터뷰집이라는데는 전혀 이의가 없고요. ^^ 

자, 그럼 이번에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비율을 나눈다는 것이 의미없어지는 이충걸의 인터뷰집을 볼까요?  

 

  

이충걸을 아시나요? 이 친구, 참 독특한 친구죠. 남성잡지 GQ의 편집장인 이 친구는 사실, 여성성을 굉장히 강하게 풍겨요. 외모와 취향에서도 그렇고, 사실 글쓰는 스타일에서도 그래요. 섬세한 떨림을 아주 잘 다루는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누군가는 이 친구에 대해 "인터뷰 기사를 가장 잘 쓰는 사람" 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고, 소설가 은희경은 이 책의 발문에서  

   
 

그는 남의 말을 듣는 데에 소질이 있었다. ................ 그에게는 라디오 속처럼 사람을 뜯어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자기 성격이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단 한줄도 쓰지 않았다. 

 
   

라고 말하고 있죠. 자기 성격이 들어있지 않은 문장은 단 한줄도 쓰지 않는다는 것, 그게 과연 인터뷰라는 글쓰기에서 가능한 걸까요? 이충걸은 자신의 그러한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듯, 이 책에서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을 탈피해요. 일종의 에세이를 쓰듯, 줄줄줄 내려가죠. 일반적 에세이와의 차이라면 인용부호(따옴표)가 좀 많다는 정도? 

김혜리와 이충걸의 인터뷰이는 단 한명도 겹치지 않아요. 이건 두 사람의 성향 차이가 가져온 인터뷰이 선택의 차이일 수도 있겠고, 시의성이 강한 인터뷰의 특성상 당시에 회자되는 인물의 차이일수도, 게재되는 매체의 차이도 있겠지만 전 사실 첫번째 이유가 가장 강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자면, 김혜리와 이충걸이 만나고 싶은 인물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는 거죠. 이충걸은 아무래도 좀 더 작은 것에 집착....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자, 이제 이충걸과 비슷하게, 패션 잡지에 실리는 인터뷰를 한 김경의 인터뷰집을 볼까요? 

 

 김경은 패션지 월간 바자의 편집장이죠. 이 책의 인터뷰들은 대부분 바자에 실리기 위해 작성된 것들이구요. 제목대로 소설가 김훈의 인터뷰가 있고, 가수 싸이의 인터뷰로 끝이 나네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인터뷰가 있어요. 아, 이 인터뷰를 할 때는, 그리고 이 인터뷰를 제가 읽을때는, 그분이 나와 함께, 이곳에 계셨군요. ㅠ.ㅠ 

김경의 인터뷰집은 특별한 형식이 없어요. 이충걸과 김혜리의 중복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아무래도 패션지라는 형식상, 이런식의 질문이 나올때도 있죠.  

   
  외람된 질문입니다. '나쁜 여자 매뉴얼' 같은 데 나오는 얘기인데, 나쁜 여자들이 질질 끌지 않고 첫눈에 남자를 알아보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 질문에 답해주길 바랍니다.
1. 최근에 무슨 영화를 봤나요?
2. 신발은 어디서 사나요?
3. 섹스나 전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p.26 김훈과의 인터뷰 마지막 질문
 
   

그러니까 말이죠, 우리의 김훈 선생께 저런 질문을 던진다는 거죠.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거야 원. 김훈 선생의 대답은 더 걸작입니다. 영화는 안보고, 신발은 내 손으로 한 번도 사 본적이 없고, 그리고 세번째는 남녀의 사랑의 감정으로 풀어버리는데, 그야말로 우문 현답이죠. 

얼마전 읽은 평론이었나, 아, 성석제의 글에서였나 김경을 새로운 기대주 중의 하나로 평가하던데, 저도 뭐,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음. 왜, 새로운 기대주일까, 싶어서요. 새로 글 내시면 꼭 읽어볼 의향이 있는데 아직 본격 소설이나 시나... 그쪽 장르는 손을 안대시는듯.  

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김경의 인터뷰 집에서는 약간 마이너한 성향의 인터뷰이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김형태라든가, 한대수라든가,백현진 이런 매니악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거죠. 그리고, 김혜리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크리에이티브 리더" 라고 칭한 것과 달리, 김경은 자신의 인터뷰이들을 "단독자"라고 표현합니다. 리더와 단독자의 어감의 차이는, 그대로 김혜리의 인터뷰이들과 김경의 인터뷰이들의 차이를 압축하기도 하고, 인터뷰의 방향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김혜리가 리더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즉, 인물의 매력을 강조하는) 인터뷰를 한다면, 김경의 인터뷰는 단독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즉,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는)인터뷰에 치중합니다.  

자,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넘어갈까요?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로 "인터뷰 전문 작가"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는 지승호님의 인터뷰집입니다. 지승호는 김경과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인터뷰를 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인 이 책을 볼까요. 

 

이 책의 부제는 인터뷰, 한국사회 탐구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한국 사회의 탐구를 시도하고 있는, 말하자면 시사성이 굉장히 강한 인터뷰를 하시는 거죠.  

이 책은 꽤 두껍습니다. 400 페이지가 넘으니까요. 이 400 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다루는 인터뷰이는 고작(고작?) 9명입니다. 9명의 인터뷰이와 8개의 인터뷰를 하는 거죠. 인터뷰이도 문화 아이콘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어떤 부분을 상징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다룹니다.  

진중권이라든가, 홍세화 라든가. 그나마 좀 소프트한 쪽으로 가면 김어준과 손석희가 있겠네요. 김동춘과 한홍구는 아이고야, 싶구요. 이건 인터뷰라는 형태를 띈 강연이다 싶을 때가 있어서.  

책은 그다지 쉽게 술술 넘어가지 않습니다. 꽤나 딱딱한 부분이 많아요. 그나마 진중권이 워낙에 말을 재미나게 하는 사람이라 진중권 편이 잘 넘어가고, 손석희는 알아듣게 말하는 훈련이 된 사람이다 싶구요.  

이책은 2004년에 출간되었는데, 2004년 당시의 시사의 포인트를 잘 짚어줍니다.  

그리고 지승호는 정말 드물게 제대로 인터뷰를 해 내는 사람이라는 인상이구요.  

이런 지승호가 이번에는 한권을 통 털어 한 사람과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2008년, 2009년을 통털어 베스트 셀러중의 한권이었죠.  

지승호의 분석력과 통찰력이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공지영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을 많이 없애준 책이라고 알고 있어요.  

이 책에 관해서는 이미 쓴 글이 있는 관계로 이만 줄입니다.  

 

 

 

인터뷰,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 

마주치다 눈뜨다 : 2005. 10.2 
괜찮다, 다 괜찮다 : 2010. 5. 8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2007. 6. 14
해를 등지고 놀다 : 2004. 12.1
진심의 탐닉 : 2010. 12. 24 
그녀에게 말하다 : 201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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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1-02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또 관심이 겹쳐요. 김혜리의 저 책 두 권과 지승호의 인터뷰, 다. 이충걸의 것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바자,GQ 이러면 왠지 삶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문제도 다 근사할 것 같다는....저도 인터뷰 아주 많이 좋아해요.

아시마 2011-01-03 22:26   좋아요 1 | URL
이충걸의 책은, 음... -_-;;; 약간 난해해요. 글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이충걸에 대한 태도를 정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죠.
굉장히... 뭐랄까... 수식적인 문장을 쓰는데, 스티븐 킹이 그랬죠. 지옥으로 가는 길엔 부사와 관형사가 깔려 있을 거라고. 징글징글하도록 많은 수식어들 부사어 관형어 부사절 등등등을 구사하는 작가라 음...
뭐, 저는 싫어하진 않지만요. ^^ 때로는 음, 맞다, 미원을 듬뿍 넣은 음식 맛 같아요, 글이.

저절로 2011-01-03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뷰,좋아해야 할 분위긴데요.
오히려 시마님이 인터뷰어들을 인터뷰한 것 같아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떡국 드셨어요?


아시마 2011-01-03 22:2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 나라에도 떡국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서 먹던 그런 쫄깃한 떡은 아니구요. 쌀의 품종차이가 있어서 그런가, 끓여놓으면 풀어지고 이에 달라붙는 그런 떡국이라... 맛이 좀 떨어져서 그렇지 먹긴 먹었습니다. ㅎㅎㅎ
그 덕에 한살 더 먹었고요. 애들도 남편도 다 한그릇씩 먹였지요.

인터뷰, 좋아해 보세요. ^^ 재미있다니까요. 거짓말이라도 재미있고 참말은 참말이라 더 재미있고, 허세에 쩔은 말도 재미있고, 진솔한 말은 진솔한 맛에 정말 쫄깃하니 맛나지요. ^^
 

다인은 약간, 특이한 데가 있는데, 아니 어쩌면, 정상적인 모습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볼때는 특이한 모습인데, 음, 동생에 관련된 거면 기겁을 하며 챙기려 든다. 보통은, 음음, 동생 갖다 내버려 달라든가, 뭐 그런게 정상 아닌가. -_-;;; 내가 너무 최악의 상상과 상황만을 보고 살아온 건가. 

해인을 임신해 있을 때 내가 들은 최악의 형제 이야기는, 큰애가 작은애를 너무 괴롭혀 엄마가 작은 애를 한집에서 키우지 못하고 친정인지 시댁인지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카더라 통신의 이야기도 아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나와 아주 친한 친구의, 아주 친하게 지내는 전 직장 동료의 동생 이야기였다. 둘째를 낳아 돌이 되기 직전에 시댁인지 친정인지로 보내고 4살인지 5살인지 되는 큰딸만 데리고 살고 있는 그 동생의 이야기는,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더구나 나는 그녀보다 터울도 더 작은 아이를 낳게 될 판이었으니.  

참 이상하지. 해인을 임신해 있을 즈음에 내 귀에 들려오던 이야기는 죄다 그런 이야기였다. 이제 갓 백일 된 떡애기를 한밤중에 몰래 끌어다 현관에 내 놓고 자고 있더라는 형의 이야기, 엄마나 어른이 보고 있지 않으면 동생을 발로 뻥뻥 걷어차서 다른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었다는 옆집 아줌마의 시댁 조카 이야기.  

그래서 였을까, 피만 보지 말자, 이게 내 바램이었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 하는, (^___________________^) 다인의 잠자리 습관은 "무서운 아저씨"에 힘입은 바 큰 데, 그는 망태 할아범과 유괴범과 괴물의 이미지가 교묘히 조합된, 말 그대로의 '무서운' 아저씨로, 밤 8시가 되면 우리집에 나타나 그 시간까지 눈을 뜨고 있는 어린 아이를 잡아가는 존재다. 다른 사람들의 집엔 이 무서운 아저씨가 없는가? 다인은 네돌이 멀지 않은 지금까지도 무서운 아저씨라는 말엔 기겁을 한다.  

그런 다인이, 세돌이 지났을 무렵, 밤 7시가 되어 잠을 자자고 방에 불을 껐는데, 동생이 자지 않고 어두운 방 안을 뱅뱅 돌며 돌아다니자, 울먹울먹 하며 말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해인아, 빨리 자. 무서운 아저씨 온단 말이야." 

그 전부터 별 해꼬지가 없는 아이이긴 했지만, 종종, 동생을 챙기는 큰애가 귀여워서 나는 부러 큰애를 겁주곤 했다. 

"해인은 안자네. 나쁜 아기네. 이제 무서운 아저씨 와서 잡아가겠네." 

그럴때마다 어김없었다. 울먹울먹하며,  

"엄마, 해인은 우리 동생이잖아. 잡아가면 안되는데. 해인아, 빨리 자. 해인아 빨리 자." 

라고 말하는 것이. 막상 다인은 무서워서 눈도 못뜨고 있으면서.   

 

애를 둘을 키우니, 둘의 성격이 참 비슷한 듯 극과 극이다. 다인은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해인은 걸핏하면 바닥에 드러누워 땡깡질이다. 드러누울때도 머리를 다칠까봐 팔꿈치로 뒤를 지탱해가며 모로 드러눕는데 어찌나 황당한지. 그러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쳐다본다. 자기 안고 가란다.  

한번은, 저 버릇 고쳐야지 싶어서, 그냥 두고 간다, 하고 돌아서서 한 5미터 갔더니 해인은 멀쩡한데 내 치마꼬리를 잡고 오는 다인이 기겁을 하며 자지러졌다. 해인이 데려가야 한단다. 두고 가면 안된단다. 왜냐하면 우리 동생이니까.  

엄마는 말 안듣는 저런 해인이 같은애는 키울수가 없으니 그냥 두겠다 했다. 좀 있으면 무서운 아저씨가 데리고 갈 거라고도 했다. 정 데려오고 싶거든 네가 가서 데려오라 했다. 다인은 왕왕 울면서 뛰어가 맨송맨송한 얼굴로 드러누워 땡깡질 중인 동생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등을 밀고 손을 잡아 끌며 데리고 온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게 뭔가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 진짜, 큰애가, 아직 네돌도 안된 애가 말이다, 그렇게 기를 쓰고 동생을 챙기는 모습을 봐야 내 심정이 이해가 된다. 으으으으, 그 심정은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된다. 왜 윤리도덕에서 효 다음 가는 덕목으로 우애를 강조하고 있는지 알만하다. 우애란, 효의 또 다른 형태인거다.  

 

오늘, 다인이 처음으로 유치원엘 갔다.  

한국에서도 그런 교육기관에 가 본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가는 유치원이라는 데가 온통 노랑머리 칠갑에 들려오는 언어는 죄다 영어인 그런 곳이다. 한반 정원이 10명인데, 3명을 빼곤 모두 서양아이들이고, 그 3명 중에서도 다인을 제외한 2명은 영어 사용이 능숙한 아이들.  

이곳의 교육기관은 한국보다 훨씬 빨리 시작하는 편이라, 8시 15분부터 시작된 수업에 영어라곤 두어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번씩 개인 레슨 선생을 붙여준 것 외엔 접해본 일이 없는 애를 밀어넣어놓고 밖에서 해인을 데리고 기다렸다. 처음엔 씩씩하게 손을 흔들고 들어갔던 다인은, 한시간이 지나 살짝 들여다 본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은 다들 제가끔 무리를 지어 각각의 선생님들과(선생님이 셋이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블럭을 만들기도 하고 있는데 혼자 한가운데 서서 울먹울먹 하며 또 다른 선생님에게 뭔가를 어필하고 있었다. 아니지, 어필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뭔가를 말을 하고, 아이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꾹꾹 누르며 고개만 흔들고 있었다.  

살그머니 교실문을 열고 다인에게 손짓을 하니, 아이는 그제야 꾹꾹 참았던 울음을 쏟아놓으며 내 품에 안겼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조금있다보니 엄마가 없더란다. 그래서 울었단다. 글쎄, 이런 심정 또한 첫 아이를 처음으로 교육기관이라는 곳에 보내본 엄마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아닐까.  

선생님의 양해를 구하고, 해인까지 데리고 교실에 들어가 한시간쯤을 함께 있어 주었다. 그리고 나가겠다고 하니, 다인은 안된다고 나를 붙잡는다. 그런 다인을 잡고 내가 말했다.  

"그러면 해인은 어떡하지? 다인이 친구들하고 놀고 있는데 해인이 자꾸 돌아다니고 방해를 하니까, 해인은 이 교실에 있을수가 없는데, 그럼 엄마가 다인하고 여기 있으면 해인은 혼자 밖에 나가있으라고 할까? 그럼 무서운 아저씨가 와서 데리고 갈 텐데? 그래도 괜찮아?" 

울먹이던 다인은 급작스레 언니 모드의 불을 켰다. 엄마 나가있으란다. 해인이 데리고 밖에서 기다리란다. 자기 혼자 교실에서 한번 해 볼테니, 엄마는 밖에서 자기 수업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란다. 해인을 안고, 노랑머리의 물결 속에, 나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쏼라거리는 영어 속에 다인을 놓고 나왔다. 어쩔수 없다고, 지금이 아니면 내일이라도 내일이 아니면 모레라도, 언젠가는 적응해야 하는 수순인거라고.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과연 정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한시간쯤 지나서 다인은 다시 울면서 교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엔 울음이 좀 더 크다. 역시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가 다인을 안아주고 달래주고,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또다시 해인은 어쩌냐, 물었다. 이번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유치원을 안가면, 우리집엔 인제 유모 언니가 없잖아? 다인이 유치원을 안가고 집에 있으면 엄마가 다인하고 놀아야 하는데, 그럼 해인은 어쩌지? 해인을 봐 주는 유모 언니도 없는데 해인은 그럼 재채기 나라에서 부침개 타고온 재채기 할미한테 데려가라고 할까? 찰퐁이처럼? (마술피리 어린이를 아는 사람은 이 이야기를 안다.)" 

다인은 이번에도 기겁을 하며 머리를 흔든다. 그리곤 또 씩씩하게 눈물을 싹싹 닦고 내가 한번 해 볼게, 한다. 엄마는 해인이랑 밖에서 기다려, 한다.  

그렇게 다인을 교실에 들여보내고 입맛이 쓰다. 도대체, 동생이 뭘까. 4돌도 안된 아이의 응석을 단숨에 멈추게 하는 위력적인 존재인 동생 말이다. 그 동생의 약빨이 기가 막히다는 걸 알아서 손 쉽게 동생을 내세워 이런 저런 것들을 강요하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가. 

8시 15분에 시작된 수업은 중간의 30분간의 스낵타임을 포함해 12시 45분이 되어야 마쳤고, 돌아오는 길에 다인은, 이제는 유치원에 안간단다. 자기는 5살이니까, 6살이 되면 유치원에 간단다. 원래 6살에 유치원에 가는 거란다. 그걸 또 한참을 붙잡고, 한국에서는 4살이었으니까 유치원에 안가는 거지만 원래 5살이 되면 유치원에 가는 거야, 라고 꼬드겼다. 선생님과 미리 이야기를 해서 내일 유치원에서 책 읽어 주는 시간에는 다인이 좋아하는 영어책을 읽어주기로 약속을 해 놓고, 집에 와서는 그 책을 두세번 읽어주었다. 말하자면, 유치원생에게 예습을 시킨 격이다.  

아. 나는 극성 엄마인 것일까.  

아이라는 건, 대견해지는 만큼, 엄마의 가슴을 아리게 하기도 한다. 4돌된 아이의 대견함이란, 얼마나 속으로 힘들게 힘들게 애쓴 결과일까.  

 

이런 과정을 거쳐서라도 유치원을, 그것도 한국애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곳을 굳이굳이 찾아서, 보낸 것이 맞는 것일까. 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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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8-2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궁, 다인이가 처음으로 유치원생활에 적응하려니 얼마나 낯설고 힘들까요. 그런데 저는 주로 먼스터를 활용하는데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점점 두려움을 주는 강도가 커지고 있어요. 재우려고요 ㅋㅋㅋ 저는 왜이리 옛날 구전동화가 무섭나 했더니 다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 있는 거더라구요. 이 페이퍼는 둘째의 지름심을 부릅니다^^

루체오페르 2010-08-26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따님의 자매애가 예쁘네요. 평생 가길 바랍니다.^^

덕수맘 2010-09-1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아시마님 다인이 좀 있으면 적응할거에요...아마 제가 이글을 쓸때쯤이면 적응이 살짝 됐겠죠..어디서나 아이들은 금방 친해지게 되있으니까요.저는 아직 둘째가 없어서 늘 궁금하기는 했는데 우리덕수가 동생 생기면 어떡해 할까?가끔 그러거든요.엄마 동생 좀 나아줘 그럼 낳아주면 뭐하게 갖고 논다고 하더라구여. 제생각에는 같이 논다는 표현을 잘 못한게 아닐까 싶어여.가끔 동생들이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하나봐여. 여튼 다인의 편한 유치원가는 모습을 늘 기도할게요..타국에서도 늘 평안하기를요...

찌야마미 2010-10-3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이글읽다가 뒷부분에서 울뻔했당 다인이의 모습이 어떤건지 알꺼 같아서....첨으로 엄마 떨어지는데가 말두 안통하니 참으로 힘들었을꺼같당 근뎅 그놈의 동생이 뭔지 참고 이겨나가야 했던 울공쥬 대단하넹....이제는 씩씩하게 잘 다니고 있겠징???